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미술이나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아 포기하게 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여기 있다.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궁금하게 만드는 주제를 통해 이들이 살았던 시대와, 예술을 꿈꾸고 성장한 배경, 그리고 이들이 창조한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나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접근해 보면 조금씩 해답이 보인다. 작가의 삶이 궁금해서, 이들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색채나 구도, 아이디어가 좋아서 등등 어떤 이유도 상관없다.


자신의 취향대로 파보면서 작가를 알아가고, 예술을 공부하고, 전시회와 미술관을 방문하며 눈으로 가슴으로 담으면 된다. 그것이 어쩌면 예술에 다가가는 가장 손쉬우면서 자연스러운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미술사는 없다. 그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내용들만 가득할 뿐이다. 우리가 몰랐던 이들의 삶과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작품을 한번, 두 번 자꾸만 보게 되는 마력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보면, 직접 보고 싶은 궁금증과 호기심까지 느끼게 된다.


행동력과 실천력이 뒷받침되어준다면, 가까운 미술관이나 전시관, 갤러리 등 어디든 방문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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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한참을 기다려 이 책을 찾으러 간 날 사서 분께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추천해 주시며, <방구석 미술관 2: 한국편>도 추가로 추천해 주셨다. 자신은 2편을 훨씬 더 재밌게 읽었다며, 덕분에 소장 가치를 느껴 책 구매는 물론 가까운 전시회장도 알아보고 직접 방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읽기 전부터 직접 읽은 독자의 평을 들은 나로서는 기대감이 폭발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 왜 그런 긍정적인 평을 했는지, 또 왜 소장까지 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작가의 작품들을 언제든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는 장점과 매력 때문에 소장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했다.


나 역시도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작품과 미술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총 14명의 예술가들이 담겨 있는 이 책에는 재기 발랄한 스토리텔링과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과 작품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마치 놀잇감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을 접하고 바라보면서, 집중하게 되는 자신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색다른 아이디어와 미술사의 흐름, 획기적인 생각들을 엿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술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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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끝나면 마지막 페이지에서 작가 소개 페이지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하단부에 자리한 QR코드를 찍으면 목소리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접할 수 있는 페이지로 연결된다. 만약 책을 읽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것을 활용해 봐도 좋을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직접 눈으로 보고 읽는 것이 좋아 책으로 읽는 것이 더 좋았다. 눈으로 읽고, 책에 담긴 그림과 예술작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상상하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가면서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 뚝딱 읽게 된다.



정말 소장 가치가 충분히 있을 만큼 곳곳에 자리한 작품들은 모두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더 눈길을 끌었던 다섯 명의 작가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스토리에 관심 없다면 그냥 그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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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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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표현주의
표현주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감정을 표출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회화란 '눈으로 본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전통적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새로운 생각이다.


이런 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바로 뭉크로, 뭉크의 독창성은 '자전적 표현'에 있다. 이런 뭉크의 표현주의 작품은 독일 표현주의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뭉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머금게 된다. 추운 겨울, 노르웨이 어느 농장에서 다섯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허약했던 어머니 때문인지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다. 선천적으로 류머티즘을 앓아 평생 관절염과 열병에 시달렸다.


이런 그에게 영원히 각인될 고통이 일찍 찾아왔는데, 다섯 살 이란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에는 한 살 위인 누나 소피아마저 같은 이유로 사망한다. 무엇보다 숱하게 병치레를 했던 그에게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라는 두려움의 근원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내의 사망 이후 우울증을 보이기 시작한 아버지는 고립된 생활을 자처하며 가족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뭉크는 그것들을 버려야 할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기로 한다. 여느 거장들처럼 그 역시 이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키게 된 것이다.


뭉크식 죽음의 레퀴엠.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바로 <병든 아이>로 열다섯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창백한 누나에 대한 기억을 고통스럽게 더듬거리며 탄생시킨 첫 번째 작품이다.


자신만의 예술 주제를 찾던 젊은 뭉크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서 예술의 원천을 길어오면서 자신의 삶을 둘러싼 죽음, 가혹한 삶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그림 위에 쏟아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뭉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감수성과 우울함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피해 망상과 여성은 남성의 영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흡혈귀>라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을 살펴보면, 사회적 공감대나 고정관념에 관계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생각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실연의 아픔이 서서히 잊힐 무렵 뭉크는 어릴 적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면서 다시 두 번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뭉크의 절친들이 그녀를 보고 반해버리게 되면서 사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절친과 그녀가 결혼하게 되면서 뭉크는 사랑의 상처뿐만 아니라, 우정의 멍자국까지 얻게 된다. 이 사건으로 받은 고통 역시 캔버스에 찍어내는데 그 작품이 바로 <마돈나>라는 작품이다.


매혹적이면서도 음산한 마돈나는 젊은 날 두 차례의 사랑과 실연의 고통이 만든 뭉크만의 여인상이다.


이후 또 한 번은 사랑에 협박당하는 파국에 이르면서 총알이 뭉크의 왼손가락 중지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뭉크는 병원으로 이송되고 손가락에 박힌 총알을 빼내며 파국은 종결되는데, 이로 인해 뭉크는 영혼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는 총알이 자신의 손을 관통했던 기억 또한 숙성시켜 5년이 지난 1907년 심혈을 쏟아<마라의 죽음>을 그리게 된다.


뭉크는 '보고 있는 것'이 아닌 '본 적이 있는 것'을 그리는 남자로 자신의 삶을 관통해 피 흘리게 한 사건을 숙성시킨 후 심장에서 끄집어내어 예술로 표현하는 남자였다.


이후 뭉크는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지만 피해 망상에 시달리고 고통을 잊기 위해 마신 술은 정도가 지나쳐 중독 증세를 보이게 된다. 하지만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정기적으로 온천 등의 휴양을 하면서 마침내 완벽하게 청산하는 절제력을 보이게 된다.


뭉크는 결국, 자신의 삶과 예술을 위해 사랑하기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또 평생 절실히 죽음을 피하려 했기 때문인지, 그만큼 그는 오래오래 살게 된다.


이후 죽음과 자신을 평생 연결 짓던 그는 늙어가는 자신에게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고 <시계와 침대 사이에 있는 자화상>을 남기게 되는데, 이 그림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부터 홀로 집에서 그린 그림이다.


죽음에서 꽃 피기 시작해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뭉크의 그림. 그의 삶과 예술은 죽음을 먹고 자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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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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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후기 인상주의
반 고흐식 후기 인상주의는 한마디로 '색을 향한 100˚C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 고흐는 그 색이 어디까지 순수하게 정제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지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색을 통해 '자연의 생기'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반 고흐는 현실 이면의 '초월적인 것'을 추구한 화가로 사물 속에 숨겨진 본질을 끄집어 내려 했다. 색을 향한 그의 열정의 기저에는 '색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담고 싶다'는 열망이 깔려 있다.


'영혼의 화가'라고 불리는 반 고흐는 색 중에서도 특히 노란색에 아주 푹 빠진 화가였다.


새로운 예술을 발견하고자 무작정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상경한 33세 반 고흐. 그가 파리에 도착할 당시 파리를 접수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녹색 요정'이라 불리는 술 압생트였다. 이 술은 알코올 도수가 40~70퍼센트에 달하던 독주였는데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반 고흐는 파리의 코르몽 화실에 들어서면서 안 먹어본 술이 거의 없을 만큼 애주가였던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레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녹색 요정'에 빠지게 되면서 파리를 떠날 무렵에는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1888년 2월, 알코올 중독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향하게 되는데, 아무도 없는 그곳에 간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색' 때문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를. 그곳에서 고흐는 태어나 처음으로 순도 높은 강렬한 색을 두 눈으로 발견하게 된다. 압생트 산지인 아를에서 말이다.


이후 반 고흐는 불멸의 명작을 쏟아내기에 이르는데, 그 작품이 바로 <노란 집>과 <아를의 밤의 카페>라는 작품이다.


이상한 건 이 작품들 모두 온통 샛노랗다는 점이다. 또 그가 아를에서 남긴 그림에도 역시 노란색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아를에서도 어김없이 함께 한 녹색 요정 때문이었다.


녹색 요정은 산토닌을 품고 있는데, 계속해서 마시면서 산토닌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산토닌은 압생트 주원료인 향쑥의 주요 성분으로 과다 복용 시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황시증이다.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으로 인해 고흐 또한 모든 대상을 노랗게 보게 된 것이다.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내게 된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바 고흐가 생명을 활활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기>였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얼마나 노랑에 심취해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해바라기>는 1888년 오래 설득 끝에 아를로 오기로 한 정신적 지주, 고갱을 기다리는 반 고흐의 기쁨과 설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노랗게 타오르는 정열의 에너지를 보는 것만 같다.


고흐가 즐겨 마셨던 압생트는 앞선 황시증 외에도 진정한 저주 하나가 더 있었는데, 바로 튜존이다. 이 성분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이로써 압생트는 고흐의 몸과 마음을 뿌리부터 파괴시킨 '녹색 악마'였다.


어쨌든 반 고흐는 요정의 탈을 쓴 '녹색 악마'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당하게 되면서 점차 격렬해지는 정신착란과 귀를 막아도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으로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게 된다.


그때 고흐가 그린 자화상은 유례없는 것이 되었는데 바로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이다. 노란 방, 노란 낯, 초록 눈동자는 마치 압생트를 머금은 듯하다.


이 사건 후 그는 압생트로 인한 온갖 중독 증세를 밀어내고자 노력하며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압생트를 끊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며 갱생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이때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이 탄생하게 된다.


녹색 악마와 최후의 사투, 그 끝에 최후의 고통이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그가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하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던 동생 테오의 상황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다. 동생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서 숨 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된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 말고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작별을 고하게 된다. 고흐는 결국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녹색 악마 압생트는 고흐의 영혼을 갉아먹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예술가의 영혼이 내지를 수 있는 표현의 극대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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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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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분류되지 않음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이


왜 인상주의 거장들은 마네를 존경하고 따랐던 걸까? 왜 오늘날까지 불멸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는 걸까?


마네를 한마디로 소개하면 '미래로 가는 문'을 찾아 그림에 숨겨둔 남자'다. 그야말로 마네는 선지자였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미술을 붓으로 내려쳐 금을 냈고, 전혀 새로운 모더니즘 미술로 가는 문을 찾았다. 또한 후배들이 그 문을 찾아 열도록 자신의 그림 속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두었다.


마네는 원래 정통 귀족 출신으로 전통 미술 교육을 받고, 전통 미술 시스템을 따랐던 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네가 전통을 파괴하게 된다. 심지어 '미래의 미술로 가는 문'을 한발 앞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올랭피아>를 그린다.


클래식해 보이던 그가 어떻게 180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그가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가는 문을 찾도록 도와준 '두 개의 램프'가 있다.


