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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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명랑한 반려견 이시봉과 상처 입고 방황하는 인간 이시습의 대서사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벽돌책으로 인해 처음에는 쉽지 않겠다는 나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들자 앞선 편견과는 달리 술술 읽혔다.


겉으로 봐서는 보통의 벽돌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구조(텍스트 사이즈, 책 사이즈 등)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만큼은 페이지가 금방 넘어갔다.


여기에 더해 더 놀랍고 신기한 점은, 그 내용이 바로 반려견에 대한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 나갔다는 점이다.


평소 나는 반려견의 혈통과 역사, 그리고 집사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만큼은 지루함 없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대서사시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다.


장편 하나의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는 이 책은, 반려견 이시봉과 그의 견주 이시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스토리를 살펴보면, 세 개의 큰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아주 먼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이시봉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를 만나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시봉의 과거를 추적하다 알게 된 몇 가지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이시봉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과거 직장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이시봉이 주인공의 집 막내로 들어오게 된 과정에 대한 내용까지 담겨 있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몰랐던 이시봉의 고귀한 혈통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일의 계기로 시습이 키우고 있는 개를 찾아온 낯선 이들은 이시봉이 후에르카르 계열 비숑 프리제의 혈통이라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혈통은 먼 옛날 유럽 왕가의 혈통이라 주장하는데, 그 혈통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프랑스와 스페인의 유명인들도 등장한다.


세 번째는, 왕가의 혈통인 비숑 프리제를 한국에 들여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앙시앙하우스 대표 정채민의 과거와 연결된 김태형에 대한 이야기다. 둘은 모종의 이유로 비숑 프리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슷한 듯 엇갈리는 과거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평온하던 어느 날 갑자기 던져진 돌멩이는 시습 가족에게 파문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이들 가족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어찌할 수 없는 상처와 우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이시봉'은 행복이자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저 사랑받으며 살던 작고 귀여웠던 비숑 프리제 '이시봉'은 아버지의 사망 이후 방구석으로 밀려 애처로운 반려견이 되고 말지만, 이내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의 존재감은 급부상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 이야기의 대서사는 시작된다.


그 와중에도 비인간인 이시봉은 한결같이 명랑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비동물인 인간은 상처 입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반려동물의 행복을 좇는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말하는 동물의 행복이 과연 진짜 그들을 위한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실상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동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한결같이 해맑고 또 명랑했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들이 더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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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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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봉

-올해 만 네 살이 된 수컷 비숑 프리제

-시습네 가족의 반려견


■이시습

-20대의 청년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백수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외부와 거의 단절 상태

-이른 새벽 반려견 이시봉과 산책하는 게 일과

-가족과 동네 친구 3명과 교류하는 것이 전부임


■이시현

-시습의 여동생으로 두 살 터울

-시습과 반대 성향으로 공부에 열정적


■이성현

-시습과 시현의 아빠

-광주에 있는 한 타이어 공장에서 이십 년간 현장 노동자로 근무

-이후 돌연 그만두고 피자집을 개업

-어느 날 갑자기 나주시 왕곡면에서 이시봉을 데려와 막내로 삼고 키움


■조영은

-시습과 시현의 엄마

-재작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음

-후에 이시봉이 남편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시봉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

-과거 학습지 회사에서 방문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음

-현재 가평에서 엄마를 간호 중


■외할머니

-현재 담낭암 3기로 주변 장기와 뼈까지 전이된 상태

-암의 발병 소식을 알게 되자 일체의 치료를 거부하고 가평 집에서 지내고 있음


■이시봉

-아버지 이성현과 같은 직장에서 십오 년 가까이 함께 근무한 사이

-이시봉(개)이 시습의 집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만든 사람


■김태형

-이시봉(개)의 부모 견주

-이시봉과 교도소에서 알게 된 사이로 그의 부탁으로 인해 이시봉(개)이 이성현과 인연을 맺게 됨

-마약과 폭력 전과를 가지고 있음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모와 살게 됨


■리다(권하영)

-시습의 친구 중 한 명

-엄마의 오래된 제자

-국립대학교 문헌 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육 년째 사서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음

-시습의 엄마를 선생님이 아닌 '언니'라고 부름

-그녀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 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음

