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시선
이재성 지음 / 성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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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스무 살의 저자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쓴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소재를 보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의외로 느끼는 바는 다양하다.


학교를 오가며, 운동을 하며, 매일 거닐었을 길과 풍경들, 그리고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당시의 생각과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섰을 때의 고뇌와 꿈,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던 풍경들을 담아낸 시를 읽으며, 모처럼 나 역시 스무 살의 날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총 2부 100편으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저자의 SNS를 통해 독자들이 선정한 60편의 시와 저자가 직접 고른 40편의 시가 담겨 있다.


운동을 그만둘 때쯤인 열아홉 살부터 쓰기 시작해 스무 살까지 쓴 시를 엮어 만들었다는 이 시집에는 그래서인지 청년의 고뇌와 꿈, 불안, 사랑 등 다양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어떤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의 큰 변화를 맞게 되는 스무 살, 그리고 그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떠한지를 이 시를 통해 살펴보며, 우리의 초심과 스무 살의 날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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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 안 양말이 다 젖도록

눈을 밟아대며 놀았던 내가


이젠 신발이 젖을까 봐

눈을 피해 걷는다


머리 위로 흰 눈이 날릴 때면

입을 벌려 눈을 먹어대던 내가


이젠 머리가 젖을까 봐

우산을 챙겨 나간다


나는 눈이 싫어지지 않았는데

우리 사이는 언제부터 멀어진 걸까...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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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문득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눈이 싫어지지는 않았는데 왜 이토록 사이가 멀어진 걸까? 이게 바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 걸까?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먹었다. 어쩌면 저자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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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하늘은

세상에서 제일 큰 미술관


매일매일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는

잘나가는 미술관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열려있는

연중무휴 미술관


남녀노소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세상 착한 미술관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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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하다. 언젠가부터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보고는 하는데(특히 여행가서는 더 하늘을 자주 올려다 봄),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조차 한 번도 하늘을 보며 미술관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니, 그냥 하늘을 볼 때보다 어쩐지 더 신나는 기분으로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만나볼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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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거칠고 까칠한 면으로


나를 긁어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입히려

끊임없이 나를 무시하고 깎아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긁어대고 깎아내릴수록


'나'라는 작품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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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나를 깎아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징글징글'하다 생각하기만 했었는데, 뭔가 도 닦는 마음으로 '나'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생각하면, 조금은 화가 덜 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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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바늘



움직여야 한다는 말,

바로 시계가 그 말을 증거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느라

날씬해진 초침과,


그나마 조금씩은 움직여서

통통한 분침,


그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비만이 되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는

저 시침이 바로 그 증거이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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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발상이다. 시를 읽으며 시계를 쳐다보니 초침과 시침, 그리고 분침이 달리 보인다. 사람도 움직임이 줄어들면 비만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는데, 어쩌면 시계에 비유해서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움직여야겠다. 날씬한 초침처럼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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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감성에서 조금 더 성숙한 면모를 가진 시인의 이야기를 '시'를 통해 만나보았다. 비슷한 주제(이를테면 '눈', '별')가 많았음에도, 다른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보며 변화무쌍한 시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스무 살이기에 느낄 수 있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스무 살은 불확실함이 넘쳐나는 시기이고, 그렇기에 불행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영감이 되기도 했다가 또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불행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청춘. 이 시를 읽으며 잠시 나 역시 스무 살이 되어 청춘의 맛에 퐁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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