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 - 멈춘 사유의 감각을 되살리는 51가지 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편역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를 앞서간 비관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삶의 본질!"



과거에는 '철학'에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일단 피하고 봤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기웃거리며 찾아 읽게 된다. 제대로 맛을 봐서일까? 번역이나 편역에 따라 그 맛이 완전히 다르게 읽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첫 맛이 쓰다고 해서 무조건 뱉기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회를 틈타 다른 편역자가 쓴 책이나 번역책을 읽으며 쓴맛이 보약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어렵다'는 편견은 어느새 사라지고, 긴 여운만 남는다.


그런 반복의 작업이 시간이라는 옷을 덧입게 되면, 어느 순간 삶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게 되는데, 이 덕분에 다소 현실과 동떨어졌던 고통과 행복에 대한 시각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바라보게 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남긴 깊은 사유와 대표 작품들에서 발췌한 글들을 엮은 것으로, 입에 칼을 물고 있는 듯 날카로운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비판적이고 염세적인 글들이라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고 깨우치게 해주는 문장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위로와 격려를 주는 문장들만 만났다면 이번 기회에 마음을 관통하는 직설적인 문장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어쩌면 안주하며 살던 마음에 파란을 일으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

의미 있게 다가온 문장들

=====


-----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행해지는 사유의 결과는 이처럼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의식 밖으로 뛰쳐나온다. 마치 영감처럼 갑작스러운 현상이며 판단의 형식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사유가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의식화의 결과이며, 그 배후에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많은 노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의식적인 사유는 두뇌의 표면에서 진행되며, 무의식적인 사유는 골수의 본질에서 진행된다는 생리학적 견해 역시 철학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25페이지 中

-----


어떤 것에 대해 깊고 오래 사유해 본 사람들은 위 문장에 격렬하게 공감할 것이다. 혹자는 갑작스럽게 얻은 결과에 대해 쉽게 얻은 것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실상 이것은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라고 말한다.


아르키메데스 역시 오랜 시간 사유하던 끝에 목욕을 하다 불현듯 '유레카(찾았다)'를 외치게 된다. 이 또한 같은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원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너무 그것에만 몰두하기보다 가끔 '비움'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행복이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이며, 가장 위대한 지혜는 그것을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묻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다.

27페이지 中

-----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행복'을 좇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이제는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면서 신기루처럼 그것만을 찾는다.


하지만 해답은 아주 가까이에 있으며, 그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위대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때론 '비움'과 '망각'들이 해결책이 되어주기도 한다.



-----

현명한 삶이란 무게의 분배를 따르는 삶이다. 벽돌을 놓아야 할 장소가 있고, 기둥을 세워야 할 시기가 있다. 크고 넓은 창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아무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하나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자세, 일부는 현재에 놓고, 일부는 욕심이 나지만 미래를 위해 기다리는 마음.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느 쪽에도 절대적인 무게를 용납하지 않는 중용의 태도 같은 것 말이다.

(...)

현재를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되지만 그곳에 안주만 해서도 미래는 오지 않는다. 미래를 두려워해서도 안되지만 미래가 무조건적인 도피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인생은 맹목의 수레에 실려 앞을 향해 내달리지만 그 수레 위에서도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그 순간 우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바로 그때가 삶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다.

34~35페이지 中

-----


집을 지을 때 적절한 공감각과 무게중심을 분배하듯이, 우리 삶 역시 이런 중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를 소홀히 여겨서도 안되지만, 또 그것에만 안주해서도 안된다. 때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지만, 뒤로는 적절히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대비책과 균형감도 필요하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관점이 흐려지고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적절한 분배를 통해 인생을 설계해 나가보면 어떨까?



-----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의 본뜻은 타인을 자신의 서사 안에 끼워 맞추겠다는 아집이며, 용서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갈등을 덮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완전하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단지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두 가지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복합적으로 넘나드는, 계산된 의지일 뿐이다.

(...)

