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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7월
평점 :
"여행을 앞세워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국내부터 해외까지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여행에 대해 담고 있는 에세이 책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여행지에 대한 어떤 감상이나 풍경을 사진이나 글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여행지와 함께 하는 사람들만 제외하면, 일상의 기록물처럼 먹고 마시고 노는 이야기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분명 '제목'과 '차례'를 살펴봤을 때는 휴식과 여행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아니 내용에서도 분명 그런 내용들이 확인되기는 하나 이게 메인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과 '휴식'에서는 빗겨난 이야기라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그는 꽤 많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또 여전히 다니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쉼을 위해 떠난 여행은 곧 일과 연결되며 장소만 바뀐 일상으로 이어진다. 이럴 거면 왜 떠난 걸까 싶으면서도 또 그 덕분에 더 열심히 일상을 살아내게 된다고 말하는 저자의 여행 에세이 속으로 지금부터 들어가 보자.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여행 에세이를 빙자한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 책이다. 장소는 광주, 강릉, 유럽, 뉴욕, 제주도, 가파도 섬 등등 매번 바뀌는데, 내용면에서는 여행을 온 건지 아니면 일상을 살아내는 이야기인지 살짝 헷갈린다.
분명 쉼을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저자는 매번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마감과 원고 교정 등에 시달린다. 혹은 여행 예능 도전기와 같이 모든 것이 다 '일'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장소만 바뀌는 일상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쉼과 일이 분리되지 않은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몸이 아파야만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시작한다.
실제로 책 내용 중에 몸이 아파 골골대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때마저도 마감일을 맞추느라 원고를 보내놓고 쉬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란 직업이 참 쉽지 않은 직업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여행지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이다. 솔직히 독자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저자는 참 열심히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소소하지만 허물없는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저자 주변에는 생각보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참 많구나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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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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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다다를 무렵 룸미러를 통해 두 쪽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나는 15년 차 운전자 지현에게 물었다.
"저거 뭐야? 도로에 사이키 조명 같은 게 다 있네"
"응.... 저건 뒤에 있는 운전자가 너 너무 느리다고, 비키라고 하이빔 쏘는 거야."
"아...."
47~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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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자인 저자가 친구까지 태우고 용감하게 강릉까지 운전대를 잡고 길을 나섰다. 험한 산길을 거쳐 겨우 강릉에 다다를 무렵 뒤에서 반짝이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사이키 조명 같은 게 다 있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순간 빵 하고 터졌다.
친구는 여기에서 돌려 말하지 않고 '너 너무 느리다고 비키라고 하이빔 쏘는 거야'라고 말한다. 아무리 긴장했기로서니 뒤에서 쏘는 불빛을 어쩜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이 책의 내용 중에 나를 가장 크게 웃겼던 내용이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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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젊음과 내적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듯,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쉬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결속력의 중심에는 조하나의 마음 씀씀이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친구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던 것 같다. 마치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 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2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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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만 바뀌는 여행이야기 속에는 소소하고 작은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저자 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이유는 아마도 꾸준한 노력과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타인의 마음 씀씀이를 알아봐 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찰나의 순간 서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덕분에 이들은 어떤 장소에서도 스스럼없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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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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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름만으로는 성별을 가늠할 수 없어 그냥 무작정 읽어 내려 가는데, 그러다 한 번씩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여성 캐릭터를 생각하고 읽었던 인물이 남성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남성인 줄 알고 읽었던 인물로 여성으로 둔갑하면서 반전재미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오랜 친구들인 종미, M, 조하나 3명의 멤버들이 사실은 여성 3명이었다는 점(결국 여성 3명과 남성 1명의 여행이었음), 그리고 가파도까지 찾아와 행사를 진행했던 서점 사장이 사실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다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뭔가 속은 느낌이 들면서도 저자가 심어놓은 재미요소인 것 같아 나중에는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 무작정 배낭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는 스스럼없는 모습 뒤에 이처럼 성별 상관없이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있기에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의 내용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그래왔듯, 찰나의 노력들에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도 전진 또 전진하기를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