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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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김헌' 교수의 책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반짝 일었다. 방송을 통해 푸근한 인상과 재미있는 말솜씨로 역사를 소개해 주는 그의 수업 덕분에 평소 어렵게 느꼈던 그리스 문화와 신화 등을 방송을 통해 재밌게 접할 수 있었는데, 왠지 책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 중 유독 더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과 '철학자'의 이야기임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였지만, 평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야였는데 이번만큼은 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완전 초보자들을 위해 차근차근 뼈대를 세워가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시대별로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보다 가깝게 철학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철학' 하면 약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삶과는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오로지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 책을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과 인문학의 위기 상황에서 철학이 해답이 되어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삶의 위기를 겪으며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어쩌면 과거 철학자의 삶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자의 사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자이자 교수로서 김헌이 전하는 철학과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철학자들의 개인적인 삶과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여기에 저자의 생각에 담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그래서 '철학'에 문외한이거나 초보자들도 접근이 용이하다.


학문적 관점에서 철학과 철학자를 소개하기보다, 우리가 똑같은 한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 거리감이 확 줄어듦을 느낄 수 있다. 또 그들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삶에 보다 쉽게 적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연대별로 서술하는 방식과 반복적으로 철학과 철학자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사상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어려운 이름에도 헷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치가 가능하다.


우리 삶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철학과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과 이념에서 우리가 어떤 깨달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찾고, 이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철학 하는 것(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삶)에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자 했다.


그가 담은 철학과 철학자의 삶을 통해, 지식과 정보 지수를 올리는 것은 물론, 우리 삶에 대입할 수 있는 여러 대안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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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철학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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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인 저자는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며, 그 역할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헌은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철학에 대한 재검토를 제시한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는 학문으로 정의하며 그 구체적 탐구와 사유의 모델로 하이데거의 예를 든다. 김헌은 "하이데거의 예처럼 철학자의 삶 자체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사유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라며 이 책의 의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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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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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죽어 갈 인간들이 생존과 행복을 위해 새겨 넣는 흔적의 총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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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몸에 무늬를 새겨 넣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짓는 표정과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 사람의 마음에 내가 새겨 넣는 인상 일체가 그 사람에게 새겨 넣는 나의 인문입니다. 이렇게 인문의 외연을 넓혀 나가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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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간 사회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문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교육행위는 한 공동체 내의 정체성과 역사를 이어 나갈 중요한 인문의 실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생각들이 서양의 언어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교육을 '파이데이아'라고 했는데 '아이를 어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마에서는 이 말을 '후마니타스'라고 옮겼는데, 이것은 '인간다움' 나아가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영어 '휴머니티'로 고스란히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공부'인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는 '인문학'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결국, 서구 문명사에서 교육은 곧 인문(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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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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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인문을 내 안에 새길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문을 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에 새길 것인가, 이런 통찰이 약할 때, 세상을 위협하는 인문학의 위기가 개인의 차원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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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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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강연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곧 '정의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구조로, 바로 '000은 무엇인가?'라는 형식으로, 이 형태로 질문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바로 고대 그리스인이다.


예컨대, '붕어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붕어빵의 본질, 붕어빵의 정체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찾으려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지식을 얻게 된다.


바로 그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고, 본질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바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견해다.


철학이란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 답을 정확하게 찾아내려고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에 평생을 다 바친 사람이 바로 철학자인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삶, 그런 삶의 태도나 행동을 하이데거는 '철학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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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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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리스 철학을 구분할 때 소크라테스를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의 마지막 인물로는 데모크리토스를 꼽고,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나이가 많지만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들에 포함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자연에 관심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 인간과 사회에 관심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로부터 불러 내렸고, 도시에다 가져다 놓았으며, 집 안으로까지 들여다 놓았다. 그는 삶과 관습, 좋은 것과 나쁜 것, 즉 선과 악에 관하여 탐구하게 만들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철학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보았는데, 다시 말해 철학자들의 관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모두 '이 세상은 어떻게,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았던 사람들로,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자연철학자'라고 부른다.


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본 요소를 물, 엠페도클레스가 물, 불, 공기, 흙이라고 주장하고, 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라고 했던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에 대한 탐구의 결과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의 관심을 인간과 사회로 돌렸는데, 그가 선과 악의 문제 등 인간의 삶과 행동을 탐구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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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에 대한 진실과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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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라고 하면 흔히 말장난을 일삼는 말재주꾼을 떠올린다. '궤변론자'라는 번역이 특히 그렇다.


