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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슈테판 셰퍼 지음, 전은경 옮김 / 서삼독 / 2025년 5월
평점 :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에 지쳤을 때,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줄 소설!"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소설인데, 스토리가 주는 여운과 소재, 그리고 등장인물이 깨달아 가는 과정과 그것을 이끌어 주는 인물의 설정이나 배경이 너무 인상 깊었다.
그런데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 제목인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이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스물다섯 번이나 스물다섯 개도 아니고, 스물다섯 번의 '계절'이라는 포인트가 어쩐지 좀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 이것저것 살펴봤는데, 원제는 "25 letzte Sommer"으로 직역하면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여름"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이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로 변형된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원제를 그대로 직역한 제목이 훨씬 더 뉘앙스나 의미 면에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은유적인 표현이나, 유한한 삶을 대변하는 의미로 살펴봐도, '계절'보다는 오히려 '여름'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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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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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
-과거와는 달리 최근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
■카를
-15년 전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음
(치료가 불가능하고 계속 악화되는 병)
-틀을 깬 예술 활동(그림)을 하며 치유받고 있음
■요한나
-카를의 아내
■오다
-카를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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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스토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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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나'의 모습
-몇 년 전만 해도 행복하고 자유로웠고, 사생활에서든 직업에서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었음
-해가 갈수록 의미는 점점 많아지고 자유는 점점 줄었음
-일과 인정 욕구, 돈벌이를 삶의 중심에 두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 되어 갔음
-나 자신에게 엄격해지고 만족하는 일이 드물어졌으며 매사에 느긋하지 못하고 단호해졌음
▷다른 삶을 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
혼자 시골 별장에 내려와 숲속을 걷다가 며칠 전 읽은 글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글은 지친 사람의 뇌에서는 생각이 늘 같은 경로를 맴돌며, 그 악순환을 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음
가끔은 반드시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조용한 호수가 떠올랐고 그곳에서 아침 일찍 수영할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그곳에서 막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카를이었다.
카를의 적극적인 추천에 힘입어 호수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고, 수영을 하며 기분이 아주 좋아지고 무척 단순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짐을 물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것은 오랜만에 나를 위해 한 가장 자유로운 행동으로, 이후 나는 여름의 어느 토요일,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고 그에 응하면서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서게 된다.
덕분에 나는 평소의 나와는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하면서 온전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를테면 칼로리 계산을 하지 않고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꿈에 대해 떠올려 보기도 하며, 환한 대낮에 낮잠을 자면서 전자기기(휴대폰)와는 먼 삶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또 잘 몰랐던 부모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카를에게 힌트를 얻어 가족 모두에게 선물이 되는 동시에 부모님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노력도 시도해 보게 된다.
내가 시골 별장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카를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의 상처를 꺼내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을 제대로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때 누렸지만, 잃어버린 삶의 진짜 행복을 얻는 방법까지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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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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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즉에 여기서 수영해 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예요."
카를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스스로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이따금 잊어버리기도 하죠."
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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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의 말처럼 우리는 이따금씩 스스로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잊고 살 때가 있다. 보통 앞만 보고 걸어갈 때 그런 일이 발생하는데, 가끔은 뒤와 옆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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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결국 혼자 해야 해요. 언젠가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내게 중요한 것,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 즐거운 것, 내가 잘 아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무언가, 오늘 원했는데 내일이면 사라지는 게 아닌 무언가, 검소하지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무언가. 뭐, 그렇게 해서 감자에 정착했죠."
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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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 그리고 시대나 상황,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것.
그런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족이라는 텃밭 아래, 삶 전반을 안전하고 즐겁게 가꿔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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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수영과 맑은 공기, 그리고 훌륭한 음식 중 무엇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식욕이 좋아는지, 무엇보다도 언제 이렇게 편하고 맛있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사 빠진 사람처럼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낮부터 포도주 한 잔을 즐기다니.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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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문장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처럼 편안한 식사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카를을 만난 뒤 완전히 달라진다. 식욕을 느끼고, 편안하고 맛있는 식사를 이어가게 되면서 먹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더해 평소 금기시했던 낮술까지 즐기며 온전한 한 끼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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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근육을 쓸 때처럼 인내와 절약과 결핍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서요. 모든 것이 언제나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 같은 요즘 세상에서는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특히나 소중하죠."
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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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 데 불현듯, 어릴 적 소원을 이루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 같이 모든 것이 뚝딱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차곡차곡 공을 들이고, 인내를 발휘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에서는 그래서 모든 것이 귀하고 더 애틋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들을 갖기가 어려운 것 같다. 카를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그 소중함과 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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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관심을 보이고, 평가하는 일 없이 귀를 기울일 때 이방인은 비로소 친구로 바뀌니까요. 누군가가 자기를 이해한다고 느끼면 많은 것이 변하기 마련이에요.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관계 맺으려고 애쓸 때 인생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마음을 열었던 적이 언제였나.
