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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미친년'이라는 말속에 함축된 의미가 뼈아프게 다가왔던 이야기!"
처음에 책 제목과 소개 글에 홀려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고 나니 어딘가 모를 숙연함과 강렬한 슬픔, 그리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 역시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한발 걸쳐서 자라온 세대라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불합리함과 억울함, 고통 등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 '미친년'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와 뉘앙스가 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너무도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고통스러운 가정사라 한국에서는 출판할 생각이 없어서,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출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특정 누구의 이야기라기보다 그냥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무조건 아들 먼저, 딸은 항상 뒷전. 그래서 기본적인 대우나 대접이 하늘과 땅 차이였으며, 이로 인해 딸들은 항상 희생하고 버려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시절.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불안과 갈등, 대물림되는 학대, 우울감 등이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 많은 여성들이 겪고 또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한동안 세대가 변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던 시기에는 여러모로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과정 하나하나 세대를 걸쳐 저자는 '미친년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한 가정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총 19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미친년들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할머니(혹은 그 이 전 세대)부터 엄마, 그리고 자신에게 연결되는 각 세대 여성들의 삶이 왜 고통과 슬픔의 역사가 되었는지 개인적 상황과 경험에 기대어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의도치 않은 죽음부터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병환으로 인한 죽음까지 다양하게 다뤄지는데, 대를 이어 겪어온 지난한 여성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 여러 사정상 부모의 사랑이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저자는 늘 오줌 쌀 것 같은 긴장감과 불안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엄마 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대, 그 배경이 엄마를 '미친년 인생'으로 만들었다 말하며 이제는 자신의 세대에서 그 '미친년의 인생'을 끊어내리라 다짐한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 다짐)
실상 세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주변인들보다 오히려 오래 살아남아 이제는 혼잣말을 노랫말로 바꾸어 약함과 슬픔을 위로와 사랑의 말로 건네고 있는 저자.
그 시절, 여성들의 헌신과 노력,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미친년들의 이야기를 이번 기회를 빌어 깊이 들여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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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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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저자)
-1986년 1월, 9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
-아들인 줄 알았으나 딸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뒤, 부모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한 저자는 언니가 유일한 구원자였음
■김경형
-1960년생으로 이랑의 엄마
-1983년 1월 오빠 친구 '이석'과 결혼
-가족과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었음
■이석
-1956년생으로 이랑의 아빠
-폭력적이고 가부장적
■이슬
-이랑의 언니이자 집안의 첫째 딸
-스무 살 무렵부터 각종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았음.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포함해 공황장애와 조울증, 우울증, 불면증을 20년 가까이 겪으면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사범대 졸업
-특수교사로서 인정받아 매년 교육청으로부터 공로상이나 감사패를 받음
-늘 자신보다 가족들을 먼저 챙겼던 다정한 언니
-2021년 12월 10일 오전, 사망
■이완
-집안의 막내아들
-신체장애와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나 돌 때까지 깁스를 하고 살았음
-돌이 지나 내반족 수술을 받고 1년 뒤, 처음으로 자기 다리로 걷게 됨
-둘째(이랑)이 딸로 태어나면서 남편은 중절수술을 권유했지만, 당시 종교를 갖게 된 엄마가 이를 거부하며 막내아들을 출산
■준이치
-20년간 함께 살다 세상을 떠난 이랑의 반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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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과 죽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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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2일 친구 M 자살
▶2020년 7월 동갑내기 친구 D 간암으로 사망
▶2021년 10월 저자 '이랑' 자궁 경부암 수술
▶2021년 12월 10일 언니 이슬 사망
▶2022년 11월 1일 외할머니 사망
▶2025년 2월 28일 반려묘 준이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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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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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곳이 필요했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눈을 떴다 감을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했다. 몸에는 긴장감이 하염없이 흘렀다.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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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속되는 불안한 가족환경 속에서 숨을 곳도 없이 누군가와 매일 마주치며 살아야 하는 기분,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아이이기에 더 대책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았어야 하는 상황들이 떠올라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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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긴장도가 높아질 때 자주 느꼈던 '오줌이 마려운 기분',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현된 '정신이 붕붕 떠오르는 기분',
숨을 쉬어도 숨이 들어가지 않아 '너무 쫀쫀한 목폴라를 입고 있는 기분',
서 있을 수 없는 정도로 '땅이 울렁거리는 기분'.
이름 모르는 감정들 속에서 나는 혼자만의 이름 짓기를 꾸준히 해왔다.
