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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밤 -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밤 이야기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4년 9월
평점 :
"밤의 매력을 담은 그림들을 통해 만나보는 화가와 작품, 그리고 다양한 밤의 풍경들!"
보통 특정 화가나, 연도, 혹은 시대를 중심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책은 '밤'이라는 특정 주제에 맞는 화가와 그림들을 재배치하여 우리를 황홀한 밤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이라는 주제와 오묘한 분위기 탓인지, 여타 그림을 볼 때와는 다르게, 저도 모르게 조금 풀어진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어쩌면 밤을 테마로 한 이 책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보통 '밤'이라고 하면, 로맨틱함 혹은 어둠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 전체를 보고 나면 그보다 훨씬 많은 단어가 밤 안에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16인의 거장을 중심으로, '밤'을 테마로 한 그 외 다양한 작품을 포함하여 총 101가지의 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까지 다양한데,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한의 상상력이 폭발함을 알 수 있다.
저자인 도슨트 정우철의 간략하지만 흥미 넘치는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1mm의 틈새 숨은 디테일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잔잔히 감겨오는 이야기는 어쩐지 밤과도 잘 어우러진다.
'밤'이라는 주제 속에 참 많은 이야기와 상상력이 존재하는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더불어 '밤'을 주제로 작품을 묶다 보니, 가지 각색의 시대, 배경, 장소를 담은 작품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어 이 또한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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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인생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더 나은 절반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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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의 고요한 시간을 사랑한다.
행복한 꿈은 그때 떠오르기 때문이다.
-앤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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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밤 거장들이 남긴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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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저자의 도슨트 설명>
화가들의 화가, 화가들의 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화가는 누구일까요? 저는 언제나 이 화가를 떠올립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우리에겐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어 한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죠. 그는 1577년에 태어나 주로 플랑드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넘치는 생동감과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한 인간의 육체에선 힘이 넘칩니다. 심지어 호방한 성격에 풍부한 지식과 교양까지 갖추고 다양한 언어에 능통해 외교관 활동까지 겸한 이 화가의 이야기는 마치 신화 속에나 나올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루벤스에게도 넘치는 에너지보다는 고요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습니다.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과 <달빛에 비친 풍경>이 그렇습니다.
루벤트는 이 작품들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어둠과 촛불을 표현했습니다.
<작품 자세히 보기>
▷페테르 파울 루벤스,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
노인의 손에서 촛불이 타고 있습니다. 촛불은 지혜를 상징하는데요. 어린 소년이 자신의 초에도 불을 붙이려 다가갑니다. 험난한 삶을 몸으로 겪으며 얻은 노인의 지혜를 배우려는 것이지요. 소년의 얼굴에선 호기심과 존경, 사랑이 느껴지고 노인의 표정에선 평온함과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달빛에 비친 풍경>
루벤스의 마지막 시기를 로맨틱하게 담아낸 걸작입니다. 이미 부와 명예를 얻은 루벤스는 말년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앤트워프 외곽의 시골 저택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한 그림을 그리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작품에는 원래 성경 속 인물이 있었으나, 그 인물을 지우고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로 한 것이지요.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을 흩뿌려 마치 천상의 축복을 받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랄 솔베르그(Harald Sohlberg)
<저자의 도슨트 설명>
화가 하랄 솔베르그는 북유럽의 여름밤을 생생하게 파란색으로 포착해냈습니다.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스칸디나비아 예술가인 그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왕립 드로잉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다양한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북유럽 풍경을 캔버스에 담으며 자신의 감정을 그려냈죠.
<작품 자세히 보기>
▷하랄 솔베르그, <여름밤>
그러데이션으로 변하는 밤하늘이 낭만적인데요. 작품 속 여름 밤 공기에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로맨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테라스에 차려진 테이블과 꽃, 의자 한 쌍,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듯한 와인잔. 이 모든 요소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화가는 테라스 전경으로 시작해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밤하늘 쪽으로 이끌어갑니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작품 속 요소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화가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죠.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랑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하랄 솔베르그가 자신의 약혼을 기념하며 사랑과 기쁨을 듬뿍 담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은 노르웨이 오슬로 동부에 있던 그의 아파트 풍경으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장 베로(Jean George Beraud)
<저자의 도슨트 설명>
'벨 에포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9세기 말부터 1914년까지 유럽이 평화롭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문화, 예술이 번성한 시기를 말합니다.
그런 벨 에포크 시대 파리의 일상을 로맨틱하게 그려낸 화가가 있습니다. 벨 에포크의 증인, 장 베로입니다. 파리지앵의 문화가 궁금하다면 그의 작품을 따라가면 됩니다.
