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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과거를 사유하며 깨달은 단 한 번뿐인 삶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
'평생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라고 표현할 만큼, 이 책에는 저자의 내밀하고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보다 과거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더불어 저자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펴보며, 과거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그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조각들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명 어떤 순간은 눈물짓고 후회하며 보낸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웃고, 안도하며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버티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총 14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가족사와 더불어 직접 경험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가장 깊숙한 곳이 묻어두었던 내밀한 감정은 물론,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일들까지도 되짚어보게 된다. 어쩌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저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해 온 가족사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기도 하는데, 어머니의 노화와 죽음, 아버지에게 품었던 첫 기대와 실망이 바로 그것이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사적인 이야기였음에도,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담담히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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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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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무슨 이유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영원히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남아 있는 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바로 그런 상태로 우리는 닥쳐오는 인생의 무수한 이벤트를 겪어나가야 하고 그리하여 삶은 죽음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부조리로 남아 있게 된다. 이 부조리에다 끝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비밀들, 생각지도 않은 계기에 누설되고야 마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비밀들까지 더해진다.
(...)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희미해지고 상상과 뒤섞일 것이다. 무엇이, 누가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는가는 모호해질 것이다. 기억에도 반감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20~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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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인생에 대해 서술한 문장인데, 어쩐지 그 자체로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라 옮겨본다. 알려고 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삶.
그것을 저자는 '중간에 보게 된 영화'에 비유하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혼돈과 끝까지 찝찝하게 남아있는 부조리에 대해 설명하며 그의 글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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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1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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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데, 문득 '나는 오늘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내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삶에 개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미래에 도달하지만,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 뒤 먼 미래에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역순이 아닌 정방향대로,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 끝에 올바른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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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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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칫 민감하거나 치부처럼 느껴질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과 경험들이지만, 작가이자 유명인으로서 털어놓기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덕분에 나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내 안의 더 내밀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예측 불가하고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부딪히며 살다가,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진짜 인생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계기로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나'라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더 의미 있게 살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