(...)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활짝 열려 있죠?"
(...)
"아마 연습의 문제, 어떤 사람이 쌓는 경험의 문제일 거예요. 용기를 자주 낼수록 그게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점점 더 확실하게 느껴요. 책의 등장인물에게서 좀 배우기도 하고요. 나는 그들과 함께 이미 수많은 길을 걸었답니다."
6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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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평가하고 비판하기 바쁜 세상을 살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카를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평가하는 일 없이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면 비로소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마음을 열려는 연습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경험이 쌓이면서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전한다.
실제로 카를의 이런 열린 마음 덕분에 나는 의심을 거두고, 닫혀 있던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다. 카를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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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두인 노인(모하메드)가 건넨 사려 깊은 인생을 살기 위한 네 가지 질문!
첫째, 그것이 당신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는가?
둘째, 그것이 당신에게 기쁨과 힘을 주는가?
셋째, 그것이 당신에게 자유와 자율을 주는가?
넷째, 그것이 당신에게 휴식과 안정을 주는가?
(...)
"모하메드의 네 가지 질문은 오늘까지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내가 붙잡고 방향을 가늠하는 난간이에요."
77~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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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우리도 모하메드가 건넨 네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그것이 나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는지, 기쁨과 힘을 주는지, 자유와 자율을 주는지, 휴식과 안정을 주는지 말이다.
최근 내가 겪은 변화에 대해 나 역시 이 네 가지 질문을 자문해 보았는데, 모두 해당되었다. 고로 오늘 시간을 들여 마음을 어지럽히던 일을 해치운 것은 잘한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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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의 옳은 결정은 당신 본연의 모습이 되는 거죠.
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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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옳은 결정이라는 것은 나에게 맞는, 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선택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떤 일을 결정하고 판단함에 있어, 타인의 기준이나 시선을 신경 쓰기 보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결정을 내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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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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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살고, 내일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죠. 어차피 모든 일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일어나니까요. 계획할 수 없는 일에 그냥 응하기.
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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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불행해진다. 어차피 모든 일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일어난다. 그러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수용하고, '오늘'에 최선을 기울이며 살아가면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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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이 내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 둘을 보고 있자니, 이런 여름이 틀림없이 스물다섯 번은 남아 있을 것 같군요."
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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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연결되는 문장 중 하나로, '여름'은 찬란한 인생의 정점 혹은 활력을, '스물다섯 번'은 삶의 유한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남은 인생을 특정 숫자로 구분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시간 속에 카를이 등장하면서 나의 삶에도 다시 찬란한 빛이 스며들게 된다. 그러니 카를이 깨닫게 해준 인생의 법칙대로 삶을 살아간다면 소설의 주인공인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틀림없이 스물다섯 번의 여름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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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와 나누었던 대화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예요. 무척 짧은 대화였지만 그 대화가 내 눈을 열어 줬거든요. 그는 진단 결과를 읽어 주고 바로 서류철을 덮었어요. 그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가 이 결과를 다룰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죠. 첫째, 내 운명을 원망하며 상황에 굴복하고 현실을 외면한다. 다른 하나는, 행복한 순간들을 작은 자루에 가득 차게 모으기 시작한다. 정말 문자 그래도 그렇게 말했어요.
(...)
'왜 하필 나지?'가 아니라 '내가 아니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질병은 이제 나의 한 부분이라고요. 힘든 순간에도 병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어차피 다른 존재로서는 이제 살아가지 못할 테니까요. 내 병은 치료법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고 했어요."
1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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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은 앞서 책을 포함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것이 쌓여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주치의로부터 배운 '삶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카를은 주치의가 제안한 두 가지 방법 중 후자를 선택했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며 살게 된다. 아침마다 호수에서 수영하고, 잠을 더 많이 자고, 신뢰하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고, 삶에 기쁨을 주는 일을 찾으면서 말이다.
덕분에 더 의식적으로 삶을 즐기고, 더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고, 더 세심하게 사랑하고, 더 천천히 키스하면서 매일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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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난 이틀은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용기는 언제나 도움이 되지만 불안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를이 그 사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1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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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가장 중요한 언젠가는 바로 '지금'이고, 용기는 언제나 도움이 되지만, 불안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 매일을 도전적이고 즐기면서 살아가려 한다. 오늘의 일은 오늘, 내일의 일은 내일 해결하면서 '지금'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분명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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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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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형태를 빌어 삶의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매번 쳇바퀴를 굴리며 무의미하게 살기보다, 변화를 통해 활력을 얻고, 그 속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무언가를 매일 실행하며 살라고 말한다.
삶은 유한하고, 그렇기에 그 시간을 헛되지 않게 보내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함께 전하며 지금 당장 내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을 보다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카를이 전하는 방식들을 실천하며 '오늘'을 살아가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