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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거짓말과 비밀 사이에 툭 던져진 그림 한 조각,
어느새 가까워진 세 아이는 서로를 돕고 있었다.
슬픈 감정의 동굴을 지나 성장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읽게 된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보통의 책보다 페이지 수는 적었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정리하고 보듬는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렸던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쪽수와 상관없이 다시 재구성하는 시간과 생각한 내용들을 다듬는 시간이 유독 오래 걸리는 책들이 있는데, 아마도 담고 있는 내용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서, 또 허투루 넘길만한 내용이 아니라서가 아닐까 싶다.
앞서 읽었던 책 중에 이런 책을 꼽자면 '클레어 키건'의 책을 꼽을 수 있는데, 약 100여 쪽 정도 밖에 안되는 쪽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와 스토리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런 책을 '쓰기'에 앞서 나름대로 꽤 큰 다짐이 필요하다. 장시간 자리에 앉아 내용을 다듬고, 정리하고, 또 되새기며, 곱씹을 시간이 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점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상 내가 쓰고 있지만, 글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맺어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음속, 머릿속에 꾹꾹 새겨졌던, 혹은 반짝였던 생각들을 쓰면서 아마 차츰 글은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하나의 장편 소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에 대한 얽히고설킨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키워드는 '비밀, 거짓말, 그림, 슬픔'으로 세 아이는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은 드물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서로를 인지하게 되면서 이들은 점차 심적으로도 가까워지게 된다.
각자의 슬픔 속에 갇혀, 고통을 홀로 감내해 가며 살아가던 세 아이들은 비밀을 통해 또 다른 비밀을 돕게 되면서 서서히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다룬 디테일이 꽤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하기, 누군가를 오해하기, 자신이 몰랐거나 잊고 있던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기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누구나 청소년기에 한 번쯤 할법한 고민과 변화들이라 저도 모르게 슬며시 스며들게 된다.
이 소설 속에는 가족, 미래, 관계, 직업, 폭력(가정, 학교)에 대한 내용 외에도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각기 다른 비밀을 간직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체감상 꽤 길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두 달 남짓한 짧은 방학 동안 이루어진 일들이다. 누군가는 생각 없이 즐겁게 보낼 두어 달의 방학기간 동안 또 다른 쪽에서는 이토록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세 아이의 시점을 오가며, 흐릿했던 형태가 점차 선명해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즉, 흐리멍덩했던 이야기의 틀이 감춰진 진실에 가까워지면서 보다 또렷해지고 분명해지는 양상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비로소 아이들의 직접적인 대면과 함께 진짜 현실 속 이야기가 전개됨을 짐작할 수 있다. 예측을 벗어나는 전개 속에서 다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의 심리와 속 사정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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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중 하나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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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사실 소설 속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을 가리킨다.
학기 초 아이들이 친해질 수 있도록 자기소개를 딱딱하게 하기보다 게임처럼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다섯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대신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은 자기소개를 하는 친구를 유심히 살펴보며, 어떤 게 거짓인지를 알아맞히면 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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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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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우(男)
-'강'지우에서 엄마 성을 따라 '안'지우로 개명
-소아결핵에 걸려 나이보다 한 해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
-엄마: 안지연
-엄마의 애인: 유선호(삼 년째 지우와 같이 살고 있음)
-어려서부터 지우개를 좋아해서 우울에 빠져들 때면 손에 미술용 떡 지우개를 쥐고 굴렸음
-한 달 전 엄마가 여행을 앞두고 고가의 태블릿 피시를 선물로 사준 후 돌연 사망
-반려 파충 동물 '용식'을 키우고 있음
-지우는 용식이 크는 과정을 만화로 그려 <용식 일기>를 종종 그림드림 카페에 올림
-그 외에도 단편 '베리 베리 내 처지', '내가 본 것'을 연재하고 있음
-정황상 엄마가 추락사가 아니라 자살은 아닐지 의심하고 있음
▶안지연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지우를 키우다, 삼 년 전 유선호를 만나 함께 동거하며 사실혼 상태
-식당 일을 하며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뇌암 판정을 받았으나 가족들에게는 숨김
-여행을 떠난 곳에서 한밤중 홀로 방파제를 산책하다 발을 헛디뎌 사망
▶유선호
-나이는 지연보다 두 살 어림
-젊은 시절 건설 현장과 가구 회사,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다 지금은 대형 트럭을 몰며 화물 운송일을 하고 있음
-지연의 사망 후 잠을 잘 이루지 못함
▶용식
-반려 파충 동물
-중학생 때 동네 파충류 가게 사장이 선물로 준 레드 아이 아머드 스킨크로 세 알 중 한 알을 용케 살려내면서부터 계속 함께 하고 있음
▶지우 친부
-미술 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음
-과거 부부 싸움 중 아내 지연에게 폭력을 가한 사실이 있음
■오채운(男)
-전학생
-엄마: 박태선(현재 교도소 수감 중)
-아빠: 오기준(현재 새한빛요양병원에 입원 중)
-축구 선수를 희망했으나 부상으로 관두고 전학 후 공부에 전념 중
-어느 날 아버지가 칼을 들고 엄마를 위협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남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현재 이모집에서 생활 중
-한국을 떠나고 싶어 특히 외국어 공부에 매진 중
-반려견: 뭉치(현재 무지개다리를 건넘)
▶박태선
-채운의 엄마
-현재 교도소에서 십 개월째 수감 중
-아들이 면회 올 때마다 비밀을 지키라고 입단속 시킴
▶오기준
-요양병원에 있으며 현재 의식불명 상태
-구태의연한 말을 의기양양하게 하는 사람
-삶에서 진부한 교훈을 추출해 남들에게 설파하기를 즐기는 사람
-그러나 본인은 그 교훈대로 살지 않는 사람.
