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한옥집 - 내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안녕, 시리즈 1
임수진 지음 / 아멜리에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의 추억에 푹 빠져 있었다. 고향은 아니지만 향수를 느끼게 했던 그 시절 그 장소, 엄마가 손수 해주시던 맛있는 집밥, 집을 둘러싼 풍경, 호기심을 가지고 이곳저곳 뛰어다니던 내 모습까지.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그립고 소중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충남 공주 제민천 근처 누구나 알법한 ㄷ자형 한옥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읽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특히 지금은 잊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들이 많아 더 그런듯하다.


늘 사람으로 북적거렸던 한옥집에서 보낸 시간들 속에는 추억거리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대청마루, 솥뚜껑, 장독대, 뒷간, 이웃들, 음식, 미용실, 오토바이, 동네 서점 등등.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나는 그때 그 시절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유년 시절도 함께 떠올려보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집이 주는 의미도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충남 공주의 ㄷ자형 한옥집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사랑스럽고 똥꼬발랄한 저자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책 곳곳에는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생활방식과 이웃들 간의 왕래, 그리고 대식구가 복작거리며 사는 모습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래서인지 인간미와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풍겨오는 듯하다.


저자는 딸만 셋인 집의 막내딸로, 활발한 성격에 호기심이 많은 사고뭉치로 엄마와 할머니를 오가며 온갖 대소사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모습들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 투성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할머니의 수고와 지금으로 치면 워킹맘이었던 엄마의 끝없는 에너지가 한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이제는 사라진, 하지만 유년 시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옥집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을 떠올리던 저자는 문득 집이 주는 의미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비록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양도 형태도 사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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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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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싫어! 안 뺄 거야!"

그렇게 실을 감으려는 자와 도망치려는 자 사이의 실랑이는 계속되었고, 그 순간 할머니의 손에 잡힌 나의 이는 실을 감기도 전에 쑥! 빠져나와 내 입속으로 꿀꺽!


그 순간의 정적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할머니와 나.

순간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정적.

그리고 밀려온 공포.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 학교도 못 가보고 나이 여섯에 이렇게 가는구나.'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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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는 '어린이 치과'가 많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어린이 치과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 치과에 가서 이를 빼거나 아니면 부모님이 이에 실을 걸어 이마를 탁! 치는 방법으로 빼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둘 다 공포스러웠기에 피하고 싶은 방법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포스러웠던 추억이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이가 흔들린다는 문장을 보자마자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는데, 결국 할머니에게 발각되어 도망 다녔다는 부분부터는 침이 꼴깍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도망 다니다 결국 빠진 이를 삼켰다는 부분에서는 왜 내 속이 더부룩한 건지 ㅋㅋ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만큼 공포스러웠을 에피소드라 긴장감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음이 나왔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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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였던 저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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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옆으로 눕히고 그 위에 올라가자마자 나는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엉덩이에 붕대를 감고 다니던 막내딸이 오른팔까지 부러지고 말았을 때 가족들의 황당함이란 어떠했을지.

(...)

그해 여름 내내 허벅지와 엉덩이는 붕대로 칭칭, 팔은 깁스로 둘둘 감은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긴 여름을 보냈다. 밥도 혼자 못 먹고. 잘 앉지도 못하고, 잠도 엎드려서 자야 했다.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전히 언니들을 쫓아다니고, 밥도 잘 먹고, 온 집 안을 열심히 뛰어다녔단다. 어지간히도 말괄량이였던 게다.


얼마 후 전기 콘센트의 돼지코 모양이 너무도 궁금해서 집에 있던 드라이버를 쏙 지어 넣었다가 감전되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다. 그건 그냥 없던 일로 쳐야겠다.

78~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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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집에 살 당시 저자가 막내딸로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랐는지, 또 얼마나 말괄량이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딸 셋만 낳은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텐데 할머니는 막내 손녀를 끔찍이도 아끼셨던 것 같다.