▶첫 번째 램프: 악의 꽃
천재 샤를 보들레르가 스물한 살에 쓰기 시작해 15년 후에야 비로소 완성한 시집 '악의 꽃'에는 매춘부와 성행위, 시체와 죽음 등 추함과 악함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이것으로 그는 비난을 받고 법정에 서게 되면서 여섯 편이 삭제되고 300프랑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당시에는 금치산자이며 풍기 문란을 일으키는 방탕아로 천대받았던 저주받은 천재, 샤를 보들레르는 시의 주제를 과거의 고상한 것이 아닌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가져오는 파격을 가하게 된다 또 '악하고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파격을 시도한다.


사실 보들레르는 시뿐만 아니라 미술 평론으로도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런 보들레르를 마네는 깊이 존경하며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게 된다.


▶두 번째 램프: 물 건너온 종이 쪼가리
1855년, 만국박람회가 파리에서 최초로 열리게 되면서 여기에 일본도 참여하게 된다. 이때 일본은 파리에 도자기를 보내게 되는데, 험난한 뱃길에 도자기가 깨질 수도 있어 완충 역할을 해줄 종이 쪼가리를 잔뜩 넣게 된다.


그런데 이 도자기를 감싼 종이 쪼가리에 혼을 빼앗긴 파리지엔이 있었으니 바로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이었다. 이 종이는 14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에서 꽃핀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로, 속세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과 같이 당시 일본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담고 있었다.


당시 파리지엔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의 우키요에를 본 브라크몽은 주변 화가 친구들에게 소소한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게 되고 그중 한 명이 바로 마네(그리고 드가)였다. 마네 또한 우키요에를 보고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기성의 파리 화단에서 절대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우키요에는 비웃기라도 하듯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원근법으로, 마네가 본 우키요에에 원근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미술을 절대 진리로 여기며 르네상스 이후 500년간 이어져온 고전적인 화풍 또한 무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물, 건물, 산 등 모든 사물에 뚜렷한 윤곽선이 있었고 그 안은 순수한 원색이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단순미가 강렬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현 방법을 고민하던 마네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우키요에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마네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미술을 개척하는 데 결정적 힌트를 주는 열쇠로 변신하게 된다.


게다가 우키요에에는 보들레르가 항상 말하던 생각의 정수가 담겨 있었는데, 바로 '화가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신화나 역사가 아닌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려야 한다는 마네의 생각은 우키요에를 통해 더욱 확고해진다.


그렇게 31세의 당돌한 사내는 '보들레르'와 '우키요에'라는 두 개의 램프를 쥐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가게 된다. 드디어 과거의 길이 아닌 미래의 '미술로 향하는 문'을 찾았기 때문이다.


1863년 마네는 <풀밭 우의 점심 식사>를 살롱전에 출품하게 되는데 보수적이었던 심사위원들은 당연히 탈락시키게 된다. 그리고 떨어진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낙선전에 걸리게 되는데, 이 작품을 본 파리의 평론가와 관객들은 풀밭 위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풍경에 경악하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에서 영감을 얻고 또 라파엘로의 원작을 동판화로 모사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 일부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다. 당시에도 거장의 작품을 재해석해 그리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전에 없던 오마주'가 경악의 원인이었다.


그림 속 인물은 신화, 성서, 역사 들의 인물이어야 하는데 마네의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1860년대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 지저분한 누드다. 이게 예술이냐"라며 경악했던 것이다.


더불어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거야?"라며 두 번 경악하기에 이르는데, 당시에는 그림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 속에선 평범한 옆집 사람들이 퇴폐적으로 놀아나고 있었다.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과 생활상을 그러야 해."라는 보들레르의 한발 앞선 생각이 마네의 정신을 흔들어 깨운 셈이다.


그 결과 풀밭 위에 퇴폐적으로 노니는 1860년대 부르주아들의 생활상을 풍자하는 그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미술은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비로소 시대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마네가 발견한 '미래로 가는 문'이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술 작품이 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마네의 도발적 시도는 오늘날에 와서야 대중의 코드로 정착된 것이다.


사실 마네에게는 앞서 욕받이가 되었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외에도 숨겨둔 핵폭탄 하나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올랭피아>다. 너무 파격적이라 화실에 꽁꽁 숨겨두었는데 보들레르의 권유에 큰 용기를 내면서 화실에서 꺼내 폭탄을 투척하듯 실롱전에 출품하게 된 것이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명작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매우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실 '올랭피아'는 당시 매춘부가 주로 사용하던 이름으로, 이 그림은 비너스가 아닌 매춘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에 걸린 검은색 초커 목걸이는 매춘부를 상징하는 장신구이며 꽃다발은 스폰서가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또 검은 고양이의 꼬리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그림은 신화의 한 장면이 아닌, 당시 매춘부의 현장을 포착한 것이었다.


이렇게 그린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매춘부 '올랭피아'의 눈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관객과 눈을 마주 보고 있는 것으로 당시 이것은 특히 남성 관객들에게는 도발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


마네가 2년 만에 공개한 문제작은 역시나 헤비급이었고 관객과 비평가 가릴 것 없이 마네를 향해 욕을 퍼붓게 된다.


사실 마네는 매춘이라는 주제 외에 사람들이 불쾌해할 무언가를 <올랭피아>속 더 숨겨 두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미래의 회화로 가는 문'으로, 이 그림은 완전 평면으로 당시 절대 진리였던 원근법을 폐기 처분한 것이었다. '완전 평면' 우키요에의 미. 이것이 바로 마네가 숨겨놓은 '미래로 가는 문'이었다.


마네의 발상 전환은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추상주의 등 모든 모더니즘 회화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이 그림은 단순한데, 관습적으로 이어져온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최선이라는 생각을 거부한 것이다. '단순함도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생각한 마네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었던 것이다.


이 역시 마네가 숨겨놓은 '미래로 가는 문'으로 마네의 <올랭피아>이후 150여 년이 지난 지금, 단순미는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미의식은 마네가 발견한 '미래로 가는 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1876년, 44세 마네는 성병인 임질에 걸리고 만다. 심각한 근육통과 마비 증세로 심신이 모두 피폐해진 마네는 사망하기 1년 전 그림 하나를 완성하게 된다. 그것은 마네의 '마지막 수수께끼'를 담은 최후의 걸작인 <폴리베르제르 바>이다.


전경의 바텐더 여성의 뒷모습이 배경에 비치고 있는데 배경은 뚫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거울이다. 마네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인을 그린 것으로,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거울 우측에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다. 이것은 마네의 '두 개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안에 넣은 것으로, 즉, 전경을 그린 시점과 배경을 그린 시점이 다른 것이다. 전경은 정면에서, 배경은 좌측으로 약 45도 이동한 시점에서 본 것을 그린 거라고 할 수 있다.


<폴리베르제르 바> 이전에 모든 회화는 '단 하나의 시점'만을 적용했는데, 그 시점은 보통 그림의 정중앙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이 고정관념을 파괴함으로써 한 장의 그림에 단일 시점이 아닌 복수 시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와 유사한 생각은 세잔의 작업 과제가 된다. 세잔은 '두 개 이상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속에 당당히 집어넣게 된다. 그래서 세잔이 그린 사과를 보면 테이블 위에서 굴러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또 이 세잔의 사과를 본 피카소는 수십수백 개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속에 집어넣게 된다. 그렇게 '입체주의'라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미래의 미술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그 문을 그림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둔 마네. 단 세 점의 그림으로 이후 근대미술의 꽃이 만발할 토양을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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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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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분류되지 않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성, 마르크 샤갈


샤갈에게는 사랑만큼 소중했던, 어찌 보면 사랑보다 더 소중했던 나머지 반쪽이 있었는데, 나머지 반쪽의 예술 세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머지 반쪽을 알아야 인간 샤갈, 예술가 샤갈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샤갈의 나머지 반쪽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샤갈은 유대인으로 본래 이름은 '모이세 하츠켈레프'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내내 이유 없이 차별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샤갈. 그는 상업, 수공업 같은 유대인이 관습적으로 해야 할 일을 거부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화가가 되기에는 비테프스크가 너무 좁다고 느낀 열아홉 살의 시골 촌놈 샤갈은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게 된다.


그 도시에서 유대인 변호사 골드 베르크를 만나게 되면서 체류허가증을 받게 되고 이후 왕실 협회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의 고전적인 수업 방식에 회의감을 느껴 결국 자퇴하고,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즈반체바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의 최신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1년 정도 공부한 그는 즈반체바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하면서 1910년 8월, 스물셋의 나이에 파리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큰 걸음'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크 샤갈'로 개명하게 된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파리에서의 삶을 꾸리게 된다.


샤갈에게는 매일 열리는 파리의 미술관과 전시 그 자체가 선생이었다. 그는 파리의 미학을 스펀지가 되어 흡수하기 시작한다. 피카소가 주도한 입체주의는 샤갈의 양식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고, 결정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영원한 스승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나게 되면서 예술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샤갈은 파리에서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4년 동안 주옥같은 거장들의 미학을 골고루 씹어 먹으며 소화시키면서 도착한지 1년 만에 마침내 자신을 대표할 걸작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바로 <나와 마을>이다.


이 작품을 통해 샤갈은 '나 샤갈은 비테프스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예술의 영감으로 끌어오게 된 것이다.


1914년 여름, 어느덧 스물일곱이 된 샤갈은 누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비테프스크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8년 동안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샤갈에게 불운이었던 것만은 아닌데, 이때 연인 벨라와의 사랑을 담은 젊은 날의 걸작들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 그대로를 색채로 표현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이 작품에도 파리에서 습득한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의 개념이 여지없이 녹아들어 있다. 동시에 샤갈만의 뿌리인 유대인 감성도 엿볼 수 있다.


샤갈의 전매특허인 '둥둥 떠나니는 '인물은 사실 샤갈의 신앙인 유대교의 하시디즘의 오랜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으로 유대인이었던 샤갈에게 '둥둥 떠다니는' 사람과 동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파리와 유대인의 감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만든 청년 샤갈. 그는 고향에서도 서서히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고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더욱 자신 있게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는 직접적으로 고향 마을에 있는 유대인을 화면에 담기 시작하는데 일면 '비테프스크 연작'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그림들이다.


<밝은 적색의 유대인>은 고향에 있는 평범한 유대인 노인을 그린 것으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박해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례 없는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러시아에도 혁명의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유대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약속하고 유대인 거주지인 게토 역시 철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핍박만 받던 유대인 샤갈은 비테프스크 예술 인민위원으로 임명되어 러시아 혁명 1주년 기념 거리 장식을 감독하게 되고, 정부에서 샤갈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또 국가적 예술 행사인 제1회 국가 혁명예술 전시 회의 전시실을 두 개나 할당받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예술 활동에 급제동이 걸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샤갈의 인생은 생각만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 이념 갈등이 심해지면서 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는 샤갈의 구상 회화가 아닌, 말레비치의 추상회화를 '국가대표 회화'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를 채택하며 유럽 국가들과 이념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든 러시아는 미술도 유럽과 전혀 다르길 원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절대주의를 밀어주게 된 것이다.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에서 샤갈의 그림은 정치적으로 쓸모 없어지고 국가가 천시하는 화가로 전락하면서 샤갈은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게 된다.