▶뭉치
-사촌 동생 선이와 산책하다 갑자기 흥분한 뭉치가 도로를 향해 내달리면서 차에 치여 무지개다리를 건넘
■김소리(女)
-아빠: 김호민
-엄마: 연미정 (2년 전 사망)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음
-초등학교 졸업식 때 처음 손에 이상을 감지하게 되었고, 이후 타인과 접촉을 극히 피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는 아이로 소문남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감
-우연히 채운에게 비밀을 들키게 되면서 채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채운과 가까워지게 됨
-지우가 집을 떠나며 맡긴 반려동물 '용식'을 맡아 키우게 됨
▶연미정
-소리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암 진단을 받게 됨
-그러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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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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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문제가 있었음
●어머니의 부재
●직, 간접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음
●그림과 관련이 있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음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 시기의 또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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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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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그렇지만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딜 몇 가지(반려동물 '용식', 지우개 등) 가 있어 나름대로 잘 버티며 살고 있다.
엄마와 엄마의 애인 선호와 셋이서 함께 살고 있던 지우는 어느 날 여행을 갔던 엄마가 낙상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엄마는 식당 일을 하며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할 만큼 열심히 살던 사람인데, 여행 가기 전 지우에게 비싼 태블릿 피시를 선물로 사주었다는 점, 그리고 사망 후 뒤늦게 뇌에 종양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지우는 혹시 엄마가 자살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가 사라진 집에서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자신은 선호에게 있어 짐이 되고 싶지 않았음) 그리고 방학 동안 돈을 벌어 집을 얻기 위해 지우는 하나뿐인 가족 '용식'을 소리에게 맡기고 지방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리를 통해 용식의 안부를 들으며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며 돈을 모으는 데 안간힘을 쓰게 된다. 더불어 그림드림 카페에 간간이 올렸던 웹툰을 이어서 그리며, 자신 안에 있는 질문과 불편한 감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채운은 전학생으로 원래 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면서, 전학을 오게 된 케이스다. 어느 날 칼을 휘두르며 엄마를 위협하는 아버지로 인해 가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 일로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고, 엄마는 자신이 칼로 남편을 찔렀다고 자수하게 되면서 교도소에서 열 달 가까이 수감 중이다.
때문에 채운은 이모집에서 기거하며 사촌 동생 방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다. 채운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반려견 뭉치다. 뭉치에 의지하며 매일을 한국을 떠나고픈 욕망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던 중 뭉치가 차에 치여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소리의 숨겨진 비밀을 듣게 된다. 채운은 소리에게 아버지를 꼭 한번 만나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있다는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게 되고, 이후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듣게 된다.
한편, 소리를 통해 우연히 접한 한 카페의 그림을 찾아 나선 채운은 그 그림 속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숨겨진 비밀이 폭로되진 않을지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편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이 추측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소리는 초등학교 졸업식 때 처음 손의 이상을 감지하게 된다. 담임 선생님과 악수하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는데, 그게 그저 눈물 때문인 줄로만 알고 넘어가게 된다.
두 번째는 중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짝 친구 연지네 집에 놀라갔다 반려견 보리를 만나게 된다. 보리는 세 살 된 골든 리트리버로 연지가 아끼는 반려견이었다.
소리는 보리의 앞발을 감싸 쥐게 되는데, 그때 또 갑자기 소리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지의 결석 소식과 함께 연지네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도 함께 듣게 된다.