19~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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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만의 표현법과 이름 짓기만으로도 충분히 그 감정과 상황들이 절로 느껴질 만큼 공감 가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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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집을 떠나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한 행동은 '큰 소리로 울기'였다.
(...)
내내 가짜 미소를 지으며 살던 집을 벗어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
울고 나면 개운해지는 것도 있었지만, 체력 소모가 심하고 금방 열이 났다. 체력을 깎아가면서 크게/많이 우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
금방 동나는 체력을 아낄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끝없는 혼잣말이었던 소리가 언제부터 노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0~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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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큰 소리로 울기'. 늘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집에서 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행위였다. 이후 이것은 체력 고갈로 인해 혼잣말로 변형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이 혼잣말은 노랫말이 된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작가와 가수로서 그녀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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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 우리 셋은 오래전부터 '이 씨 집안의 대를 우리 선에서 끊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엄마와 아빠, 조부모와 친척들을 둘러싼 지옥 같은 드잡이와 폭력적인 상황에 수없이 노출되며 자란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이다.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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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로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는지 가히 짐작이 될 정도다. 오죽했으면 '우리 선에서 이 씨 집안의 대를 끊어야 한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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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포함해 여러 어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한 기억은 많지만, 막상 어른들에게 적절한 보호와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지가 않다. 반복되는 갈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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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서러움과 결핍은 유난히 더 오래가는 것 같다. 아니 평생을 가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는 애정으로 인해 얼마나 애가 타고 힘이 들었을까?
어쩌면 이후 집을 나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은 그런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일들 덕분에 어쩌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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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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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탓이라고 해도 사실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저자는 엄마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시대에 그렇게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사정과 시대를 이해하기 때문은 그녀는 '미친년 인생'이 엄마 탓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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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 집의 일부였고 쓰레기였고, 동시에 돈이었다. 무기였고 가구였고 희망이었다.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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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집 분위기임에도 항상 책장에 꽉꽉 채워져 있었던 책들. 그것은 때론 무기로 돌변해 저자를 공격했고, 또 때론 혼자 시간을 때우는 데 도움을 주는 희망이자, 어떨 때는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기도 했다.
때론, 가난한 집에서 돈 대신 쓰이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저자는 책을 이렇듯 여러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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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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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뛰쳐나와 나의 삶을 택한 저자. 반면 끝까지 집에 남아 끝까지 가족들을 챙겼던 언니 이슬. 그 때문일까? 그녀의 자살이 모든 것을 소진하고 시들어 간 사람처럼 느껴진 것은.
가족 모두를 챙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홀로 감내하며 살았던 그녀. 그 와중에도 장학금을 받고, 특수교사로서도 모범을 보였던 그녀.
사정을 알고 보면 오히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긴 시간 지냈다는 것이 더 의아하게 느껴지는 그녀. 이제는 그곳에서나마 편히 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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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옷에는 'LOVE'라는 글자와 스마일 그림이 많이 있었다. 내 귀에 있는 귀걸이 세 개도 전부 하트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나 사랑을 갖고 싶어 했다. 하염없는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우리는 정말 사랑을 좋아했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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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슬과 동생 이랑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공주 같고 화려한 걸 좋아했던 언니, 그에 반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자.
그럼에도 이 둘은 공통적으로 사랑을 갖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딸이라는 이유로 늘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애정을, 넘치게 받고 싶었다. 그들은 사랑을 정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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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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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도 아니고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라는 제목에 더해 소개 글에서 살짝 엿본 글귀 중 '언니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밤새 춤을 추었다'는 장면은 어쩐지 희귀하면서도 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단번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읽고 난 후에는 왜 앞서 읽었던 사람들이 그토록 눈물을 흘렸는지, 또 한국에서 출간하는 것을 꺼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축된 '미친년'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제에 짓눌려 희생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한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정서와 한은 대물림되어 고스란히 딸에서 딸로 이어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저자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은 오죽하면 우리 대에서 이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결국 견디다 힘이 다 빠져버린 언니는 먼저 소진사했고, 저자의 주변에 가까웠던 이들은 2016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나둘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나 죽는다지만, 이렇게 행복이라는 것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살기도 전에 하나 둘 스러져 가고, 소멸되는 모습을 보면 시대에 수긍하며 사는 것이 맞는지, 버티며 사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낙인찍혀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 이제는 그만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현재를 그냥 나로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가 '한'에 잠식 당한 '미친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