그런데 저자는 소피스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데, 원래 그리스어로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것을 아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피스트는 원래 좋은 의미였는데, 소피스트들이 철학자들과는 달리, 강연이나 교육을 통해 수업료를 받으면서 사람들에겐 '지식 장사꾼'이라는 편견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프로타고라스도 많은 돈을 벌었는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설계하고 건축했던 조각가 페이디아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강연과 교육을 하고 돈을 받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가르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비난을 받을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피스트들이 활동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460년에서 기원전 380년 사이로, 활동 무대는 그리스 전역으로 다양했지만 가장 활발한 곳은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민주정이 가장 발달한 도시로 직접 민주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는 연설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주 중요했는데, 그 기술이 바로 레토릭, 즉 수사학이었다. 소피스트가 수사학, 즉 연설의 기술, 설득이 기술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으면서 문제가 된 이유는 "나에게 오면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선전하면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죄를 짓고도 법정에서 말을 잘해서 무죄가 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가르치겠다고 하고, 의회에서도 이권을 챙길 수 있는 법률이나 정책을 관철할 수 있다며 선전했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었다.


수사학을 가르친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는데,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고 말재주를 피워 거짓과 부정의가 위세를 떨치게 하는 건 국가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나쁜 행동이며 나쁜 교육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가 소피스트에 관한 알 수 있는 것은 대게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서라는 점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소피스트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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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리스 이름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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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토스
육체적인 힘, 완력을 뜻함 거기에 파생되어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크라테스는 '크라토스를 가진 사람' , 즉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다른 사람을 누르는 승리자'를 뜻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
'크라테스'라는 말에 '소가'가 붙어 '소크라테스'가 되는데, '소'는 '안전하고, 확실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확실히 힘이 센 자'라는 뜻이다.


■이소크라테스
'크라테스'에 '이소'가 붙어 이소크라테스가 되는데 '이소'는 그리스어로 '같다, 비슷하다, 평등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에 견주어 힘이 달리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과 똑같은 힘과 권력,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데모크라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에도 '크라토스' 개념이 들어 있는데, 데모스가 '민중, 인민'이라는 뜻이니 데모크라시는 권력이 알반 민중에게 있는 정치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자가 손꼽은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만나보려 한다. 여기 담긴 내용들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편견 어린 시점도 다시금 재정비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하늘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았던 철학자들이 어느새 손끝에 닿아 있는 느낌도 들었는데, 하나의 생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들이 그런 사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환경을 함께 확인할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특히 편중된 시선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저자의 의견과 생각이 더해지며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한 명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나보며,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그래서 추후 저자가 추천한 도서를 통해 추가적으로 이들의 사상과 삶에 대해 더 알아가 볼 예정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철학자들 중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눈에 띄었는데, 저자가 할애한 페이지가 많은 만큼, 또 이들이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던 만큼 확실히 시선이 많이 갔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철학의 학맥으로 연결된 이들이 추구한 사상과 삶도 함께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서 이들이 당시에 어떤 것들에 집중했고, 어떤 것들을 실천하며 살았는지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헤라클레이토스●


그의 사상은 '만물 유전 법칙'이라고 하여 만물이 불처럼 끊임없이 운동하며 변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 발을 담그고, 조금 후에 다시 발을 담근다고 해도 앞서 발을 담갔던 물은 이미 흘러가고 새로운 물이 흘러왔기 때문에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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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사실 같은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기를 반복합니다. 태어날 때 가졌던 피부, 머리카락, 손톱, 발톱, 무엇 하나 지금 남아 있는 게 없을 겁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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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매일, 매 순간 '나는 변하고 다른 나'를 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철학은 현재의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순간을 쟁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충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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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르시아 왕국을 통째로 갖는 것보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길 원한다."  지혜를 권력이나 명예,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던 진정한 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말도 전해집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몸이나 재물이 아니다. 올바름과 폭넓은 분별력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과 재산, 명예 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을 비웃고, 자기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평생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웃음의 철학자'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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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습니다. "세계는 무대이며, 삶은 한 편의 연극이다.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난다."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던 원자론 철학자 다운 의연한 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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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이런 철학자를 찾으라고 하면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했을 만큼 물질보다 지혜를 얻는 것에 더 힘을 기울였던 철학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런 자기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평생 웃음을 잃지 않은' 철학자였다는 점에 있어 더 마음이 가는 철학자였다.