세 번째로 손에 문제를 느낀 건 도내 사생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고 원로 화가가 시상하게 되었을 때다. 악수한 순간 눈앞에 뿌예지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때 소리는 손이 무언가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보름쯤 지나 미술부 친구를 통해 시상했던 화가 선생님이 얼마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연이어 얼마 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부고를 접하면서 예삿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병원에 뇌와 눈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정상으로 판별되면서, 소리는 앞선 세 번의 일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연치고 세 부고 사이에는 공통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소리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게 되고, 타인과 손잡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면서 학교에서는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는 아이로 소문나게 된다. 그리고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가게 된다.
가급적 그 능력을 쓰고 싶지 않아 했던 소리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시를 듣게 되면서, 매일 눈을 뜨면 엄마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손부터 잡는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소리의 이러한 노력과는 무관하게 엄마는 공교롭게도 소리가 중학교 3학년 때 병사가 아닌 사고사로 사망하게 된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소리는 손에 이상이 감지된 뒤에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그중 하나는 그토록 좋아했던 그림에 대한 재미를 잃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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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색: 그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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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의 비밀>
▷엄마가 사실은 자신을 위해 자살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음
▷엄마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아저씨가 내심 자신을 귀찮아 할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홀로 나와 방을 구하고 독립할 꿈을 꾸고 있었음
▷엄마를 다치게 한 아버지를 순간 다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품은 적이 있음
▷내심 화목해 보이는 채운이 부러웠음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
<채운의 비밀>
▷축구를 좋아하고 선수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일부러 부상을 유도해 축구를 그만두게 됨. 자신이 그만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는 핑계를 위안 삼아 스스로를 속이고 살고 있음
▷채운은 작년 여름밤 칼 든 아버지를 방어하다 아버지를 찌름.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엄마가 자신이 찌른 것처럼 꾸밈
▷엄마의 편지를 통해 엄마에게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됨
▷외부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으로 아내와 자식을 학대한 가해자라는 것
<소리의 비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면 곧 사망할 사람인 것을 캐치할 수 있음 (3가지 자신만의 비밀)
▷엄마가 입원해 있을 때 엄마가 한두 번 흐릿하게 보이기를 원한적이 있음 (죽기를 바란 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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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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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이상을 느낀 뒤로 소리는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림이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닌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수단이 되다 보니 그랬다. 그런데 최근 지우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며 소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재미와 기쁨을 느꼈다.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그리는 그림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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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온 소리에게 있어 그림은 어쩌면 타인과 소통하는 하나의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에 이상이 생기면서 소리는 점차 타인과 접촉하는 '손' 자체를 피해야만 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림에 대한 재미와 기쁨을 잊게 된다.
하지만 지우의 부탁으로 용식과 함께 지내며, 지우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소리는 다시 그림에 대한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소설에 담긴 이야기 너머 계속해서 소리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바로 이 시점이 반전의 계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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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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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의 반려견 뭉치가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면서, 채운은 소리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소리의 비밀에 대해 듣게 된다.
이를 통해 채운은 자신의 비밀을 비밀로 남기기 위해, 소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소리는 자신의 비밀을 다른 비밀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비록 소리는 채운의 비밀을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소리는 자신의 비밀로 확인한 채운의 아버지 상태를 채운을 위해 거짓말에 부치게 된다.
세 아이들의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는 이런 하나의 비밀이 또 다른 비밀을 돕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상처와 슬픔, 감동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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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을 피해 도망친 곳에 더 이상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나다.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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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이 스스로를 지칭하며 한 말이다. 이상한 사람을 피해 인생을 걸고 도망친 곳에 결국 남은 건 괴물 같은 더 이상한 자신이 남았다는 말에서, 어쩐지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시점에서는 그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다.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오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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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같은 게.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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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의 이모가 한 말로, 어쩌면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인 이모 또한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모는 덧붙여 그러니 너도 조심하라고, 믿을 건 가족뿐이라고 말하는데, 실상 과연 진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채운이 잠시 이모네 집에서 기거할 동안 이모 부부는 늘 부부 싸움을 한다. 여기에 더해 사촌 동생 선이가 뭉치를 데리고 산책 나갔다가 잃어버리거나 혹은 죽게 만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우가 채운이를 보며 부러워했듯, 채운이네는 외부에서 볼 때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가정이 파탄 났지만, 그래서 잠시 이모네 집에 머물며 채운은 선의 방에서 지내게 된다. 이에 대해 선이는 그의 입장에서 방을 빼앗긴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불행을 바라는 마음. 어쩌면 이들 모두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도 모두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의 뉴스를 보면, 가족 또한 믿기 힘들다. 채운의 입장에서 이모 또한 가족이지만, 역시 완전히 믿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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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아, 나는 내가 한 선택들 때문에, 어느 순간 품은 마음들 때문에 여기 있는 거야. 너 때문이 아니라. 그걸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써.
