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븐을 켤게요 - 빵과 베이킹, 그리고 을지로 이야기
문현준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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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멈춰 세우게 만드는 빵 냄새 가득한 베이킹 이야기"



자극적인 이야기 없이 그저 베이킹에 대한 애정과 빵 만드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풍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법한 레시피를 고안해 수업을 진행하는 저자 덕분에 나도 모르게 '베이킹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그러다가 대놓고 레시피를 공개한 부분까지 이르게 되면, '해 볼까?'가 아니라 '꼭 한 번 베이킹에 도전해 봐야 할 것만 같다'는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베이킹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이 책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애정 이상의 기쁨과 고민의 시간들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베이킹 클래스를 시작하게 된 시작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안에는 레시피를 고민하고, 사람들과 빵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내용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다.


빵에 대한 내용이라서일까? 이상하게 읽는 내내 잔잔한 클래식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여러 어려움과 고민들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다가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베이킹의 향기에 취해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자는 처음에 베이킹을 취미로 시작한다. 그러다 사람들을 모아 공유 주방에서 베이킹을 하고, 마침내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현재는 꾸준하게 베이킹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 모든 과정들을 지나온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나처럼 저자의 힘듦보다 빵의 향기와 베이킹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어릴 적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빵에 대한 기억을 더 먼저 소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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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베이킹이 아니라 생각보다 쉬워서 누가 만들더라도 나중에 또 해볼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베이킹이다. '이게 이렇게 쉽게 완성이 되네?'

(...)

'이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또는 '정말 쉬워 보인다!'가 좋다. 혹은 '나중에 또 할 수 있겠지.' 정도.


내가 준비한 레시피와 베이킹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계속 쉬운 레시피를 준비할 생각이다. 재료 하나가 빠지고 도구 하나가 필요 없는 그런 레시피로.

82~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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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베이킹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베이킹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다른 여느 요리와는 다르게 베이킹은 '도구'와 '적정 용량'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멋모르고 할 때는 쉽게 도전해도, 막상 한 번이라도 해봤거나 엉망진창의 결과물을 확인한 이들이라면 두 번, 세 번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쉬운 베이킹이 고맙게 느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맛있는 추억을 마음껏 쌓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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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나면, 문득 이해되는 이전의 말들이 있다. 특히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할 때면 더욱 그렇다.


마치 공기청정기 조심하라는 말처럼.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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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꾸 반복적으로 하는 말들이 때론 귀찮거나 번거롭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자리,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문득 그때 그 말이 이해되는 때가 있다.


관점에 따라, 자리에 따라 중요시하는 부분이 달라 생기는 단순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때론 그 자리에 있어 봐야 이해되는 일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공간을 갖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전 직장 대표가 '공기청정기를 조심하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가끔은 누군가의 반복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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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불행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것이 회사에서건, 삶에서건 간에.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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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때론 기대가 너무 커서 생기는 부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한다. 저자가 언급한 위 문장은 그런 부분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키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너무 맹목적으로 기대의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달리다 보면, 그만큼 받는 타격도 크기에. 때로는 기대는 잠시 접어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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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이라고 하면 으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따뜻함, 달콤함과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베이킹 역시 사람과 대면하는 일이다 보니 실상 현실적으로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실제 에피소드를 담은 이야기 중에 그런 내용들이 언급된 부분이 있는데,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기본 예의와 매너는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자신의 이득을 위해 하는 거짓말은 절대 거부!)


책 속 이야기인 만큼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 일 아무도 모른다. 남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이기적인 사고방식은 갖지 않기를 바란다.


따뜻한 오븐 속에서 피어나는 달콤한 베이킹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훈풍과 함께 달달함이 느껴지는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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