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3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 계엄의 밤, 국회의사당에서 분투한 123인의 증언
KBS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작팀.유종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12월
평점 :
"국가 초유의 사태, 계엄의 밤을 지킨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들!"
어느덧 벌써 1년. 2024년 12월 3일 그날, 그 밤 사람들은 난데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처음에는 대부분 이 소식을 믿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장난 혹은 유튜브 등에서 떠도는 헛소리 정도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었고 한순간에 대한민국의 상황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난데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도 잠시, 대대적으로 사람들은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연일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시국이 어떻게 변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앞서 잡혀있던 행사 및 일정들은 모두 취소되었고, 대통령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온갖 핑계로 계엄령 선포에 대해 정당함을 계속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파면되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잃게 된다. 이 책은 그날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는 책으로, 미디어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긴박하고 비장했던 상황들을 만나볼 수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년 전 계엄의 밤에 분투한 123인의 증언을 모은 책으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인터뷰 형태로 짤막하게 담긴 이야기들은 보탬이나 뺄 것 없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인터뷰이로 참여한 사람들도 대학생부터 교수, 정치인, 개발자, 사업가, 배우, 기자, 사회운동가,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날의 그 현장이 얼마나 긴장감에 가득 차 있었는지, 또 그곳 국회의사당에 서슴없이 발을 내디뎠던 이들이 어떤 각오로 임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특히 그들 중 제주 4·3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은 하나같이 그날의 상황이 영화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는데, 아마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한 충격, 또 다른 하나는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전두환·박정희 시대의 풍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는 낯섦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태극기 하나만 들고 거리로 나섰던 3·1운동을 떠올렸고, 또 다른 이들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생각해냈다.
그만큼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고, 사람들은 그 밤 계엄을 막지 못한다면 유혈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닿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그 자리로 나왔고, 하나같이 군부대와 맞서 나라를 지켜냈다. 어느새 1년이 흘렀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날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언제든, 우리가 지켜온 일상이 작은 틈 하나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을 계기로, 나 살기 바빠 무심하게 지나쳤던 시간들을 이제는 돌아보고, 더 단단하게 하루를 쌓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
기억에 남은 문장들
=====
-----
김상욱_전 국민의 힘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치의 목적은 권력 정치와 권력 수호에 있지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정치입니다. 정치의 목적은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위하는 데 있습니다. 권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부여된 권한에 불과한 것이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건 절대 아닙니다.
34페이지 中
-----
권력을 쥔 사람들 대부분은 그 힘을 지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권력을 이용한다. 하지만 특히 공직자나 정치인은 개인의 권력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 목적과 방향을 잃은 권력의 끝은 결국 파멸일 뿐이다.
-----
김동현_사회운동가
저 자신, 제 친구들 그리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53페이지 中
-----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아마 대부분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섰던 게 아닐까 싶다.
-----
황인경_밴드 '전기뱀장어' 뮤지션
이번에 이 계엄이라는 일련의 사태를 겪어보니까, 우리의 일상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의 땀과 피로 이게 지켜지고 있겠다는 걸 알게 됐죠. 다음에 비슷하거나 더 위험한 순간들이 오면 저도 중요한 역할을 해서 그 빚을 갚고 싶습니다.
162~163페이지 中
-----
소중한 것이 지켜지고 있을 때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빼앗기거나 잃고 나면 비로소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또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계엄은 우리 모두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김진해_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연약하고 취약합니다. 그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곁에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각각의 개인이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좀 더 나은 관계들을 소망하고 추구하는 것은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8페이지 中
-----
통상적으로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해답을 준 사건이자 계기가 바로 계엄이 아니었나 싶다.
책에도 자주 언급되는 부분인데, '나 같은 사람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면서 집단이 되고, 그들이 결국 국회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된다.
-----
류용재_드라마 작가
정말 평범한 한 사람이 어느 정도의 우연히 작동해서, 혹은 그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길을 지나다 하필 거기 있었을 뿐인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을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을 수도 있는 거라고.
327페이지 中
-----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그 사람이 뭘 해서가 아니라, 우연과 사건이 만나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우리 삶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123인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폭탄처럼 비상계엄을 만났고, 이들은 두 발 벗고 그 현장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아마도 예전과는 다른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
마무리
=====
1년 전 그날, 비상계엄을 마주한 나의 반응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었고, 처음 마주하는 '계엄'이라는 단어가 낯설었기에 솔직히 어리둥절했었다.
그 계엄이 군부독재 시절 자주 언급되던 그 계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나라는 뒤집어져 있었고,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은 멈춰버렸다.
새벽 단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국가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미디어로만 접했던지라,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날 그 밤, 목숨을 걸고 막아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또다시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군부대가 진심으로 움직였더라면, 윤석열의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지금의 이 평온한 일상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한 끗 차이로 비껴간 그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밤을 지켜준 정치인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뛰어들어준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