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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도시 - 역사, 예술, 문화, 미식을 넘나드는 인문 기행
김지윤.전은환 지음 / 북다 / 2026년 3월
평점 :
"특별한 추억과 경험을 품은 도시 이야기를 인문적으로 풀어낸 여행기"
두 저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책을 읽기 전에는 그들이 사랑한 도시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생각보다는 조금 무난하게 흘러가는 구성으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 더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에 집중했거나, 우리가 잘 모르는 유니크한 인문적 시선을 담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세계의 여러 도시 중 저자들이 열 번 이상 방문한 특별한 여덟 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 예술, 문화, 미식 등 도시의 인문 교양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기본적인 배경과 지식을 함께 쌓을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인문 도서들과 큰 차별점을 찾기에는 다소 아쉬워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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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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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먼저 태어났던 도시: 워싱턴 D.C.>
■도시 건설
1790년 미국 의회는 레지던스 법을 통과시켜 미국의 수도를 포토맥 강 인근에 두기로 했다. 이 위치를 최종적으로 고른 인물은 초대 대통령 조치 워싱턴이다. 그렇게 1791년부터 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른바 신도시 건설에 임하게 된다.
이때 이 계획을 진두지휘하도록 워싱턴이 임명한 사람은 놀랍게도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 피에르 랑팡이다. 랑팡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군인으로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 밑에서 복무하면서 그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워싱턴 D.C.를 통해 절제와 질서라는 정신을 보여주려 했다. 곧게 뻗은 바둑판 모양의 길들에 대각선 도로를 겹쳐 놓는 고전미 가득한 바로크 양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사선과 직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만들어진 광장, 그리고 '서클'이라 불리는 원형 교차로를 만든 이유는 세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는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미학적인 이유였다. 마지막은 상징성이다. 그는 광장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주요 기관들의 위치다. 높은 지대인 젠킨스 힐에 연방 의회 의사당을 세운 것은 새 공화국의 중심에 대의민주주의를 두겠다는 선언이었다. 이곳을 기준으로 워싱턴 D.C.는 동서남북으로 나뉘었고, 지금도 거리 이름에 NW, NE, SW, SE가 붙는 이유다.
그런데 랑팡은 이 과업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다. 도시 계획 총괄 감독으로 임명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해임된다.
랑팡이 눈을 감을 때까지도 워싱턴 D.C.는 미완의 도시로 남았다. 워싱턴 D.C.가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뒤의 일이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세기 초, 미시간 주 상원 의원 제임스 맥밀런의 '맥밀런 계획'이었다. 미국의 고도성장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국 수도의 모습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 셈이다.
■워싱턴 모뉴먼트
워싱턴 모뉴먼트는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낸 상징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지기 시작한 창작물이다.
■무료로 개방되는 대단위 미술관과 박물관
워싱턴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미술관과 박물관 대부분이 무료라는 점이다. 그것도 규모가 굉장하다.
흔히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 뮤지엄 복합체에는 무려 21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곳은 미국의 우주 산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항공 우주 박물관 그리고 거대한 공룡 화석과 '저주받은 보석'으로 알려진 호프 다이아몬드를 만날 수 있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다.
■희생을 잊지 않는 워싱턴 D.C.
워싱턴 D.C.는 미국 정치와 세계정세가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다. 그럼에도 이곳은 과거 전쟁 용사와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동상과 기념관, 기념비들이 이를 증명한다.
<예술이 국가가 된 도시: 파리>
■오르세 미술관
파리에서는 늘 미술관이 첫 번째 행선지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너무 많아 예매권을 갖고도 줄을 서야 한다. 발걸음을 바삐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1986년, 기차역을 대대적으로 개조해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으니 이제 4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비교적 젊은 미술관이다.
1970년대 이르러 프랑스 정부를 오르세 역을 허물고 대형 호텔을 짓는 안을 검토한다. 하지만 거센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19세기 아르누보 건축의 대표작인 오르세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반대를 이기지 못한 정부는 오르세 역을 호텔이 아닌 박물관으로 개조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때 천덕꾸러기였던 오르세는 1986년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렇게 오르세는 1848년부터 1914년 사이 시기의 작품을 담당하게 된다.
미술관의 문이 열리면 대부분의 관람객은 곧장 3층으로 향한다. 1870년 이후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품이 걸려 있는 곳이다.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가세 박사의 초상>이다.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를 돌봐주었던 폴 가셰 박사를 그린 그림이다.