사후 세계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와서, 보고, 떠난다'라는 말에서 사는 동안 멋지게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함께 후련함과 시원함도 느껴졌다.


미련을 가지기 보다 어쩌면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의 영향>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근대에 이르러 합리주의와 과학의 발달에도 큰 힘을 실어줌
▶공산주의 사상을 창안한 칼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처럼 데모크리토스는 서양철학사에게 끊임없이 연구되고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철학자였다.



●프로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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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아름답고 추한가, 좋고 나쁜가, 옳고 그런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의미에서 "인간(또는 개인)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상대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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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변명할 여지없이 딱 들어맞는 철학이자 사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다. 특히 개인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이것만큼 들어맞는 사상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부르는 이유는 산파가 임산부의 태에 있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듯이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마음, 정신에는 선생님이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이 이미 다 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안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지식과 정보, 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산파가 임산부를 도와서 태 속의 아이가 나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파술'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교육적 가치
현실은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분명 다른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여전히 유효한데,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모든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이 학생들 안에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쑤셔 넣듯이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학생 스스로 새롭게 창조해 낼 수 있도록 산파처럼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파술의 교육적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죽음=영혼의 해방'이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탈옥을 거부하고 자신이 죽기를 기다려왔고, 또 죽음을 연습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이 영혼의 해방이었던 것이다.


영혼은 단단하고 순수하며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자신을 닮은 순수한 존재들만 있는 이데아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순수한 상태로 몸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지만 반대로 영혼이 몸의 욕망과 탐욕에 오염되면, 더럽고 무거운 상태로 남아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올라가고 싶다면 평소에 몸이 욕망에서 영혼을 최대한 분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철학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영혼을 몸의 욕망에서 떼어 내려는 노력, 영혼의 정화를 위한 실천, 그것이 철학이니 학문이라기보다는 무슨 종교적인 수행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고 논문을 쓰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철학은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특별한 삶의 방식과도 같은 것이며 영혼의 수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학은 영혼을 몸의 간섭에서 벗어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철학은 죽음과 상당히 비슷해지는데, 철학이 영혼을 몸의 간섭에서 떼어 내려는 노력이고, 죽음은 영혼이 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절정, 철학의 완성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고, 영혼을 정화하고 몸에서 해방하는 작업인 것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평생 철학에 전념했으니 평생 죽음을 기다리고 연습한 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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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이라는 말에 이어 '웰다잉'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 잘 죽을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겠지요. 어차피 영원히 살 수 없고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곧 죽어 가는 것이라면, 잘 사는 일은 곧 잘 죽는 일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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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철학과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혼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곧 '비움'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죽음을 초월한 이들, 영혼을 맑게 하는 것에 관심 있었던 이들인 '이어령'과 '디팩 초프라' 역시 소크라테스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는 철학의 학맥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대왕



■소크라테스의 '소 소크라테스 학파'


▷첫 번째, 퀴니코스학파(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
인간이라면 고유의 덕을 잘 닦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려면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안티스테네스 그 자신도 그것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았다. 안티스테네스 학파를 퀴니 코스학파라고 부르며, '퀴니 코스'는 그리스어로는 '개 같은' 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들을 보고 '개들과 같은' 삶을 산다며 '퀴니코스 무리들'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는 '견유학파'라고 칭하는데 '개와 같은 유생들의 학파'라는 뜻이다.


'퀴니 코스학파'라는 이름은 안티스테네스의 제자 디오게네스 때문에 나중에 붙은 이름으로, 그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두 번째, 메가라학파(에우클레이데스)
메가라는 아테네에서 펠로폰네소스반도로 가는 기로에 자리 잡은 도시로, 학파를 창시한 에우클레이데스가 메가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메가라 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메가라학파는 궁극의 선을 탐구하고 논증하기 위해 논리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같은 논리적인 경향은 스토아철학의 논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단정 짓는 태도를 경계하는 퓌론의 회의주의 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세 번째, 퀴레네학파(아리스티포스)
퀴레네는 리비아의 도시로, 문화적으로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아프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렸다. 그곳 출신이었던 아리스티포스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아테네로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후 그는 다시 고향 퀴레네로 돌아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내용을 가르쳤다.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을 강조했는데 특히 육체적 쾌락이 중요하고 인생의 목적은 결국 쾌락을 즐기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간순간의 쾌락이 쌓이고 쌓여서 그 총합이 결국 행복을 만든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그가 소크라테스를 직접 만난 후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배운 다음에 내놓은 것인 퀴레네학파의 쾌락주의이기에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쾌락주의적 요소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퀴레네학파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다양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다.


