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알고 싶다 : 인상 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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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을 친근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어 훅 빠져들게 만든 책!"



평소 클래식과 같은 고전음악에 관심이 많지만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져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거리감을 좁혀보면 어떨까?


이 책은 인상주의* 시대 거장 뮤지션 7명의 내밀한 인생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읽고 난 후에는 분명 보다 친근하게 클래식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들과 좌절을 안겨주었던 인물, 그리고 작곡가의 길에 이르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놀라운 일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대물이나 동화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꽤 몰입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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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시대에 대해 살펴보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약 188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순간의 인상'과 '분위기',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요 특징으로는,


1. 분위기와 색채 중시: 멜로디나 형식보다는 악기의 음색(음악적 색채)과 화음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즉 '음향적 인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2. 모호하고 신비로운 화음: 전통적인 화성학의 규칙에서 벗어나 불협화음을 부드럽게 사용하거나, 온음음계, 5음음계, 교회 선법 등을 도입하여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냈다. 이는 화음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고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3. 부드러운 리듬과 다채로운 음색: 명확한 리듬보다는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리듬을 사용하며, 관현악의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하여 풍부하고 미묘한 음색 변화를 시도했다.


4. 자연의 묘사: 회화의 인상주의처럼 자연의 풍경, 물의 움직임, 안개, 빛의 변화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 등을 꼽을 수 있다.


음악의 인상주의는 기존의 낭만주의 음악이 가지던 거대하고 감정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청자에게 '무엇을 표현하려 한다'기보다 '어떤 감각적이고 분위기적인 경험'을 제공하려 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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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시대 뮤지션 7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들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비롯해 시대적 배경과 얽힌 인간관계와 내밀한 고민과 사랑 이야기까지 두루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연과 얽혀 있는 명곡들을 즉시 들을 수 있는 'QR 코드'와 깨알 상식을 담고 있는 '래알깨알' 코너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생생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잘 모르거나 어려운 것일수록 더 파고들어 정면 승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금 더 쉽게 클래식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고 있어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본다.


아래는 7명의 작곡가 이야기 중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몇 가지 부분을 선정해 소개해 보려 한다. 그저 명곡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로만 알고 있던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 속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색다른 모습을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더불어 지금과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던 여성편력과 바람기, 그리고 출중한 능력으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만나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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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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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외모의 청년 차이콥스키는 남자를 사랑했어요.

(...)

그의 삶엔 늘 남자들이 있었어요. 동생 모데스트도 동성애자였기에 그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안토니나와의 결혼은 '위장 결혼'이었어요. 당시 차이콥스키의 애인이었던 실롭스키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지요.

(...)

그의 마지막 사랑은 사샤의 아들인 조카 다비도프였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편지마다 절절히 담았어요. 유언장에는 다비도프를 전 작품의 로열티 상속인으로 지정했고, 마지막 교향곡 '비창' 역시 그에게 헌정해요.


차이콥스키 사후, 다비도프는 우울증과 마약 중독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차이콥스키의 비극은,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비극으로도 이어졌어요.


그의 음악이 왜 그토록 아름답고도 슬픈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45~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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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음악만 들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의외로 과거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책들을 읽다 보면 차이콥스키와 같이 동성을 사랑한 인물들이 꽤 많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동성을 사랑한 정도가 아니라 가까운 가족 혹은 친인척과 관계(연인이 되거나 결혼까지 하는)를 맺는 인물들도 많았던 것을 보면, 현시대보다 과거가 어쩌면 조금 더 개방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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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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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할 때는 손짓과 시선뿐 아니라 입과 입술로도 오케스트라와 소통합니다. 모든 표정과 얼굴의 작은 움직임으로 음표를 가리킬 수 있죠. 얼굴이 수염으로 덮여 있다면 불가능해요. 지휘를 위해서라면 얼굴의 어느 부분이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말러는 안경을 다리가 없는 코안경으로 교체해요. 지휘를 더 잘하기 위해서였지요.

