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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재난 활용법!"
앞서 윤고은 작가의 책을 읽고 그녀가 쓴 또 다른 책이 궁금해 찾다가 읽게 된 <밤의 여행자들>은 에세이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훅 빠져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진했달까?
사실 첫 장면부터 좀 충격적이기는 했다. 더불어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공공연히 일어나는 일이라, 부글부글 끊는 마음으로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들이 휘몰아치면서 약간의 두려움, 기대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 '맹그로브 숲'은 구분상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의 결말 혹은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어떻게 보면 7장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밤의 여행자들>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판타지인가 아니면 진짜 밤과 관련된 여행자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밤'이 뜻하는 것은 '재난'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다시 말해 보통의 여행(낮 여행) 과는 다른 어둠(불운)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사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재난'지역을 여행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여행사를 통해 여행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고통과 폐허가 된 지역, 즉 재난 지역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제목이 <밤의 여행자들>이라고 설정한 게 아닐까 싶다.
내용은 흥미로우면서도 현실 속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킨다. 더불어 인간이 무섭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보다 자연은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출판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더 읽기 적절한 타이밍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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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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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나
-재난 여행사 '정글'의 여행 프로그래머 과장
-10년 넘게 재난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함
-직장 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다는 것을 여러 일들을 통해 직감하게 됨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퇴사 의사를 표했고 이에 직속 상사는 출장을 명분으로 휴가를 줌
-출장지에서 예상치 못한 낙오를 하게 되면서 현실인지 상상인지 모를 일을 겪게 됨
■김조광 팀장
-aka. 김
-요나의 10년 직속상관
-인사고과의 50%를 쥐고 있었고, 호불호가 명확함
-직원들 대상으로 성추행 등 쓰레기 같은 짓을 많이 하고 다님
■최
-정글 여행사에서 보기 드물게 나이 든 여자
-고충 처리반 소속
■무이 벨에포크 리조트 매니저
-관광과 여행에 관심 없던 사람들을 설득해 리조트 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도록 설득한 인물 중 하나
-무이가 막대한 예산을 받기 위해 재난 극복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미스터리한 인물로 어딘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
■작가 황준모
-잡다한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음
-프리랜서(시나리오도 쓰고 사진도 찍음)
-한때 사진 원본 복원하는 작업으로 꽤 재미를 봄
-요나가 출장 명목으로 갔던 무이 재난 여행의 멤버 중 하나
-무이에서 의뢰받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되돌아왔고 거기에서 낙오된 요나를 다시 만나게 됨
-철저한 사전조사와 타이밍을 결합해 사고인지 인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시나리오를 쓰는 전문가
■무이 재난 여행 멤버(6인)
-모녀지간(초등학교 교사와 다섯 살 딸)
-대학생
-작가 황준모
-요나
-가이드 루
■럭
-벨에포크 벨맨으로 요나 담당이었음
-나이는 스물 셋
■폴(혹은 파울: paul)
-읽기에 따라 폴 or 파울로 발음됨
-같은 말 다른 발음에 따라 '정글'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도 쓰이고, 무이에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불리기도 함
-무이에서는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무이의 거대한 투자자로 언급됨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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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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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여행사 '정글'에서 여행 프로그래머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요나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여행사에서 소히 두뇌를 담당한다고 알려진 프로그래머에게 손발의 역할인 고객만족센터 고객 클레임의 업무가 하나 둘 넘어오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사내에서 공공연하게 옐로카드를 받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직속 상사의 만행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성추행을 일삼는 김 팀장을 피해 다니던 요나는 가장 먼저 고충처리반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는 않는다. 이에 고민하던 요나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김 팀장은 휴식을 겸해 출장 명목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한다.
이를 수락한 요나는 존폐 위기에 놓인 상품을 점검한다는 사유로 무료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료로 여행을 떠나게 된 요나는 고객만족센터 상담원과의 통화 후 다섯 가지 선택지 중 가장 비싼 상품인 '무이'로의 5박 6일 재난 여행을 결정하게 된다.