(...)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던 상대라 해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 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 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 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
미안하다.
181~1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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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아들에게 보내는 진정성 있는 엄마의 편지는 마음을 강하게 울린다. 엄마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잘못을 전하며 아들의 잘못이 아님을 확실히 전한다.
더불어 설사 같은 지옥을 경험했던 가족이라 할지라도 꼭 잘 지낼 필요는 없다며, 너의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아빠와의 만남부터 가까웠던 관계가 손상된 이야기, 젊은 시절 한때 마음을 흠뻑 줬던 사람을 떠나는 이야기, 피 묻은 이야기 등을 전하며 아들이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더불어 모성애를 앞세워 자신을 연약한 존재 혹은 희생양으로 삼기보다, 오히려 '희생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건넨다.
현실에서는 쉽게 하지 못하는 부모의 사과이자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채운이는 이런 엄마의 편지 덕분에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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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가 이해하기로 지우개는 뭔가를 없앨 뿐 아니라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대상에 빛을 드리우고 그림자를 입힐 때 꼭 필요했다. 그 대상이 사물이거나 인물, 심지어 신일 때조차 그랬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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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하면 보통 지우는 것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지우는 뭔가를 '있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한쪽 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없앨 수도, 있게 할 수도 있는 '지우개'를 통해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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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파충류 가게 사장님으로부터 용식을 건네받으며 지우는 '레드 아이 아머드 스킨크'는 비밀스러운 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우는 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비밀이 많다는 게. 지우가 볼 때 용식의 멋진 점 중 또 하나는 탈피였다. 지우는 여전히 자신인 채, 그러나 허물을 벗으며 보다 선명해지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용식이 대견했다. 지우 자신은 교실에서 별 존재감 없이 지내 더 그랬다.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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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어쩌면 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존재감 없고 비밀스러운 자신과는 다르게, 비밀스럽지만 허물을 벗으며 점차 더 선명해지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용식의 모습은 어쩌면 지우 자신이 닮고 싶었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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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친구들은 지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척하는 동시에 그런 상황에 놓인 지우를 구경했다. 그리고 그걸 주도하는 애들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지우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친구들이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결국에는 '네가 여기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없어져 버리라'는 뜻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
지우는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언제든 지워질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 군대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권력 놀이만큼 좋아하는 것도 없으니까.
2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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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 매번 심각하다 이야기하지만, 실상 그것이 어디까지 번져나가 더 큰 위협을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듯하다. 그것을 지우의 이야기를 통해 선연하게 느낀다.
소수를 괴롭히는 집단만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구경하는 아이들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나만 아니면 되는 현실. 방관하는 이들 속에 홀로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을 지우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것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군대, 직장, 사회에서도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서 더 많은 불안과 위기의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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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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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통이라는 말처럼, 살아가는 동안 내내 우리는 끊임없이 상처받고 또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마지막 순간에는 채운의 엄마처럼 좋은 이야기를 남기거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서로를 보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인 바람과도 맞닿아 있어 작가의 말이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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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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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세 명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비밀과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 사이에 커다란 접점은 없다. 그저 같은 학년 같은 반이라는 것이 다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 이들에게는 비밀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유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직접적으로 소통을 하거나 대면하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가 가진 비밀을 감추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여기에 그림이 끼어들면서 이들 사이에는 더없는 긴장감이 형성된다.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물음과 해답을 찾으려 애를 쓰고, 또 어떤 이는 이 그림을 보고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까 애가 탄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누군가의 그림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한편, 그를 위해 그림을 그리며 그림에 대해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이 거짓말 또한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 이들은 비밀과 거짓말, 아픔을 서로 공유하며 그렇게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가 셋이 된다.
초반에 최악의 상황을 예측했던 것과는 다르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 덕분에 결론은 감동과 성장으로 마무리된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비밀과 거짓말을 동력 삼아 나아가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 형태의 비밀과 거짓말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음 직한 일들이라 해답을 찾아나가는 세 아이들에게서 공감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스로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를 오해하고, 자신이 몰랐거나 잊고 있던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들을 반복하고 수정해 나가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세 명의 아이들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을 조금씩 헤쳐나간다.
삶은 결코 해피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비밀과 아픔을 지니며 살아간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런 우리들의 삶의 여정을 세 명의 아이들을 대신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은 함께 품는 것으로, 좋은 이야기로 결론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엄마의 사망이후 섬처럼 떨어져 외로웠던 지우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되고, 채운은 상처로만 남았던 과거가 사실은 누군가 자신을 부러워했던 시절임을 인지함과 동시에 단단한 엄마의 응원의 편지를 받는다. 소리는 다시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찾음과 동시에,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쉽지 않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