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평점 :
'박노해 시인'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제대로 작품을 만나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423편,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고 보니 작가와 더 많은 작품이 궁금해진다.
더불어 삶의 지혜와 영감을 전하는 데 '단 한 줄'이면 충분하구나 깨닫게 된다. 구구절절 읊어대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하기보다 핵심만 짚어 전하는 문장 속에서 확실한 해답을 얻는다.
어쩌면 온몸으로 부딪히고 깨우치며 얻은 인생의 문장들이기에 더 깊이 와닿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만약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와 같은 의문들로 머릿속이 어지럽다면, 저자가 차곡차곡 쌓아 전하는 문장들 속에서 삶의 희망과 방향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다.
=====
저자 박노해
=====
저자는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가난과 노동과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길에서 그래도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모든 것을 빼앗긴 인생에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한 나만의 자유였고 나만의 향연이었다고 말한다.
=====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
-----
삶은 짧아도 영원을 사는 것.
영원이란 '끝도 없이'가 아니라
'지금 완전히' 사는 것이다.
No matter how short,
life is a matter of living eternity.
Eternity is not a matter of
'having no end,' but of 'living fully now.'
35페이지 中
-----
보통 '영원을 산다'라는 해석을 영원히 산다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지금 완전히' 사는 것으로 해석했다.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지금 온전히 집중하는 삶!'. 그것에 영원히 있다고 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삶을 물리적인 시간만 가지고 '산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식물인간 상태로 오래 산다고 우리는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또한 제대로 사는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때문에 짧은 생을 살아도, '지금 완전히' 내 삶에 충실하다면 우리는 영원을 사는 게 아닐까 한다.
-----
나는 이 지상에
비밀히 던져진 씨앗 하나.
아무도 모른다.
내 안에서 무엇이 피어날지.
I am a seed sown
secretly here on earth.
Nobody knows
what will blossom within me.
39페이지 中
-----
삶을 정말 딱 적절히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는 어떤 씨앗을 품고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모양새로 성장할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비밀을 품고 태어난 씨앗이라 말할 수 있다.
-----
자기밖에 모르는 삶은 흔한 비극이다.
자기마저 모르는 삶은 더한 비극이다.
A life aware only of itself
is a common tragedy.
A life unaware even of itself
is a greater tragedy.
63페이지 中
-----
이 문장은 내가 나를 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지 확실히 일깨워 주는 문장이다. 비극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
생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차원이고
생각의 방향이다.
More important than
the speed of a thought
is its level
and direction.
79페이지 中
-----
'생각'의 자리에 '삶'을 대입시켜보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More important than gaining something
is not losing myself.
155페이지 中
-----
때때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으려 나 자신을 잃는 경우가 있다. 아니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나 자신보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다. 부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잃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
그저 그런 책 백 권을 읽는 것보다
단 한 권의 책을 거듭 읽는 게 낫다.
Reading one book over and over
is better than reading
a hundred of that kind of books.
185페이지 中
-----
다독하며 느낀 경험이자, 그래서 더없이 공감이 갔던 문장이다. 요즘은 쉽게 작가가 되는 만큼, 그저 그런 책을 생각 없이 출판하는 출판사나 작가가 많다.
그런 책을 만나면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허무함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부디 남의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그저 그런 책의 출간은 여러모로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아무리 위대한 현자도
사심이 깃들면
한순간에 바보가 된다.
No matter how wise someone is,
when self-interest comes sneaking
in a flash he's a fool.
259페이지 中
-----
사심이 깃들어서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다. 뉴스만 보아도, 직장동료나 상사, 친구, 지인 등만 보아도 욕심, 명예욕, 승진욕,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의 사심으로 한순간에 추락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이 본능이라지만, 적어도 적절한 선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과욕은 금물이다.
-----
'바빠서'라는 건 없다.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닐 뿐.
There is no such thing
as 'being busy.'
It's just that
I have no order of priorities.
