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산
낸 셰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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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흥미로운 산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어떤 것에 대한 비유이거나 아니면 산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살펴보고 나니 '살아 숨 쉬는 산' 그 자체를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할 산의 모습, 계속해서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기후와 자연의 모습, 그 속에 온전히 들어앉아 함께 숨 쉬고 오랫동안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그런 '산'에 대한 모습을 품고 있었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케언곰을 오랫동안 오르며 온몸으로 느낀 산에 대한 감각, 관찰, 변화, 경험, 풍경에 대해 담고 있는 일종의 풍경 연구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더하기 '내셔널 지오 그래픽'에서나 볼법한 자연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맨 앞 페이지에 있는 케언곰 지도를 제외하면(더해서 맨 마지막에 사슴 사진도 있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책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사진을 보거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생생하게 산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때문에, 저자가 꼭지로 정한 고원, 계곡, 산봉우리, 물, 서리, 공기 등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기분이 든다.

이만큼 산을 알기 위해 저자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많이 케언곰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그럼에도 그는 아는 척 하기보다 더 깊이 알기를 원했고, 늘 변화하는 자연이기에 앎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

방심하고 자만한 자들의 최후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케언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산과 교감하며, 살아있는 산이 주는 여러 경이로움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잠시 명상하는 느낌으로 자연의 실체를 마주해보면 어떨까 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케언곰을 오르내리며 고요히 산을 관찰해왔다. 처음에는 그저 정상을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오랜 시간 산에 머물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떨어지는 폭포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보며, 산봉우리들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사람을 비롯해, 식물, 동물, 곤충, 새 등 산속에 존재하는 움직이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흥미롭게 관찰하며 이 책에 정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해 냈다.

덕분에 읽다 보면 내가 산속에 머물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하는데,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시각적 자극과 바람과 서리 등 촉감으로 다가오는 감각들이 뚜렷이 느껴지는 듯하다. 또 낙엽을 밟고 다가오는 사슴의 발자국 소리와 멀리서 힘차게 때려붓는 폭포수 소리 등도 들리는 듯하다.

저자의 시선과 오랜 관찰을 통해 묘사된 진짜 산의 매력과 실체를 이 기회를 빌어 만나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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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찬찬히 코레 호수 너머를 바라보며 이 산에서는 서두르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아갔다. 한참을 바라보고서야 내가 아직껏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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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자주 가는 산이지만 저자는 비로소 아직껏 제대로 실체를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불현듯 우리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대충 아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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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속을 응시하면서 느낀 감정도 두려움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호수 바닥을 내려다본 순간, 두려움조차도 드문 짜릿함으로 바꾸어놓는 내 안의 놀라운 힘에 경악했다. 여전히 두려움의 감정이긴 했지만, 지극히 비인격적이고 날카롭게 감지되어 정신을 쪼그라들게 하는 대신 정신을 확장시키는 두려움이었다.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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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속을 한없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다른 두려움이 몸속을 지배할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 안에서 확장되는 두려움. 손끝이 찌릿해지고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서는 그런 두려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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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사람, 딱히 어딜 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친구를 찾아가듯이 산속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가장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곤 한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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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산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어디를 찍고 내려오겠다는 특별한 생각을 지니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은 그저 그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 혹은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그저 잠시 산책 나온 듯, 친구를 만나러 온 듯 슬슬 둘러보는 걸음으로 산을 찾는 이들에게 산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놀이공간이 된다.

마음에 조급함이 없기에, 산이 내어주는 것들을 순수한 눈으로 그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로 산을 찾을 예정에 있다면, 저자와 같이 그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발걸음 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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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의 구름은 이따금 나그네에게 가혹하여 아래에서 올라와 비나 진눈깨비를 뿌리곤 한다. 혹은 부드럽지만 끈질기게 나그네를 치대어 호수 속을 지나온 것처럼 흠뻑 적셔놓기도 한다.

비박을 하고 난 아침 눈썹과 머리카락과 모직 옷에 맺히는 이슬처럼 더욱 미세한 물방울들로 젖어드는 구름도 있다. 그런가 하면 피부에 닿는 척척한 감촉이나 냉기에 지나지 않는 구름도 있다.

한번은 구름 속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구름이 다가올 때는 짙고 으스스하게 보였지만 정작 그 속으로 들어가니 만져지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고, 우리는 스고란 두브 산과 스고르 구이흐 산 사이의 비탈에 있었다. 갑자기 고도 3천 피트 위로 밑바닥이 평평한 구름이 일더니 서서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해가 사라지고 사방이 컴컴해졌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 20분쯤 뒤에 스위치가 켜지듯 다시 해가 나타나더니 에이니 호 계곡 너머로 멀어져 가는 평평한 구름 밑바닥이 보였다. 구름 속은 그저 무미건조했다.
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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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나는 구름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담고 있는 문장인데, 디테일한 표현으로 인해 구름을 실제로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든다. 나를 흠뻑 적시기도 하고, 때론 촉촉하게 적시기도 하며, 어떨 때는 컴컴하고 무시무시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하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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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가장자리로 모여든 물줄기들은 폭포가 되어 5백 피트 아래로 떨어진다. 이것이 디 강이다. 놀랍게도 디 강은 지금 내가 있는 4천 피트 고도에서도 이미 수량이 상당하다. 물줄기가 빠져나간 잎사귀의 나머지 부분은 척박하다. 지면은 돌이나 자갈, 때로는 모래로 덮여 있으며 군데군데 이끼와 풀이 자란다. 이끼 속에 여기저기 흰 돌이 몇 개씩 쌓여 있다. 다가가 보니 돌무더기 속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강하고 풍부하고 차가운 생수가 졸졸 흘러나와 바위 위로 떨어진다. 이곳이 웰스오브 디, 즉 디 강의 발원지다. 강력한 백색 물질이자 자연의 네 가지 신비 중 하나인 물의 태곳적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깊은 신비가 모두 그렇듯 이곳의 물도 무서울 만큼 단순 명료하다. 그저 바위에서 솟아나 흘러갈 뿐이다. 이 물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을 바위에서 솟아나 흘러갔으리라.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
물은 내게 너무 거대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이 물 없이 살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인간이 건강하게 살려면 물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아야 한다. 냄새까지 맡을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45,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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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대해 묘사한 장면인데, 4천 피트 고도에서 내려꽂히는 물줄기의 모습과 더 거슬러 올라가 태초의 물이 시작되는 모습이 대비되며 반전의 매력을 선보인다.

더불어 그 주변에 자리한 바위와 이끼, 풀의 모습들을 눈에 선하게 그리며 마치 보지 않아도 보고 있는 듯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집요한 관찰에 더해 물에 대해 자신이 느낀 감정까지 공유하며 산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풍경과 위력, 그리고 존재함에 대해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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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해서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많아도, 이토록 한곳을 집요하게 오가며 관찰하고 묘사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넓게'가 아닌 '깊게' 알기 위해 산에 올라 오로지 산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집중했던 저자.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산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존재들을 목도하고,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리를 들으며,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감각들을 대신해서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산맥이 가지고 있는 놀랍고 새로운 감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관찰하는 법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어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다음에 다시 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저자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산을 느껴보고자 한다. 스쳐가는 바람, 발밑에 자리하고 있는 풀과 자갈, 봉우리에 걸쳐있는 구름,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까지. 어쩐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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