▷네 번째, 엘리스학파(파이돈/메네데모스)
엘리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서쪽에 위치한 엘리스 지역 출신 파이돈이 세운 학교에서 발전했다. 파이돈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어 아테네로 왔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를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했고 나중에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었다.


파이돈의 사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제자인 에레트리아 출신 메네데모스의 사상을 통해 개략적으로 유추해 볼 뿐이다. 엘리스 학파의 주장은, 대체로 메가리학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메네데모스는 선, 좋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덕을 강조, 이것이 과연 파인돈의 생각인지를 확실하지 않다.


엘리스 학파와 구별해서 메네데모스의 주장을 에레트리아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네데모스가 나중에 에레트리아에 학교를 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파이돈의 생각과 메네데모스의 생각이 같다고 보기 때문에 엘리스 학파를 에레트리아 학파라고도 부른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지금까지 소개한 네 학파를 묶어서 '소 소크라테스 학파'라고 한다. 이들에게 '소'를 붙인 이유는 그들의 비중이 작아서라기보다는 남아있는 작품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 소크라테스학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탁월한 글 솜씨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플라톤●

스무 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불과 9년 동안 제자로 지냈다. 말도 참 잘하고 멋있는 표현을 만들어 냈던 탁월한 문필가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계의 돌쇠'라는 이미지를 가졌다면, 플라톤은 '철학계의 떡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플라톤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비극 작가가 되려고 작품을 썼는데, 그 작품을 뒤오뉘소스 제전의 비극 경연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아고라를 지나고 있다가 사람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서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철학적인 주제를 놓고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대화에 푹 빠진 플라톤은 '바로 저것이다'라면서 들고 있던 비극 작품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그 길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된다.


이렇게 다가온 플라톤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아, 네가 어젯밤 꿈에서 본 바로 그 백조로구나!"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
플라톤의 저작을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 셋으로 나누는데 이런 구분에 획기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사람은 19세기 후반의 캠벨이었다.


플라톤의 글쓰기가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세 덩어리로 묶은 것이다.


▷초기 작품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전형적인 대화편으로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 상대의 주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그 주장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기 작품
플라톤의 완숙미를 보여주는 예술적인 걸작들이 많다.


▷후기 작품
대화의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극적인 요소가 많이 줄어들고 단순한 질문에 확고한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다소 건조한 문체로 이루어진다.



■플라톤의 작품이 오랜 세월 보존되고 전해진 이유


▷첫째, 플라톤이 직접 세운 아카데미아 학원이 파괴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지속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가 파괴되기 전 대부분의 작품들은 필사본이 제작되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플라톤의 작품들이 학자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물론 교양 있는 시민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배경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은 '가장 훌륭한 목적, 또는 가장 훌륭한 끝'이라는 뜻이다. 그가 아테네로 왔을 때는 아웃사이더였는데, 한 마디로 촌놈 취급을 받던 지역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출신 지역인 마케도니아에서는 상류층으로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어려서부터 왕궁에서 자랐고, 마케도니아 왕자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그가 열세 살 때 부모님이 전염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친척의 보살핌을 받다가 열 여덞 살쯤 아테네로 온다. 이때 수사학을 중심으로 가르치던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와 기하학, 수학을 기본으로 논리학과 변증술을 가르치던 플라톤의 학교가 경쟁하고 있었다.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18년간 공부하며 플라톤의 제자가 된다.