미술 교과서에 실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오르세 미술관은 유명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센 강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천천히 센 강을 걷는다. 센 강은 한강의 어느 지천 정도로 좁지만, 동시에 걸어서 쉽게 건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퐁뇌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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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뇌프 다리
퐁뇌프를 건너 루브르로 향한다.
■루브르 박물관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곳은 단연 루브르 박물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루브르는 요새와 왕궁을 거쳐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왕과 귀족들이 베르사유로 옮겨간 뒤, 루브르 궁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왕실이 소유하던 예술품과 소장품을 전시하기도 했고, 왕립 아카데미가 입주했다. 왕실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 되기도 했으며, '살롱'이라 불린 미술 전람회가 열리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다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다. 혁명 정부는 왕실의 재산을 국민의 것으로 선포하고, 왕의 소장품을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국가 유산으로 규정했다.
왕과 귀족, 교회가 소유하던 예술품을 압수해 루브르로 옮겼고 1793년 8월 10일 루브르는 '공화국 중앙 예술 박물관'이라는 다소 따분한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루브르의 소장 컬렉션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나폴레옹이다.
정복 전쟁을 통해 쓸어온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치장한 루브르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누렸다. 이름도 아예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바꿔버렸고, 유럽 각지의 최고급 예술품을 끌어모아 전시했다.
물론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는 약탈해 온 작품들을 대거 반환해야 했고, 박물관은 '루브르 왕립 박물관'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 되었다.
■프랑스빵
프랑스에서는 바게트만큼은 꼭 먹어야 한다. 갓 구워낸 바게트에 눅진하고 고소한 버터를 발라 먹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하다. 여기에 커피 한 잔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현재 바게트는 프랑스의 국민 빵으로 알려져 있다.
바게트가 파리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고, 지금처럼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바게트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물론 파리에서는 크루아상도 빼놓을 수 없다. 반달 모양의 버터 향 가득한 이 페이스트리의 원형은 오스트리아의 킵펄이라는 달 모양의 페이스트리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로 건너온 것은 1838년경이다.
■파리 도시의 변화
낭만과 로맨스가 넘실거리는 파리는 사실 19세기 중반 이후에 완성된 도시다. 중세 시대의 파리는 어둡고 비좁으며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런 도시의 혼란을 뒤집어엎고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나폴레옹 3세다.
그리고 이 원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물이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다. 나폴레옹 3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오스만 남작은 대대적인 파리 대수술에 착수한다.
1853년부터 1870년까지 진행된 도시 계획 사업을 통해 파리는 오늘날과 같은 방사형 구조를 갖추게 되었고, 기차역과 주요 광장들이 직선으로 연결되었다. 동시에 '오스만 양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섰고, 오페라 가르니에와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도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파리의 낡은 건물들은 가차 없이 철거되었다. 이후 도로의 직선화, 하수도 개선, 공원 조성이 어우러진 개조 작업을 통해 파리는 진정한 전성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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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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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환: 생각해 보면, 워싱턴은 처음부터 좀 특이한 도시였죠. 사람이 살다 보니 커진 게 아니라, 권력과 상징이 먼저 생기고 사람이 모인 도시니까요.
(...)
그 틀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있다면, 우리가 알던 '정치의 도시' 말고도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겠네요.
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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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곳이 도시화되면서 권력과 문화가 생기기 마련인데, 워싱턴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수도’로 설계된 도시이다 보니 정치 중심지로 계획되었고, 권력(정부)이 먼저 들어서고 나중에 사람이 유입되면서 상징성은 강해졌지만 어딘가 딱딱하고 차가운, 재미없는 도시로 느껴지게 되었다.
도시 자체는 기능적으로 잘 운영되지만 뭔가 사람 냄새는 나지 않는 도시랄까? 하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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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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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정리한 내용처럼 도시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특정 포인트로 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적인 장면이 딱히 없는 느낌이다.
그 공간만이 가진 특색과 매력, 혹은 저자들이 최소 열 번 이상 방문한 곳답게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경험담이 더 유니크하게 담겼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니면 특정 건축물이나 배경을 더 깊이 있게 풀어냈다면, 적어도 직접 방문했을 때 확실히 각인될 만한 내용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소개된 여덟 개의 도시가 많이 방문한 만큼 저자들이 사랑한 곳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완독한 이후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적인 애정이라기보다, 반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지적 흥미와 탐구의 대상에 가까운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에는 저자들이 가진 강점을 더 잘 살린 책으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