7월 초 무이로 여행을 떠난 요나는 가이드를 포함해 총 6명이 한 팀에 되어 여행을 즐기게 되는데, 멤버 구성원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엄마와 다섯 살짜리 딸 모녀, 그리고 대학생, 작가, 요나, 마지막으로 가이드 루 였다.
숙소는 '벨에포크'라는 이름의 리조트로, 생각보다 좋았으며, 사막과 수상가옥, 화산지대 등을 둘러보며 이들은 가볍게 여행을 마치게 된다. 요나는 무이가 왜 존폐 위기에 놓인 여행지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로써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상황에 불현듯 일이 벌어진다.
돌아가는 당일,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요나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화장실을 찾게 되고,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이 20분이 넘도록 사용 중으로 확인되면서 멀리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 행동이 변수를 만들어 내는 시발점이 된다.
몇 칸이나 떨어진 화장실에서 약 30분 동안 속을 게워낸 후 돌아선 요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고 이내 열차가 두 노선으로 분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내받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승무원을 통해 이 내용을 확인받게 되면서 그녀는 무작정 모르는 역에 내리게 된다. 홀로 낙오된 요나는 간신히 가이드와 통화연결은 되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로 인해 전화는 먹통이 되고, 마지막 순간 확인한 문자의 몇몇 단어를 조합한 끝에 결국 원래 있던 벨에포크 리조트로 어렵사리 돌아가게 된다.
큰 짐은 일행들과 함께 있었고, 여권과 지갑은 기차에서 분실하게 되면서 요나는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다행히 이런 상황을 배려해 준 호텔 매니저 덕분에 요나는 원래 자신이 머물던 방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산책길에서 우연찮게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과 풍경을 만나게 되면서 요나는 많은 것들이 뒤틀려 있음을 알게 된다. 여태껏 자신이 무이에서 재난 여행을 하며 보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쇼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란 트럭이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한국으로 급히 출국하기를 원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에 직장 말고는 특별한 지인이나 연고지가 없었던 요나는 자신의 직장인 '정글'과 통화를 하게 되고 이를 엿들은 호텔 매니저는 요나가 자신들의 관광산업에 키를 쥐고 있는 '정글'의 직원임을 알게 되면서 태도가 확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여행 멤버였던 황 작가가 되돌아오게 되면서 셋은 공사현장처럼 보였던 탑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요나는 커다란 싱크홀 2개를 목격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이들이 꾸미고 있던 일련의 일들을 듣게 되면서 함께 동참하기를 제안받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상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는데,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듣게 되면서 요나 또한 이 계획에 함께 하기로 한다.
이들이 계획하고 있는 재난은 3주 후 정확히 8월 첫 번째 일요일에 실행될 예정으로, 황 작가는 이 모든 계획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역할을, 요나는 재난 후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한 여행상품을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무이의 투자자 폴과 매니저, 그리고 이 둘은 마침내 거대한 재난현장을 만들 목표로 재난 프로젝트를 설계하게 되고, 서서히 계획은 실행되고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비밀 엄수였으며, 대대적으로 온 마을 사람들을 운용해 재난 현장을 만드는 것이라 특히 더 그러했다. 누군가에게는 수익을 가져다줄 대단한 사업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간절한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요나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매니저가 붙여준 벨맨 럭과 무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은근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겉으로 볼 때는 기회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무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투자자 폴로부터 약속했던 허가증은 여전히 발급되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요나는 어느새 이런 것들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는데 오로지 럭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온기와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거사를 앞둔 어느 날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이것은 곧 일요일 새벽녘 진짜 재난까지 발생하게 되면서 무이는 완전 초토화가 된다.
본격적인 재난현장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실행일을 앞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사고 현장, 그리고 처참하게 망가진 무이의 모습은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요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는지 그밖에 생존자들에는 누가 있는지는 특히 마지막 장 '맹그로브 숲'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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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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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에서 옐로우 카드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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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지금 겪고 있는 게 재난이라면, 어떤 행동이 요나를 이 상황에 몰아넣은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사소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지금 요나는 옐로카드의 대상이 된 건지도 몰랐다. 김에게 성추행을 당하기 전의 상황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의 기원은 분명 김에게서 온 것이었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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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홀로 낙오됨
한국으로 돌아올 일만 남았던 요나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린 것은 물론, 홀로 낙오되었다.
