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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2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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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헌책방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서점.
여기에는 소소한 이야기가 가득 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 또한, 이 서점에 담겨 있다.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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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1편의 느낌이 좋아 연이어 2편까지 읽게 되었는데, 2편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담았다기보다 1편의 후일담이 담긴 느낌이었다.
5년간 집을 나가 행방불명 되었다가 돌아온 외숙모, 여전히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토루 외삼촌, 스보루 카페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친해진 도모 짱, 도모짱을 짝사랑했던 다카노 군, 그리고 스보루 카페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친분을 쌓게 된 와다 씨 외에도 모리사키 서점에 방문하는 여러 단골들과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2편에서 만나며 이제서야 뭔가 제대로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더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서툴렀던 다카코의 성장담까지 만나면서 책이 주는 위안과 헌책방만이 주는 분위기, 그리고 이웃 간에 나누는 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항상 '빨리빨리'에 젖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어쩐지 '느리지만 확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느낌이 들어 더 집중하며 읽게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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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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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진보초 거리에 있는 '모리사키 서점'
도쿄의 진보초. 거리에 있는 거의 모든 가게가 서점인 조금 독특한 거리다. 이곳의 서점을 전부 합치면 170곳이 넘는다고 하는데, 거리에 책방만 내리 이어지는 광경은 제법 장관이다.
큰길 하나만 건너면 오피스빌딩이 늘어선 거리인데, 이 일대만은 정취 있는 건물이 이어진다. 주변의 간섭에서도 멋들어지게 동떨어져 있는, 마치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장소는 바로 모리사키 서점으로, 일본 근대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헌책방이다.
외삼촌은 모리사키 서점의 3대째 주인으로, 다만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외증조 할아버지가 시작한 초대 점포는 이미 사라졌고, 이 모리사키 서점은 40년쯤 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 모리사키 서점은 전통적인 목조로 된 2층 집에 딱 봐도 '헌책방'처럼 예스러운 정취를 풍기는 가게로 실내도 좁아서 한 번에 손님 다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찬다.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모리사키 서점에서 다루는 특수한 서적 때문인지 손님도 조금 독특한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보통 말수가 적고, 오로지 열중해서 책을 찾다가 돌아간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다들 반드시 단독으로 행동한다.
선반에는 기본적으로 100엔부터 500엔짜리 저렴한 책이 꽂혀 있는데, 유명 작가의 초판본 같은 희귀 서적도 다룬다.
■스보루 카페
'스보루'는 모리사키 서점에서 걸어서 3분이면 가는 카페로, 이 카페는 남자친구인 와다 씨와 만나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와다 씨의 직장이 이 근처여서 거리상으로도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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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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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코
-스물여덟 살
-3년 전 모리사키 서점에 처음 찾은 후로 꾸준히 방문 중
●모리사키 사토루
-다카코의 외삼촌
-모리사키 서점의 3대째 주인
●모모코
-다카코의 외숙모이자 사토루의 아내
-어떤 사정으로 5년 정도 외삼촌과 떨어져서 살다가 한 달쯤 전에 무사히 돌아옴. 그 후로는 외삼촌과 함께 서점을 꾸리고 있다.
●와다씨
-1년 전 어느 날 밤, 스보루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커피를 마신 것을 계기로 가까워짐.
-원래 모리사키 서점 손님이어서 얼굴은 알았지만 제대로 대화한 건 그때가 처음
-여름 직전부터 사귀기 시작해 아직 석 달 밖에 되지 않음
●도모짱
-과거 스보루 카페에서 일하던 알바생
-다카코와는 절친이 됨
●다카노 군
-여전히 도모짱을 짝사랑 중
-현재도 '스보루' 카페에서 알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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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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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는 앞서 1편에서 다루었던 에피소드와 관계들이 진척되거나 정리되는 식으로 다뤄진다. 발랄하고 씩씩해 보였던 도모짱의 숨겨진 사연, 다시 암이 재발해 시한부 인생을 살다 사망하는 모모코 외숙모, 이에 큰 슬픔에 잠긴 외삼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곁을 지키는 다카코, 그리고 응원과 힘을 보태주는 단골손님들과 주변 이웃들, 여전히 도모짱을 짝사랑하고 있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며 그녀의 속도에 맞춰주고 있는 다카노군까지.
이들이 함께 연대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2편에서 다뤄지며 아픔과 슬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적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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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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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의외로 어렵구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대상이라면 더 그렇다.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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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다. 소중한 사람이 대상이라면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는 것은 의외로 더 어렵게 느껴진다. 소중하기 때문에, 관계를 망칠까 봐 어쩌면 우리는 더 조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 내 마음을 똑바로 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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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울었다. 같이 큰 소리를 내 엉엉 울었다. 외삼촌이 쓰러지듯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쌌다. 나는 그 옆에서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삼촌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우리의 오열이 한밤중의 서점에 메아리쳤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져 공기가 덜덜 떨렸다.
마치 이 서점이 하나가 되어 모모코 외숙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외숙모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음껏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은 마를 줄 몰랐다.
그 목소리가 언제까지나 서점을 울렸다.
밤은 길고 깊고, 우리를, 모리사키 서점을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262~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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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해 마지않던 아내 모모코가 암으로 사망한 이후 홀로 남은 외삼촌은 혼자 방에 틀어박혀 매일을 보낸다.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있던 모리사키 서점마저 문을 닫고 두문불출하게 된다.
다카코는 생전 외숙모의 부탁을 잊지 않고, 외삼촌을 찾아가 도움을 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서점 구석에서 외숙모가 남긴 유서와 메모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순간 서점으로 뛰어든 외삼촌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둘은 함께 외숙모가 남긴 마지막 글을 읽게 된다. 그리고 이내 둘은 펑펑 울면서 마지막 애도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위의 글을 그 시간에 대해 서술한 장면으로 이때만큼은 어둠 속에 잠식된 컴컴한 서점이 어쩐지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모두의 추억이 깊게 베여있는 그 공간이라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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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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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헌책방에 대한 추억을 이 책 덕분에 새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어딘가 낡고 헤진 느낌이지만, 골목 구석구석 자그마한 가게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어 언제 들러도 허전하다 느껴지지 않던 골목의 풍경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쓰러질 듯 위태하게 쌓여있는 책들 사이를 오갈 때면 어김없이 나던 곰팡내들까지.
이제는 '그땐 그랬지'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어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추억담을 이렇게 소설을 통해 만나고 보니, 어쩌면 이런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구석진 어딘가 쭈그려 앉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양껏 책을 읽는 시간은 그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최고의 호화 시간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만의 힐링과 위로의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다시 무언갈해볼 용기도 내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도 낼 수 있을 텐데 한동안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해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조금 정리되면, 이들처럼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어 한동안은 책 속에 파묻혀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 속에서 마음껏 웃고 울고 화내고 짜증 부리며 감정을 털어낸 뒤에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어보는 것이다.
다카코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