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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평점 :
"섬세하게 그려낸 감각을 사물에 투영한, 익숙하면서도 다소 기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처음에 제목과 표지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전개와 표현 방식에 깜짝 놀랐다고. 더불어 신선한 발상과 감각적인 심리가 너무 새롭게 다가왔다고.
그래서인지 손에 잡은 순간 그대로 몰입해서 읽었고,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가진 마음의 형태들이 그대로 이미지화되어 읽는 동안 머릿속을 잠식했다.
다소 독특하다거나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존재했는데, 신기하게도 부드럽게 연결된 스토리 덕에 독자인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집착과 갈망, 그리고 관능적인 이야기까지 더해 오묘하지만 신선한 표현방식에 꽤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이런 식으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는다면 남들은 절대 모를 궁극의 비밀 단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단편 모음집이다. 익숙한 상황들에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과 감각들이 더해지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데 그게 또 은근히 매력적으로 다가와 몰입도를 높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꽤 자주 아름다운 듯하지만 기묘하게 뒤틀린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마저도 생소하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가끔씩 일상 속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감각들이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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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간략하게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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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게 움푹한 곳
-소재: 일인용 안락의자
-오롯이 나를 안락하게 품어주는 유일한 것은 한눈에 반해 구매한 일인용 안락의자 '누아르'뿐인 여성이 현실의 타협점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230밀리미터의 축복
-소재: 230밀리미터의 구두
-행복했던 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현실 속에 홀로 남은 남자는 우연히 윗집에 사는 여자의 신발을 고쳐주게 되면서 다시금 잃어버린 시간과 가정의 기억을 환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새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마이, 마이마이
-소재: 몸에서 떨어져 나온 구슬
-멀어져 가는 남자친구의 마음을 알아차린 여자는 어느 날 우연히 남자의 몸에서 떨어진 구슬을 발견하게 된다. 뒤이어 자신의 몸에서도 같은 구슬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구슬은 사실 어린 날의 수치에서 비롯된 욕망과 환상의 잔재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여자의 이야기
■떨리다
-소재: 몸에서 자라나는 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라는 돌. 이 돌을 꺼내 서로 좋아하는 사람의 몸에 넣으면 돌끼리 공명해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사랑의 대상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매그놀리아 남편
-소재: 목련 꽃이 된 남편
-잘나가는 아내와 어쩐지 잘 풀리지 않는 남편. 그 와중에 남편은 맡은 배역에 몰입하게 되고, 어느새 목련꽃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정성스레 돌보지만 어느 순간 남편이 바라던 욕망이 이루어진 것을 목도하자 한순간 그 모든 관계를 망쳐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미묘한 여러 감정이 뒤섞인 한 여자의 이야기
■꽃에 눈이 멀다
-소재: 인간의 몸에 태생적으로 품고 태어나는 꽃
-태생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지방의 기후나 환경에 따른 꽃과 함께 태어나는 사람들은 식물과 함께 나고 자란다. 아이들은 5년의 시간 동안 부모와 함께 살다가 성인이 되면 모두 독립을 하고, 몸속의 식물 침식이 깊어지면 그 사람은 곧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삶의 한 사이클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기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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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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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게 움푹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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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더없이 아름답고 강한 것이 나를 두 팔로 안아든 것 같다.
매끈매끈한 등받이에 뺨을 기댔다. 아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누아르'라고 부르기로 했다.
쇼핑몰 가구점에서 이 소파를 발견했을 때 가격과 재질이 적힌 태그에 '컬러: 누아르'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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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좋은 향이 나고 따뜻하고 안심했다.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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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확실한 내 편이라고 믿은 품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러니 안심하고 몸을 맡길 곳을 갈구하게 된다.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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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확실한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한테 버려진 상황, 뒤이어 현재에도 자신을 포근히 감싸주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그녀는 자신만의 일인용 안락의자를 구매해 욕구를 대신 충족한다.
