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평점 :
"예리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에세이집!"
해즐릿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을 조금 다른 관점과 각도로 보게 된다. 그가 쓴 에세이들의 주제를 살펴보면, 사회에 만연한 인간의 욕망, 사회의 병폐, 권위주의, 혐오, 인간 본성의 양면성, 문학을 통한 철학적 탐구, '착한 척'의 범람 등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부하듯 신랄하게 비판하고 파헤치듯 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 한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되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그의 설득에 넘어가 동조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총 8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헤즐릿이 독자를 기쁘게 하려고 쓴 글이라기보다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 쓴 글로,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꿰뚫는 거울과 같은 글의 총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약 200년 전 쓴 글임에도 시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내용과 철학을 담고 있어,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에세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끌렸던 에세이는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과 <인격을 안다는 것은> 두 편이었는데, 본편에서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
간략 내용 살펴보기
=====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퍼지는 피상적인 언어의 풍경을 해부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
온화한 얼굴의 이면에 숨겨진 면면에 대해 고하면서 이중성을 폭로
▶종교의 가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인간의 허위와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비판
▶인격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오판하는지를 보여줌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경제적 현실이 인간의 존엄성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짚어냄
▶인도인 곡예사
인간의 능력과 표현의 한계를 성찰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청춘의 찬란함과 그 이면의 허상
▶병상의 풍경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고요한 통찰을 담아냄
통념에 도전하고 위선을 폭로하며 인간의 모순을 직시하고 단순화된 해석을 거부하는 해즐릿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본문 자세히 들여다보기
=====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
------
겉으로 보기엔 온화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위선자일 수 있다. 자기 편안함만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고통엔 무관심하면서도 자신을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처럼 위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때리려 하거나 돈을 속여 빼앗으면, 즉 자기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건드리면 누구나 흥분하고 평정을 잃는다.
하지만 세상이 불타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온화한 사람'의 발뒤꿈치를 한번 밟아 보라. 그가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엔 까칠하고 불편한 사람들이 오히려 진짜 착한 사람일 수 있다. 이들은 자기 일이 아니어도 관심을 가지며, 남을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은 세상의 온갖 고민과 짜증 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또한 이들은 세상 곳곳의 불의와 부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다.
41페이지 中
------
------
이들(겉으로 보기에 까칠한 사람)은 자유, 진실, 정의, 인간성, 명예 같은 고귀한 말에 너무 진지하게 집착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교활한 자들에게는 악용되고,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오해받기 일쑤다. 그래서 속이 터질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
자기 일은 뒷전으로 미뤄 두고 남의 문제에 온 힘을 쏟지만,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
이들은 거짓말을 부당한 행동만큼이나 싫어한다. 왜냐하면 진실은 모든 정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진실이 가장 먼저고, 그다음은 인류 전체, 그다음이 자기 나라, 마지막이 자기 자신이 자리 잡고 있다.
42~43페이지 中
------
------
온화한 사람은 자기 뜻을 거스르거나, 자기 확신과 편안함에 위협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격렬하게 미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힘이 있다면 그는 주저 없이, 죄책감도 없이, 아무런 제약 없이 그 힘을 사용할 것이다.
이 성품의 하위 유형이 바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의의 사람'이다. 선의의 사람은 없지만, 종종 엄청난 해악을 저지른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려는 마음은 없다. 자기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은.
48페이지 中
------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라 더 쇼킹하게 다가왔던 내용 중 하나다. '온화한 사람'과 '선의의 사람'을 보통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즐릿은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 속에서 해즐릿이 이야기하는 '선의의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 패턴을 우리 역시 한 두 번은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다만 가면처럼 씌워져 있는 모습에 가려져 제대로 몰랐을 뿐, 그들은 언제 어디서고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거나 피해가 간다고 느끼면 그 즉시 그들이 가진 힘을 사용해 상대방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보다,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진짜 본모습을 보는데 초점을 맞춰보자.
어쩌면 까칠하게 구는 불편한 사람이 더 속 정이 깊고, 정직한 사람일지 모른다. 착한 사람인 척, 다정한 사람인 척과 같은 '~척' 하는 사람들의 겉모습에 현혹되기 보다 오히려 경계심을 가지고 깊게 사람을 관찰해 보면 어떨까 한다. 이후에 속 깊은 마음을 나눠도 늦지 않는다.
■인격을 안다는 것은
------
인격을 파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외모, 말투, 행동이 그것이다. 이 중 겉보기에 가장 피상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방법, 즉 외모를 통한 판단이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가장 덜 속기 쉬운 수단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방법에 가장 흔히 의존한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는 인격을 판단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동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지만 사람의 얼굴은 속일 수 없다.
66페이지 中
첫인상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첫인상을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에 속아 잊어버렸다가, 결국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곤 한다. 한 사람의 얼굴은 오랜 세월이 만든 결과물이며, 그의 삶 전체가 표정에 새겨져 있다. 아니, 그것은 자연이 직접 찍어낸 흔적이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68페이지 中
------
------
우리는 처음 누군가를 봤을 때나 우연히 마주친 순간에 그 사람의 특징적인 인상이나 분위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상대의 본질적인 성향이나 전체적인 인상이 느껴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인상은 사라지고 평범하고 의미 없는 세부 사항들만 남게 된다. 그래서 첫인상 즉 겉으로 드러나는 최초의 느낌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보다도 그 사람을 더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첫인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습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69페이지 中
------
------
나는 우정이 인격을 제대로 보여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정은 종종 약점이나 편견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
늘 함께 살아온 가까운 가족이라면 서로의 인격을 잘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우면 고유한 특징들이 흐려지고, 판단력은 이익과 편견에 가려진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인격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갖지 못한다.
85페이지 中
------
위의 에세이는 중요하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첫 느낌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예사롭게 넘기는 첫인상이 사실은 인격을 파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스갯소리로, '첫인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라고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실제로 가장 객관적인 지표로서 첫 느낌은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가장 근접한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오히려 너무 가까운 사이일수록 판단력을 흐려놓아 편견과 나의 이익에 가려져 우리의 눈을 가리는 조건이 될 수도 있음이다.
더불어 나이가 들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평소의 생활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쉽게 무시하고 넘겼던 첫인상과 첫 느낌! 이제부터는 자세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며 상대방의 인격을 파악해 보면 어떨까? 더불어 나의 인격 또한 거울을 보며 잘 다듬어 보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
마무리
=====
가끔 이렇게 머리를 탁! 치는 글들을 만날 때면,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내 이것을 계기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가치관, 그리고 생활습관, 생각들을 다시 재정립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해즐릿의 글은 나에게 새로운 시야와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너무 한쪽 방향으로만 바라보기 보다, 이처럼 양방향 혹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그 외에도 다양성을 포용하고,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새롭게 다져보게 해줌으로써 더 나은 방향을 찾게 해준다.
'나만 옳다'라고 주장하는 요즘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관점과 성찰이 아닐까 한다. 여러 이유로 원래 그랬던 방식만 고집하기보다, 가끔은 이렇게 예리한 비판과 사고를 지닌 글들을 통해 진짜 문제를 제대로 마주해 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