144~1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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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라는 인물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인데,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얼마나 음악에 있어 진심이고 열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어느 작곡가보다 많은 곡을 공연했는데, 작곡가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지휘자로서 그가 내딛는 발걸음을 살펴보면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그는 지휘할 때 자신의 온몸으로 오케스트라와 소통했다. 손짓과 시선뿐 아니라, 모든 표정과 입과 입술로도 소통했다. 그래서 표정을 가리는 수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표정 전달과 시야 확보를 위해 코안경으로 교체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그의 모습은 현시대와 비교해도 남다른 프로페셔널함과 유난함이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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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을 위한 투표에서 총 96표 중, 말러는 61표를 받아요. 즉, 단원의 3분의 1은 말러를 싫어한다는 명백한 근거를 목도합니다. 말러는 이 정도로 분열된 오케스트라와는 일할 수 없다며 오히려 다음 해 임명을 거부해요. 그런데 그의 강경한 태도가 오히려 승부수가 된 건지, 2차 투표에서는 90표를 획득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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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대목을 읽고 '96표 중 61표면 꽤 선전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3분의 1이 자신을 반대한다는 말에 오히려 임명을 거부한 말러를 보며 대담함과 승부사 기질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멋져)


어쩌면 합이 중요한 오케스트라이기에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가 참여한 어마어마한 공연과 지휘한 무대 횟수를 살펴봤을 때 사실 그게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함부르크에서는 1년에 150회의 공연을 올렸고, 이후 총 60편의 오페라 중 36개를 처음으로 지휘한 이력들을 보면 그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그가 지휘한 무대가 700회가 넘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수백수천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완벽하게 합이 맞는 공연을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그가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



※말러가 이끈 오케스트라 단원 수

-보통 약 70명에서 100명 이상의 대규모 악단으로 구성!

-교향곡 제8번 '천인 교향곡'의 경우 1910년 독일 뮌헨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 연주자만 약 170~171명이었고, 여기에 성악가와 합창단 850여 명이 더해져, 지휘자 말러 자신을 포함하여 총 1,030명에 이르는 연주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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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드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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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작곡가였던 드뷔시는 평생 경제관념이 없었어요. 수입을 고려하지 않는 낭비벽, 고급스러운 취향, 품위 유지를 위한 소비로 늘 파산 상태였어요. 그의 취향은 섬세하고 화려했어요. 넓은 차양의 모자, 고급 망토, 비싼 목도리, 돌출된 이마를 가리기 위해 앞머리를 정교하게 일자로 자르지요. 게다가 캐비어 같은 고급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였어요.

(...)

드뷔시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리듬대로 살았어요. 때로는 너무 자유롭게, 때로는 너무 제멋대로. 그 대가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었지요. 세상에 남은 건 그의 위대한 음악만이 아니었어요. 빚과 거짓말이 켜켜이 쌓인 민망한 이야기들도 함께였지요.

258~2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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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음악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의 방탕한 일상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인이었다면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여성편력은 물론 방탕함과 사치스러움까지 가지고 있어 말년에는 거의 가까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역시 겉으로 봐서는 절대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드뷔시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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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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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그냥 한 명의 인물 중심으로 거장들을 만나보니, 그들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자신과 맞지 않는 학교에서 깽판을 치는 모습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동성을 사랑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결혼했다가 된통 당하는 모습에서는 쌤통이라는 감정이 드는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동시에 잃어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먹먹함이 일기도 했다.


반면, 자신만의 오두막을 지어 열정적으로 작곡을 하는 모습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면서도 완벽한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하는 모습에서는 남다른 포부와 열의가 느껴져 절로 시선이 갔다.


마지막 '나가며' 단락을 통해서 이들이 살았던 인상주의 시대에서 작곡가와 지휘자가 갖는 권력과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덕분에 음악과 인물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면, 작곡가에게는 작품의 초연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곡을 작곡해도 결국 제대로 비평가나 청중을 만나지 못하면 서랍 속 악보로 남거나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 잘못된 연주로 인해 초연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작곡가의 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낙인찍히게 되어 무능함으로 이어지기도 하기에, 작곡가에게 있어 초연은 그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반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면 안정된 삶뿐 아니라 초연이 보장된다. 그래서 너도나도 지휘봉을 잡으려 하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과정 중에 많은 비리와 뇌물이 오고 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곡가에게 있어 지휘자가 된다는 것은 당시 최우선 직업이 아니었을까? 보통 작곡가와 지휘자를 따로따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인상주의를 살았던 작곡가들만큼은 내 곡을 알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휘봉을 잡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처럼 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시대적 배경,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내용 중에는 우리가 알 법한 화가나 유명 인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다소 인간적인 면모까지 함께 살펴보다 보니 클래식이 꼭 어렵거나 멀게만 느껴지진 않는 듯하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 책에 수록된 QR 코드를 통해 명곡들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이들의 뒷이야기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클래식은 물론 몇몇 명곡들과도 친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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