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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참회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수사로서의 삶과 아버지로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캐드펠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벌어진 길고도 지리한 내전이 드디어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앞선 이야기에서 '수사'로서의 캐드펠을 만나보았다면, 이번에는 수도원을 떠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된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순다섯, 수도원에서의 오랜 세월을 뒤로한 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은 신념을 안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수도원의 문을 박차고 마지막 여정을 이어간다. 내면 깊숙한 곳엔 불안과 갈등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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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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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945년 11월 겨울의 어느 날, 두 사촌의 전쟁이 차츰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의 이야기다.
■캐드펠 수사
예순다섯 살의 노수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자 슈루즈베리 수도원 소속.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수도원에서의 약속을 저버리고 길을 떠나게 된다.
■휴 베링어
캐드펠의 친구이자, 슈롭셔주의 행정 장관으로 코번트리까지 함께 하게 된다.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
캐드펠이 팔레스타인에서 젊은 과부를 만나 사랑해서 낳은 아들로,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추후 아들임을 알게 된다.
■이브 위고냉
이브의 여동생 에르미나와 올리비에가 결혼함으로써 가족이 되었으며, 과거부터 끈끈한 인연이 있다. 올리비에가 행방불명되면서 그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캐드펠을 만나게 된다.
■로베르 보몽 백작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여 슈롭셔의 행정 장관인 휴 베링어에게 전달해 주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로저 드 클린턴 주교
코번트리에 있는 주교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스티븐왕과 황후의 회동을 11월에 성사시켰다.
■스티븐 왕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처세 전체를 파괴적인 전쟁으로 소진해왔다.
■모드 황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억울하게 스티븐 왕에게 왕권을 빼앗긴 것에 복수를 꿈꾸고 있다.
■조베타 드 몽토르
황후의 나이 든 시녀로 숨겨진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자보
황후의 젊은 시녀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
건장한 체구의 50대 남자로, 황후의 대의명분을 수호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자기 이복누이의 곁을 굳게 지키고 있다.
■윌리엄
글로스터 백작의 큰아들로, 상속자다.
■필립 피츠로버트
글로스터 백작의 작은 아들로, 현재는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워 황후의 반대편인 스티븐 왕 편에서 싸우고 있다.
■드 술리드
코번트리에서 가슴에 칼에 맞아 죽었다.
■제프리 피츠클레어
용처럼 생긴 불도마뱀의 문양의 원래 주인으로, 클레어 가문의 서자다. 패링던이 스티븐 왕에게 넘어간 후 갑자기 죽은 뒤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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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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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거래로 패링던 성은 항복하게 되고, 이에 성을 지키던 수비 대원들은 지휘관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다만 그에 불복한 이들, 황후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자들은 왕의 손에 ‘봉급’처럼 분배되며, 그의 사람들에게 넘겨지게 된다.
이때 잠시 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친척이나 친구가 몸값을 지불해 주면 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 사람들의 명단을 입수한 로베르 보몽 백작은 즉시 휴 베링어에게 전달하고, 이를 받아든 휴 베링어는 그 안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이름은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로, 유일하게 누구에게 억류되어 있는지 확인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그는 캐드펠의 유일한 아들이기도 했다.
이를 확인한 휴 베링어는 곧장 수도원의 라둘푸스 원장을 비롯해 캐드펠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되고, 이 일로 인해 캐드펠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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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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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과 휴 베링어는 코번트리에서 열리는 스티븐 왕과 황후의 회동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 종식은 결국 성과 없이 끝나고, 캐드펠이 찾는 아들에 대한 소식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던 중 마지막 일정인 기도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게 된다.