자신을 버린 조국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샤갈은 1923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성공과 행복의 아우토반에 오르게 된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푼돈을 손에 쥐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던 열아홉 살 소년이 정확히 20년 후 세계적 예술가로 도약한 것이다. 이로써 샤갈은 운명으로 여겼던 그림으로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렇게 평온하고 행복한 40대를 보낸 그는 이때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노라고 말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1940년, 전쟁과 유대인 박해를 피해 샤갈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고향 비테프스크가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울분을 토하게 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비극을 샤갈은 붓으로 눈물을 내어 기록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샤갈이 평생의 숙원 사업처럼 시작한 일이 있었다. 바로 <구약 성경> 삽화 작업으로, <구약 성경>은 유대인들에게 성경 그 자체이며, 정신 그 자체였다.


<구약 성경>은 유대인 샤갈의 삶을 이끌어준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샤갈은 1930년 마흔셋의 나이에 그 방대한 대서사시를 이미지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105가지 장면으로 추려 동판에 새기고 또 새기는 작업을 26년간 하게 된다.


마침내 69세의 노인 마르크 샤갈은 105점의 동판화가 담긴 <구약 성경>을 출판하게 되고, 26년간 쌓아온 영감이 떠나지 않도록 가슴에 꼭 부여잡고 인생 최후의 걸작이 될 작업에 바로 착수하게 된다.


105점으로 제작했던 <구약 성경>이야기를 단 12점의 <성서 이야기> 시리즈로 집약하는 일생일대의 작업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 작업 역시 1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그의 나이 79세에 비로소 완성하게 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이가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빛나는 색채의 미를 승화시킨 것이다.


연인과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줄만 알았던 샤갈. 알고 보니 그에겐 '유대인'이라는 아주 중요한 반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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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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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다다, 초현실주의
뒤샹은 지금의 현대미술을 낳은 혁명적 창조자로, 눈으로 보는 미술이라는 관념을 파괴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미술(개념미술)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제시한 예술가다. 그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레디메이드'이다.


뒤샹은 똑똑한 머리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학경시대회에서 2등을 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1등을 한다. 사실 그의 두 형도 수재들이었는데 첫째 형 가스통은 파리에 있는 법대를, 둘째 형 레이몽은 의대를 갔다.


뒤샹은 타고난 머리를 체스를 통해서 후천적으로 더욱 개발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는 평생 체스를 두었는데, 고도의 집중력과 사고력을 요하는 체스를 향한 열정은 그의 두뇌 능력을 분명 한 단계 더 키워주었을 것이다.


뒤샹은 체스를 하며 깊은 사고력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르게 된다. 그 결과 동시대의 전위 예술가들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이런 명석한 뒤샹이 예술가의 길을 걷도록 톡 건드려준 사람은 바로 그의 친할아버지 에밀 니콜로, 그는 사업가로 성공해 집안을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었다.


그는 성공한 후에 예술가로 전행하면서 자신의 그림들을 집 안에 도배하다시피 걸어 놓게 되고 이걸 보고 자란 손주들 역시 예술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법학과 의학을 배우러 파리에 갔던 두 형마저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형과 절친하게 지냈던 뒤샹도 그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04년 열일곱 살 뒤샹은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상경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풍자만화'와 만나게 되는데 당시 형 가스통은 생계를 위해 풍자만화가로 활동하게 있었다.


그 역시 스무 살부터 본격적으로 약 3년 동안 풍자만화로 활동하게 되고 이 경험은 이후 뒤샹 예술의 '비장의 무기'가 된다.


뒤샹은 풍자만화가로 일하며 풍자 정신을 깊이 체득하게 된다. 현실은 무조건 맹신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시각으로 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된 것이다. 유머감각 또한 보너스로 얻게 된다.


뒤샹은 풍자만화가로 활동하면서도 화가의 꿈을 놓지 않았는데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보며 '나도 화가가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수년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력'보다 기존의 틀을 깨는 '사고력'이 미술에서 더 중요해졌음을 간파한 것이다.


1910년 뒤샹은 입체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따라 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아 갓 태어난 입체주의에 변형을 가하게 된다. 입체주의에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추가로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차례의 실험 끝에 완성된 회심의 역작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Ⅱ>다.


1912년 뒤샹 나이 스물다섯. 이 해는 그에게 너무나 중요한 해로 예술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바뀌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냥' 입체주의를 넘어 '움직이는' 입체주의를 창안한 뒤샹은 부푼 마음을 품고 '살롱 데 쟁데팡당'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Ⅱ>를 출품하게 된다.


살롱 데 쟁데팡당은 1884년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살롱전에 대항하여 젊은 예술가들이 독자적으로 연 전시로 새롭고 진보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전시회였다.


이런 멋진 전시에 뒤샹은 회심의 역작을 출품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주최 측으로부터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Ⅱ>를 전시에서 제외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기존의 입체 주의자들이 이 작품을 보고 불쾌해했다는 이유였는데, 불쾌함의 원인은 '움직이는' 입체주의라는 것이었다. 즉,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입체주의를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신출내기가 움직이고 있는 인물의 다시점을 분석해 그리고 있으니 싫었던 것이다.


주최 측에서는 작품 제목에서 '내려오는'을 빼면 전시를 허락하겠다며 뒤샹을 압박하지만 무심사 제도를 가진 전시에서 심사도 아닌 검열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는 뒤샹은 제목을 바꾸지 않고 격분하며 작품을 집으로 가져간다.


기존 세력에서 따돌림당하고 자유로운 창작을 억압당한 뒤샹은 아방가르드 미술계의 모순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어이없는 진실을 몸소 깨닫게 된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그는 뿌리부터 바꾸는 지적 혁명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미술의 천지창조를 시작한다. 한마디로 '안티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존 미술의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뒤샹은 기존의 미술을 조롱하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미술작품이 아닌 자신의 삶에 먼저 적용한다. 그는 기존 예술가들의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작품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거부한다.


그래서 뒤샹은 다른 일자리를 얻는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작품은 팔 생각 없이 자유롭게 창작한다.


그는 생전 안 하던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데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미술 이론 공부에 몰두한다. 샤르트르 학교에 입학해 서지학(책을 분석해 기술하는 학문) 강의를 듣고 이를 통해 '안티 미술'을 실현할 자신만의 '미술 콘셉트(개념)'을 창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중 1912년 11월, 항공기 전시회에 가서 항공기 모터와 프로펠러를 본 뒤샹은 회화는 끝났음을 직감한다.


뒤샹은 인류 탄생 이후 존재한 적 없는 미술을 창조해내려고 한다. 그는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 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발견한 것이다. 예술가의 기술력이 아닌 사고력으로 예술을 하려고 한 것이다.


뒤샹의 이런 발상은 수천 년의 미술사에서 양식 변화의 근본 원인은 결국 '생각의 변화'에 의한 것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생각하는 미술', 즉 개념미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뒤샹은 미술계에서 따돌림을 당한 후 자신만의 미술 콘셉트를 정립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단 1년 만에 단기 완성하게 된다. 뒤샹의 현대미술 천지창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과거의 모든 미술을 거부하기로 한 뒤샹은 거부의 의사표시로 '조롱'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뼛속에 새겨져 있던 '풍자와 유머' 정신을 미술에 장착하기 시작한다. 의자에 자전거 바퀴 붙이기 신공! 뒤샹은 이렇게 기성 미술계를 향한 '풍자 놀이'를 시작한다.


<자전거 바퀴>는 심심풀이 땅콩 같은 미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미술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재미난 생각이 떠올라 심심풀이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관객은 이 물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의미의 미술'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물체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뒤샹이 '작품에 어떤 의미가 꼭 있으라는 법이 있냐?'라고 물음을 던지며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작품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로 보았다.


그의 작품 덕에 이제 전시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생각의 놀이터'가 되기 시작한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의 놀이를 펼치는 창조자가 되는 순간이다.


1915년, 고민 끝에 그는 여기에 '레디메이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이미 만들어진 것(Ready-made)으로써 예술가가 만들지 않고 '선택해' 예술이 된 미술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공산품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제거한 후 예술가가 마음대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공산품을 작품 제작의 재료로 쓰며 대량 생산된 상품을 미술에 끌어들인다. 그는 '현대미술의 씨앗'이 된다.


1915년, 뒤샹은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 뉴욕으로 간다. 미국에서 그는 많은 후원자와 예술가를 만나 교류하고, 각종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뉴욕에서 그는 구시대적인 예술을 파괴하는 인습 타파의 상징으로 이미지를 굳힌다.


미국에 도착한 후 2년 동안 뒤샹은 삽, 머리빗, 모자걸이 등으로 레디메이드 작업을 한다. 손수 창안한 '레디메이드'개념을 알려 미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 미술계 사람들의 반응을 영 시큰둥했다.


그러자 그는 한 전시를 이용해 스스로 강력한 스캔들을 만들어낼 묘수를 생각해낸다. 이것은 '체스 게임 속 신박한 묘수'같은 전략이었다.


1917년 1월, 뒤샹은 독립미술가 협회의 디렉터로 임명된다. 그리고 4월에 열릴 첫 번째 독립미술가협회전 준비에 참여하게 된다.


그때 그는 한 가지 수를 두는데, 바로 <눈먼 사람>이라는 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디렉터로 참여한 전시에 남몰래 작품을 출품한다. 시중에 파는 변기를 사와 거꾸로 뒤집어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으로 출품하진 않고, '리처드 머트'라는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의 이름으로 출품한다.


1917년 4월 5일, 준비해온 독립미술가협회전이 열린다. 이 전시의 출품 자격은 단돈 6달러만 내면 어떤 예술가든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다. 그런데 전시장에 떡하니 놓여 있는 변기를 보고 경악한 협회 회장이 변기를 칸막이 뒤 보이지 않는 곳에 두게 한다. 전시를 못하게 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무명작가 리처드 머트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상황에 전시 디렉터였던 뒤샹은 항의의 뜻으로 사퇴를 선언한다. 이로써 <샘>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17년 5월, 잡지 <눈먼 사람> 2호에 익명의 사설이 실리게 된다. 그는 "그들은 6달러를 내면 어떤 예술가든 전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리처드 머트는 <샘>을 출품했다. 그런데 어떤 논의도 없이 이 작품은 사라졌고 전시되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샘>이 거부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음란하고 천박한 것으로 봤다.
2. 표절이며, 위생용품일 뿐이라고 했다.


머트가 <샘>을 본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를 중요치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물건을 가져와 새로운 관점과 제목을 부여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기능이 상실되는 장소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위생용품이기에 전시할 수 없다는 생각, 그것은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밝히며 미국이 지금껏 만든 유일한 예술 작품은 위생용품과 다리라고 말한다.