인류는 이 고통을 하나의 규범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누구도 관계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정, 집단, 사회, 국가의 동맹을 창조해낸 것이다.

(...)

인간에 대한 기대는 낮을수록 현명하고, 관계에 대한 인식은 얕을수록 자유롭다.

41~43페이지 中

-----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관점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것이 현실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비슷한 환경과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많아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이해와 공감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사회적 동맹과 합의로 인해 공동체적 사고를 따랐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각기 다른 경험과 환경에서 생활하고 자라다 보니, 격차는 더 벌어지고 특정 규범이나 시스템으로도 이들을 다 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갈등은 극에 달하고 고통은 더 커져버렸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기대는 되도록 낮추고, 관계에 대한 인식은 깊게 가져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에서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

인생은 궁극적으로 비극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 자는 이런 사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분리해 인식하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을 불편함이 아닌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다수와 섞이지 못하며, 어쩌면 스스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단절은 인간의 타고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진정한 철학자는 그것을 고통이 아닌 숙명으로 바라본다.

(...)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자는 선택의 순간마다 쾌락보다는 고통을 택할 것이다. 그에게 고통은 회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존재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통로이며,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실체를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젊은 날의 갈등을 감내하며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내면은 침묵의 지혜와 더불어 더욱 단단해진다.

(...)

우리는 타인과 조화를 이루려 애쓰지만 그 조화는 착각이다. 인간의 본성은 균질하지 않다.

(...)

다만 인간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배워나간다.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상처를 통해서만이 배울 수 있다. 노년의 철학자는 더 이상 교육받기를 바라지 않으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는 삶이란 본래 혼자 견뎌내야 할 고통의 반복임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53~54, 56페이지 中

-----


인생은 비극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한때는 희극이길 바라던 때도 있지만, 삶을 깊게 바라보니 삶 그 자체가 고통임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해하거나 도망칠 궁리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본 현명한 이들은 이것을 회피하지 않고 필연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고통을 감내하며 꿋꿋이 버텨내 보자. 그렇게 나만의 경험, 실패, 상처들을 겪다 보면, 내면은 단단해지고 스스로 어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며, 타인에 대해서는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타인과 개념은 공유할 수 있을지언정 개념의 기본 조건인 직관을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적 진리는 결코 공동체의 사유나 타인과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없다.

153페이지 中

-----


나만큼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보다 나와 가장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타인에게 더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얻으며, 내 고통을 덜어 내고 이해받으려고 하지만, 실상 그것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문제에 직면했다면, 공동체나 타인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보다, 내 안에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흥미를 잃지 않는 한 배움의 기회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회야말로 기억이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물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일수록 기억력도 좋은 것이다.


흥미를 통한 기억은 앞서 살펴본 인위적 기술에 의한 기억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오랫동안 보존된다. 그러나 이 같은 흥미도 아둔한 자들에겐 자신의 신상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4~195페이지 中

-----


위 문장은 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기억의 보존 여부가 달라지고, 배움의 기회가 달라진다는 관점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사물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기억은 쇠퇴하고, 배움의 기회 또한 줄어든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것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덕분에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젊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이 탓만 하기보다 주변의 상황과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해 보자. 이는 어쩌면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나이보다 더 어리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

마무리

=====


삶이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아 괴롭다면, 잠시 멈춰서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내 관점과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혹은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신기루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어쩌면 고통을 거부하고 욕망만 따르고 있을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는 뼈 때리는 날카로운 비판의 글로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다. 더불어 눈 돌리며 회피하지 말고, 온전히 그 시간을 견뎌내며 단단해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행복을 좇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올 것이며, 더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넌지시 일러준다. 또 타인에게 의지하기 보다 내면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그 무엇보다 든든한 자기편을 얻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삶이 고달픈가? 그럼 가장 먼저 나와 친해지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자. 그런 후에 저자가 사유한 깨달음을 하나씩 실천해 보자. 그러다 보면 결국 진짜 삶에 도달하게 되고, 그 삶을 진실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