처음에는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지는 않았다. 지혜를 추구하는 실용적인 노선과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길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적 호기심과 넓은 관심의 폭을 채워 나가는 것에 집중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소크라테스 학교보다는 플라톤의 학교가 더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크라테스에게 배운 것을 평생 깊이 간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인 만큼 플라톤의 제자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기보다 이소크라테스에게 먼저 배웠다는 사실을 참조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지향점
한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져 있는데 두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은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른손 손바닥을 쫙 펴서 아래를 가리키고 있는데, 두 사람의 철학적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플라톤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진리가 저 천상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사는 변화무쌍한 세계는 한낱 현상일 뿐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 존재의 실체는 이 세상 너머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바닥을 펴서 땅을 가리키는 것은 진리가 여기 이 땅에 있다는 뜻으로 이데아의 세계가 이 세상과 떨어져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이 그렇게 되는 원인과 이유를 근본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우리 일상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차분히 파고들고 반성한다면 그것이 곧 철학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학문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대상의 원인을 찾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지식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했다.


그 대상과 원인이 내 밖에 있는 경우 그것을 통찰하고 관조해서 알아내는 지식을 '이론적 지식, 관조적 지식'이라고 했다.


반면 그 원인이 내 안에 있는 경우 내 안의 원인을 찾는 학문을 '실천적 학문'이고, 그 결과를 '실천적 지식'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윤리학과 정치학이다.


또 하나는 내 안에 원인이 있긴 하지만 그 결과가 내 행동이나 말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물건으로 나타날 때 그런 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을 '제작의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퓌론●

퓌론이 길을 가는데, 그의 스승 아낙사르코스가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런데 퓌론은 위험에 처한 스승을 도와주기는 커녕, 무심하게 현장을 스쳐 지나갔다.


이때 아낙사르코스는 무심한 퓌론을 칭찬했는데,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는 공정한 태도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는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퓌론의 회의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극단적인 사례로, 퓌론의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태도 깊은 곳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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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혹 삶의 현장에서 자기 생각이나 신념을 강하게 주장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고 간섭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
퓌론의 생각과 행동은 타인에 대한 진지한 무관심이며 배려하는 마음이자, 세상에 대한 차별 없음과 초연함으로 해석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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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에 적용하면 좋을 또 하나의 사상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바로 퓌론의 회의주의였다. 현대사회를 둘러보면 약간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의미의 극명한 무심함과 극명한 관심을 꼽을 수 있다.


퓌론의 회의주의를 적용해 진지한 무관심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는 어쩌면 타인의 민망함과 소란스러움을 덮어주는 하나의 배려가 될지도 모른다. 인종, 종교. 외모 등등 수많은 '다름'을 평등으로 치환할 수 있는 초연함이 될지도 모른다.



●제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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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과 사귀어라. 그러면 그대의 인생은 가장 좋은 삶이 될 것이다.' 이 말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았던 현인들의 삶과 생각, 사상을 읽고 깊이 숙고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가장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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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 깨우침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서 먼저 삶을 산 이들의 지혜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는 부분에 있어 이들의 삶과 생각, 사상을 빌린다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나 공자, 맹자와 같은 현인들의 책을 읽고 가르침을 구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철학자들의 개인적인 삶과 그들의 철학적 사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그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우리와 달랐던 점은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와 고뇌에 대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저마다의 사상과 사유를 가지고 좋은 스승을 찾고, 멀리 도시를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남다른 존경심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관념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배경과 역사적, 사회적 상황들을 함께 담음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데, 그런 점에 있어 철학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췄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왜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철학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철학자의 사상에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철학을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외에도 도서관의 역할과 건립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개인의 연구를 위해 진행되던 기관이 국가 주도의 연구기관으로 발전하며 변화된 부분은 가히 눈여겨볼 만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에서 시작해 국가의 재정이 투입되면서 후대가 이어받아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대 모든 지식을 한데 모은 대규모 도서관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문,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시대인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세종대왕의 집권기 집현전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학문 연구기관으로 인해 조선시대에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해 국가 권력이 연구기관을 세우고 최고 지식인들, 기술자들을 모아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시작으로 테오프라스토스가 체계화한 연구기관, 특히 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지성인이 활동하고 거대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초석이 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어쩌면 지금 우리 삶에도 미래를 위한 이런 투자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철학자들의 삶과 통찰, 그리고 사상을 통해 나의 삶의 철학은 무엇이고, 이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어떤 실천력을 발휘하면 좋을지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더불어 앞으로는 거리감을 두기보다 더 많은 철학과 철학자들을 만나보며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사유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제,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철학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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