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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 맛있는 위로의 시간 ㅣ 나와 잘 지내는 시간 2
강효진 지음 / 구름의시간 / 2022년 12월
평점 :
"음식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상한 신세 한탄 이야기"
첫 챕터를 읽자마자 읽기를 중단하고 이 책을 바로 반납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제목이나 소개 글에 언급된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 때문이었다.
분명 음식과 관련된, 힐링과 위로가 키워드가 되는 책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건데, 어째서 첫 챕터부터 강력한 스트레스 유발 내용으로 불쾌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첫 챕터만 읽고 그대로 책을 덮어두고 한동안 방치해두었다. 그리고 반납 기일이 다가올 때쯤 이왕 빌린 거 그냥 끝까지 무슨 소리를 하나 읽어보자는 심산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독 후 내린 결론은, 유아기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마인드의 어른아이(어른이 아이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가 어른 흉내를 내며 쓴 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음식과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엮은 책으로, 기본적인 형태는 '에피소드에 얽힌 이야기+음식을 만드는 방법'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음식을 통해 힘을 얻거나 힐링을 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담겨있는 다른 이야기가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엄마와의 관계, 음식에 대한 집착, 성인 분리불안 증세, 신세한탄과 같은 이야기들이 음식 이야기에 밀려 오히려 신세한탄을 위해 오히려 음식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좀처럼 불쾌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초반에는 엄마와의 이야기 때문에, 중반 이후에는 음식에 대한 집착과 애정결핍과 같은 내용들이 이어지며 '왜 저럴까?'하는 의문만을 남겼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저자의 마음속에는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이토록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래는 내 마음에 툭 불거진 의문감과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들을 담은 문장들을 몇 가지 발췌해서 정리해 보았다.
사실 다른 독자들은 어떤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 검색을 통해 랜덤으로 확인해 봤는데, 대부분 출판사에서 의도한 내용만을 전하는 무난한 수준만 확인되었다.
그래서 다른 시각으로 본 내 글을 읽은 또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 글만 읽은 독자들, 먼저 책을 읽고 내 글도 함께 읽은 독자들 모두 말이다.
먼저 배경을 설명해두는 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저자는 엄마의 그늘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이로써 엄마와는 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 말예 따르면 결혼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관계가 결혼 후에도 이어졌으며(엄마는 술을 먹고 1시간 이상 통화를 하며 외롭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함) 이로 인해 꽤나 힘든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가족은 4명이며, 아버지는 엄마와 살고 있고, 여동생이 있는데 독립했음)
이로 인해 엄마와의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저자 스스로 생각하지만, 저자 자신도 그러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엄마 탓처럼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엄마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저자다.
여하튼 그러다가 엄마가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빠와 함께 먼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후 엄마는 강아지를 들이고 이제는 사뭇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연락이 안 되거나 없을 때는 저자가 먼저 몇 번이고 걸어서 통화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릴 때 많이 아팠던 엄마로 인해 사랑 표현을 받지 못하고 자란듯하다. 엄마는 늘상 불면에 시달렸고 때문에 뒤늦게 잠든 엄마로 인해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늘상 아빠였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는 다르게 아빠가 싸준 도시락은 반찬들이 뒤섞여 창피했다고 서술하는 장면도 확인됨)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자는 식탐이 강하고 대식가이며,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에게조차 맛있는 것을 나눠먹을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을 저자는 주나 씨라고 부르며 본명인지 아니면 애칭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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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을 해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늦은 밤에 전화를 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전화벨이 울리면 그건 엄마가 그날 술을 마시고 몹시 슬퍼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내가 보고 싶다는, 내가 없어서 온 집안이 휑하다는 이야기. 엄마는 이렇게 슬픈데 너는 괜찮냐는 이야기. 술을 마시고 집에 왔는데 내가 없다며 엄마는 울먹였다. 그런 전화는 1시간 이상 계속되기 일쑤였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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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신세 한탄 이야기를 잘못 읽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불어 처음에는 좀 많이 아픈 엄마를 둔 저자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 엄마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또 자정이 가까워서 매번 전화하는 약간은 민폐를 주는 엄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옆에서 챙겨줄 아빠는 없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술+우울감+외로움 등의 복합적인 내용들이 포착되면서 혼자 두어도 되는 건가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초반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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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독립했으니 엄마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내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내게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옳았다. 하지만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서 내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엄마는 외롭고 힘들어졌다. 혼자 잘 지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지쳤지만, 그런 엄마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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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달랐다. 화자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엄마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저자라는 생각에 닿았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꿈꿨다. 하지만 엄마로 인해 그 노력이 무산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가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빠와 함께 더 먼 곳으로 이사하며 한동안 전화도 끊기고 강아지를 입양해 즐겁게 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취미생활도 갖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이제는 외로움이나 헛헛함에서 조금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는 저자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엄마와 통화가 될 때까지 연락을 하고,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저자 자신이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의 곁에는 엄마와 한평생을 함께 한 아빠가 있는데, 모녀는 왜 이러는 걸까? (아빠가 돌아가시거나 엄마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니었음)
이쯤 되니, 엄마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몸이 아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의지하던 딸이 결혼하면서 느끼는 헛헛함 정도로 생각된다. 다소 과한 반응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한동안 그러다 말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엄마와 거리감을 두고 싶다고 하면서도 놓지를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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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두려운 건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부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데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있어도 잘못되었다며 선을 그어버리는 세상이 나는 더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빌려 떨쳐낸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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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배우자는 결혼하면서 자녀를 두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변 시선이 따가워 때론 두려움을 느낀다.