3. 폴이 기획한 재난이 진짜 발생함으로써 무이가 진짜 재난 지역이 됨
인위적인 재난을 계획하고 있던 폴, 그리고 거기에 동참했던 매니저와 요나, 그리고 황 작가는 이내 자연이 만들어낸 진짜 재난에 휩싸이게 된다.
4. 예상치 못하게 럭과 사랑에 빠지면서 요나는 계획을 그르친 인물로 찍히게 됨
사람을 도구로 보던 매니저와 폴, 그들의 계획에 사람은 그저 자신들의 안위와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들에게는 오로지 쓸모와 무 쓸모로 나뉘었는데, 요나가 럭과 사랑에 빠지면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고, 마침내 요나도 무쓸모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요나는 또 다른 재난상황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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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처럼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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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사람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9~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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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진해에서 벌어진 쓰나미 현장에 대해 서술한 문장이다. 요나는 자신의 새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진해에 맞추고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 바로 위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것은 곧 출장 겸 여행으로 떠난 무이에서 요나가 겪게 될 상황을 암시하는 문장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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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요나의 전임자가 떠올랐다.
(...)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상사가 그것을 휴가로 돌려준 것을 두고 사람들은 박 과장이 게임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6개월 후 회사에 복귀한 박 과장은 최악의 고과 점수를 받았고, 곧 누구나 기피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되자 박 과장은 결국 정말 사표를 쓰고 말았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박 과장에 대한 말이 돌았다.
"뻔한 이야기였지, 뭐, 6개월 후면 11월이고, 인사고과 시즌 올 거 뻔하니까. 김 팀장이 바닥 깔 용도로 박 과장을 붙잡아 뒀던 거지. 게다가 그 지옥으로 보낼 사람도 한 명 필요했으니까.
(...)
아주 사람을 진액까지 쪽쪽 짜 먹을 인간이야."
127~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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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되고 버려진 요나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결국 요나가 따르게 될 상황이라고나 할까? 요나가 만약 무사히 무이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면, 이런 상황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는 문장으로, 또 다른 복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나가 홀로 무이에 낙오되었을 때, 회사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마침내 요나는 전임자처럼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처리된 모양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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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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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노크하듯 떨어졌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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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그곳 무이의 해변에 좌초한 쓰레기 섬은 점. 점. 점. 흩어졌다.
2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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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위와 같은 표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끊어질 듯 연결되는 양상으로 보이는데 마치 삶이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모양새처럼 느껴진다. 다르게 보면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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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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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첫인상에서 요나가 느낀 것은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그러나 사막의 실루엣은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어도 손안에 남는 것은 모래 한 줌뿐.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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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한국에서도 기대거나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만한 존재가 전혀 없었다. 직장인 요나에게 '정글'은 그저 생존신고를 해주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막에서 불쑥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은 어쩌면 정서적 결핍으로 인한 충동에서 기인한 느낌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내 손안으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느끼며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그녀가 원하는 자리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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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방갈로 앞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아이가 있던 자리에서 화약처럼 생긴 스탠드형 폭죽이 천둥 번개처럼 터졌다.
(...)
"머리가 떨어졌어요?"
요나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앞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
"2차 학살을 해야 하는데."
(...)
"어? 부상자 운반하는 개미네. 지금이다!"
아이는 근처에 널려 있던 나뭇가지로 개미들을 콕콕 찔렀다.
(...)
아이가 "운다족 개미다, 죽이자!"라고 혼잣말을 하는 걸 보고, 요나는 재난 여행에 연령 제한을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는 여전히 개미를 '학살'하고 있었다.
5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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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순진무구한 아이는 끔찍하고 참혹했던 역사 이야기를 듣고 그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 없이 개미들을 죽이기 위해 폭죽을 터트리고, 머리가 떨어졌는지를 확인하고, 2차 학살을 감행한다.
이 아이는 어떠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놀이고 즐거움이다. 이 대목을 읽는데 어쩐지 우리가 사는 현실 속 뉴스에서 종종 목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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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스케치북을 두 권 가져왔는데, 아이의 스케치북에 이 여행의 장면들이 활기찬 부조처럼 녹아들기를 기대한 행동이었다.