-아버지는 그녀가 졸업한 대학교의 철학과 교수로 있다 퇴임

-나이 많은 몰티즈를 키우고 있는데, 이름이 '데리다'임


■수아

-시습의 친구 중 한 명

-광주에 있는 교대를 1학년까지만 다니고 현재는 휴학 중

-친구들 중 공부를 제일 잘함

-성격은 가장 불같음


■정용

-시습의 친구 중 한 명

-몸집이 큼

-파니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음

-친구들의 일에는 언제나 발 벗고 나섬


■정채민

-앙시앙 하우스 대표

-비숑 프리제에 이상한 집착을 가지고 있음

-부유한 재벌


■김상우

-미술 전공

-유정과 부부가 되며 함께 프랑스로 유학 감

-프랑스 유학 중에 정채민과 알게 됨


■박유정

-미술 전공

-상우와 부부가 되며 함께 프랑스로 유학 감

-상우보다 두 살 어림

-상우와 이혼 후 홀로 아들과 비숑 프리제를 키움


■미셸 김 외 브리더들

-미셸 김은 앙시앙 하우스의 수석 브리더

-그 외 선글라스를 낀 여러 브리더들과 수의사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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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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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게 살던 어느 날 시습의 집에는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바로 아버지가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피자 가게 바로 건너편에서 일어났는데, 그래서 가족들도 한동안 피자가게를 방문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 불현듯 홀로 피자 가게에 있을 반려견 '이시봉'을 떠올린 시습은 그곳에 들렀다가 이웃 가게 주인을 통해 아버지의 사망 원인이 바로 '이시봉'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 또한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시봉은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깊은 슬픔으로 인해 시습은 우울과 대인기피증을 앓다 이내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고, 그러다 종내에는 한밤중 이시봉을 창문 밖으로 던지려 하는 가족 중 한 명으로 인해 깊은 불면증까지 겪게 된다.


이시봉을 지키기 위해 시습은 이른 새벽 이시봉을 데리고 산책을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피폐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할머니의 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엄마는 가평으로 내려가게 되고, 시습은 두 살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맡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동네 친구 중 한 명인 리다가 SNS에 올린 영상 하나로 인해 낯선 이들이 이시봉을 찾아오게 되고 이 일로 파란만장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시봉의 귀한 혈통에 대해 알게 되고, 이런 혈통을 보존 및 관리하기 위해 비숑 전문 켄넬 '앙시앙하우스'를 운영하는 정채민을 알게 된다.


이 일로 이시봉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숨겨진 과거와 이시봉의 이름에 얽힌 비화, 가족이 된 경위까지 알게 된다.


여기에 더해 비숑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경위, 정채민과 김태형의 복잡하게 얽힌 과거 이야기도 밝혀지게 된다. 또 정채민이 주장하는 비숑의 귀한 혈통에 대한 역사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방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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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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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자기 자신은 잘 모를 때가 있거든."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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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를 포함해 비동물인 인간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특히 고통과 상처에 잠식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고 본다.


아버지를 잃고 유일한 버팀목인 반려견 이시봉까지 잃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습이 그렇고, 남편을 죽인 범인이 이시봉이라는 사실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영은이 그렇고,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리다가 그러하며, 오랜 시간 박유정을 찾아 헤맨 정채민이 그렇다.


이뿐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런저런 일로 상처받은 우리들 역시 '괜찮다'고 말하지만, 실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때론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부러 엉뚱한 것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여 감정적으로 대할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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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아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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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나조차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하물며 대상이 비인간인 강아지를 사랑하는 일이라면 더 많은 부분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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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혈통이 귀찮기만 했다. 아니, 솔직히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이시봉이 내게서 떠날까 봐, 누군가 이시봉을 내게서 떼어낼까 봐 두렵고 염려되었다.

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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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통해 시습이 얼마나 이시봉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은 귀한 혈통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의 이익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히려 시습은 비숑의 그런 혈통이 되려 귀찮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 이시봉을 데려가거나 멀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후에 실제로 이 일은 현실이 되었는데, 이시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명랑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습은 어쩌면 더 불안해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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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으로 남았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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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리다의 아버지는 철학과 교수에서 '형집행인'이 되어야만 했을까?


2. 정채민이 박유정을 찾아 헤맸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 그것도 아니면 정말 후에스카르 계열의 비숑 때문이었을까?


3. 정채민과 박유정이 함께 보낸 한 달 동안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 집을 떠난 리다는 행복해졌을까?


5. 정채민은 왜 그토록 많은 메모리얼 스톤을 숨겨둔 것일까? 더불어 이시봉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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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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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큰 줄기로 나뉘는 에피소드들은 다른 장르, 다른 시점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비숑과 모두 연결된다. 하지만 그 속에 정작 비숑은 없다.


그저 약육강식의 세계와 정치적 행보, 세속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만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비인간인 동물들은 희생과 이용을 당하며 사라지거나 번식해 나가며 현재에 이르게 된다.


인간들은 동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랑과 애정을 주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인간중심주의 사상 속에서 행해지는 일일뿐이다.


그래서일까? 동물들은 인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신들이 어디에 있든 그저 해맑고 명랑하다.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 생명이 다하면 숨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동물들을 쉬이 보내주지 않는다. 메모리얼 스톤을 만들어 남은 잔해마저 품으려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동물들은 짧고 투쟁 없는 삶을 이어나간다. 반면 인간들은 길고 투쟁 많은 삶을 이어나간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쟁취하려 하고,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숑을 두고 하는 소리 없는 싸움이지만, 그 안에 비숑은 없는 아이러니라니.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투쟁을 했던 것일까?


결국 모두 패잔병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비숑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날카롭게 뒤엉켜 불안을 조장하던 그곳엔 순수한 사랑만이 남았다.


그리고 점차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망가지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비동물인 인간은 회복을 위해 떠나거나 새로 시작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새 출발을 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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