익명으로 남긴 누군가는 바로 뒤샹이었고 이렇게 <샘>은 뉴욕 미술계에 뜨거운 감자가 된다. 모든 전시 관계자와 대중을 상대로 둔 뒤샹의 묘수는 계획대로 성공하게 된다. 전시를 볼모로 잡은 그의 엽기적 행각은 '미술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실체를 까발린 것이다.


1917년 전시 디렉터가 된 그는 전시마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체재로 활용하는 능수능란함을 보이는 고단수가 된 것이다.


이 몰카 풍자쇼로 인해 <샘>으로 대표되는 레디메이드 개념이 뉴욕 미술계에 뿌리내리게 되고 이제 그는 운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쟁취하는 전략적 예술가가 된다.


나이 서른 '다다의 조성'으로 불리게 된 마르셀 뒤샹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즐겼던 체스에 다시 빠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1923년에는 만들던 작품도 중단하고 체스에 올인하기 시작한다. 매해 미술 전시보다 체스대회에 더 많이 얼굴을 비춘다.


1932년, 그는 국제체스연맹의 대표가 되고 체스 관련 책까지 출간하게 된다. 1933년에는 결국 '체스의 거장'이라는 칭호까지 듣게 된다. 체스 예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룬 그는 1934년에 다시 미술계로 복귀하고 놀듯이 자기만의 예술을 만들어간다.


어느덧 거장의 칭호를 받는 79세 뒤샹은 한 인터뷰에서 "예술가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안티 미술' 뒤샹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평생 예술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조차 깨부쉈다.


도서관 사서, 예술가, 체스 기사 등을 거치며 자신의 삶을 유일무이한 'Duchamp life(뒤샹 라이프)'로 만들어 삶 자체로 행위예술을 한다. 삶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남자였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몰카 장인. 이번에는 체스를 떡밥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Life란 무엇인가?'라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다. 세세한 설명에 에지 있는 스토리라인이 시선을 잡아끈다. 재미에 가치를 더한 느낌이다. 기록에 모두 다 담지는 못했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눈여겨볼법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키스>라는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성장 과정들이 담겨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과 적나라한 19금의 그림 세계를 보여주는 에곤 실레, 로맨틱 풍경 속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클로드 모네, 그리고 바실리 칸딘스키와 가브리엘레 뮌터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와 작품들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기기 아까운 작품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그림 보는 맛과 즐거움도 알 수 있었고, 추가적으로 이들의 작품과 이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알고 보는 맛'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자신만의 철학과 생각을 삶에 투영해 '나만의 삶'을 완성한 이들의 사상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흔들리기 보다 자신의 뿌리와 삶의 방향성에 더 무게를 두었던, 예술을 불태웠던 이들의 낭만과 인생 그 자체를 즐기는 여유도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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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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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김헌' 교수의 책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반짝 일었다. 방송을 통해 푸근한 인상과 재미있는 말솜씨로 역사를 소개해 주는 그의 수업 덕분에 평소 어렵게 느꼈던 그리스 문화와 신화 등을 방송을 통해 재밌게 접할 수 있었는데, 왠지 책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 중 유독 더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과 '철학자'의 이야기임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였지만, 평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야였는데 이번만큼은 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완전 초보자들을 위해 차근차근 뼈대를 세워가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시대별로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보다 가깝게 철학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철학' 하면 약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삶과는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오로지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 책을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과 인문학의 위기 상황에서 철학이 해답이 되어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삶의 위기를 겪으며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어쩌면 과거 철학자의 삶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자의 사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자이자 교수로서 김헌이 전하는 철학과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철학자들의 개인적인 삶과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여기에 저자의 생각에 담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그래서 '철학'에 문외한이거나 초보자들도 접근이 용이하다.


학문적 관점에서 철학과 철학자를 소개하기보다, 우리가 똑같은 한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 거리감이 확 줄어듦을 느낄 수 있다. 또 그들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삶에 보다 쉽게 적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연대별로 서술하는 방식과 반복적으로 철학과 철학자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사상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어려운 이름에도 헷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치가 가능하다.


우리 삶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철학과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과 이념에서 우리가 어떤 깨달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찾고, 이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철학 하는 것(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삶)에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자 했다.


그가 담은 철학과 철학자의 삶을 통해, 지식과 정보 지수를 올리는 것은 물론, 우리 삶에 대입할 수 있는 여러 대안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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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철학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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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인 저자는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며, 그 역할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헌은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철학에 대한 재검토를 제시한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는 학문으로 정의하며 그 구체적 탐구와 사유의 모델로 하이데거의 예를 든다. 김헌은 "하이데거의 예처럼 철학자의 삶 자체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사유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라며 이 책의 의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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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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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죽어 갈 인간들이 생존과 행복을 위해 새겨 넣는 흔적의 총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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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몸에 무늬를 새겨 넣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짓는 표정과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 사람의 마음에 내가 새겨 넣는 인상 일체가 그 사람에게 새겨 넣는 나의 인문입니다. 이렇게 인문의 외연을 넓혀 나가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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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간 사회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문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교육행위는 한 공동체 내의 정체성과 역사를 이어 나갈 중요한 인문의 실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생각들이 서양의 언어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교육을 '파이데이아'라고 했는데 '아이를 어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마에서는 이 말을 '후마니타스'라고 옮겼는데, 이것은 '인간다움' 나아가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영어 '휴머니티'로 고스란히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공부'인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는 '인문학'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결국, 서구 문명사에서 교육은 곧 인문(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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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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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인문을 내 안에 새길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문을 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에 새길 것인가, 이런 통찰이 약할 때, 세상을 위협하는 인문학의 위기가 개인의 차원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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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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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강연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곧 '정의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구조로, 바로 '000은 무엇인가?'라는 형식으로, 이 형태로 질문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바로 고대 그리스인이다.


예컨대, '붕어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붕어빵의 본질, 붕어빵의 정체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찾으려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지식을 얻게 된다.


바로 그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고, 본질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바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견해다.


철학이란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 답을 정확하게 찾아내려고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에 평생을 다 바친 사람이 바로 철학자인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삶, 그런 삶의 태도나 행동을 하이데거는 '철학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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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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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리스 철학을 구분할 때 소크라테스를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의 마지막 인물로는 데모크리토스를 꼽고,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나이가 많지만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들에 포함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자연에 관심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 인간과 사회에 관심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로부터 불러 내렸고, 도시에다 가져다 놓았으며, 집 안으로까지 들여다 놓았다. 그는 삶과 관습, 좋은 것과 나쁜 것, 즉 선과 악에 관하여 탐구하게 만들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철학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보았는데, 다시 말해 철학자들의 관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모두 '이 세상은 어떻게,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았던 사람들로,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자연철학자'라고 부른다.


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본 요소를 물, 엠페도클레스가 물, 불, 공기, 흙이라고 주장하고, 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라고 했던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에 대한 탐구의 결과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의 관심을 인간과 사회로 돌렸는데, 그가 선과 악의 문제 등 인간의 삶과 행동을 탐구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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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에 대한 진실과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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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라고 하면 흔히 말장난을 일삼는 말재주꾼을 떠올린다. '궤변론자'라는 번역이 특히 그렇다.


그런데 저자는 소피스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데, 원래 그리스어로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것을 아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피스트는 원래 좋은 의미였는데, 소피스트들이 철학자들과는 달리, 강연이나 교육을 통해 수업료를 받으면서 사람들에겐 '지식 장사꾼'이라는 편견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프로타고라스도 많은 돈을 벌었는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설계하고 건축했던 조각가 페이디아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강연과 교육을 하고 돈을 받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가르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비난을 받을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피스트들이 활동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460년에서 기원전 380년 사이로, 활동 무대는 그리스 전역으로 다양했지만 가장 활발한 곳은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민주정이 가장 발달한 도시로 직접 민주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는 연설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주 중요했는데, 그 기술이 바로 레토릭, 즉 수사학이었다. 소피스트가 수사학, 즉 연설의 기술, 설득이 기술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으면서 문제가 된 이유는 "나에게 오면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선전하면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죄를 짓고도 법정에서 말을 잘해서 무죄가 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가르치겠다고 하고, 의회에서도 이권을 챙길 수 있는 법률이나 정책을 관철할 수 있다며 선전했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었다.


수사학을 가르친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는데,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고 말재주를 피워 거짓과 부정의가 위세를 떨치게 하는 건 국가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나쁜 행동이며 나쁜 교육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가 소피스트에 관한 알 수 있는 것은 대게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서라는 점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소피스트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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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리스 이름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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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토스
육체적인 힘, 완력을 뜻함 거기에 파생되어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크라테스는 '크라토스를 가진 사람' , 즉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다른 사람을 누르는 승리자'를 뜻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
'크라테스'라는 말에 '소가'가 붙어 '소크라테스'가 되는데, '소'는 '안전하고, 확실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확실히 힘이 센 자'라는 뜻이다.


■이소크라테스
'크라테스'에 '이소'가 붙어 이소크라테스가 되는데 '이소'는 그리스어로 '같다, 비슷하다, 평등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에 견주어 힘이 달리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과 똑같은 힘과 권력,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데모크라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에도 '크라토스' 개념이 들어 있는데, 데모스가 '민중, 인민'이라는 뜻이니 데모크라시는 권력이 알반 민중에게 있는 정치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자가 손꼽은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만나보려 한다. 여기 담긴 내용들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편견 어린 시점도 다시금 재정비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하늘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았던 철학자들이 어느새 손끝에 닿아 있는 느낌도 들었는데, 하나의 생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들이 그런 사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환경을 함께 확인할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특히 편중된 시선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저자의 의견과 생각이 더해지며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한 명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나보며,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그래서 추후 저자가 추천한 도서를 통해 추가적으로 이들의 사상과 삶에 대해 더 알아가 볼 예정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철학자들 중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눈에 띄었는데, 저자가 할애한 페이지가 많은 만큼, 또 이들이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던 만큼 확실히 시선이 많이 갔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철학의 학맥으로 연결된 이들이 추구한 사상과 삶도 함께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서 이들이 당시에 어떤 것들에 집중했고, 어떤 것들을 실천하며 살았는지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헤라클레이토스●


그의 사상은 '만물 유전 법칙'이라고 하여 만물이 불처럼 끊임없이 운동하며 변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 발을 담그고, 조금 후에 다시 발을 담근다고 해도 앞서 발을 담갔던 물은 이미 흘러가고 새로운 물이 흘러왔기 때문에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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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사실 같은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기를 반복합니다. 태어날 때 가졌던 피부, 머리카락, 손톱, 발톱, 무엇 하나 지금 남아 있는 게 없을 겁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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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매일, 매 순간 '나는 변하고 다른 나'를 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철학은 현재의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순간을 쟁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충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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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르시아 왕국을 통째로 갖는 것보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길 원한다."  지혜를 권력이나 명예,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던 진정한 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말도 전해집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몸이나 재물이 아니다. 올바름과 폭넓은 분별력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과 재산, 명예 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을 비웃고, 자기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평생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웃음의 철학자'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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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습니다. "세계는 무대이며, 삶은 한 편의 연극이다.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난다."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던 원자론 철학자 다운 의연한 태도였습니다.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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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이런 철학자를 찾으라고 하면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했을 만큼 물질보다 지혜를 얻는 것에 더 힘을 기울였던 철학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런 자기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평생 웃음을 잃지 않은' 철학자였다는 점에 있어 더 마음이 가는 철학자였다.


