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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
서달 지음 / 온화 / 2024년 10월
평점 :
저자 자신이 감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 자발적 시한부 기간을 정해두고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처럼, 현재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버텨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이 책에는 당시 저자가 겪었던 감정적 고충이 그대로 담겨 있다.
덤덤하게 써 내려간 그 글에서는 아픔, 상처, 외로움, 힘듦, 상실, 허무함 등의 감정이 엿보이는데, 그 끝에 자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
저자는 꼭 육체적인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인생에 끝없는 고난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또한 매일, 매 순간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매 순간 자발적 시한부로 살며, 시한부 기간을 스스로 늘려오며 살아왔다고 전한다. '이때까지만 버텨보자', '미래의 나는 과연 해냈는지 궁금해서 버티자'라고 되뇌는 스스로의 다짐과 결심 덕에 현재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저자만의 감정적 변화를 계절에 빗대어 담고 있다.
봄은 지독한 외로움을, 여름은 여러 가지의 불안을, 가을은 무뎌짐을 넘어 초연함을, 겨울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왜 계속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혐오로 인해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혹은 삶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하고는 하는데, 저자처럼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한다. 꼭 다른 이들처럼 멀고 먼 미래를 꿈꾸거나 계획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끝날 때까지 삶을 약간 미루고, 또 궁금해서 조금 미루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하며 조금 더 연장하는 삶을 살아봐도 괜찮다.
그렇게 조금씩 연장하다 보면 언젠가 자기혐오가 자기애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조금 오래 걸려도 말이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면서 내가 혐오했던, 실수하는 순간조차 사랑하고 안아줄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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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뭐든지 혼자 힘으로
버텨왔던 그 아이는,
장녀로서 책임감을
가장 먼저 깨달아버린 그 소녀는,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그 어른은,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어려질 곳이 없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서
나는 어디로 무너져야 덜 아플까.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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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외동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아이가 둘 이상이던 시절, 유독 첫째들은 일찍이 어른이 된다. 자발적 혹은 타의적으로 은연중에 지어지는 책임감은 그들을 일찍이 성숙함에 도달하게 만들어 버린다.
허울은 아이인데, 속은 어른인 아이들을 우리는 애어른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자신을 돌보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어른이 되어서는 이제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다. 어른의 외형을 가지고 내면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가 머물며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라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조금씩 내면의 아이를 성장시켜 보면 어떨까? 나를 보듬고 돌보는 것부터 천천히 그렇게 '여기까지만'이라는 나만의 명제를 정해두고서 그렇게 조금씩 연장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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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일기
초등학교 때 의무감으로 썼던 일기.
그때는 써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미뤄서 쓰기 바빴다.
이제는
기록의 소중함을 알아서
일기를 쓴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 지구에서 잠시 존재했다는 사실은
남기고 싶어서.
아니, 사실은 생전에 전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도망쳐서.
도망친 내가 할 수 있는 건
처절하게 할 말을 적어 가는 것.
그렇게 모인 일기의 조각들은
지금 읽어보니 죄다 유서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못다 한 말들이었다.
이렇게 공허하게 떠돌아다니는
유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이렇게 한 줄기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서가 또 있을까.
29~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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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마음을 풀어둘 곳이 없을 때 일기를 활용해 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상처받고 힘든 날들을 기록하면서 담아둔 응어리를 풀어내고, 하고 싶은 일, 하지 못한 일을 적어내려가면서 새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또 새삼 누군가에게 풀어놓지 못한 나만의 목표나 계획을 적어가면서 또 다른 희망과 목표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이 공허하게 떠돌아다닐 때는 나만의 기록으로 부유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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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위로의 땔감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 같죠.
뭘 해도 다 실패하고,
되는 일 하나 없고.
좋아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온 힘을 다해 몸을 내던지고 있죠.
맞아요.
맞는데, 다른 사람도 그래요.
자기 연민에 빠져서
타인의 힘듦을 함부로 측정하지 마세요.
타인의 위로를 땔감 삼아
자기 연민을 점화하지 마세요.
(...)
우리는 위로의 땔감 없이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101~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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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대체적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때론 위험하게 작동할 때가 있다. 바로 '연민'으로 변화할 때다. 특히 자기 자신에 '연민'이 붙어 버리면 갇힌 생각에 살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불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다. 마치 깊은 우물에 빠져든 것처럼 자신만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니 부디, 타인의 위로에 깊이 빠져들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대신 스스로 자신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어차피 인생은 내가 꾸려 가는 것이다. 타인의 위로는 멀리서 보면 삶은 작은 유희이자 약간의 양념일 뿐이다. 그저 감사하는 것으로 그 마음은 곱게 접어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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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음표
(...)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에는 그저 굶고 다니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해낸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깨달아서,
그래서 저는 자신에게 물음표를 마구 던집니다.
(...)
밥을 먹었냐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에게 질문해 주는 게 애틋하거든요.
다정한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던 저는
사실 저를 가장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56~1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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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제외한 주변에는 너무 쉽게 물음표를 던지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다정한 물음표를 건네는 이는 잘 없다. 사실 이런 질문을 가장 먼저 챙기고 질문해야 할 이는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오늘부터라도 '밥 먹었어?', '잘 잤어?', '오늘은 즐거운 하루를 보냈니?'와 같은 다정한 안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일분일초,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깨닫는다면, 아마 당장 그런 질문은 절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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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그냥 도피하고 싶을 때,
저는 잠을 택해요.
잠이 너무 안 와서 괴로우면,
청소를 택하고요.
이제 괴로움이라는 감정에서
저를 해방하게 하는 방법을 알았거든요.
그렇게 도망가요.
그다음에 돌아와도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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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항상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망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삶이다. 그러니 도망가는 것에 대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컨대, 피곤할 때만 꼭 잠을 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나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을 때 잠으로 도피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불면증으로 힘들어할 때 꼭 누워서 잠들기만을 바랄 필요는 없다.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 도망쳐도 된다.
그렇게 빙 둘러 돌아와도 늦지 않으니, 도망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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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다. 직진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이상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사는 사람들도 있으며, 빙 에둘러 굳이 먼 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남들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꼭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금 내 삶이 어딘가 불행으로 점철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저자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난을 넘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여기까지'라는 자신만의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정해두고,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처럼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으로 분명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만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니 부디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