(...)
아이가 속성으로 다섯 장이나 휘갈긴 그림의 첫 장에는 리조트에서 먹은 브라질식 바비큐가, 마지막 장에는 구덩이에 널린 머리들이 그려져 있었다. 첫 번째 것은 이 여행의 취지와 도무지 맞지 않았고, 마지막 것은 불쾌했다. 아이의 그림 속 잘린 머리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익숙한 생김새들이었다. 머리는 하필이면 여섯 개.
"우리잖아, 엄마!"
아이는 그렇게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58~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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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부모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는 천진무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끔찍한 살인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활기차고 즐거운 일상이 스케치북에 녹아들기를 기대하며 건넨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불쾌한 형상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엄마의 기대를 배신했다.
이 아이는 후에 커서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만들었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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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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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을 굳이 여행상품으로 만들고, 이것을 관광상품이랍시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 대목에서 속시원히 풀어주고 있었다.
타인과는 다르게 자신은 살아있다는 확신, 그리고 이기적인 위안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이걸 보면 인간은 참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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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자신이 검증된 재난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 밖의 진짜 혼돈에 떨어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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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떠도는 먼지 같은 존재처럼 행동하다가도, 불현듯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성을 띠고는 했는데, 첫 번째는 '정글'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다고 느꼈을 때고, 두 번째는 무이에서 혼자 낙오되었을 때다.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상황인지, 아니면 진짜 우연찮게 벌어진 재난인 건지 그녀는 검증해 보고 싶어 했고, 실제로 확인을 통해 스스로 검증하는 절차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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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해는 지난밤을 비추듯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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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했다. 부족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모두가 뒤엉켜 있었고 눈을 감은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믿지 못할 광경은 서 있는 사람들의 눈도 감기게 만들었다.
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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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인 재난을 만들려고 했던 인간은 참으로 무서웠다. 마치 거대한 재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자연이 부린 마법 앞에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사람마다 등급을 나누고 필요와 불필요를 나눠 입맛에 맞게 생사를 갈랐던 인간들과는 다르게 자연은 공평했다. 부족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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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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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자꾸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마치 작가가 숨겨둔 보물 찾기를 하듯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하다.
2013년 출간되었는데, 내용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2024년 현재에 더 어울리는 상황과 분위기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메마르고 감성이 결여된 사람들의 모습이라던가 재난을 겪은 지역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여행사와 같은 것들은 절로 고개가 내저어진다.
특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난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에서 표현되는 쓰나미의 상황이나 이후 폐허가 된 모습들은 어딘가 익숙함을 자아낸다.
사람과 살아있는 생물체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2차 학살까지 감행하는 아이는 더 이상 아이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가면을 쓴 살인자처럼 느껴진다. 길거리, 지하철, 백화점 등 우리 주변에서 갑작스레 벌어지는 살인 현장을 엿 본 느낌이라 소설에서 언급되는 '개미'나 '악어'가 그냥 보아 넘겨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여행은 더 이상 낭만이나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재난 여행은 말 그대로 재난이 되었고, 더 지독한 삶을 의미했다. '정글'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요나는 정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았으며, 적어도 거기 머무르는 내내 그러했다.
같은 스펠링이지만 발음하기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Paul은 회사에서는 파울로 불렸고, 무이에서는 폴로 불렸다.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절대자로 군림하는 '폴'은 정글에서는 '파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낙오자의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정글과 무이는 다른 듯 닮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쓸모가 없어지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러했다. 정글에서 사람들은 '파울 때문에 그래'라는 말로 밀려났고, 그렇게 자리를 빼앗겼다. 무이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었다.
이들은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 했고, 그 쓸모를 입증하지 못했을 때는 퇴출되었다. 한낱 소모성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권력을 쥔 인간, 절대적인 존재인 폴이나 정글의 입장에서 본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자연이 개입하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된다. 어떤 조건을 가졌든 간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인간들은 모두 자연 앞에서 하찮고 별거 아닌 존재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현재인지, 상상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간들의 재난 활용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했던 여행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 또 인간들의 욕심이 불러온 참상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똑똑히 목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