장 베로는 조각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예술성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세상을 떠나게 되죠. 이후 그는 화가의 꿈을 꾸며 초기 아카데미 화풍으로 인정받은 레옹 보나의 화실에서 수학하는데요. 정확한 소묘와 고전적 규범을 철저하게 지키는 교육이었죠.
얼마 가지 못해 아카데미 화풍의 규격화되고 답답한 수업에 염증을 느낀 장 베로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전향합니다.
거리의 사람들을 더 현실적으로 포착하고자 마차를 개조해 작은 이동식 화실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던 그는 평생을 예술에 바쳤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생전에 프랑스 국가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으며 예술이 전부였던 그 삶을 인정받게 됩니다.
<작품 자세히 보기>
▷장 베로, <대화>
작품 <대화>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턱시도를 입은 남성이 대화를 나눕니다. 밖에는 파리의 가로등이 밤거리를 비춥니다. 사교 파티장에서 따로 나와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잘 보니 남성은 의자에 무릎으로 올라가 여성을 바라보는데, 장난기도 느껴지고 눈빛이 조금 느끼하네요. 여성은 부채를 만지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습니다. 거절의 부담스러움일까요? 긍정의 쑥스러움일까요? 그의 작품은 이렇게 감상자에게 이야기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
<저자의 도슨트 설명>
'나이브 아트'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좀 더 쉽게 '소박파'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치파'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유치해서요. 가정 형편상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못해 테크닉이 뛰어나진 않지만, 순수함으로 무장한 화가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루소는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22년간 세관원으로 일해야 했죠. 영감이 넘치는 예술가에게는 참 지루한 일이었죠. 하지만 세관원으로 일하며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바로 관찰력을 키운 것이었죠.
루소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여유 시간이 생기면 작업을 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49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규칙을 배우지 않았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동물, 환상적인 풍경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그릴 수 있었던 거죠.
사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며 조롱을 일삼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의 노년에는 참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우연히 루소의 그림을 보고 아이 같은 매력에 푹 빠진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그 위대한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피카소는 루소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였고, 친구와 동료 화가들에게도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심지어 1908년에는 루소를 주인공으로 성대한 파티도 열었습니다. 일명 '루소의 밤'이었죠.
꿈을 꾸던 화가의 끝은 참으로 창대했습니다. 그의 상상력은 후대에 등장하는, 꿈을 그리는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품 자세히 보기>
▷앙리 루소, <카니발의 저녁>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오붓하게 걷는 밤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요? 달빛 아래 펼쳐진 신비롭고 운치 있는 풍경 속에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가 걸어갑니다.
둘만의 행복에 빠져 있는 건 확실해 보이죠. 하늘과 보름달, 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 숲을 은은히 밝히는 달빛이 몽환적입니다.
자세히 보니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면적인 표현에 인물의 발도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오늘 이 화가만큼은 그런 건 애교로 넘겨줄까요?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꿈을 꾸는 것도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요.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의 상상력의 정점은 <잠자는 집시>에서 드러납니다.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난 적이 없는 그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림 중앙에는 한 여성이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집시 복장을 하고 있는데요. 집시 여인은 자유롭게 방랑하는 삶을 상징하며, 이는 루소 자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집시는 참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데요. 옆에는 사자 한 마리가 여인을 지켜보는 듯한 자세로 버티고 있습니다. 사자는 보통 위험과 힘을 상징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인을 해치지 않고 평화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위로 펼쳐진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은 작품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죠. 이 작품에서는 꿈과 현실, 위험과 안전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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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밤'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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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프란시스코 고야, <마녀의 안식일>
(우) 요한 페테르 하젠클레버, <감성>
(좌)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달빛에 비치는 바다>
(우)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퐁뇌프의 꽃가게>
알프레드 헨리 마우러, <파리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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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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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다 보면, 화가만의 무한한 상상력과 화가만의 붓 터치가 더해져 참 다양한 이야기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주제는 '밤'인데 그 속에는 따뜻함과 지혜, 몽환성과 사랑, 로맨틱함과 상상력, 그리고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가마다 중점이 되는 소재는 저마다 다른데, 이 모든 것을 '밤'이라는 글자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미있게 다가온다.
밤의 무도회, 밤 풍경, 밤의 연인, 달빛, 밤의 거리, 밤에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 밤의 감성, 밤의 강, 잠자는 집시 등.
처음에 '밤'이라는 글자를 떠올렸을 때는 막연히 '로맨틱함'과 '어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밤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이만큼 늘어났다.
덕분에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밤이, 고요함을 머금고 있는 밤이 어쩐지 더 귀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밤만이 줄 수 있는 정취나 풍경, 느낌이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밤을 그토록 잠에 할애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밤을 알고 있어서, 그토록 잠을 아끼고 또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만큼은 이 수많은 밤들을 가슴에 품고 잠에 들어야겠다. 잊어버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