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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쉼의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이 된 헌책방!"
'헌책방'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추억 때문인지, 불쑥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려 비로소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읽고 난 소감이 어떠냐고 한마디로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이런 공간 하나쯤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스토리상으로 크게 요동치는 내용은 없다. 인생에서 한 번쯤 겪는 고민과 변곡점은 있을지언정, 자극적이거나 매운맛없이 전개되는 스토리다.
하지만 나를 찾아가는 여정과 성장 포인트는 눈여겨볼 만하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책을 통해 치유받고, 또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가족과의 재회를 통해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모습, 여기에 더해 가까운 이웃들과 소통하며 단절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은 따뜻함과 위로를 건넨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외삼촌과의 일화와 외숙모와의 일화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두 이야기를 연결 짓는 중심에는 주인공인 다카코가 있다.
주요 배경이 되는 곳은, 세계 최고의 책방 거리인 진보초 고서점 거리 안에 있는 모리사키 서점으로, 이곳은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낡고 오래된 고서점이지만, 책에 둘러싸여 홀로 지내다 보면 어느새 평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덕분에 사토루 외삼촌이 그러했고, 주인공 다카코에 이어 모모코 외숙모까지 알차에 이 공간을 알차게 사용하게 된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모리사키 서점에 잠시 내려놓고, 쉼과 고독을 즐길 수 있었다. 곰팡내 나는 2층 어느 구석진 방 안에서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다.
나라 안팎으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들이치는 요즘, 마음을 녹여줄 책 한 권을 찾고 있다면 이 책으로 마음을 달래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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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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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
-세계 최고의 책방 거리인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는 약 170여 곳의 서점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다.
■나(다카코)
-스물다섯 살
-즉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로 인해 슬픔에 빠진 다나코는 10년 만에 재회하게 된 외삼촌의 제안으로 도쿄의 생활을 정리하고 여름이 시작된 때부터 다음 해 이름 봄까지 모리사키 서점 2층에 있는 빈방에서 책에 둘러싸여 지내게 된다.
■사토루 외삼촌
-40대
-모리사키 서점을 2대째 운영 중으로 약 10년 정도 되었다.
-모리야키 서점에는 일본의 근대 작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약 6000권 정도 보유 중이다.
■모모코 외숙모
-5년 전에 집을 나가 행방불명 상태였으나 갑작스레 돌아온다.
■히데아키
-세 살 많은 직장 선배이자 전 연인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 여사원과 결혼 예정으로 약 2년 반 전부터 만나온 사이
■히데아키의 약혼자 무라노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은 감지했으나 바람피우는 상대가 다나코인줄은 몰랐음
■사부
-20년 된 서점 단골손님
■스보루 카페 사장
-40대
-사토루 외삼촌과 다카코의 단골 카페 사장
■도모 짱
-스물세 살
-국문과 대학원 1학년생으로 빈 시간에 스보루에서 아르바이트로 홀서빙을 함
■다카노 군
-카페 아르바이트 생으로 주방 담당
-도모짱을 짝사랑하고 있음
■와다 아키라
-모리사키 서점의 단골손님 중 하나로 스보루 카페에도 자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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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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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코는 어느 날 같은 직장에 다니는 세 살 많은 직장 선배인 히데아키에게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 여직원과 결혼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 인해 멘붕에 빠진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있어 진지한 교제 상대가 아니라 그저 놀이 상대였다는 것을, 또 그동안 회사 내에서 둘의 관계를 비밀에 부친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순간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린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답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자취방에 홀로 남은 뒤에야 비로소 머리가 냉정해지면서 슬픔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다.
그 후로 같은 직장에 다니는 그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물론, 그의 약혼녀와도 식당이나 탕비실 등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참담한 나날들이 이어지게 된다.
이 일로 위장은 음식물을 거부했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게 되면서, 체중은 순식간에 줄게 되고 얼굴은 흙빛이 된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한 다카코는 마침내 상사에게 사표를 제출하게 된다.
그렇게 도쿄 자취방에서 홀로 지내며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오로지 잠에만 빠져든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휴대전화에서 낯선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알고 보니 엄마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사토루 외삼촌이 전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엄마의 성화가 두려웠던 다카코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려 10년 만에 통화를 하게 된 외삼촌은 당분간 서점에 와서 지내라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에 다른 대안이 없었던 그녀는 허리가 아파 가게를 열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외삼촌의 핑계에 못 이기는 척 도쿄 생활을 접고 2주 후 진보초역 모리사키 서점으로 향하게 된다.
진보초역은 낌새가 묘한 곳이었는데, 서점만 죽 늘어서 있는 유명한 헌책방 거리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외삼촌을 만나 간단한 서점 소개를 듣고 자신이 머물 방 청소를 한 후 그렇게 꿀잠 자는 첫 날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서점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다카코는 이곳으로 오고 나서도 불쑥불쑥 밀려오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계속해서 잠을 자는 것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가는 어느 날 밤 8시쯤 보다 못한 외삼촌이 퇴근 후 함께 나가자며 제안을 한다. 서점 근처에 있는 '스보루'라는 카페였는데, 커피가 맛있는 외삼촌의 단골 가게였다. 그곳에서 외삼촌과 가까이 지내는 이웃들을 소개받는 동시에 맛있는 커피도 맛보게 된다.
이날 이후 어느 날 문득 다카코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면서 책이라고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책 중 하나를 골라 읽기 시작한다.