319페이지 中
-----
이 문장을 읽으며 뒤통수를 얼얼하게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바빠서'라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뒤로 미뤘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장 행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은 결국 '바빠서'가 아니라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실행되지 못한 것이다. 그 말이 맞다. 그 말이 정답이다.
-----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하는 것은
곶감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건 그리 두렵지 않다.
무지가 두려움을 부른다.
The reason the tiger fears
the dried persimmon
is because it does not know what it is.
What we know is not so frightening.
Ignorance invites fear.
421페이지 中
-----
우리를 두려움에 갇히게 하는 것은 '무지'다. 컴컴한 어둠이 두려운 것은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처럼, 무지가 우리를 두려움으로 이끄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앎을 습득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을 쏟으면, 우리는 두려움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수많은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나 홀로 버려져 있다는 느낌.
인간은 세계 전체가 등을 돌려도
속마음을 나누고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랑이면 살아지는 것이다.
Among the many kinds of pain,
the greatest pain is feeling
that I am abandoned.
Even if the whole world turns its back,
so long as there's one person
there beside me
sharing innermost feelings and trusting me,
so long as that love is there, I'm alive.
477페이지 中
-----
지인의 숫자에 연연하며 살고 있다면, 이제 그 생각에서 벗어나자. 진짜 힘든 순간 나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은 수많은 지인의 숫자가 아니라, 내 곁에 있어주는 단 한 사람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믿어주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야말로, 살아갈 힘이자 유일한 버팀목임을.
-----
홀로일 때 충만하지 못하면
함께여도 충분하지 못하다.
If you cannot be satisfied when alone,
you cannot be satisfied even together.
539페이지 中
-----
어떤 이들은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결국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해도 결국 그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다.
방법은 오직 하나, 홀로일 때 충만해야 한다. 홀로일 때 행복해야 함께 해도 행복하다. 내 감정을 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한 인간의 진면목은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에
확연히 드러난다.
Each person's true qualities
are surely revealed
at the best moments
and the worst moments.
603페이지 中
-----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모두를 경험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평생 갈 사람이 아닐까 한다.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내가 될 수도, 혹은 상대방이 될 수도 있다. 그 모든 순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다.
-----
삶에는 준비가 없다.
삶에는 유보가 없다.
삶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이다.
There is no preparation for life.
There is no delay in life.
Life, is here now, this moment.
643페이지 中
-----
삶에는 준비도 유보도 없다. 그저 흘러간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똑같은 것처럼 보여도 결코 똑같은 날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렇기에 삶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
진실로 소중한 것들은
잃어보지 않고는 귀한 줄 모른다.
Unless you loose them,
we do not realize
the value of truly precious things.
743페이지 中
-----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알지만 우리가 매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아마도 진실로 소중한 것들은 잃어보지 않고는 귀한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부디 이제라도 나와 내 주변을 살펴보며 진짜 소중한 것의 가치를 제대로 판별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소 한 마리를 잃었을 때라도 부디 외양간을 고치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더 많은 것들을 잃지 않을 방법이다.
-----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말 것.
Don't sell the past to live today.
Don't live today for the sake of tomorrow.
807페이지 中
-----
오늘을 사는 방법은 여럿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오늘에 집중해서 오늘을 살기보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사는 방법을 택한다.
덕분에 '오늘'은 늘 불행과 불안으로 가득하고, 과거와 미래도 덩달아 흔들린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과거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활용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해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임을 잊지 말자.
=====
마무리
=====
짧지만 임팩트 있었던 한 줄의 문장들로 인해 삶을 다시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향을 설정하고 배울 수 있었다.
유한한 삶을 제대로 운영하고 활용하는 법, 오늘을 제대로 마주하고 집중하는 법, 삶에 필요한 진짜 가치를 구별하는 법 등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디테일한 면면을 깨우치게 하는 지혜 덕분에 삶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은 기분이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살아가기 말고, '제대로' 사는 법을 일깨워 주는 문장을 통해 올바른 삶의 이정표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