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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천홍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시를 통해 기록한 사별에 대한 아픔과 극복 과정!"
이 시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먼저 읽기보다 맨 뒤쪽에 있는 '해설' 페이지를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임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집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에는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그냥 읽었고, 두 번째는 해설을 읽은 후 시가 쓰이게 된 배경을 알고 난 뒤에 다시 한번 읽게 되었는데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다.
앞서 그냥 읽었을 때는 후루룩 넘겼던 시들이, 배경을 알고 난 뒤에는 의미가 담겨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동생과 사별한 직후 느낀 심정, 동생과 함께 했던 나날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후에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긍정적 기대감을 함께 담아내며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의 첫 페이지에 쓴 '시인의 말'을 살펴보면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의 감정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함께 했던 나날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을 거쳐 점차 차분한 심경으로 이별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이별에 대한 고통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있지만, 이것을 감정적으로만 대하기보다 약간의 이성적 판단을 더해 모두 괜찮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담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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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우리 둘의
맞지 않는
구석 때문에
싸우고
아파해서
그렇게
화해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너에게
미안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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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떠나버린 동생에 대한 회환과 죄책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첫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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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꽃
혼자서 흔들리는
그런 꽃이 있다
그 꽃이
아프지는 않을까
슬프지는 않을까
그러나
내가 꽃이 아니기에
꽃의 입장을 모르는 일
(...)
저 흔들리는 꽃이
내가 흔들리고 있진 않은지
꽃이 나고
내가 꽃이고
손가락 하나로
꽃을 지탱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꽃의 모습이
고단한 나에게 숨을 틔워 주는 순간
우린 아마
그런 작은 하나가 필요했겠지
24~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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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꽃을 보고 꽃에 자신의 마음을 이입한 시인은 내심 꽃이 아프지는 않을까, 슬프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염려한다. 하지만 자신은 꽃이 아니기에 그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이때 시인은 손가락 하나로 흔들리는 꽃을 지탱해 주는데 그제야 비로소 숨이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붙잡은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제야 시인은 비로소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줄 작은 뭔가가 필요했던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심적으로 힘들 때 우리는 작은 풀 한 포기, 지나가는 바람,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서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그런 심정들이 잘 드러난 시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도 공감이 많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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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
사진 한 장에 너만 없는 그런 허무함은
무엇으로 채우나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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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존재하지 않게 되면 일상 속에서 이런 허무함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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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1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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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는 특정한 기억, 그리고 고통도 포함된다.
그리고 저마다 지워지지 않고 간직되는 기억이나 고통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만한 대가를 치른 것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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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3
같이 찍었던
사진이 없다
너를 잊지 않는 방법이
사진뿐인데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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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추억할 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장 쉬운 것은 사진인데, 언젠가부터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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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3
지상철을 타고
밖을 내다보는 일은
사랑을 시작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다
방금
밖에서
두 쌍의
나비가
사랑을 노래하며
날아갔다
그
모습에
마음 구석 어느 한편
쌓였던 먼지가
간들거리며
날아간 순간
51~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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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그리움에 푹 담가져 있던 시인의 심적 변화가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로, 일단 배경이 지상철이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지상철 너머, 시인은 나비 한 쌍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며 날아가는 모습에, 어느새 쌓여있던 오랜 짐이 날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이미 슬픔과 고통이 어느 정도 덜어졌기에 '사랑을 노래하며 날아간다'라고 느꼈을 수 있고, 거기에 더해 '한 쌍'으로 함께 하는 모습에서 더없이 마음이 편안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함께 할 그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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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4
세상이 삐그덕삐그덕 굴러간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하다
53페이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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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이가 없는 세상이 너무 완벽하게 돌아가면 되려 더 슬프고 참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삐그덕삐그덕 돌아가는 작은 흠결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그걸 위안 삼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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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린
혼자가 되었다
괜찮아
곧 만날 거야
잠시
볼 수 없는 것뿐인데
(...)
너를 만났을 때
해줘야 할 말이 많았으면 좋겠어
너 없는 삶이
눈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고
54~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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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향한 그리움이 희망으로 변하면서 삶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언젠가 다시 동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 너 없는 삶을 눈물로만 채우지 않았다고, 너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았다고 전하고픈 마음을 가득 담은 게 느껴진다.
이후 시인은 동생을 위해 매일을 더 알차게 살아내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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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年 9月 15日 1
딱 몇 분 만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날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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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날 만큼은 잊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 돌아갈 수 있다면 꼭 한번 돌아가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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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까운 이를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이런 마음 과정 또한 공감할 것이다.
초반에 찰랑이던 슬픔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슬픔이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흉터로 남아 문득문득 통증으로, 추억으로, 기억으로 떠올라 가끔씩 눈물짓게도 하고 또 웃음 짓게도 하다가 때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해 읽고 난 후 마음이 아려왔다. 누구나 거쳐가는 삶이고, 또 누구나 겪는 죽음이지만 쉽게 적응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