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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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인생을 살아온 멋진 할머니, 밀라논나의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


몇 년 전 밀라논나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한참 그녀의 일상을 유튜브를 통해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맨 얼굴에 가까운 얼굴, 짧게 자른 머리, 여기에 더해 염색을 하지 않아 하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그 모습 자체로 꽤 멋스러웠다.

착용하는 액세서리를 비롯해 신는 신발, 옷, 심지어 가구 등 무엇 하나 오래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을 내며 제구실을 하는 것들을 보며 그녀가 얼마나 잘 관리해 왔는지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빈티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필요한 것만 남기고 필요 없는 것은 나누거나 정리를 하며 살아온 밀라논나.

덕분에 머무는 공간에는 여유와 자유가 느껴졌고, 손때 묻은 물건들에서는 나름의 애착과 추억이 묻어나는 듯해 보였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밀라논나의 삶 전반에 대한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패션계에 몸담았던 이야기, 가족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하며 평생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로부터 얻은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보복'심리가 강한데, 밀라논나는 이와는 반대로 자신이 겪은 나쁜 일들은 오히려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진짜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겪어온 시대가 여성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며 검소, 절약, 봉사, 베푸는 삶을 살아내며 진짜 멋스럽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품위 있게 나이를 먹는 것이란 무엇인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진짜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인생 내공을 두둑이 쌓은 밀라논나를 통해 진짜 어른의 면모는 물론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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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밀라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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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생 장명숙으로 한국전쟁 중 지푸라기를 쌓아놓은 토방에서 태어나 일흔 살 언저리에 유튜버가 되었다.

얼굴은 작고, 입은 유난히 커서 어릴 때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컸다. 이런 외모를 지적하는 환경이 준 콤플렉스 덕분에(?) 저자는 패션계에서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덕분에 화려한 조명도 받았고,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도 보았으며 저자 자신을 가꾸고 아끼고 사랑하는 법도 배웠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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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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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를 위해 산다는 대명제를 세우라고.
나의 자식, 나의 남편 앞에 '나'라는 한 음절이 붙는 건, 내가 존재해야 자식도 남편도 있다는 뜻이라고.
내가 없어지면 나의 우주도 멸망한다고.
(...)
자신을 들볶지 말고 내 삶의 중심에 자신을 두라고.
그러려면 자신의 어깨에 걸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요구부터 먼저 알아차려서 들어주어야 한다고.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아야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자신의 몫이라고.

실패해도 창피해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도전한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쓸데없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다 보면 내 어깨에 온갖 궂은일이 얹히게 되는 법이라고.
(...)
타인의 시선, 타인의 평가에 나를 내맡기지 말고,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달래주고 품어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게 하는 에너지를 만들라고.
힘에 겨워 넘어지면 넘어진 채로 잠시 쉬어가고.
주변 산천경개도 구경하며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20~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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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쓰러져 눈물짓는 제자에게 건넨 밀라논나의 조언 중 일부다. 직접 경험해 봤기에 그녀는 자기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 평가에 기대어 나를 포기하는 순간 내가 망가질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자신부터 챙기고 다음을 생각하라는 충고를 건넸다.

더불어 잘하고 있으니 스스로를 품어주라는 인생 조언을 함께 건네며 상대방이 마음껏 울고 마음껏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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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인간에게는 고유함이 있다.
각자의 고유함을 인정해 줄 때 존재감이 형성된다.
내가 존중받으며 성장할 때 타인도 나를 존중하는 법이다.

나는 엄친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 모든 양육자여, 피양육자의 자존감을 지키고 키울 수 있는 호칭을 쓰자'
이렇게 쓰인 피켓을 들고 '엄친아 부르기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싶다.

이탈리아에서는 양육자가 피양육자를 이렇게 부른다.
미아 스텔라, 우리말로 하면 나의 별!
미오 아모레, 나의 사랑!
미아 조이아, 나의 기쁨!
미오 테조로, 나의 보물!

따사롭지 않은가.
"너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야."
"네가 있어 별이 뜨고 보물도 생기는 거야."
사랑, 별, 보물, 기쁨 등으로 불리니 아이들 자존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엄친아 대신 '나의 사랑' '나의 별' '나의 보물' '나의 기쁨'이라 부르면 이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기쁠까.
(...)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닌 어제의 나다.
37~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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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쓰니깐 어쩔 수 없이 듣기는 하나, 뭔가 미묘하게 기분나쁜 말들이 있다. 바로 '엄친아', '엄친딸'과 같은 말들이다. 더불어 수저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유독 누군가와 비교하는 말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뱉어나는 습성이 있는데, 그냥 내가 나로써 존재하면 안되는 것일까?

이탈리아의 호칭 예시처럼, 내 기준에서 하나뿐인 존재로 자식을 불러주고 그 자체로 사랑해 주면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을 비롯해 타인을 대할 때 비교하는 말은 가급적 자제하고, 그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는 말들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만약 무언의 성장을 위한 비교가 필요하다면 어제의 나와 비교하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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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친구와 필리핀 친구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큰 교훈을 주었다.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 것.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가장 비범한 진리였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B' birth와 'D' death 사이의 'C' choice다."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걸 붙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심사숙고해 선택하여 그 택한 일에 후회하지 말자. 나의 행복을 스스로 지켜나가자.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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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생의 진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밀라논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왔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먼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불평하고 좌절하기 보다 내 손안에 있는 것 혹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활용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도모해 보면 어떨까 한다.