사후 세계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와서, 보고, 떠난다'라는 말에서 사는 동안 멋지게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함께 후련함과 시원함도 느껴졌다.


미련을 가지기 보다 어쩌면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의 영향>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근대에 이르러 합리주의와 과학의 발달에도 큰 힘을 실어줌
▶공산주의 사상을 창안한 칼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처럼 데모크리토스는 서양철학사에게 끊임없이 연구되고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철학자였다.



●프로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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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아름답고 추한가, 좋고 나쁜가, 옳고 그런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의미에서 "인간(또는 개인)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상대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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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변명할 여지없이 딱 들어맞는 철학이자 사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다. 특히 개인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이것만큼 들어맞는 사상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부르는 이유는 산파가 임산부의 태에 있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듯이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마음, 정신에는 선생님이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이 이미 다 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안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지식과 정보, 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산파가 임산부를 도와서 태 속의 아이가 나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파술'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교육적 가치
현실은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분명 다른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여전히 유효한데,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모든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이 학생들 안에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쑤셔 넣듯이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학생 스스로 새롭게 창조해 낼 수 있도록 산파처럼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파술의 교육적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죽음=영혼의 해방'이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탈옥을 거부하고 자신이 죽기를 기다려왔고, 또 죽음을 연습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이 영혼의 해방이었던 것이다.


영혼은 단단하고 순수하며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자신을 닮은 순수한 존재들만 있는 이데아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순수한 상태로 몸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지만 반대로 영혼이 몸의 욕망과 탐욕에 오염되면, 더럽고 무거운 상태로 남아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고 싶다면 평소에 몸이 욕망에서 영혼을 최대한 분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철학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영혼을 몸의 욕망에서 떼어 내려는 노력, 영혼의 정화를 위한 실천, 그것이 철학이니 학문이라기보다는 무슨 종교적인 수행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고 논문을 쓰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철학은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특별한 삶의 방식과도 같은 것이며 영혼의 수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학은 영혼을 몸의 간섭에서 벗어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철학은 죽음과 상당히 비슷해지는데, 철학이 영혼을 몸의 간섭에서 떼어 내려는 노력이고, 죽음은 영혼이 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절정, 철학의 완성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고, 영혼을 정화하고 몸에서 해방하는 작업인 것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평생 철학에 전념했으니 평생 죽음을 기다리고 연습한 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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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이라는 말에 이어 '웰다잉'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 잘 죽을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겠지요. 어차피 영원히 살 수 없고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곧 죽어 가는 것이라면, 잘 사는 일은 곧 잘 죽는 일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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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철학과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혼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곧 '비움'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죽음을 초월한 이들, 영혼을 맑게 하는 것에 관심 있었던 이들인 '이어령'과 '디팩 초프라' 역시 소크라테스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는 철학의 학맥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대왕



■소크라테스의 '소 소크라테스 학파'


▷첫 번째, 퀴니코스학파(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
인간이라면 고유의 덕을 잘 닦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려면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안티스테네스 그 자신도 그것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았다. 안티스테네스 학파를 퀴니 코스학파라고 부르며, '퀴니 코스'는 그리스어로는 '개 같은' 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들을 보고 '개들과 같은' 삶을 산다며 '퀴니코스 무리들'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는 '견유학파'라고 칭하는데 '개와 같은 유생들의 학파'라는 뜻이다.


'퀴니 코스학파'라는 이름은 안티스테네스의 제자 디오게네스 때문에 나중에 붙은 이름으로, 그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두 번째, 메가라학파(에우클레이데스)
메가라는 아테네에서 펠로폰네소스반도로 가는 기로에 자리 잡은 도시로, 학파를 창시한 에우클레이데스가 메가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메가라 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메가라학파는 궁극의 선을 탐구하고 논증하기 위해 논리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같은 논리적인 경향은 스토아철학의 논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단정 짓는 태도를 경계하는 퓌론의 회의주의 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세 번째, 퀴레네학파(아리스티포스)
퀴레네는 리비아의 도시로, 문화적으로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아프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렸다. 그곳 출신이었던 아리스티포스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아테네로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후 그는 다시 고향 퀴레네로 돌아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내용을 가르쳤다.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을 강조했는데 특히 육체적 쾌락이 중요하고 인생의 목적은 결국 쾌락을 즐기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간순간의 쾌락이 쌓이고 쌓여서 그 총합이 결국 행복을 만든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그가 소크라테스를 직접 만난 후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배운 다음에 내놓은 것인 퀴레네학파의 쾌락주의이기에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쾌락주의적 요소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퀴레네학파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다양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다.


▷네 번째, 엘리스학파(파이돈/메네데모스)
엘리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서쪽에 위치한 엘리스 지역 출신 파이돈이 세운 학교에서 발전했다. 파이돈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어 아테네로 왔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를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했고 나중에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었다.


파이돈의 사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제자인 에레트리아 출신 메네데모스의 사상을 통해 개략적으로 유추해 볼 뿐이다. 엘리스 학파의 주장은, 대체로 메가리학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메네데모스는 선, 좋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덕을 강조, 이것이 과연 파인돈의 생각인지를 확실하지 않다.


엘리스 학파와 구별해서 메네데모스의 주장을 에레트리아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네데모스가 나중에 에레트리아에 학교를 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파이돈의 생각과 메네데모스의 생각이 같다고 보기 때문에 엘리스 학파를 에레트리아 학파라고도 부른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지금까지 소개한 네 학파를 묶어서 '소 소크라테스 학파'라고 한다. 이들에게 '소'를 붙인 이유는 그들의 비중이 작아서라기보다는 남아있는 작품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 소크라테스학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탁월한 글 솜씨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플라톤●

스무 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불과 9년 동안 제자로 지냈다. 말도 참 잘하고 멋있는 표현을 만들어 냈던 탁월한 문필가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계의 돌쇠'라는 이미지를 가졌다면, 플라톤은 '철학계의 떡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플라톤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비극 작가가 되려고 작품을 썼는데, 그 작품을 뒤오뉘소스 제전의 비극 경연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아고라를 지나고 있다가 사람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서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철학적인 주제를 놓고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대화에 푹 빠진 플라톤은 '바로 저것이다'라면서 들고 있던 비극 작품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그 길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된다.


이렇게 다가온 플라톤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아, 네가 어젯밤 꿈에서 본 바로 그 백조로구나!"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
플라톤의 저작을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 셋으로 나누는데 이런 구분에 획기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사람은 19세기 후반의 캠벨이었다.


플라톤의 글쓰기가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세 덩어리로 묶은 것이다.


▷초기 작품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전형적인 대화편으로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 상대의 주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그 주장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기 작품
플라톤의 완숙미를 보여주는 예술적인 걸작들이 많다.


▷후기 작품
대화의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극적인 요소가 많이 줄어들고 단순한 질문에 확고한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다소 건조한 문체로 이루어진다.



■플라톤의 작품이 오랜 세월 보존되고 전해진 이유


▷첫째, 플라톤이 직접 세운 아카데미아 학원이 파괴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지속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가 파괴되기 전 대부분의 작품들은 필사본이 제작되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플라톤의 작품들이 학자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물론 교양 있는 시민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배경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은 '가장 훌륭한 목적, 또는 가장 훌륭한 끝'이라는 뜻이다. 그가 아테네로 왔을 때는 아웃사이더였는데, 한 마디로 촌놈 취급을 받던 지역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출신 지역인 마케도니아에서는 상류층으로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어려서부터 왕궁에서 자랐고, 마케도니아 왕자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그가 열세 살 때 부모님이 전염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친척의 보살핌을 받다가 열 여덞 살쯤 아테네로 온다. 이때 수사학을 중심으로 가르치던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와 기하학, 수학을 기본으로 논리학과 변증술을 가르치던 플라톤의 학교가 경쟁하고 있었다.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18년간 공부하며 플라톤의 제자가 된다.


처음에는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지는 않았다. 지혜를 추구하는 실용적인 노선과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길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적 호기심과 넓은 관심의 폭을 채워 나가는 것에 집중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소크라테스 학교보다는 플라톤의 학교가 더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크라테스에게 배운 것을 평생 깊이 간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인 만큼 플라톤의 제자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기보다 이소크라테스에게 먼저 배웠다는 사실을 참조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지향점
한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져 있는데 두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은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른손 손바닥을 쫙 펴서 아래를 가리키고 있는데, 두 사람의 철학적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플라톤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진리가 저 천상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사는 변화무쌍한 세계는 한낱 현상일 뿐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 존재의 실체는 이 세상 너머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바닥을 펴서 땅을 가리키는 것은 진리가 여기 이 땅에 있다는 뜻으로 이데아의 세계가 이 세상과 떨어져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이 그렇게 되는 원인과 이유를 근본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우리 일상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차분히 파고들고 반성한다면 그것이 곧 철학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학문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대상의 원인을 찾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지식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했다.


그 대상과 원인이 내 밖에 있는 경우 그것을 통찰하고 관조해서 알아내는 지식을 '이론적 지식, 관조적 지식'이라고 했다.


반면 그 원인이 내 안에 있는 경우 내 안의 원인을 찾는 학문을 '실천적 학문'이고, 그 결과를 '실천적 지식'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윤리학과 정치학이다.


또 하나는 내 안에 원인이 있긴 하지만 그 결과가 내 행동이나 말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물건으로 나타날 때 그런 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을 '제작의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퓌론●

퓌론이 길을 가는데, 그의 스승 아낙사르코스가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런데 퓌론은 위험에 처한 스승을 도와주기는 커녕, 무심하게 현장을 스쳐 지나갔다.


이때 아낙사르코스는 무심한 퓌론을 칭찬했는데,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는 공정한 태도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는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퓌론의 회의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극단적인 사례로, 퓌론의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태도 깊은 곳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우리는 간혹 삶의 현장에서 자기 생각이나 신념을 강하게 주장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고 간섭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
퓌론의 생각과 행동은 타인에 대한 진지한 무관심이며 배려하는 마음이자, 세상에 대한 차별 없음과 초연함으로 해석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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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에 적용하면 좋을 또 하나의 사상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바로 퓌론의 회의주의였다. 현대사회를 둘러보면 약간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의미의 극명한 무심함과 극명한 관심을 꼽을 수 있다.


