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서사원 일본 소설 3
이즈미 유타카 지음, 이은미 옮김 / 서사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말끔히 세탁해 주는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살짝 실망감이 밀려들 때쯤 다시 찾아온 매서운 추위. 덕분에 적응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 금세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때 만나게 된 소설 한편이 있는데, 바로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다.

예전에는 긴긴 겨울을 나는 방법으로 방구석에 콕 틀어박혀 이불을 온몸에 둘둘 만 뒤에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는 했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모처럼 그때의 기분을 살려, 크리스마스를 소설책과 함께 보냈는데, 차가운 눈 속에 뒹굴다 먹게 된 따뜻한 코코아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상처 입은 이들이 등장한다.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점장 마나를 비롯해 3년간 악덕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다 탈탈 털리고 번아웃이 온 주인공 아카네, 그리고 세탁소에 방문하는 손님들 모두 그렇다.

어쩜 이리도 상처 입은 사람들만 모아 놓았을까 싶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을 고려해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또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코인 세탁소를 배경으로 '세탁하는 행위'와 '세탁 후 말끔해진 옷을 입었을 때의 기분'을 소재 삼아 이웃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설을 읽는 독자들 역시 보송한 촉각과 향기로운 후각, 깨끗해진 시각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세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의 '생존' 즉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상징하며, 저자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세탁이 살아감의 행위 중 하나라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한다.

이에 걸맞은 특히 도드라지는 에피소드로 '슌조'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는데, 슌조는 정년퇴직한 노년의 남자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아내가 사망하는 일을 겪게 된다.

집안일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던 터라 집안일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이었던 그는 간간이 몸을 수건으로 닦는 것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들른 딸아이가 심각한 아버지와 집 상태를 보고 잔소리를 퍼붓게 되고, 이를 견디다 못한 그는 세탁을 핑계로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로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마나와 아카네를 통해 자신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며,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다시 집안일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세탁이 왜 중요한지, 세탁을 통해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뽀송한 옷을 입고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오늘'을 다시 살아갈 힘에 대해 전하고 있는 이 소설을 그럼 지금부터 조금 더 자세히 만나보자.


=====
등장인물 소개
=====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2월 1일 리뉴얼 후 재오픈함
-영업시간: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
-오전 11시~12시 / 오후 3시~4시에는 세탁 대행 접수를 하지 않음(점장의 휴식시간)

***

■나카지마 아카네
-가족관계: 부모님과 자신 그리고 열두 살 된 골든리트리버 네네
-대학 졸업 후 요코하마의 악덕 부동산 회사에서 3년간 일하다가 홧김에 그만두고 현재는 백수 상태
-평소 외모로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음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실적 압박과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피폐하게 살았음. 덕분에 집을 소개한 세입자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음
-보름 만에 마음먹고 세탁기를 돌려보려 하지만 고장 난 세탁기로 인해 집 근처 코인 세탁소를 찾아가면서 세탁소와의 인연이 시작됨


■아라이 마나
-서른여덞 살
-코인 세탁소의 점장
-셀프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탁 대행도 함께 하고 있음
-세탁소 운영전에는 오랫동안 요양원에서 근무함
-싱글맘이었던 엄마로부터 어렸을 때 방임학대를 당함
-초등학교 3학년 때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면서 처음 빨래를 해봄
-처음으로 뽀송뽀송하고 은은한 세제 향이 베어든 옷을 입었을 때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됨
-보육원을 나온 뒤로는 야간 전문학교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비샤미치에 있는 요양원에서 일함. 그러다가 방문 요양보호사로 이직하면서 에비하라 씨라는 분을 만났고 덕분에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를 시작할 수 있었음 (에비하라씨는 노부인 자산가임)

***

■오쓰카
-서른다섯 살로 이혼남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의 단골 중 한 명
-직장인(월요일과 금요일은 재택근무)
-아카네가 처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 방문했을 때 마주한 사람
-세련된 옷차림으로 재택근무하는 날에는 세탁소에 매번 등장하여 애플 로고가 박혀있는 맥북을 펼쳐놓고 일을 함


■스즈키 켄고
-간나이역에서 게이힌도호쿠 네기시선 쪽에 위치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1학년 학생
-현재 학교 근처 연립주택에서 자취 중
-늘 돈키호테의 비닐봉지를 세탁기 유리문에 걸어놓고 방치하여 아카네가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임


■다카오카 오사무
-리스토란테 다카오카 레스토랑의 사장이자 셰프
-미쓰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다카오카 미쓰루
-클리닝 다카오카(세탁소)를 운영 중
-마나가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딸 때 도움을 준 사람


■가미야 시오리
-남편과 이혼 후 18개월 된 딸 리리카와 함께 얼마 전 이사 옴
-세 살 연상의 남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후배와 바람이 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됨
-싱글맘에 무일푼 신세지만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 중


