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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2월
평점 :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있는 가짜 정의를 분석하고 진짜 정의를 되찾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
책 제목을 보고는 '가짜 정의'가 뭘까 은근한 호기심에 읽게 된 책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날카롭고 핵심적인 내용들을 많이 품고 있는 책이었다. 그만큼 읽는 게 쉽진 않았다.
살면서 '정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은연중에 사용하지만 실제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정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용인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사상과 상황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다룬다.
고비고비 문단을 넘으며 한 세대가 살아온 시대를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진 불안을 읽다 보면 왜 이렇게 세대별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잘못된 가짜 정의에서 벗어날 방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올바른 정의를 되찾아 건강한 나, 우리,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정의'를 주제로 한국 사회의 마음을 진단하여 사회구성원들마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이유와 그 배경, 그리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짜 정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진짜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함께 제시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현시대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거나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목조목 읽다 보면 세대갈등이나 사회조직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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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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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 특징
1. 중장년 세대
앞으로 나이를 더 먹더라도 변질될 가능성이 별로 없을 정도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세대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면, 중장년 세대는 분명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주요 추진 세력이 될 것이다.
2. 극우 세력의 강력한 지지집단인 노인 세대
오늘날 한국의 노인 세대는 '공포형 보수'다. 보수는 크게 합리적 보수와 비합리적 보수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합리적 보수란 이성적 사고로 보수 이념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고 신봉하는 이들을 뜻한다.
한국 보수 성향 국민 중 압도적 다수는 비합리적 보수로,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여 따져봤을 때 보수 이념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신봉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보수 성향 국민 대부분은 대체로 힘없고 못 배운 어르신이다. 사회적 약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보수 지지자가 된 것일까? 반국가 세력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은 이런 공포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수 완장을 차고 보수 집회에 나가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재 정권으로부터 자신이 열렬한 보수임을 인정받으면, 적어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 노인 세대는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 공포를 통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보수 이념을 선택한 공포형 보수 혹은 생존형 보수 집단이다. 그렇기에 마음 깊은 곳의 극우 세력, 군대,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은 보수 이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3. 청년 세대
청년 세대는 여전히 집단주의적 정의나 사회정의보다 개인주의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 개혁을 통해 부조리나 불평등을 해결하기보다 개인 간 경쟁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청년 세대는 사회적 차원의 정의보다 개인적 차원의 정의를 선호하며, 이를 '공정'이라 일컫는다. 공정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다.
청년 세대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기에 부정의한 사회에 체념하고 개인 간 경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경쟁을 지배하는 규칙만이라도 공정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과도하게 집착한다.
거대한 악에 저항하지 못하니 소소한 악에 분노할 뿐이다.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는데, 개인 간 경쟁마저 불공정한 규칙의 영향을 받는다면 더 이상 기대할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가짜 정의 유형 4가지
1. 능력주의 정의론
▷개인의 능력과 성과만으로 정의를 판단하는 관점
▷사회적·구조적 불평등을 무시하고, '노력했으면 당연히 얻는다'는 논리로 포장된 정의
2. 기계적 공정
▷형식적·절차적 공정만 강조하고, 결과나 맥락은 고려하지 않는 정의
▷겉으로는 공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등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예시: 학교 시험에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시험 문제와 시간을 제공. 겉으로 보면 완전히 공평해 보이지만, 집안 환경, 사교육, 건강 상태, 개인 능력 차이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임.
3.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착각
▷사회적 약자의 권리 주장이나 평등 요구를 과도하게 공격하며 정의를 왜곡
▷여성이나 특정 집단의 요구를 '정의의 문제'로 잘못 판단
4. 내가 곧 정의라는 착각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신념을 정의로 착각
▷자신의 판단이 곧 사회적 정의라고 믿으며, 실제 정의와 공정성을 혼동
■진짜 정의로운 사회
1. 기본생활권 보장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누리는 것
▷생존권·기본적 필요 충족이 먼저 되어야 진정한 정의 실현 가능
2. 실질적 평등
▷단순한 형식적 공정(절차만 맞춤)이 아닌 맥락과 환경을 고려한 결과적 정의
▷기계적 공정만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
3. 사회 구조 개선
▷법·제도·정책을 통해 약자와 소외된 계층 보호
▷개인의 능력·운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안전망 강화
4. 개인과 공동체 균형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존중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유지
▷단순히 개인의 정의감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정과 평등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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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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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부정의한 한국 사회를 어쩔 수 없이 용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정의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
(...)
능력주의는 배경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을 긍정하는 상태에서 공정한 기회와 경쟁만을 떠드는 가짜 정의론이기 때문이다.
105~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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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문장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부정의한 사회를 한 개인이 어쩔 수 없어 용인하지만, 그렇기에 마음 깊은 곳에는 깊은 분노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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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삶을 강요당하는 한국인은 고통을 경쟁하는 중이다. 더 큰 고통에 더 큰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해 차별을 찬성하는 셈이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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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경쟁 중'이라는 말이 공감 가면서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우리는 왜 항상 고통을 경쟁 중인 걸까.
그래서 어쩌면 더 고통만큼 보상에 대한 욕망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남이 잘 되거나 쉽게 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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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는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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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위의 문장을 가슴에 잘 새겨 두었으면 좋겠다. 함께 고민하고 다른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현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귀중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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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차원의 불평등은 해결 불가능하다고 보는 청년 세대의 눈에 시험은 불공정의 대척점에 있는 공정, 혹은 정의로 보일 수 있다.
나아가 대부분 한국인에게 시험은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자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
(...)
한국인이 기계적 공정과 시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은 사회적 불평등을 용인할 테니 제발 개인 간 경쟁만이라도 공정하게 진행하라는 처절한 호소에 가깝다.
132~1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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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문장 중 하나다. 사회적 불평등은 용인할 테니 개인 간 경쟁만이라도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달라니.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지 않으면 청년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사실 나 역시 공감되고 이해되는 문장이라, 한편으로는 이들의 호소가 눈물겹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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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 가장 중요한 정의가 인간관계의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의론은 이 문제에 지극히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여러 번 말하지만, 불평등은 관계의 정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간관계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관계가 정의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평등은 관계 정의를 실현하는 전제이자 필수조건이다. 결과의 불평등은 인간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들어 정의를 파괴한다. 부의 재분배, 즉 결과의 불평등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는 정의론은 관계 정의를 회피하므로 부족한 정의론이다.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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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이자 필수조건인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 살기에, 이처럼 모든 것이 가짜인 세상에 놓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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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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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부릅뜨고 읽다 보면 꽤 날카롭고 비판적 시각에서 잘 쓰인 책이다. 하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뭔가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뜯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전체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세대갈등의 원인이나 심화의 이유는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스템, 가치관 등이 잘못된 방향으로 잡혀 있다는 것 또한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이것들을 바로잡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방법까지 제시하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알려준다.
항상 불공평한 사회 속에서 욱여넣듯 꾸역꾸역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말한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된다면 지금보다 심적으로 많이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샘솟는다.
언제쯤 우리는 이처럼 이상적인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