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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평점 :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 보게 만드는 책!"
이 책에 대한 한 줄 문구를 위와 같이 정리했지만, 솔직한 나의 감상평은 반반이다. <어떤 어른>이라는 책 제목과 절반쯤 마음에 들었던 내용과는 달리, 저자의 가치관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그 안에 깃든 편견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일상 이야기를 담은 책치고는 가독성이 좋지 않아, 마치 띄어쓰기 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점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특히 1부의 내용들에서 이런 현상이 심했는데,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텍스트의 폭풍으로 인해 얼마쯤은 자발적 인공호흡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할 정도였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저자가 일상 속 어린이들과의 일화를 바탕으로 써 내려간, 어른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저자는 완전히 어린이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순히 '어린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보듬어안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살짝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의 아이들은 영악하다. 일찍이 문명을 접하기에 어른들보다 기기를 다루는 능력도 탁월하고 그렇기에 적당히 어른을 이용하거나 처벌을 피해 갈 줄도 안다.
혹은 자신들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활용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니까', '청소년이니까'라는 이유로, 잘못을 묵인해 주고 선처해 주는 것은 오히려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 반',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는 마음 반'의 심정으로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독서교실을 통해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그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어린이들을 마주치고 대화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이 책에는 생동감 있게 담겨있다.
이렇듯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저자의 글 속에는 유독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이 좀 과했던 것 같다. 책에 담긴 몇 가지 일화들-특히 강연장에서의 일화와 노키즈존에 대한 내용-은 공감을 얻기보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아껴주는 마음은 좋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가치관이나 편견을 앞세워 다른 쪽에게 일방적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런 상황을 만든 아이들의 부모, 그리고 사회시스템, 사회적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수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보다, 양쪽 모두를 균형감 있게 채워나가고 보완하는 방안을 더 심도 있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나에게 반쪽짜리 책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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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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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부터 '자란다'가 아니라 '늙는다'가 되는 걸까? 사전적으로는 중년이라 할 수 있는 마흔 살 안팎부터라고 한다. '중년'에 대한 표준국어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원래는 40대까지인데 넉넉하게 50대도 중년으로 친다는 걸까? 사실 나 자신은 아직도 '중년'이라는 정체성을 외면하고 있는데, 만일 중년이 '50대까지 포함하지 않는 경우'라면 나는 이미 중년도 끝나가는 것이 된다.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20~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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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인데,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더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유독 나이에 민감한 우리나라는 매해 나이를 따지고, 언급하며 사회생활을 한다. 이는 비단 성인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적용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포인트는 아마도 '자란다'에서 어느 순간 '늙는다'로 변모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 시기가 제각각 다르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경계가 모호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어느 순간 어린이에서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을 거쳐 어느새 노년이 된다.
알지만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 누구나 저자처럼 충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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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어른도 대화를 하려면 사회성을 발휘해야 한다. 즐거운 대화에도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하나 마나 한 말에 대꾸하기는 어린이도 힘들다. 물어보느라고 물어보는 말, 하느라고 하는 말에 어린이의 대답은 "네, 네, 알았어요" 밖에 없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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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거쳐온 과정이다. 내가 싫었던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희한하게 또 어른이 되면 까마득히 잊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게 세대를 거치며 쌓이다 보니, 이제는 서로가 시니컬해진 게 아닐까 싶다.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하는 어른, 그리고 거기에 영혼 없이 대답하는 아이들.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평생 반복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무섭고 또 힘들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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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아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 만족스러운 것, 언젠가 해보고 싶은 것이 어린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점점 많아지는 게 아닌다.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1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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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의와 어린이들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완전히 다른 듯하다. 어린이들의 눈으로 보면, 아름다움이란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것, 매 순간 만들어지는 것, 점점 많아지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쩌다 한 번 마주치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자주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린이들의 기준에 맞춰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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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노 키즈 존'이라는 말부터 없애고 보자.
(...)
어린이의 출입을 제한해야 할 때는 오직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때뿐이다.
267~2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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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다양하다. 이것을 다른 곳에까지 확대 적용해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이른 제안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때만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그런 이유로 노 키즈 존을 적용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마저 노 키즈 존이라고 명명하기 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일일이 설명하고 구구절절 풀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이기적인 면모라는 생각도 든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을뿐더러, 오히려 분란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노 키즈 존을 붙여놓는 게 서로에게 더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그런 거 없이도 잘 지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회와 시스템이 변했고, 무엇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변했다.
고로, 무조건 제한하는 건 반대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억울하거나 이기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사실 노 키즈 존은 아이들보다,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를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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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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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상황과 행동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을 다시 보게 만든 장면들이 있었다. 또 창의적 생각과 직설적 화법 덕분에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만 잘 담겨있었다면, 아마 나는 어떤 어른이 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편견 어린 시선과 의견이 끼어드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달라져버렸다. 걸러 들어야 할 것들을 거르고, 또 반박이 필요한 부분을 분류하느라 시간을 쏟게 되었다.
'그건 아닌데'하는 불편한 시선을 안고 책을 읽게 되었으며, '그렇게까지 부들부들 떨 일인가'싶은 생각에 의아한 감정을 파헤치느라 한동안 멈춰있기도 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상상'하는 아이들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분명 아이들은 약자고 저자가 주장하는 몇몇의 내용들이 적용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상'만 좇으면 '현실'은 시궁창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현실이 따라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회, 시스템, 사람 모두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어른'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나이로 구분 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1인칭 관점에서는 별 의미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품고 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더 포커스를 맞춰 고민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나는 '어떤 어른'보다는 '어떤 사람'에 더 초점을 맞춰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