쓰러진 이는 가슴에 칼을 맞은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를 목격한 이는 코번트리에 도착하자마자 대립각을 세웠던 이브 위고냉이었다. 그는 단순히 어둠 속을 걷다 발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믿지 않았고, 그렇게 미해결 상태로 일정이 끝난 이들은 각자 갈 길을 가게 된다. 이브 위고냉 역시 황후 일행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되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한편 캐드펠과 휴 베링어는 조금 더 머물며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다른 용의자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또 죽은 브라이언 드 술리드의 소지품에서 알 수 없는 인장 반지를 발견한 캐드펠은, 그 문양을 따로 그려둔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서 왼쪽으로 둥글게 고개를 들고 있는 백조 문양은 분명 드 술리드의 반지였지만, 용처럼 생긴 불도마뱀 문양은 도무지 누구의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쯤, 앞서 떠난 황후 일행 중 한 명이 돌아와 이브 위고냉이 납치되어 행방이 묘연하다고 전한다. 이에 캐드펠은 마음을 확실히 굳히고, 휴 베링어와 헤어져 아들을 찾으러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홀로 길을 나선 캐드펠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반지의 문양과 실종된 이브 위고냉의 행방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흩어졌던 사건의 파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여러 정보를 통해 이브 위고냉이 라 뮈자르데리에 있을 거라 추측한 그는 정면돌파를 하기로 마음먹고 정문을 통해 들어가 필립 피츠로버트를 만나기를 청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만난 캐드펠은 단도직입적으로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와 '이브 위고냉'의 행방을 물으며 자신이 올리비에의 아버지이며 그들을 풀어주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필립은 이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대신, 자신의 수족이었던 드 술리드를 죽였다는 혐의는 벗겨졌으니 '이브 위고냉'만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캐드펠에게는 마음껏 머물다 가라며 여유로운 제스처를 취한다.
이브 위고냉은 그 길로 멀리 달아난 뒤, 주변을 살피고 다음을 도모한다. 이후 황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올리비에를 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황후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필립이 그곳에 있다는 말에 곧장 군사를 이끌고 라 뮈자르데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지난한 전쟁끝에 결국 부상당한 필립은 항복을 선언하고,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부하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캐드펠은 다시 만난 아들과 도모해 혼란한 틈에 필립을 밖으로 빼돌리게 된다.
그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올리비에를 비롯해 이브, 필립까지 모두 무사히 빠져나온다. 이 일을 계기로 올리비에와 캐드펠은 물론,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필립과 그의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도 화해의 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던 반지의 정체와 드 술리드의 죽음의 비밀도 함께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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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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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캐드펠이 가장 치열하게 싸워야 할 상대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스스로 선택하여 진심 어린 서약을 한 뒤 들어온 이곳,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슈루즈베리 수도원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마치 무거운 족쇄가 몸과 마음을 팽팽하게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
결국 이번 결단은, 그가 수도원 정문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삶의 모든 것이 걸린 문제였다. 그럼에도 그는 갈 것이었다.
42~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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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떠나는 일은 인생 전체를 건 중대한 선택이었지만, 그는 결국 아들을 포기할 수 없어 떠나기로 결심한다. 온몸이 팽팽히 조여오는 듯 무겁고 심란했지만,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그런 그의 심경을 이 문장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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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 여행의 목적을 이룬 뒤 겪어야 할지 모를 참담한 전락의 과정이었다.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나긴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까 봐,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조용한 일상을 결국 잃고 말까 봐 그는 두려웠다.
3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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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인생 전체를 걸었음에도,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과 초조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까 봐, 익숙한 일상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그럼에도 그는 결국, 다시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을 택한다.
위의 두 문장은 아버지로서의 삶과 수도사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긴장하는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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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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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은 오랜 세월 수도원 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지만, 아들의 실종 소식은 그 평온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을 찾는 데 온전히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수도원을 떠난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작은 단서를 좇던 끝에, 마침내 아들을 다시 품에 안게 되지만 이번에는 다시 평온한 일상을 잃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두려움을 억누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캐드펠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불어 그의 내면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이 이야기를 통해 깊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라 그런지 가족, 삶,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천천히 돌아볼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