부부간에 합의된 사항이나 자녀를 낳고 낳지 않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가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자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다.
잘 키울 자신도 없고, 그런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대체 모녀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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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홍차를 절제하면서 나와 카페인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균형을 잡고 나니 오히려 카페인이 허락된 날이면 홍차의 맛과 향에 내 맛봉오리를 더욱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했다. 절제한 만큼 기쁨이 커지고, 적절한 거리 안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나를 잘 알고 나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사랑하기.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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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거리를 넓히는 데에는 실패한 저자는 음식을 통해 힐링을 하는 듯하다. 카페인 섭취 시 수면 등의 문제가 생기는 저자는 절제하는 시간을 통해 오히려 더 맛과 향을 깊이 만나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절제와 거리 둠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회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 멀리 치워두고, 다른 대안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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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이 온실 재배된 비싼 오이를 구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먹었을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나는 이렇게 편안하고 우아하게 즐긴다. 귀족도 안 부러운 맛. 이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아직까지 주나 씨에게는 만들어 준 적이 없다.
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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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남편 주나 씨에 대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런 유일무이한 사람에게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은 그토록 맛있게 몇 번을 해먹으며 힐링과 위로를 맛본 음식인데, 너무 맛있어서라는 이유로 만들어 준 적이 없단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은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멋진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저자는 맛있으니깐 나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심보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음식에 대해 언급할 때 이런 식의 생각이나 심정이 담긴 글이 후반부에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마음속에 덜 자란 아이가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그런 배우자를 만난다면, 오히려 많이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내 감정과 사랑을 오롯이 나눌 것 같은데, 저자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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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때 나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양보하거나 같이 먹자고 권하지 않는다. 나 먹기에도 너무나 바쁜 사람, 먹을 때만큼은 내 코가 석 자인 사람, 그게 바로 나니까. 그곳에서 나는 그만 한 마리 염소가 된 것 같았다.
1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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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당당히 말한다. 저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하거나 권하지 않는다고. 자기 먹기에도 바쁘며 내 코가 석자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게 자신이란다.
보통 이런 행동은 미취학 아동들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하는 행동으로, 이럴 때 부모가 나서서 교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맛있는 건 나만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음식으로 뭔가를 푸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애정결핍, 성인 분리불안 등의 여러 불안 증세들을 정작 엄마와는 풀지 못하고, 음식을 통해 대체해서 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신기하게 저자가 이토록 잘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남편을 비롯해 주변에 꽤 괜찮은 지인들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그녀 주변에는 손수 맛있는 음식을 가득 차려 매번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지인들이 있고, 무엇을 하든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남편이 있다. 또 맛있는 반찬을 해주시는 시어머니까지.
개인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일화가 하나 있는데, 묵을 집에서 직접 쑤어서 먹었다는 일화에서 엄마와 통화하며 묵 이야기를 했다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묵을 만들었다는 문장을 읽으며 엄마에게도 만들어서 보내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엄마가 잘 먹지 못한다거나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에피소드가 앞에 있었음)
저자는 자신이 만든 맛있는 묵을 혼자 먹었다. 엄마에게는 똑같은 묵가루를 보냈다. 엄마는 알아서 혼자 만들어 드셨던 듯하다.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다는 맥락과는 일치하지만, 아픈 엄마에게 묵사발 정도는 만들어서 보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평소보다 많이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떼어서 보내줄 수는 없었을까? 묵 만드는 게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그 시간을 단축시켜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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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몇몇 글들은 어떤 곳에 기고했던 글도 있는듯하다. 그 매체는 무엇을 보고 글을 실었던 걸까?
힐링과 위로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사실은 신세한탄의 글로 가득 채워진 저자 자신만 대접받았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최종 소감이다.
제목은, '오늘도 나만 대접합니다'로 고쳐 써야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