■슌조
-가족관계: 죽은 아내와 외동딸 사치코(사치코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한 달 전 아내 히사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있음
-정년퇴직 후에도 집안일은 아내가 모두 도맡아 했기에 혼자 남겨지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됨
-오랜만에 방문한 딸아이의 잔소리를 피해 간 곳이 마침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였음


■다니구치 쇼
-10대 학생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주먹을 휘둘러 엄마를 다치게 한 뒤 도망침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세탁소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목격자들에 의해 발각되었고, 추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됨


■오카모토 나카지마
-아카네가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고객
-직업은 파견직 시스템 엔지니어
-오로지 해가 잘 드는 집을 찾아달라는 오카모토씨의 요청에 매번 집주인에게 시달려왔던 애물단지를 떠넘김으로써 아카네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


=====
스토리 살펴보기
=====

대학 졸업 후 3년간 악덕 부동산 회사를 다니며 영혼까지 털털 털린 아카네는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보름 째 집 안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낸다.

이 사실을 부모님이나 소꿉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그녀는 혼자 끙끙 앓으며 보름을 지내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폐인이 될 것 같다는 두려운 마음에 밀려있는 빨래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3년 전 중고로 마련한 드럼식 세탁건조기는 작동 버튼이 고장 나 먹통이 되었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지도 앱을 통해 집 근처 코인세탁소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집 근처에 있는 코인세탁소를 발견한 그녀는 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들어서려는 순간 세련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순간 멈칫하게 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모습에 돌아서려던 순간 누군가 자신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데님 재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가냘픈 인상의 여자로, 코인 세탁소의 점장을 맡고 있는 마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개를 하며 세탁소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고 말하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간신히 세탁을 마칠쯤 우연히 창밖으로 지나가던 오카모토씨를 보게 된 아카네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실적을 위해 좋지 않은 매물을 떠넘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죄책감을 느낀 그녀는 도망치듯 세탁물을 가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건조도 하지 못한 빨랫감을 말리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에 걸어두지만 빨래는 잘 마르지 않는다. 젖은 채로 그냥 입을까 잠시 생각도 해봤지만, 어쩐지 덜 마른 빨래처럼 비참한 생활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다시 빨래를 걷어 코인 세탁소로 향한다.

그리고 건조대에 넣어 돌린지 얼마 안 돼 뽀송하고 부드러운 빨래를 만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어쩐지 마음이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후 한층 너그러워진 아카네의 마음에 더해 다정하게 대해준 마나를 산책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둘은 친분을 쌓게 되고, 체력적 한계로 인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생각이 있다는 마나의 말에 덜컥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마나가 점장으로 있는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 아카네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주 5일,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고 점심시간은 1시간, 휴일은 수요일과 일요일로 일을 하면서 어느새 육 개월에 접어든 아카네는 이제 코인 세탁소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카네는 점차 마나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세탁소에 방문하는 이웃들과도 친분을 나누게 되고, 관계를 맺는 법, 세탁이 주는 힘, 일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깨우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된다.

아카네는 이제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위태롭던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마나 씨를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추측건대 이후에는 새로운 연인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카네는 3년간의 회사일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하지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좋은 이웃이 있었다. 저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처음에는 서로 부딪히는 사건들도 있었지만, 이내 서로 보듬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

먼저 마나의 세탁 스승인 미쓰루 씨는 자연스러운 핑계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오사무 씨는 리스토란테 다가코카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기꺼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첫 만남부터 무례함으로 다가왔던 오쓰카 씨는 사실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렀다. 하지만 마나 씨의 직구에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깨우치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탁건조기에 늘 돈키호테의 비닐봉지를 유리문에 걸어놓고 방치함으로써 아카네의 눈총을 샀던 스즈키 켄고는 사실 첫 자취생활이 녹록지 않아 빨래를 제때 찾아갈 수 없었음을 알게 된다.

명품 옷을 걸친 아기 엄마 가미야 시오리는 처음에 날카롭게 다가왔지만, 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후배와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싱글맘이 된 무일푼의 아기 엄마임을 알 수 있었다. 추후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다소 덜렁이라는 점이었다.

한 달 전 아내 히사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슌조는 홀로 집에 남겨진 상태다. 씻는 것은 물론 세탁 등 집안일에 문외한인 그는 그저 방치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집에 들른 외동딸은 잔소리를 퍼붓게 되고 이로 인해 코인 세탁소로 도망친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다소 까탈스럽고 무례한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방어자세를 취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나와 아카네는 솔직하게 현 상태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세탁 방법과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권한다.