행복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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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여, 제발 부탁입니다. 젊은이들과 할 이야기가 없으면 차라리 날씨 이야기를 하세요. 아니면 장점을 찾아서 칭찬 멘트를 날리세요.

본인이 판단하고 선택한 길을 즐겁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이나 해주세요. 책임져주실 거 아니잖아요. 그들의 몫을 나눠서 도와주실 거 아니잖아요.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직시하세요.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삶의 모습이 다양해요. 예전의 정서로 한 말씀 하고 싶은 거 제발 참으세요.

왜 굳이 정해진 틀에 모든 젊은이를 끼워 넣으려고 하세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불행해질 텐데, 그들에게 불행을 강요하지 마세요. 편하게 살게 두세요.

기성세대는 인생을 숙제 풀 듯 살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축제처럼 살게 해줍시다. 경계선을 잘 파악하시고 선을 넘지 않을 때 어른 소리를 듣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어른이 되는 건 정말 힘든 거래요.
70~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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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를 향한 속 시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임지지도 않을 아들 타령, 제사, 명절, 결혼과 같은 것들에 시달리고 또 시달리는 며느리(혹은 엄마)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얹힌 것 같은 답답함과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냥 말 붙이려고 그랬다는 핑계 속에 상대방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네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젊은이들과 말을 건네고 싶다면 칭찬의 말이나 아니면 쓸데없는 날씨 이야기를 건네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가는 방법은 결국 다음 세대를 불행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내 기준, 내 판단은 이제 무 쓸모다. 그저 각자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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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강한 차림새가 좋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드러나는 옷차림이 아니라 취향, 안목, 교양이 드러나는 옷차림이 좋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스며드는 옷차림이 좋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렇게도 궁금해하는 '옷 잘 입는' 기준이 아닐까.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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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입어서 예쁜 옷이 아니라, 내가 입어서 예쁜 옷이 좋다. 사람마다 취향, 체형, 안목은 제각각 다르다. 누군가를 의식해서 입는 옷들은 나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디 밀라논나의 제안처럼 나에게 잘 맞는, 내 취향의 옷을 입어보면 어떨까 한다. '옷 잘 입는' 기준은 결국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옷이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잘 소화한다는 것은 내가 그 옷을 입었을 때 기쁘고, 편하고, 좋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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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물건을 모두 껴안고 살다가 황망히 끌려가고 싶지 않은 욕심. 언제 죽음이 닥쳐도 내가 있던 뒷자리가 깔끔했으면 좋겠다는 욕심.

욕심이 욕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내 분신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나의 황혼을 아름답게 갈무리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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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사후 물건들을 정리해 본 사람들은 밀라논나의 이런 욕심에 관한 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살아생전 그토록 많은 물건이 필요 없다는 사실, 죽음이 언제 닥쳐도 뒷자리가 깔끔해지려면 분신 같은 물건들을 평소 갈무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있어 죽은 이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을 위해, 그리고 아름다운 나의 황혼을 위해 어느 시점에는 나의 물건을 서서히 정리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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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and let live.'
'남이야 어떻게 살든 서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거지....'
(...)
자기 취향을 정확히 아는 건강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좋은 디자인이 탄생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각 개인은 개성을 구가하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말자.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살게 두자.
단,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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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살아가는 가장 명쾌한 해답이자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 내 방식대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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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런 생각을 한다. 제사를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제사를 지내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택하면 어떨까. 조상님들도 억지로 대접을 받는 것보다 진심으로 그리워해주는 것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늘어난다고 한다. 각자 어느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 와서 함께 모여 나눠 먹어야 한다는 법령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부의 갈등을 줄이고 이혼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부디 명절이 기다려지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축제의 날!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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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수십 번의 제사를 지내는 며느리들이 과거에는 많았다. 특히 맏며느리들은 이때만 되면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했는데, 인내하고 참아내며 그 모든 순간을 견뎌냈다.

그저 결혼했다는 이유로 지은 죄도 없이 시댁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벌을 달게 받은 것이다. 요즘에는 종교적, 사회적, 현실적인 이유로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명절이면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있다.

명절은 며느리들을 벌 세우는 날이 아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모두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축제의 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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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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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논나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멋쟁이 할머니라 부르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그녀의 업적이나 화려한 인맥, 멋스러운 패션을 가지고 멋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그 속에서 어떤 무게중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고 우리는 그녀를 '본받고 싶은 어른' 혹은 '멋쟁이 할머니'라 말하는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 유연한 소신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무한한 영감을 주는 사람, 나를 아끼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람, 삶의 철학을 실제 삶에 적용하며 사는 사람, 성공보다 성장을 이야기하는 어른 같은 사람.

밀라논나를 지칭하는 단어는 이처럼 수없이 많다. 이렇듯 탄탄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어른이기에 우리는 그녀를 여전히 주목하고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살다가 어느 순간 담백한 응원과 위안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밀라논나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자. 그 속에서 당신은 찬란하고 정성 어린 삶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젖어있던 오늘은 털어내고, 햇빛에 바짝 마른 보송보송한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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