그녀가 왜 일인용 의자를 구매하게 되었는지, 또 이것을 통해 어떤 대리만족과 욕구, 갈망을 채우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물품이 바로 '일인용 안락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30밀리미터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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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렀어요,라고 그 편지는 시작했다.
[당신에게 받은 신발의 장례를 치렀어요.]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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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편의 첫 문장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다 읽고 보니 결국 이 문장이 결론과 직결되는 문장이기도 했다.
가노는 한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아내의 임신시기 서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서 관계도 틀어지게 된다.
이 일로 아내와 헤어지고 딸과도 떨어져 사는 가노는 한동안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윗집에 사는 루루코의 신발을 고쳐주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상기하게 되고, 서서히 회복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정점은 새 삶을 시작한 루루코가 과거 신었던 신발의 장례를 치러줬다는 이 부분인데, 이로써 가노는 어딘가 허망했던 과거 자신의 수고를 누군가 소중히 여겨줌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하게 된다. 더불어 상처 입은 지난날과도 영원히 안녕을 고하게 된다.
<꽃에 눈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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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방의 기후나 환경에 따라 피부에 피는 꽃이 달라진다. 유전자와 함께 물려받은 식물은 인간의 육체에 뿌리를 내리고 숙주의 면역을 높여 풍토를 버티게 한다.
(...)
식물 침식이 깊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노화였다. 마지막은 다들 꽃과 풀 덩어리가 되어 흐물흐물 무너져 흙으로 돌아간다. 엄마도, 아빠도, 그전 세대도 그랬다. 특별하지 않은 단순한 죽음이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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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소설은 세대와 유전자를 상상력과 잘 결합하여 맛깔나게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유전자에 따라 다르게 피는 꽃, 그리고 그 꽃이 시들어갈 때, 그것이 우리 몸을 잠식할 때 우리 몸은 노화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식물의 특성을 살려 이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느 세대도 예외는 없었고 그렇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꽃은 흙에서 다시 피어난다.
이 설정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또 낯설게 다가오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이미지가 쉽게 그려졌다. 재미있으면서 독특하게 느껴졌던 건, 몸에서 자라나는 가지나 꽃잎을 톡톡 따서 먹기도 하고 털 관리처럼 관리도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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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거였어."
(...)
"나와 다른 식물이 자라고 내 젖을 빨며 자랐으니깐 나와 가까운 것이 될 줄 알았어."
"다른 거야. 전혀 다른 것이지."
236~2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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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부모의 종속 혹은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점을 콕 짚어 스토리에 녹여낸 점이 꽤 인상 깊게 다가왔다.
특히 강화된 성장과정에 임팩트를 주어 5년간 모계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일지라도 결국 그들은 반드시 자립을 해야 하며, 아이와 부모는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이 소설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아이들은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엄마의 젖을 빨며, 엄마의 손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지만, 결국 모든 아이는 독립해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며, 이것을 부모가 아무리 막는다 해도 결코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이야기에서는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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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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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 속 이야기에 저자만의 소재와 상상력을 덧입혀 만든 여섯 편의 단편은 아름다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어딘가 뒤틀려 있다. 그래서인지 기묘하다 느끼면서도 자꾸만 눈으로 글자를 좇게 만든다.
욕망과 결핍, 집착, 상처 등 여러 감정들이 다양한 소재를 만나 다채롭게 피어나고 허물어지며 그려내는 모양새는 어느새 머릿속에 절로 그려지며 이미지화된다.
그게 일인용 의자의 안락함으로, 낡은 구두가 수선을 통해 새로운 구두로, 특정 무늬를 가진 구슬로, 감정에 따라 생겨나는 돌로, 꽃이 된 남편으로,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처럼 함께 상생하던 식물로 형상화되며 감정은 다양하게 피어나고 변화한다.
결국 이 모든 감각과 감정들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수없이 겪는 것들로, 그래서 낯선 한 편 새롭게 느껴져 더 공감의 마음을 가지고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느끼는 어떤 감각들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저자처럼 나만의 소재를 덧입혀 섬세하고 집요하게 나열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 속에서 나만의 표현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