어느 날 세탁소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다니구치 쇼는 비행청소년으로,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고 도망쳐 다니는 10대 소년이다. 방임학대로 방황하는 것을 알게 된 이웃들은 그에게 옷과 먹을 것, 지낼 곳을 알아봐 주며 소년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한때 아카네의 죄책감 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오카모토 나카지마는 비행청소년인 다니구치 쇼를 돕는 과정에서 재회하게 되면서 아카네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

-----
다들 자기가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기에 아카네는 업무에 관해 상담하거나 의지할 만한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고독했다.
24페이지 中
-----

첫 직장에서 아카네는 무리한 영업 방식과 성과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직률이 높아 입사한 지 반년 만에 부점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면서 그 부담감은 더했다.

여기에 더해 점장이 큰 키를 두고 희롱하는 말을 할 때면, 웃음거리가 되고는 했는데, 하지만 아카네는 그저 홀로 견뎌야만 했다. 그렇게 일상은 망가졌고 심하게 번아웃이 왔다.

아카네의 일상을 살펴보며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네의 삶을 보며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던 때의 기억. 마음이 완전히 오염되어서 새까맣게 변해버렸던 날들에 관한 기억이었다.
33페이지 中
-----

'마음이 완전히 오염되어서 새까맣게 변했다'는 느낌을 나는 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카네는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자부심은커녕 '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일'이라는 말로 얼마나 괴로운 일상을 보냈는지를 말해준다.

3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첫 직장에서 보내는 근속 기간이 1년도 안된다고 들었는데 현시대를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한다.


-----
빨래를 손에 들고 잠시 망설였다. 그냥 이대로 입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아니야 그런 건 싫어.'
몸서리치듯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덜 마른 빨래처럼 비참한 생활은 더는 사양이었다.
34페이지 中
-----

뽀송하게 말린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늘 축축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매일 아침에 눈뜨는 것조차 몸서리치게 싫었으리라.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점점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여유도 사라져 갔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씩 매일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
마나가 말한 대로 바짝 말라 있어서 햇볕에 말린 듯한 냄새와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을 끌어안은 것처럼 마음이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없던 힘을 짜내서 세탁하러 오기를 정말 잘했다.
41페이지 中
-----

바로 이런 게 소확행이 아닐까?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와 냄새를 머금은 깨끗한 세탁물을 한껏 끌어안는 것.

그럴 때면 한껏 날카로워진 신경들도 짐짓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진다.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며, 편안한 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한 발짝 내디딜 힘이 없어 겨우 코인 세탁소에 들렸지만, 덕분에 아카네는 좋은 기운과 힘을 얻고 갈 수 있었다. 모처럼 깨끗한 옷을 입고 산책도 가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얼룩진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들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내디딜 수 있었다.


-----
"세상은 계속 변해요. 옛날 가치관으로 요즘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되듯, 우리도 지금의 가치관으로 이전 세대의 삶을 부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요양원에서 일할 때 항상 그렇게 스스로 되뇌곤 했어요."
204페이지 中
-----

세상은 변한다. 그래서 옛날 가치관으로 요즘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처 반대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늘 이전 세대가 요즘 사람들을 두고 훈계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만 봐서 더 '왜 저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것 같다)

아카네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종종 세탁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하거나 경고성 글로 주의를 주자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마나는 다독이며 때론 다정하게, 또 어떨 때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아카네에게 깨달음을 전한다. 이는 비단 아카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손님들에게도 강약을 조절하며 핵심을 잘 전달하는 덕분에 관계가 잘 풀리는 것은 물론 좋은 이웃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문장인 동시에, 현실 속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일이기에.


=====
마무리
=====

코인 세탁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문득 '현실+판타지'가 결합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네나 이웃들이 겪는 상황들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세탁소를 거치며 변화하는 삶은 어쩐지 판타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요즘 세상에는 남모르는 이에게 함부로 거대한 유산을 상속하지 않는다. 더불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아프다는 이유로 집 주소를 마구 알려주지도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선의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베푸는 일도 드물다.

그렇듯 현실에는 잘 일어나지 않는 기적 같은 일들이기에 어쩌면 판타지적 요소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구깃 했던 마음이 깨끗하게 펴진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뽀송뽀송한 햇빛 냄새와 부드러운 촉감을 한껏 느낀 기분이다.

때때로 우리는 무기력에 빠져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렇게나 쌓인 빨랫감처럼 지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대청소를 해보면 어떨까? 묵을 때를 박박 씻어내다 보면, 어느새 개운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몸에 붙은 무기력과 아픔을 털어내다 보면 어느새 더러운 얼룩이 조금씩 옅어지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언급된 에피소드들처럼, 저편에는 여전히 악덕 기업가나 바람피우는 배우자, 방임하는 부모 등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묵혀둔 냄새 나는 빨래처럼 살지는 말자. 씩씩하게 일어나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밖으로 나가 한껏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먼지나 얼룩은 툭툭 털어버리고 힘차게 내 삶을 이어나가자.

p.s
일본 소설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중국음식들이다. 저자가 즐겨먹는 음식이 중국음식이거나 유난히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오죽하면 읽다가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소설인가 몇 번을 다시 살펴봤을 정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