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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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설을 통해 만나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동경하고 죽음을 꺼린다. 그래서인지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삶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공통 진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죽음도 삶과 같은 선상에 두고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피하기만 하기보다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매번 피하기만 하던 죽음을 갑자기 마주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자신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아이들이나 가족들과 나누기란 더 힘들다.


그럴 때 이 책의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하지만 할머니는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마지막 불꽃을 찬란하게 태우기를 선택한다.


사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할머니에게 설득되어 며칠의 말미를 더 주게 되고, 그 대가로 달콤하고 다채로운 맛의 풍미를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사신과 할머니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떤 것들을 체험하게 되는지 살펴보며 우리 삶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한다.


동화 같은 이탈리아의 베파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특별한 이벤트에 더해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곁들임으로써 죽음이 꼭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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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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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외딴 집에 혼자 살면서 매일 고단한 날들을 보내며 살고 있다. 할머니에게 유일한 낙은 저녁에 창가에 앉아 해가 저무는 풍경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수십 년을 보낸 할머니의 얼굴에는 어느덧 셀 수 없이 많은 주름이 생겼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오자 집집마다 둥글고 흰 눈지붕이 생겼는데,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외딴 집에도 설탕과 향신료에 졸인 귤 향기가 가득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커다란 솥을 활용해 특별한 크리스마스 빵도 만들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제껏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 없고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오직 할머니만의 비법이었다.


그 무렵, 하얀 눈길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할머니를 죽음으로 이끌 사신의 그림자였다. 검은 그림자는 외딴 집에 다가와 문을 두드렸고 이에 할머니는 흔쾌히 문을 열어주게 된다.


여인의 목소리를 가진 사신은 할머니를 향해 "나랑 갑시다"라는 말을 건넸는데,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빵에 넣을 소가 완성될 참이라며 이것만 만들고 가자며 사신을 설득하면서 대뜸 사신의 입에 소를 집어넣는다.


이때 난데없이 입으로 들어온 나무 주걱으로 인해 사신은 당황함과 동시에 돌연 입안에 퍼지는 건포도 조각 맛에 흠뻑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할머니는 일주일 뒤에 보자는 말과 함께 사신을 집 밖으로 내쫓아낸다.


처음으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사신은 화가 났지만, 분한 마음을 삭히며 돌아간 뒤, 사흘 만에 다시 외딴 집을 찾게 된다.


할머니는 김이 잔뜩 서린 부엌 안에서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식탁 위에는 눈처럼 고운 설탕 가구가 흩뿌려진 모습의 빵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사신은 순간 허기를 느꼈지만, 일단 외면하며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할머니는 다정하게 사신을 맞이했고, 약속대로 빵을 맛볼 수 있게 내어준다. 사신은 온갖 풍미가 가득한 빵을 맛보며 생의 맛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설탕 가루까지 싹싹 핥아먹은 사신은 이제 자루를 채울 준비를 하지만, 이번에는 아몬드로 누가를 만들 거라는 말로 하루를 더 연장해 달라는 할머니의 요청에 사신은 또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바삭하고 달콤한 누가를 맛볼 생각에 하루를 더 연장해 주게 되고, 이튿날 내리는 눈을 밟으며 누가 생각에 빠져 다시 외딴 집으로 향하게 된다.


사신은 살면서 평생 이토록 기쁘거나 설렌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생기마저 도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된다.


할머니는 놀랄 아이들을 배려해 시커먼 망토 대신 색색의 숄을 입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사신은 색색의 숄을 입고 아이들과 바삭하게 구운 호두와 누가, 그 외 참깨 사탕 등 풍미 가득한 음식들을 나눠먹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사신은 문득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게 되고,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가자고 재촉하지만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를 위한 팡도르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며 하루만 더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사신은 또다시 말랑하게 마음이 부풀었고 이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도 할머니의 말에 따라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크리스마스 날, 사신은 할머니의 집을 찾았고 이번에도 할머니는 따뜻하게 사신을 맞이해 준다.


사신은 아이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받았는데, 그중에는 별처럼 가득 빛나는 할머니의 팡도르도 있었다. 사신은 할머니가 건네는 핫초코와 함께 팡도르를 맛보며 달콤한 맛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쯤 되고 보니 사신은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말지를 두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이 마음을 알아챈 할머니는 사신에게 이제 그만 가자고 말한다.


할머니는 찰다 속에 자신만 알고 있는 레시피를 숨겨 두었으니 이제 비밀은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하며 사신과 함께 외딴 집을 나서게 된다.


그렇게 집과 나무들은 유령처럼 희미해졌고 두 여인의 뒷모습은 솜사탕처럼 가벼워졌다. 둘은 안갯속으로 점점 멀어져 갔고 그렇게 할머니는 강 건너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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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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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 자기 일을 해나갔지만, 크리스마스만 되면 약간의 게으름을 피우며 과자 욕심을 부렸다. 한편, 할머니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는데 다만 이상한 소문 하나만 무성하게 퍼져나갔다.


1월의 추운 겨울밤이면 지붕 위를 돌아다니며 굴뚝을 들락거리는 할머니가 있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양말 속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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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숨겨진 전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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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타 할머니 '베파나' 전설의 활용!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베파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성 니콜라스 축일인 1월 6일에 아이들이 베파나 할머니의 선물을 받는 전통이 있다.


베파타는 처음 보면 누구라도 마녀라고 생각할 만큼, 큰 코에 주름투성이인 못생긴 얼굴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 하지만 실은 아주 마음이 착한 할머니이며, 디저트를 만드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2. 디저트 속에 숨겨진 이탈리아의 전설

할머니가 만드는 디저트 속에는 이탈리아의 오랜 전설이 깃들어 있는데, 바로 '스폰가타' 이야기다. 스폰가타는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로, 이탈리아에서도 각 가문의 비법으로만 전수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나무주걱인데, 실제 스폰가타를 만드는 나무 주걱 역시 집안의 여인들이 결혼할 때 대물림되며, 반드시 물려받은 나무 주걱으로 소를 만들어야 스폰가타가 제대로 완성된다고 한다. 게다가 스폰가타는 만드는 과정에도 공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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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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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있는 할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맛을 통해 삶을 보여준다. 더불어 마지막 크리스마스 음식을 만들기 위해 며칠을 유예하면서까지 하루하루 공을 들여 음식을 빚어낸다.


그리고 눈과 귀를 자극하는 다채로운 식탁 앞에 아이들은 물론 사신도 기꺼이 초대하며 온정을 베푼다. 사신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이내 할머니의 음식에 빠져들며 동화되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이들과 사신이 한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장면은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할머니와 삶 속에 존재하는 풍미 가득한 음식에 빠져드는 사신의 모습은 대조됨과 동시에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림책에서 이것은 색으로도 표현되는데, 붉디붉은색은 활활 타오르는 생명력을,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끝난 후 할머니는 결국 자발적으로 사신을 따라감으로써 우리는 할머니의 죽음을 예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할머니는 자신만 아는 비법을 팡도르에 넣어 아이들에게 전수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 계속 전해질 것이다.


또 마지막 검은색 구멍을 통과해 나오는 이미지를 통해 또 다른 삶이 이어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생명은 어찌 보면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순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삶이 있다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이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사신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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