그 책은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라는 책으로 한참을 빠져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된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출근한 외삼촌과 책에 대해 한바탕 얘기를 나눈 후로 그녀는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책을 읽어 치우기 시작한다. 마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독서 욕구가 팡! 하고 터져서 튀어나온 것처럼 한 권 한 권 읽어나간다.
그렇게 헌 책 속에 숨어 있는 많은 역사와 오랜 세월을 거쳐온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점차 헌 책이 주는 소소한 기쁨과 애정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이 조용하게 흐르는 작은 공간에 거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무척 귀중한 기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카코는 이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게 된다. 온전히 가을을 보내게 되면서 새로운 일과가 마음을 북돋워주었고, 마음도 서서히 치유됨을 느끼게 된다.
또 마음의 변화에 발맞추듯 거리에 아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는데, 스보루 사장님과 그 직원들이 그랬다. 특히 아르바이트생 도모짱과는 아주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둘은 함께 가을 헌책 축제에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헌책 축제 이후 다카코는 인생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나가 홀로 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다카코에게 새 출발을 하게 되는 계기가 찾아오게 된다.
그 사건은 1월 2일 새해 연휴 홀로 서점에서 보내던 중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는데, 연락처 목록에서 지웠지만 통화내역에 남은 번호를 보고 유추할 수 있는, 전 남자친구 히데아키에게 가벼운 만남을 제안받는 메시지를 보게 되면서 다카코는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새해 연휴가 지난 뒤에도 무겁고 차가운 기분은 가시지 않아 응어리진 채 침울한 상태로 보내던 중 외삼촌에게 여태까지의 상황을 모두 털어놓게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그 길로 사과받으러 가자며 여기서 도망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외삼촌의 말에 마음을 먹은 다카코는 택시를 타고 40분이나 걸려 히데아키가 사는 맨션으로 가게 된다.
쫄딱 비를 맞은 상태로 그를 마주한 다카코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를 각오하고 힘주어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게 된다.
사과받고 싶어서 왔다며, 진심으로 좋아했었다고, 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아느냐며 속시원히 꼭꼭 감춰둔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토해낸다.
그렇게 입 밖으로 모든 내용을 털어놓은 다카코는 외삼촌과 함께 다시 서점으로 돌아오게 되고, 비로소 응어리진 마음을 풀게 된다. 평생 이렇게 큰 소리로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해본 건 처음인 것이었다.
이로써 다카코는 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스스로 괴로웠던 감정을 정리하게 되고 비로소 앞을 향해 나아갈 결심도 제대로 하게 된다.
얼마 뒤 다카코는 진짜 모리사키 서점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방을 구해 3월부터 그곳에서 살기로 하고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옛 직장과 관련된 작은 디자인 사무소에서 시간제 사원으로 일하는 것은 물론 히데아키의 약혼자인 무라노와 만나 사과도 받게 되면서 완전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부에서는 5년간 행방불명이었던 모모코 외숙모가 돌아오게 되면서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는데, 외삼촌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에피소드다.
특히 항상 명랑하게만 보였던 외삼촌과 외숙모의 속 사정,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다카코의 과거가 제대로 정리되고 새로운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다카코는 모리사키 서점으로 인해 평생 한 번도 가까이하지 않았던 책과 가까워지는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됨으로써 결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어버린다.
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과 새로운 인연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어디 있을까?
후반부에 살짝 모리사키 서점이 다카코 세대로 이어지는 시그널을 비추기도 하는데, 이것을 통해 또 다른 행복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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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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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는 없을 거야. 평생에 걸쳐서 조금씩 알아가는 걸지도 모르지."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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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당장 알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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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해야 해. 설령 그 때문에 슬픔이 생기더라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쓸쓸한 짓 따위는 하면 안 돼.
(...)
사랑하는 건 멋진 일이란다. 그걸 부디 잊지 말아라."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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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은 상처받은 조카에게 비난이나 조언이 아닌 든든한 믿음과 아낌없는 사랑을 한가득 건넨다. 덕분에 다카코는 속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내놓을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가지게 된다.
위의 이야기는 외삼촌이 다카코에게 건넸던 부탁의 말이자 애정 어린 말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닫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과 염원을 담아 건넨 말이다.
사실 삼촌 또한 갑작스레 사라진 외숙모로 인해 마음이 아픈 시기였음에도 사랑을 두려워하거나 놓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참 어른으로서 사랑하는 조카에게 건네는 가장 큰 사랑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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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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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책과 관련된 소설이라, 더 푹 빠져들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로망처럼 다가오는 서점의 다락방 구석진 공간을 상상하며 읽는 건 큰 기쁨이었다.
쿰쿰한 책 냄새에 둘러싸여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알기에, 다카코가 보낸 일 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이 한편으로는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헌책방 골목을 노닐던 추억이 있기에, 이 책은 또 한편으로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추억의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덕분에 나만의 쉼과 치유의 공간은 어딘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가지 독특하게 다가왔던 건 엄마나 아빠와 같은 직계가족 혹은 친구나 지인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서 한발 떨어진 외삼촌과 외숙모를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10년 만에 불쑥 나타났다는 점에 있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일본 사회의 문화를 생각해 보게 된다. 더불어 이런 인물을 투입한 것에 작가의 어떤 특별한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지금은 많이 사라진 헌책방 골목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책에 대한 애정, 공간의 힘, 가족의 사랑 등 많은 것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