퓌론의 회의주의를 적용해 진지한 무관심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는 어쩌면 타인의 민망함과 소란스러움을 덮어주는 하나의 배려가 될지도 모른다. 인종, 종교. 외모 등등 수많은 '다름'을 평등으로 치환할 수 있는 초연함이 될지도 모른다.



●제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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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과 사귀어라. 그러면 그대의 인생은 가장 좋은 삶이 될 것이다.' 이 말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았던 현인들의 삶과 생각, 사상을 읽고 깊이 숙고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가장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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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 깨우침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서 먼저 삶을 산 이들의 지혜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는 부분에 있어 이들의 삶과 생각, 사상을 빌린다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나 공자, 맹자와 같은 현인들의 책을 읽고 가르침을 구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철학자들의 개인적인 삶과 그들의 철학적 사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그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우리와 달랐던 점은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와 고뇌에 대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저마다의 사상과 사유를 가지고 좋은 스승을 찾고, 멀리 도시를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남다른 존경심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관념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배경과 역사적, 사회적 상황들을 함께 담음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데, 그런 점에 있어 철학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췄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왜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철학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철학자의 사상에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철학을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외에도 도서관의 역할과 건립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개인의 연구를 위해 진행되던 기관이 국가 주도의 연구기관으로 발전하며 변화된 부분은 가히 눈여겨볼 만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에서 시작해 국가의 재정이 투입되면서 후대가 이어받아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대 모든 지식을 한데 모은 대규모 도서관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문,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시대인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세종대왕의 집권기 집현전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학문 연구기관으로 인해 조선시대에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해 국가 권력이 연구기관을 세우고 최고 지식인들, 기술자들을 모아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시작으로 테오프라스토스가 체계화한 연구기관, 특히 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지성인이 활동하고 거대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초석이 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어쩌면 지금 우리 삶에도 미래를 위한 이런 투자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철학자들의 삶과 통찰, 그리고 사상을 통해 나의 삶의 철학은 무엇이고, 이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어떤 실천력을 발휘하면 좋을지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더불어 앞으로는 거리감을 두기보다 더 많은 철학과 철학자들을 만나보며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사유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제,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철학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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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2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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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만나본 사건의 전말과 깔린 복선들을 통해 전반적인 마을의 분위기와 상황 등을 알 수 있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절정과 결말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차례다.


앞서 1권에서 거론한 <중점적으로 봐야 할 내용>의 해답도 찾고, 또 인물관계도에는 표기되어 있지만 1권에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정치인 리샤르드 테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잊지 말고 확인해 봐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끝나버린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수습 과정과 결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약간의 씁쓸함과 더불어 현재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미래 공동체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이 제목이 말하는 진정한 위너는 무엇이며, 누구일까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세 마을을 이끌어 갈 '미래'에 결국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알리시아'로 대변해서 말하고 있는데, 모든 문제의 근간이자 해결책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간단히 표현해 보자면, '여성', '하키', '어린아이', '하키 신동', '핵심 사건의 중심', '주변인' 등을 키워드로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위너> 안에 자리한 핵심 사건 속으로 들어가 제대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앞서 1권에서 복선처럼 이야기한 서술과 생각들이 진짜 맞는 이야기인지, 또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어떻게 마무리 지어지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자.


어쩌면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이는 좌절을, 또 어떤 이들은 희망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진실은 달라지지 않으며, 이제 이들은 과거의 잔재 속에서 벗어나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저 덮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모습과 안녕을 고하고, 이제는 똑바로 현실을 마주 보며 정의롭지 못한 것과 정면 승부할 다짐과 각오를 다진다.


여기에는 여성이, 어머니가, 하키신동 소녀가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남성을 뒷받침하는 자리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닌, 생명을 구하고, 전문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며,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줌으로써 또 다른 생산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만의 역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앞서 하키는 이들 마을에서 막강의 권위를 자랑하는 스포츠이자,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마을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전체를 상징하는 하나의 핵심 키워드였다. 이에 반해 여성, 아이, 약한 자들은 그저 권력 집단속의 부속품 내지는 희생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마을들은 변할 것이다. 뒤로 빠져있던 '여성'이 앞으로 나서 조화를 이룰 것이며,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균형을 통해 정의를 구현할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치있게' 여기게 될 것이다.


우정과 사랑과 공동체와 가족과 또 한 번의 기회와 가장 중요하게는 용서에 얽힌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위너>를 이제 본격적으로 만나보자!



=====
2부에서 다루는 핵심 사건들
=====


▶페테르가 베어타운 하키팀에서 저질렀다는 부정부패의 전말
▶베어타운과 헤드의 하키팀 통합에 관한 안건
▶마야의 성폭행 사건이 끼친 영향력
▶루트 죽음의 진실과 동생 마테오의 복수
▶정체성은 찾았지만, 그 외 모든 것을 잃어버린 벤이의 삶



·········

대를 이어 지속되어 오던 베어타운과 헤드의 앙숙 같은 관계는 '카더라'에서 시작된 오해가 쌓이면서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여태까지는 간단한 주먹다짐으로 끝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 여기에 피의 복수가 더해지며 생각보다 더 큰 사건의 현장이 되어 버린다.


'쏘고, 덮고, 쉿.'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관행 같던 이 행동이 되풀이되다가 마침내 터져버린 것이다. 늘 그림자같이 눈에 띄지 않던 한 아이의 처절한 복수는 그렇게 이 숲을, 이 마을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너무 가까워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이들은 큰 희생을 치른 뒤에야 비로소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 담긴 내용들은 폐쇄적인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과 최상의 이점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서로를 위해 무조건적인 경쟁보다 협력과 공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도 함께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치면서 벌어진 최악의 상황, 그리고 끝내 기회를 잘 활용함으로써 얻은 용서와 화해의 현장이 이 안에 모두 담겨있다.


핵심 사건들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또 이를 우리 삶에 어떻게 대입하면 좋을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모든 게 극한으로 치달을 때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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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희한하게 불행할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행이 몰려오면서 삶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베어타운과 헤드 역시 그랬다.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 불행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라모나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를 추모하느라 베어타운의 모든 주민이 아무도 출근하지 않게 되면서 공장에서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헤드에 사는 전 직원에 연락처를 돌리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관심을 보인 한 여직원이 두둑한 일요 추가 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 이에 응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그녀가 맡은 기계는 오래됐고 전 시간 근무조가 고장 난 곳이 있다고 보고한 것을 다들 정신이 없어서 그녀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한다. 여직원은 본업 후 추가로 하는 땜빵일을 하기에 앞서 피곤하고 속이 메슥거리며 살짝 어지러운 느낌도 든다.


태풍 때문에 수리기사는 여기까지 출동하지 못했고, 경영진은 생산 라인에 지장을 초래할 수 없어 수리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한 뒤 그 기계를 그냥 가동한다. 원래를 2인 1조라야 하지만 오늘은 인력이 부족하기에 젊은 여직원 혼자 작동을 맡게 된다.


보건안전 담당 공무원은 다른 수많은 것들을 두고 공장 경영진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기계를 돌리면 뭔가가 걸렸을 때 비상 멈춤 버튼이 너무 멀리 있어서 누를 수 없다는 부분까지 챙기지 못한다.


그렇게 수많은 이유들이 뒤섞여 마침내 사고가 벌어진다.



=====
베어타운 하키단에서 벌어진 부정부패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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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그의 아버지는 꽤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베어타운 하키단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에 매우 근접하게 접근한다. 그러나 촘촘하게 짜인 베어타운의 인맥으로 인해 이 사실이 주동자인 프락에게 알려지면서 마침내 미라, 그리고 페테르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던 프락과 페테르였기에 페테르는 의심 없이 프락의 부탁에 제대로 된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문서에 서명을 해준다.


위기에 빠지게 되자 프락은 제일 먼저 미라를 찾아와 위기를 알리고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제시한다. 이에 모든 문서를 열람한 미라는 프락이 그동안 자신들을 이용한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하지만, 이내 철창신세가 될 남편을 위해 프락과 협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직업윤리를 내세워 남편에게 비밀로 하지만, 후에 그녀는 사실대로 숨겨온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놓게 된다. 모든 걸 한방에!


다른 한편으로 프락은 페테르를 이용해 티무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이 역시 각자 원하는 협상 조건을 바탕으로 진행되며, 티무는 프락에게 레브로부터 펠센(라모나 가게)를 지켜달라고 요구한다.


프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인인 리샤르드 테오를 찾아가 언론으로부터 하키팀을 살리기 위한 거래를 하게 된다. 이들은 같은 목표를 위해 손을 잡고 양쪽의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헤드의 아이스링크를 수리하는 방향으로 바꿈으로써 베어타운에 쏠려있는 시선을 분산시키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베어타운 스캔들을 덮으려는 것이다. 프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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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랑 똑같아요. 걸리지 않으면 부정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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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숲에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엮어 있고 지금까지 프락만큼 그걸 잘 이용한 사람도 없다. 조그만 공동체에서는 누구도 독립적일 수 없다. 심지어 기자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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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동체의 부패 여부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걸리지 않으면 부정행위가 아니고 터지지 않으면 스캔들이 아니다. 그때까지는 그냥 비밀이다. 어느 곳이든 숲은 비밀로 가득하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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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과 티무의 협상 조건 덕에 편집장은 어느새 모르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고 집과 신문사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심리적인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또 그토록 베어타운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데 진심이었던 편집장의 아빠는 리샤르드 테오의 으름장에 마침내 꼬리를 내리게 된다.


주변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정치인인 테오가 제대로 위험한 인물인 것은 물론 그 작자를 딸의 적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이 여길 떠나면 어떻게 될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일로 편집장의 아빠는 그자가 준 기삿거리를 받으라며, 이것이 페테르 안데르손 기사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딸에게 말함으로써 언론인마저도 통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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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을 한 번에 한 명씩만 상대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그는 양쪽 마을을 서로 싸우게 하는 대신 공동의 적을 선물했다. 정치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3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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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프락은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통해 쐐기를 박는다. 헤드 하키단의 후원자 섭외로 문제를 해결하고 미라와 한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횃불행진 덕분에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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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의 성폭행과 죽음에 얽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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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의 누나인 루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연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테오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그를 도와준 이들을 루트가 마주하면서부터다.


·········
마테오를 구해준 이들은 헤드 출신인 '옹알이'와 그의 친구 '로드리'로, 이 둘은 절친 사이다. 그 둘은 비슷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기에 서로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는데, 한쪽은 덩치가 제법 컸고 다른 쪽은 다소 작았다.


동네 친구들은 작은 아이는 '모지리', 큰 아이는 '사이코'라고 불렀다. 선이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다들 알았기 때문이다.


옹알이에게 로드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였는데, 그 이유는 옹알이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 준 것도, 하키에서 골키퍼라는 보직을 제안한 것도 모두 로드리였기 때문이다.


