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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없는 우정 - 경계를 허무는 관계에 대하여
어딘(김현아)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낯설게 다가왔던 '어딘' 작가의 시절 인연 이야기"
책 제목을 보고 <격 없는 우정>이란 어떤 걸까 내심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솔직히 말하면 공감대를 이룬 문장은 거의 없었다.
나이, 성별, 인종, 국적 상관없이 나눈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있었음에도, 그중 어떤 것도 나의 생각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글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하는 의문만 제기되는 글들만 꽤 많았다. 그래서 한참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책은 작가 자신의 내적 경험과 결을 따라가지 않으면 잘 이해하기 어려운 기록물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독자들은 쉽게 읽히는 에세이를 기대하고 책을 펼치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저자 자신의 닫힌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거리감을 느끼기 쉽다.
한마디로, 독자가 쉽게 파고들 수 없는 작가만의 시절 인연을 기록한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20대 시절부터 50대 현재까지의 삶을 생생하게 담은 산문집으로, 나이·성별·인종·국적에 상관없이 나눈 우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을 풀어내는 방식은 독자의 공감이나 이해를 우선하기보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인연을 그만의 감정선으로 풀어낸 것으로, 작가만의 기록에 가까운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독자가 글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저자의 경험이나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하나하나의 글에 깊이 빠져들기 어려운 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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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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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 씨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으신가요?"
(...)
"아니요."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
"반복이 싫어서요. 동일한 것들의 무한 회귀, 사랑마저도. 자발적 멸종 주의자예요."
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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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발적 멸종 주의자'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위의 대화를 통해, 이 말을 이해하게 된 동시에 '어쩌면 나도...'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자처럼 명확히 '나는 자발적 멸종 주의자예요'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그런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비혼 주의자도 많고, 결혼을 해도 아이 없이 사는 딩크족도 많다. 저자는 그런 삶을 두고 후대를 남기지 않고 스스로 소멸한다고 해서 '자발적 멸종 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저자의 말처럼 무한 회귀나 반복을 꺼리며, 나만의 창의적인 삶을 선택하기 때문에 '자발적 멸종 주의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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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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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우정에 대해 다룬 점은 좋지만, 조금 더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폭넓게 다룬 저자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격 없는 우정도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찻길 위의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라,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기 쉽지 않았는데, 다음 책에서는 지금보다 독자와의 거리감이 좁혀질 수 있는 내용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