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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 바리스타
송유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평점 :
"연대를 통해 조용한 회복력을 보여주는, 이곳은 별다방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카페, 동네'와 같은 키워드들이 보여 선뜻 읽어보게 된 <별다방 바리스타>는 표지 디자인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듯 따뜻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소설책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설정한 몇 가지 소재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예상을 뛰어넘는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걸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치매'나 '장애', '동성 커플'과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 소재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잘 풀어낸 덕분에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연대의식을 가지고 함께 살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됐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요 등장인물인 예빈과 달순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상황들을 전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배경은 별다방으로, 고요하고 안온한 그 공간 안에서 따뜻한 음료와 함께 건네는 온기와 다정함은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다.
한때는 매상을 걱정할 만큼 손님이 적었던 이곳이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는 공간으로 불리게 되며 어느새 성황을 이루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치매 할머니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카페 사장 예빈이 있다.
위태로운 삶의 끝에서 마주하게 된 별다방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위로를 받고 마음을 회복해 가는지는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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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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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빈
-죽율동에서 별다방을 운영 중이다
-별다방 주인이자 바리스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필담으로 소통한다
■이달순
-1952년생
-별다방에서 바리스타로 근무 중
-알코올 유도성 치매를 앓고 있음
-가족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됐음
■윤명숙
-죽율동의 붙박이 '원형 슈퍼' 사장
-60대 중반의 여성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직후 남편의 가게 일을 돕고 있음
-별다방이 생긴 후로 단골손님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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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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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살림에 여섯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달순은 성인이 되자마자 중매 시장에 끌려나가 공무원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4남 1녀 중 장남이었는데, 다행히 시어머니가 인품이 좋아 달순은 큰 어려움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시어머니가 중풍(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큰 슬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둘째 지현이 수험생이 되던 해 남편이 뺑소니에 치여 식물인간이 되면서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리고 몇 달 후 남편이 떠나고 이후 10년을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쯤, 달순은 술을 즐겨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불쑥불쑥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잦아진다.
그렇게 달순은 알코올중독 판정을 받게 되는데, 아무리 벗어나려 노력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견디지 못하고 번호까지 바꿔가며 달순과의 단절을 선언하게 되고, 그렇게 혼자 남겨진 달순은 자신을 병원에 가두게 된다.
홀로 중독과 싸우던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내 알코올 유도성 치매 진단을 받게 된다. 재미도 의욕도 없는 상태로 무심하게 병원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병원에 자원봉사를 온 예빈을 만나게 되면서 달순은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다.
예빈은 그때쯤 죽율동에 2층짜리 허름한 구옥을 수리해 카페를 열 생각이었는데, 달순을 눈여겨보고 있던 그녀가 달순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둘은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된다.
예빈은 치매를 앓고 있는 달순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외롭고 힘겨웠을 달순을 품어주었고, 또 달순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소통이 쉽지 않았던 예빈을 도와 '별다방'의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직업을 얻는 데 있어 페널티가 될 수도 있는 이들이 만나 연대하게 되었고, 그것이 점차 시너지를 내게 되면서 어느새 별다방은 상처받고 고통으로 얼룩진 이들이 찾는 위로의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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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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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잊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손에 너무 꽉 쥐고 있으면 반드시 부서져 버린다는 것을.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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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 된다'라는 속담처럼, 소중하다고 해서 너무 아끼다 보면 결국 쓸모없는 것이 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해서 너무 꽉 쥐고 있다면 결국 부서지기 마련이다.
아끼는 것일수록, 소중한 것일수록 적당히 사용하고 풀어줄 줄도 알아야 제대로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유난히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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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은 내가 느끼는 이 분노로 달라지는 것이 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분노는 나를 좀먹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왜 내가 나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 걸까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 분노를 사포로 조금씩 갈아내야겠다고 결심했죠!
(...)
세상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쁜 일들이 무척 많잖아요. 그럼 적어도 나는 나한테 친절을 베풀고, 나 자신을 아껴줘야 하지 않겠어요? 나까지 그 나쁜 일들에 편승해 나 자신을 싫어한다면, 내 안의 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요.
39~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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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이 달순에게 한 말 중 일부분인데,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라 옮겨본다. 불공평함과 불공정한 상황을 당하면 우리는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화를 내고 분노한다.
달순이 술을 먹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도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을 좀먹는 일뿐이었다. 예빈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고 그녀는 스스로 이 상황을 탈피해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노를 흘려보내게 된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 자신을 위해, 나한테 친절을 베풀고, 아껴주면서 말이다.
더 많은 억울함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 예빈의 이 선택이 얼마나 현명한 일이었는지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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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 괜찮아질 거예요.'
'어떻게 사는 게 내내 화창하기만 하겠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이거면 도착할 때까지 비를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날, 별다방에서 들었던 말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흔했던 그 말이 위로가 되었던 건 어쩌면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위로는 이해로부터 시작되며, 뜻을 해석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말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말이야말로 머리를 지나 가슴까지 자연스럽게 흡수가 되어 비로소 고된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거라고.
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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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뒤집는 문장이라 남겨본다. 보통은 특별한 말, 흔치 않은 말들이 더 위로가 되고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수는 오히려 너무 흔한 그 말이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선명히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머리를 지나 가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 온전히 흡수된 그 말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말이었기에 더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고 전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누군가 영혼 없이 하는 겉핥기식 위로는 그냥 특별한 말로 끝난다. 반면, 이미 나보다 앞서 비슷한 일을 겪고 그것이 자신의 몸을 관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위로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경수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그 말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고, 진심이 담긴 그 말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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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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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속에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꺼릴만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 치매 노인, 동성애자, 실패자, 은퇴자 등등.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우리를 불행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더불어 작은 연대가 모여 큰 희망을 만들 수 있음도 보여준다.
별다방은 이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핵심 공간으로, 우연히 들른 이 카페에서 사람들은 쉼과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간다. 덕분에 처절하게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점점 더 유명세를 치르게 되면서 누군가에게는 핸디캡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장애와 치매를 자신들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는 확실한 물증으로 생각하고 이곳에 방문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기적인 면모가 소설 속에서도 거론되는데, 이에 대해 달순과 예빈은 서로를 걱정하기는 하나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그저 자신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혼란이 더 가중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카페는 서서히 평정심을 찾아가게 된다. 누군가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달순을 찾아오고, 달순은 그런 사람을 기억하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들이 어느새 별다방의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그렇게 지나간다.
이제 별다방은 많은 사람들의 쉼터이자 회복의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 더불어 장애를 가진 사람도, 치매 노인도 누구 나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우리가 가진 편견이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 주기도 하는데,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 시스템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또 몇 번씩 겪게 되는 실패가 인생 전반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또 꼭 그것을 혼자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저자는 소설 속에 사회의 약자나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을 대거 등장시켜 결국 사람은 똑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저마다 마음속에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이나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함께 보여주며, 그렇기에 우리는 연대하여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고 아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