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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엔 나의 서점이 있다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음, 벨랴코프 일리야 옮김 / 윌북 / 2024년 12월
평점 :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세계의 특별한 서점들"
작년, 집 주변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 너무 데여서인지 실망감은 물론, 한동안 서점 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마침 어떤 이웃분이 몇 군데 가볼 만한 도서관을 추천해 주어 새롭게 마음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이런 곳이 있으면 저런 곳도 있기 마련이니, 그냥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 새로 이사 온 곳은 이전 지역보다 도서관 시스템은 물론, 직원들도 더 개판(😅)인 걸 알게 되면서 아직 한참 멀었구나 깨달았다.
그런 불편함을 거의 1년 넘게 겪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도서관 혹은 서점에 대한 로망이 남들보다 크다. 이런 불편을 비단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더 강렬하고 집요하게 좋은 도서관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좋은 도서관 찾으면 공유하고 싶은 마음 100퍼센트 가지고 있음)
어쩌면 이런 내 욕구가 이 책을 불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책과 관련된 장소들(도서관이나 서점 등등)을 테마로 여행을 하고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세계 곳곳의 개성 있는 서점 25곳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국의 독립서점도 2곳이 포함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특별히 수록된 부분이라고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부터 외형이 남다른 서점,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인테리어로 시선을 사로잡는 서점까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서점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한 번쯤 가보고 싶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더 가보고 싶은 서점들을 위주로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스케치로 그린 서점의 모습과 서점이 지켜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스토리까지 함께 담겨 있어 꽤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팔로 팔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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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 윌보라다 1047
보고타 71번지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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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10-47번지에 자리한 이 서점은 매일 오전 10시 47분에 문을 연다. 욜란다 아우사는 자신의 서점에 1047년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공표된 첫 여성이자 책 장수들의 수호성인인 비보라다의 이름을 붙였다.
성인 비보라다가 지켜낸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도서관 문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말 "마음의 치유소"는 서점의 모토가 되었다. 성인 비보라다처럼 아우사도 현재 위기에 처한 출판업계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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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은 1047이라는 숫자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듯하다. 서점의 이름, 번지수, 그리고 문을 여는 시간까지! 한번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이 서점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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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 리브라리아 베르트랑
리스본 시아두 지그 가레트 거리 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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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 영업해온 이 서점은 1732년 리스본의 자유분방한 동네인 시아두 지구에서 문을 열었다.
그 시절 리브라리아 베르트랑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시 낭독회, 문학 행사, 정치 토론회 등이 열리던 살롱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서점은 포르투갈 전역에 흩어진 52개의 지점을 거느리게 되었다.
서점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방에는 천장까지 닿는 책장들이 가득 차 있고, 이동식 사다리와 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 여기서 책을 사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에서 구입했음을 인증하는 특별한 도장을 찍어준다.
지진, 내전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아홉 명의 국왕, 세 개의 공화국과 유럽연합을 모두 거쳐온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책들을 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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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들은 어쩐지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증폭시키는 것 같다. 그게 책을 품고 있는 서점이라서 더 궁금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개인적으로 이 서점만의 독특한 시그니처인 '가장 오래된 서점에서 구입했음을 인증하는 특별한 도장을 찍어준다'는 점은 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책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기념품이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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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 리브라리아 렐루 이 이르모
포르투 카르멜리타스 거리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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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리아 렐루 이 이르모에 들어서면 마치 역사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건물의 밝은 외관은 다양한 무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지만 내부는 어두운 톤으로 조성되어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점 한가운데에는 1층과 2층 갤러리를 연결하는 아름다운 계단이 있고, 천장은 네덜란드 건축가 헤라르뒤스 사무엘 반 크리켄이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작업실에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서점 창립자의 신조인 "Decus in Labore(노동에 깃든 존엄)"가 모노그램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1906년부터 서점에서 일했던 모두가 간직했던 철칙이이도 하다.
리브라리라 렐루 이 이르모는 신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마누엘 양식이란 국와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딴 포르투갈의 건축 양식을 뜻한다.
고딕, 아라베스크, 르네상스 등 이전 시대의 이색적인 양식이 혼합되어 대항해 시대를 대표하는 마누엘 양식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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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시선을 압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중앙에 배치된 계단과 천장을 수놓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은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더 그렇다.
보통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 등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서점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해진다. 스케치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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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아틀란티스 북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 니콜라우 노미쿠 거리 84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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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선장의 집으로 쓰였던 아틀란티스 북스는 산토리니의 아름다움에 반한 친구들이 모여 2004년에 문을 열었다. 현재 이 서점은 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비수기에 서점은 책을 출판하거나 제본 워크숍을 진행한다. 에게해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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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될 것 같은 '아틀란티스 북스'는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방문하고 싶어지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산토리니 풍경 속에 자리한 서점이라니,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냥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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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부칸들 도미니카넌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네어키어허 거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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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칸들 도미니카넌은 네덜란드의 아주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크회 교회 안에 있다. 13세기에 완공된 이 교회는 고딕 양식으로 지은 네덜란드 최초의 교회다.
이 교회 건물은 2006년에 현대적인 서점으로 개조했는데 4년간의 복원을 거쳐 스테인드글라스와 벽면의 프레스코화, 돔 천장의 그림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
성가대석이 있던 자리에는 사인회, 토론회, 강연, 인터뷰,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안락한 카페가 들어서 있다. 방문객들은 내부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책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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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자리한 서점이라니, 어색한듯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주얼만으로도 어쩐지 압도당할 것 같은 이 서점에 방문하면 책보다 그냥 전경에 푹 빠져 한동안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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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책방 소리소문
제주시 한경면 저지동길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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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소리소문은 한적하고 조용한 제주도 마을에 자리한, 한옥을 개조한 서점이다. 서점에서 판매되는 모든 책은 서점을 운영하는 정도선, 박진희 부부가 고심하여 선별한다.
정도선 씨는 어린 시절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갔을 때 조그마한 동네 책방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수많은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찾게 된 순간 더 이상 외롭지 않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책으로 가득한 공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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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찾아보면 은근히 지역 곳곳에 개성을 가진 독립서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듯하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주인장만의 감성이 녹아들어 있어 독립서점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한 달 살기와 같이 한 지역에서 장기 거주를 하게 된다면 주변에 자리한 동네 책방 혹은 독립서점을 찾아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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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 주변에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이 없다. 그나마 이전에 살았던 거주지에는 동네 서점 하나, 그리고 독립서점 하나가 있었다. 추가로 더 확대해서 찾아본다면, 약 15분쯤 도보로 이동하면 대형서점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특정된 서점 혹은 작은 도서관만 이용할 수 있어 아쉽다 느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없으니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인프라가 없어도 너무 없다 보니, 책을 대여할 때도 가급적이면 지하철에 있는 U 도서관을 이용하고 어쩔 수 없을 때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전 동네의 동네 서점과 도서관을 이용한다.
그나마 가까이에 있는 작은 도서관은 오후 6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어, 토요일 혹은 쉬는 평일 낮 시간에만 가능하다. 언제든 편하게 방문해 책을 구경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서점 혹은 도서관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인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와중에 그나마 방구석에서 읽는 이런 책들 덕분에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내 주변에는 없어도, 세계 어딘가에는 내가 바라 마지않는, 멋진 서점과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