둘은 몇 년 동안 함께 뛰었다. 로드리는 꿈은 컸지만 재능은 별로 없었고 옹알이는 그 반대였다. 이 둘은 하키뿐만 아니라 여름방학의 모든 시간도 함께했다. 그리고 이때 둘이서 뭐 하고 놀지 정하는 사람은 역시 항상 로드리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훈련 도중 로드리가 한 팀원과 싸움을 벌였고 코치가 말리려고 하자 그에게 주먹을 날려 아래턱을 부러뜨리게 되면서 로드리는 하키팀에서 쫓겨나게 되고, 옹알이는 그대로 남게 된다.
·········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우연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마테오를 구하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보잘것없던 이들이 순간 영웅이 된 것이다.


작은 소년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그의 누나인 루트를 마주하게 된 로드리는 한눈에 반하게 되고 이내 계속 집에 찾아오고 문자를 보내면서 관심을 표하게 된다.


이때쯤 루트는 앞서 유일한 친구였던 베아트리체와의 유일한 아지트가 부모님에게 발각되면서 헤어지게 되고 외로움을 느끼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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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와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서 만나 절친이 된다. 그들이 열여섯 살이 됐을 때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서 루트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난생처음 평범해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파티에서 한 남자아이와 입도 맞추고 방 소파에 단둘이 있게 되면서 그는 섹스를 하고 싶어 했지만 세워야 할 것을 세우지 못하면서 불발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 그가 온 학교에 헛소문을 퍼뜨리게 되면서 루트는 '헤드의 걸레'로 소문이 나게 된다.


그래도 베아트리체가 있어 루트는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아지트를 들키게 되면서 베아트리체가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친척과 살게 되고, 부모님께 이 사실이 전해지면서 교회는 물론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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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와 헤어진 루트는 다시 혼자가 되면서, 혼자가 아닐 때의 느낌을 알기에 전보다 더 끔찍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계속되는 로드리의 구애에 못 본체하던 루트는 어느 날 몰래 집을 빠져나와 로드리와 함께 헤드 바로 외곽의 숲으로 가게 된다.


그와 옹알이가 아지트로 꾸며놓은 아무도 살지 않는 판잣집이 있는 곳이었는데, 옹알이는 거기서 만화책을 읽었고 로드리는 루트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약을 권한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다준 로드리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지만 그녀는 거부하고 움켜진 손목을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너무 어지럽고 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로드리는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고 이에 베아트리체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남자들은 가끔 그럴 때가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루트로서는 미심쩍었지만 그냥 넘긴다. 앞선 파티에서 만난 남자아이의 헛소문으로 인해 여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루트는 마침 그 상황에 로드리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헤드 파티에 그녀를 데려간 로드리는 그녀에게 약을 탄 술을 계속 먹이면서 마침내 둘만 있는 방에서 성폭행을 시도하게 되고 소리를 지르며 거부하지만 이내 기절하게 되면서 블랙아웃이 되고 만다.


얼마 후 다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이 알몸인 상태인 것을 알게 되고 도망치려 하지만 남동생을 두고 하는 협박에 몸이 얼어버리면서 그대로 성폭행을 수차례 당하게 된다.


그러다 겨우 도망쳐 나온 문 앞 복도에서 옹알이를 마주치게 되는데, 사실 이때 루트는 물론 옹알이 역시 로드리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로드리가 그를 공범으로 몰면서 어쩔 수 없이 문 앞에서 그냥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성폭력을 당한 후에 로드리의 협박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사진을 보내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 갇혀 루트를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루트는 그의 협박에 못 이겨 사진을 돌려받기 위해 그가 준 약을 먹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와 자고 난 후에는 몇 장의 사진을 지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 시간을 견디고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그걸 사랑으로 해석한다.


그러다 결국 자책으로 무너진 로드리는 이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그녀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런 그를 뿌리치고 집에 돌아온 루트는 자고 있는 동생을 보며 어느새 자신의 안위보다 동생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경찰서를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도움은커녕 오히려 살살 구슬리는 말로 궁지로 내모는 경찰들과 딸의 말을 믿지 않고 약쟁이로 취급하며 비난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루트는 큰 실망감은 물론 실의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루트는 점점 더 작게 몸을 웅크리게 되고, 혼자 있을 때면 자해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렇게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옥이 된다.


이때에도 로드리는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가상 현실 속 러브스토리를 읊어대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몇 달 뒤 케빈이 마야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소문이 퍼지게 되고 이를 듣게 된 루트는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물을 전부 읽게 되는데, 모두 마야를 우롱하고 조롱하는 글들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가능한 빨리, 최대한 멀리 사라져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데 성공한 루트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평범하게 생활하게 된다.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편안하고 뻔뻔하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2년 반 동안 그녀는 아주 많이 웃었고 전설 속의 배처럼 썩은 널조각을 모두 교체해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찾은 파티장에서 약물이 루트를 덮치게 되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녀가 쓰러지게 되면서 숨이 끊기게 된다.


마테오는 그녀의 누나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약물중독으로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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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의 복수, 그리고 벤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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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던 마테오. 종교에 심취해 있던 부모님과 사랑하던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던 마테오는 우연히 발견한 누나의 숨겨진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점차 자신만의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는 복수를 위해 무덤을 세 개 준비하게 되는데, 하나는 죄를 저지른 로드리를 위해, 또 하나는 루트를 도와주지 않은 옹알이를 위해, 또 하나는 자신을 위해 무덤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심이 없던 레브의 부하에게 권총을 구매하게 되면서 그렇게 끔찍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게 된다.


토요일 새벽, 하키가 열리던 그날 일찍이 로드리를 찾아간 마테오는 로드리가 차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앞 유리창을 향해 방아쇠를 세 번 당기게 된다. 그렇게 죽은 것을 확인한 그는 빙판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다른 링크장 라커룸 안 벤치에 앉아있는 옹알이를 발견한 그는 또 한 번 '탕'하고 첫발을 쏘게 된다. 하지만 첫발은 불발되고, 다음 연속으로 '탕, 탕' 발사하게 되면서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에 명중하게 된다.


옹알이는 자기가 죽게 됐다는 것을 알고 가만히 눈을 감고 끝나기만을 기다리지만, 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눈을 뜨게 되는데, 이때 피투성이가 된 채로 두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발이 쏘아지고 이내 벤이는 옹알이를 향해 몸을 내던진다. 그리고 동시에 마테오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간파한 아나의 아빠가 트럭에서 엽총을 들고 쫓아오면서 마침내 마테오 역시 머리에 총을 맞고 죽게 된다.


이 둘은 바닥 위로 쓰러지기 전에 숨이 끊긴다.


벤이는 다시 돌아온 마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만, 정작 모든 것을 잃는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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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달랐던 마야와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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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이야기도 루트의 이야기처럼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부분들로 인해 모든 게 전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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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주었던 엄마, 사랑해 주었던 아빠, 곁을 지켜주었던 동생, 온 세상을 생대해 주었던 단짝 친구, 하키단 회의장에서 마야의 편을 들어주었던 술집 할망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걸 목격하고 용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어주었던 증인.


그게 다였다. 그뿐이었다.
4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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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그녀의 이야기였다. 마야와 루트! 이들은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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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는 딱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루트는 죽었고 마야는 살아 있다.
(...)
루트는 도망쳤고 마야는 거처를 옮겼다.
(...)
루트는 잊혔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녀가 겪은 일은 중요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
이 숲에서 우리가 딸들에게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실수 중 하나가 바로 루트 같은 여자아이는 이례적인 경우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당연히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례적인 경우는 마야다. 보복을 눈곱만큼 이라도 감행하거나 정의를 손톱만큼이라도 구현한 사람들이 자신을 '생존자'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들은 루트 같은 여자아이들의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411~4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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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을 목격한 목격자의 행동 역시 달랐다. 옹알이는 모른척했고, 아맛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폭로했다. 그리고 이 마을은 더 이상 눈을 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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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때 얘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죄를 짓는다. 아맛의 대처를 일반적인 반응으로 간주하는 죄를 말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건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옹알이의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가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다.
4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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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의 일기장>
(432~433페이지 中)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쉬는 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우리 여자들을 때리고 머리를 잡아당겨서 어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그들은 그런 식으로 남자아이들에게 우리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가르친다.


나이를 먹어서 그들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그게 칭찬인 줄 모르다니 우리더러 멍청한 걸레라고 한다. 그들이 우리를 때리고 죽여도 그게 다 우리를 좋아해서 그러는 건데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한다.


그날 헤드에서 그 아이와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그 아이가 나와 잤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으니 나는 이미 걸레였다. 그리고 걸레에게는 성폭행을 당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부모님마저 나를 믿어주지 않는데 무슨 희망이 있을까?
부모님들은 항상 딸들을 단속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러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전부 알고 있다. 성폭행을 당하는 쪽은 우리니까!! 우리 말고 빌어먹을 아들들을 교육시키란 말이다!!


더는 딸들을 단속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전부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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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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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이의 피를 뒤집어쓴 아맛과 보보, 그리고 그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알리시아를 목격한 마야는 알리시아를 안고 이 아수라장에서 빠져나간다.


숲속으로 달린다. '아이를 보호해야 해'라는 생각뿐이다.


눈밭 위로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 두 팔이 느껴진다. 엄마의 팔이다. 미라는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지 않고 아이들을 뒤쫓아서 달렸다. 그 뒤로 테스가 따라오고 조만간 빨간색과 초록색, 심지어 검은 재킷을 입은 다른 여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들이 서로 팔을 감싸고 동그랗게 한 겹, 두 겹, 세 겹의 원을 만들어 알리시아를 가운데 두고 벽을 칠 것이다.


사건의 중심에 알리시아에 있었다. 이 마을의 희망, 하키의 꿈인 그녀가 피투성이 속에 있었다. 여성들은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현장에서 벗어나 아이를 감싼다. 한 겹, 두 겹, 세 겹 원을 만들어 그녀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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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또 다른 시작점을 맞이한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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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하는 총소리 하나로 기민하게 알아차린 아나는 황급히 라커룸을 들여다보고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라커룸을 향해 뛰어가 아빠를 옆자리에 태우고 그 자리를 벗어난다.


한편 레브는 부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아이스링크를 찾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다. 바닥에 남은 핏자국과 시신을 보고 금세 상황을 파악한 그는 아나의 트럭을 따라간다.


아나와 레브는 트럭 뒷자리에서 공구를 꺼내고 같이 얼음에 구멍을 뚫어 엽총을 분해해 부품을 호수 여기저기 흩뿌리는 것으로 사건을 은폐한다. 그리고 셋이 술을 나눠 마시는 것으로 알리바이를 만든다.