사람들이 집을 비울 때면 옆에 끼고 잠을 자고, 함께 파마도 하러 가고,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는 손녀를 혼내지도 않고 매번 애지중지하셨던 걸 보면 그 사랑이 얼마나 컸던 건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막내였기에 부모님 사이에 껴서 잠도 자고, 또 한밤중 몰래 부모님 따라 축제 구경도 하고, 할머니와 도란도란 추억도 많이 쌓았던 것 같다.


어쩌면 저자가 어린 시절 이렇듯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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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때 그 시절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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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장 날이 좋았다. 할머니 옆에서 "매워, 매워"를 연신 외치면서도 갖가지 김치들을 끝도 없이 먹어댔다. 부엌에서는 양은솥 하나 가득 동태탕이 보글보글 끓고, 수육도 삶아 뭉텅뭉텅 썬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음식들과 그날 만든 김장김치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

땅에 묻힌 김치 항아리 옆에는 아주 작은 움막도 있었다. 움막 앞을 지푸라기로 막아놓았지만, 그걸 빼고 손을 깊이 넣으면 겨울을 위해 저장해둔 무와 배추가 가득했다. 겨울밤이 깊으면 하나씩 꺼내와서 어석어석 씹어 먹기도 하고, 그걸로 무국을 끓어먹기도 했다.

196~1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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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도 비슷한 추억이 존재한다. 김장날이면 몇 포기인지 모를 배추를 하루 전날 소금에 절였다가 하루 종일 내내 배추 속에 양념을 비벼대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으레 김장날이면 수육을 삶아 배추쌈에 싸서 먹던 기억, 그리고 정성을 들여 한 김장 김치를 땅속 깊이 묻어둔 항아리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모습까지.


여기에 더해 무청을 바람에 말려두었다가 시래기 국을 끓여먹던 기억까지 수많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이거 안 먹어' 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왜 그렇게 그리운지.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그때 그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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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의미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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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집은 우리 가족의 삶의 방식, 생활 이야기, 대인관계의 형태를 결정했다. 한옥집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뿐인데 그 이후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같이.

(...)

집 안 곳곳 들어차 있던 그 많은 손님들도, 엄마와 할머니의 요리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손님들의 이야기들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집어먹던 우리들의 경쾌한 움직임도 그렇게 한옥집을 뒤로하고 허공중에 사라졌다.


대신 서너 명의 손님으로 족한 작은 모임들과 엄마가 만든 칵테일의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보다 간편한 음식들과 전기밥솥과 아담한 식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

진하고 구수한 행복은 보다 오래 걸리고 보다 힘들었던 한옥집의 잔치에서 더 깊었으니, 불공평하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84~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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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집이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많은 이들이 그 집을 사랑하여 드나들고, 그리하여 집과 가족이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집. 그것이 제일 좋은 집이 아닐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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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한옥집을 떠올리다가 문득 아쉬움을 느낀다. 더 간편해지고 편리해졌지만, 그보다 더 불편하고 오래 걸렸던 한옥집에서의 진하고 구수했던 행복이 뇌리에 깊게 박힌 탓이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집이 주는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던 중 불현듯 집의 형태나 삶의 방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추억을 쌓아가는 집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생각해 보면 집이라는 공간은 크기나 가격보다, 그 속에서 어떤 추억을 남겼고,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느냐에 따라 달리 기억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집이라는 것은 저자가 결론 내린 것처럼, 내가 그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추억을 쌓았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다른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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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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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시대,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풍경과 모습들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늘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ㄷ자형태의 한옥집, 항상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솥단지, 거리를 오갈 때면 마주치는 정겨운 이웃들,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엄마의 모습, 담장 너머 보이는 이웃 친구들, 분주히 이곳저곳을 오가는 할머니와 그 뒤를 쫓는 어린 저자의 모습까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광이자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라서 어쩌면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기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봄과 동시에 나를 지탱해 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그 시절 곁을 지켜준 사람들, 추억, 감정, 물건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는 것일 테다. 비록 지금은 곁에 없어도 말이다.


살다가 문득 사는 것이 버겁다 느껴지는 순간, 내가 가장 나다웠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을 추억함으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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