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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낙원 -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
박서영(무루)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5월
평점 :
"색다른 관점으로 그림책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책!"
처음 이 책을 마주하게 되면 살짝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명확히 인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을 동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어 끝까지 읽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22편의 그림책을 언급하는데, 그중 내가 읽어본 그림책은 딱 한 권뿐으로, 그 책 덕분에 읽어본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차이가 확실히 크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된 그림책들을 모두 읽은 뒤에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혼자 읽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낯선 조각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색다른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상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인데, 그림책을 통해서도 이렇게 깊고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림책 안내자인 무루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더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책의 낙원으로 이끄는 에세이다.
저자가 남긴 빵조각을 따라 그림책의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다소 이상하고 낯선 조각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 쉽게 보던 그림책 너머의 깊은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가볍게 보던 그림책이 촘촘히 채워지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림책의 깊이와 숨겨진 의도까지 떠올리게 되고, 그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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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 〈돌아와 라일라〉
토카르추크는 다정함이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이라 말한다. 겸손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을 복잡하게 이해하고 섬세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지적인 노력으로 이해한다.
(...)
우리는 삶의 모양이 제각기 다른 세계에 산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점 사이에 정성껏 선을 이어보려 할 때, 그렇게 이어진 선들로 넓게 그물을 짜보려 할 때, 세상의 다정함들이 힘을 낸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삶을 응원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우리의 다름이 세계를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리라 믿을 수 있도록.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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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현재 삶을 들여다보면, 모양도 경험치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인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행위 자체가 쉽지 않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 이제는 '지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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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우세의 법칙 〈강낭콩〉
그게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것과 관계 맺는 경험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로를 이끈다. 무채색의 세계를 색으로 물들이기도 하고, 평생 모를 것 같았던 일에 푹 빠져들게도 만든다. 이어져 있는 존재들은 언제나 서로를 변화시킨다. 그 안에 사랑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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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를 꼽으라면 단연 '사랑'이 으뜸이 아닐까? 살아있는 어떤것과의 결합, 여기에 사랑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이뤄냄과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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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가 인생이 아니라면 〈인생은 지금〉 & 〈할머니의 저녁 식사〉
누구나 좋아하는 것만으로 삶을 채우고 싶을 테지만 사는 일의 일부는 귀찮은 것, 곤란한 것, 힘들고 어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는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이 잘 살아가는 일이 된다. 그러나 싫은 일을 재빨리 해내려면 시간과 노력을 적게 쓰는 요령이 필요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꾸준히 반복하는 것.
(...)
나이 드는 일이 삶을 완성해 나가는 일이라면 그 속에는 좋은 습관으로 채워진 하루가 있을 것이다. 어떤 위화감도 없이 좋아하는 최소한의 일들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선명한 의지로 차근차근 형식을 완성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더하고 또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83~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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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삶, 가치 등 의미있는 주제들로 채워진 문장이다. 살아간다는 것,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차근차근 오늘의 삶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첫째, 싫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며 시간과 노력을 적게 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것, 둘째, 삶에서 무엇을 더하고 덜어내야 할지 고민하는것을 꼽을 수 있을것 같다.
어쩌면 이런 과정들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고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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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환대하는 〈나의 오두막〉 & 〈헤아릴 수 없는 것들〉
그림책은 독자에게 언제나 재독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림책의 그림은 반드시 다시 읽었을 때 더 잘 보이는 맥락과 의미를 지녔다.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오답 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나의 오두막>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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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답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그림책은 때때로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보여준다. 글과 그림, 낱장과 시퀀스, 넘기고 멈추고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진실이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은 이야기가 언제나 하나의 초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모두를 환대하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오솔길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저마다의 진실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이다.
150~1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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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어른이 그림책을 좋아하고 보는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드러내놓고 읽자.
스스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당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길이자 하나의 초대라는 것을 안다면 보다 떳떳하게 그림책을 마주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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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추는 춤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 없었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염려하는, 아마도 유일할 것이 분명한 단 한 명의 남성에게서도 내 일상적 불안을 조금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이토록 가까운데도 건널 수 없다면 그 간극은 대체 얼마나 아득하게 먼 것일까. 내가 지닌 이 세계에 대한 낙담이자 회의는 바로 이것이다. 나빠서가 아니라 오직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영영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164~1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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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염려와 위험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점에 대해 '남성들'은 평생 이해하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 직접 체득하거나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이토록 다를 수 밖에 없나보다. 나빠서가 아니라 달라서.
심지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단 한명의 남성에게조차 이런 간극을 느끼다보니 가끔은 이런 상황에 대해 낙담이나 회의, 혹은 체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때때로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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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제대로 마주하며 느낀건, 그림책을 다른 관점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깊이 있는 눈으로 보면 또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점이다. 물론 반대로 전후 사정을 모른채로 이 책을 손에 쥐게 되면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 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퍼즐을 맞추듯 새로운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다보면, 의외로 사고가 열리고 눈이 뜨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로만 치부하던 그림책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해 머리가 복잡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때 그림책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더불어 아주 가까이에 우리가 모르는 낙원이 숨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언제든 필요할때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