아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이 전혀 없었지만 이제는 평생 남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된다. 벤이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던 이때가 시작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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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는 마테오를 죽이는 데 쓰인 엽총을 끝내 찾지 못한다. 벤이를 죽인 권총의 출처도 밝히지 못한다. 베어타운 이쪽 끝에서 헤드 저쪽 끝까지 가가호호 탐문수사를 벌이지만 어느 누구도 쓸만한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
5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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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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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앞서 두 마을은 증오가 알아서 척척 절차를 밟고 있었다. 오해가 또 오해를 낳는 상황이었다. 폭력은 대물림 되고 있었고, 어느 누구 하나 이것을 풀어보려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 이후 두 마을은 달라졌다.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관점이, 시선이 바뀌었다. 내부의 적을 외부의 공공의 적으로 돌리면서 함께 협력하고 도우면서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벤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한다.



■미라
미라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구세대들이 절대 잊지 못하도록 성범죄를 좌시하지 않도록 나서고자 한다.


문제가 있는 것은 여자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한다. 이에 동업자인 친구도 함께 하기로 한다.


그렇게 미라는 몇 달 뒤에 회사를 일부 직원들에게 넘기고 비싼 차도 판다. 그리고 신생 법률회사를 차리고 집의 부엌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일종의 대성당이 된 것이다.


■마야
몇 년 뒤 이 나라를 통틀어 가장 큰 무대에서 공연할 만큼 유명해진다. 그곳은 아이스링크로 가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역사적인 그 순간에 마야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곡을 소화한다.


그리고 그녀의 공연 속 영상에 나타난 사진을 알아본 한 청년이 무작정 마야의 공연장을 찾아가 벤이를 알고 있으며 그를 사랑했다고 외친다. 이로 인해 그 청년은 마야의 베이시스트가 된다.


■하키팀
보보와 아맛은 A 팀 모든 선수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든 장소에서 하키를 하고 또 한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니
테드의 하키팀 코치로부터 테드가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며 여러 관계자들로부터 문의전화를 받고 있다는 말에 요니는 조언을 듣기 위해 베어타운에 있는 페테르에게 달려간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요니의 말에, 페테르는 자신의 선수 경험에서 느꼈던 것들을 가감 없이 전하며 도움을 준다.


요니는 페테르의 도움으로 아들에게 가장 좋은 리더가 되는 방법을 훈련시킨다. 이후 테드는 헤드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주장이 되고,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NHL 프로팀의 주장이 된다. 그리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집'에서 리더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고 전한다.


■프락
프락은 모두를 위해 또 다른 희생양으로 라모나를 희생하자는 테오의 요구에, 스스로를 던진다. 그렇게 프락은 사기 혐의로 기소되면서 몇 개월 징역형을 살게 된다.


그리고 출소하자마자 베어 타운으로 돌아와 건축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비즈니스 파크나 트레이닝 시설이 아니라 소꿉친구를 도와 대성당을 짓는다. 자비로 지붕 공사비를 충당하고 직접 공사에 참여한다.


소박하고 조그만 아이스링크는 그렇게 지어진다. 뭔가의 시작이 된다. (베어타운과 헤드, 그리고 또 다른 마을인 아맛의 고향인 '할로'에 아이스링크가 들어서는 순간이다)


■한나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딸을 응원하며, 엄마 외에 다른 사람을 찾는 딸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더불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미라 안데르손의 명함을 건네며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한다.


■편집장과 아버지
편집장과 그 아버지는 휴가를 떠난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편집장은 헤드로 돌아가지만 이내 좀 더 넓은 도시의 좀 더 규모 있는 신문사로 자리를 옮긴다. 힘이 생기면서 리샤르드 테오를 덮칠 기회가 생기자 놓치지 않는다.


그 무렵 테오 역시 좀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기에 추락의 충격이 더 심하다. 그의 정치 인생을 끝장내고 그를 파멸시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스캔들을 파헤친다. 그럴 능력이 되니깐 한 것이다.


■아맛
아맛은 결국 NHL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옹알이
옹알이는 하키를 계속한다. 그는 마테오의 총구가 실은 누굴 겨냥하고 있었는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의 마음도 뒤집어놓지 않고 조용히 살며 베어타운 하키단이 그에게 골문을 맡길 때마다 모든 슛을 막으려고 한다.


그는 여러모로 베어타운 하키단의 진정한 전설이 된다. 추후 부상으로 하키를 접어야 할 때 그의 나이는 서른이 조금 넘는다. 그는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처럼 매 순간 경기에 임했다.


은퇴식 다음날 그는 먼 길을 달려 마테오라는 무덤이 있는 이름 아래에 꽃다발을 놓는다. 용서를 빌던 그는 하키 가방을 열고 안에 든 엽총을 장전한다. 총을 들고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루트와 마테오의 부모님
루트와 마테오가 살았던 집에 옆집에 사는 노부부가 찾아온다. 딸의 장례식을 담당했던 목사도 찾아온다.


루트와 마테오의 부모님은 남은 인생을 자선사업에 바친다. 가난한 마을에서 일하고 그들을 위해 건물을 짓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 보육원이다.


이후 루트와 마테오가 살았던 조그만 집은 몇 년 동안 빈집으로 남는다. 하지만 젊은 부부가 널빤지를 하나씩 교체해 거의 모든 곳을 새롭게 바꾼다. 그들의 쌍둥이가 앞마당에서 논다. 


■벤이 어머니
벤이 어머니의 삶도 고되지만 꿋꿋하게 계속 이어진다.


■알리시아
알리시아는 자기 집도 있고 침대도 있지만 거기서 지낼 때가 거의 없다. 대게 수네의 집 아니면 아드리의 집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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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삶에 있어 진짜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다시 연대하며 살아간다.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와 같이 '쏘고, 덮고, 쉿'의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두꺼운 벽을 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함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망'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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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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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천연덕스러운 질문을 하고 천연덕스러운 답을 듣는다. 거짓말이 그렇게 쉽게 차곡차곡 쌓일 수도 있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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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는 지금 사실대로 얘기하는 중이라고 자기최면을 걸지만 백 퍼센트 사실대로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구단에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실토하지 않았다. 이것으로는 부족하기에 다시 하키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실토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실토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미라도 프락에게 어떤 예기를 들었고 어떤 식으로 운영위원 자리를 제안받았는지 페테르에게 밝혀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번 일에서만큼은 그녀가 그의 아내가 아니라 변호사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73~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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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부부관계에 있어 미라와 페테르는 서로의 감정을 철저히 감춘다. 때문에 오해는 오해를 낳고, 서로의 진심을 받아들일 기회마저 빼앗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속은 곪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터져버린 진심 덕분에 이들은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공유하고, 마침내 이것을 실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후대, 나아가 마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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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에서는 모두가 서로 연결돼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아주 단단하게 연결돼 있다.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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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과 마을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어떤 식의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는 곧 마을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여태까지는 모르는 척 덮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의 이웃, 친구, 지인의 일을 무마시켜줬다면 그 일 이후로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기로 마음먹는다.


우리의 미래, 아이들을 위해 모두가 두터운 벽을 허물어 뜨리고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한발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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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최악의 편견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며 전해준 이야기로 항상 입증된다.
우리는 이 관계가 오랜 역사에 걸쳐 뿌리내린 관행이라고 할 것이다.
2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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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폭력 속에 자리한 것은 '편견'과 '관행'이었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폐쇄적인 집단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최악의 단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뿌리 깊은 관행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진실에 입각한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전해진 '입증'이 진실이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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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단은 어린 시절 내내 숲속에서 같이 놀았고 등을 맞대고 잠을 청했던 친구다.
(...)
하키단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경기를 펼친다. 여기 이 베어타운에 와서 경기하는 팀은 빙판 위에서 골키퍼와 다섯 명의 선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횃불이 이렇게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모두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4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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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에서 하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세대를 이어 온 친구이자 모든 것! 어쩌면 그래서 더 뿌리 깊은 부패와 관계가 얽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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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악을 물리칠 수 없다. 우리가 건설한 세상의 가장 견딜 수 없는 점이 그거다. 악은 근절하지도 어디 가두 지도 못한다. 그걸 없애겠다고 폭력을 쓰면 쓸수록 악은 문 틈새와 열쇠 구멍으로 스며나오며 점점 더 강력해질 뿐이다.


악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기에 어떨 때는 심지어 우리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들 안에서, 또 어떨 때는 심지어 열네 살짜리의 안에서 자라나기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항할 무기가 없다. 그것에 대처할 수 있도록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았을 뿐이다.
4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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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외부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라난다. 이것은 특정 누구를 가리지 않으며, 절대 사라지지도 물리칠 수도 없다. 이것을 없애겠다고 폭력을 쓸수록 공기나 연기처럼 문 틈새와 구멍으로 스며 나오며 점점 더 강해진다.


이것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사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진정한 위너는 '사랑'을 품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래의 희망을 대변하는 '알리시아'를 품은 마야, 미라, 테스, 그 외에 수많은 여성들. 그리고 벤이를 사랑하고 라모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티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검은 양복을 입은 일당들. 그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승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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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2>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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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 오래도록 버텨내려면 나름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연대에 '친밀감'이 붙어 얽히고설킨 나무뿌리처럼 하나의 거대한 망이 형성된다.


이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뻗어나가면 좋겠지만, 실타래처럼 꼬인 관계 때문에 한두 번의 부정이나 비리를 눈 감아 주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것은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 형성된다.


베어타운과 헤드의 관계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친선을 위해 시작한 하키가 세월을 덧입고 경쟁이 심화되며 어느새 마을의 전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숲으로 이어진 하나의 마을이 점차 나뉘고, 격차가 벌어지면서 각자 마을이 가지는 고유의 친밀감과 남성우월주의가 더해지며 이런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을 만나고, 사람들을 이어주던 사람이 죽고, 큰 사건을 겪으며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서 두 마을의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과오와 실수를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에게 서로를 미워하며 죽고 죽이는 일이 대물림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부터 변하기로 마음먹는다. 성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자아이들이 더 이상 없도록,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하고 돕는 일에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나'만 잘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며 오래 걸리더라도 바르고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대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결과물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은 각자의 길에서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연대로 큰 사건은 최소의 범위로 마무리되고, 죄를 지었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책임을 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며 시작한 작은 변화가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세 명의 죽음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 그들은 바로 벤이와 루트, 마테오로 상황이 조금만 달라졌다면 어쩌면 이들 역시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루트와 마테오의 부모님이 조금만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줬다면, 마테오가 권총을 구매하지 못했다면, 루트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링크로 가는 길에 마테오가 트럭을 얻어 타지 못했다면 등등.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 기회를 막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해 이들은 결국 눈 깜짝할 사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작은 온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쩌면 마야처럼 인생의 작은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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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가이드북 : 동남아시아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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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푸꾸옥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적한 진짜 ‘쉼‘을 원한다면 푸꾸옥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천혜의 자연과 액티비티, 그리고 워터파크를 함께 즐길 수 있어 혼자여행을 떠나도 지루함을 느낄만한 여력이 없다. 즈엉동 타운을 시작으로 낮에는 그림 같은 해변을 거닐고, 밤에는 야시장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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