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평점 :
품절


"감정을 정의하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신조어 사전!"


기쁨, 슬픔, 황홀함, 사랑, 걱정, 우울, 화남 등 나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할 때, 우리는 때때로 말이 다음을 다 담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어휘나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게 되는 경우나 혹은 보통의 어휘들로 상태를 전달할 수밖에 없을 때 대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느끼고 있는 그 상태에 대해 제대로 의미 전달을 하지 못하거나, 얕은 진폭의 감정 정도만 간략하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데, 충분하지 않음에도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런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2009년부터 십이 년간 감정들을 하나하나 명명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일명 '슬픔에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함으로써 혼란하고 미묘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십이 년의 결과물이자, 그가 만든 애매한 감정 표현을 위한 '신조어 사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애매모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신조어 사전으로, 의미 전달을 위해 저자가 고심해서 만든 정의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각 어휘들이 생성된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 포함된 정의와 의미는 그동안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우리 내면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문이 되어줄 것이다.

한글이 아닌 외국어, 여기에 더해 새로 창조한 언어이기에 단어 그 자체로 보기보다, 그 속에 담아둔 의미들에 더 중점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판타지 영화에서 마법사가 세상 처음 들어보는 말로 주문을 외우듯, 살다가 필요한 순간 나의 감정을 터트릴 무언의 도구로써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이 책에 담긴 신조어들은 요즘 세상에 흔하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신조어들과는 다른 목적과 의미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어찌 보면 단어 그 자체보다, 의미에 더 집중해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어 그 자체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의미를 담고 표현할 수단이자 그릇일 뿐이다. 의미는 우리 안에 있으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창조하기보다 그저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고 창조해 냄으로써 수많은 어휘들을 탄생시켰다. 이 책을 살펴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정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그것들이 보통의 언어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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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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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저자 존 케닉이 우리가 하지 못한 그 일을 과감히 실천에 옮겨 '슬픔'에 관한 구체적인 단어들을 만들어 모아 출간한 신조어 사전이다. 무려 대략 십이 년의 세월 동안 말이다.

이 책의 임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기이함-일상생활의 이면에서 웅웅거리는 모든 아픔, 걱정거리, 분위기, 기쁨, 충동-에 빛을 드리우는 것이다.

평생 느껴왔음에도 알지는 못했던 무언가를 위한 단어가 다른 누군가와 공유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그것은 심지어 이상하게 힘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당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당신이 기이한 일련의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상기시켜주는 일은.

그리하여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태어났다.

단어들은 절대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시도해 봐야만 한다. 다행히도 언어의 팔레트는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하다.

언어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즉 번역 불가능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의하지 못한 만큼 모호한 슬픔은 없다. 우리는 그저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은 사전이자 모든 것에 대한 한 편의 시다. 책은 여섯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에는 외부 세계, 내적 나아, 당신이 아는 사람, 당신이 모르는 사람, 시간의 흐름, 의미의 추구 같은 주제에 따라 모은 정의가 담겨 있다.

이 사전에 수록된 단어는 모두 신조어다. 어떤 단어는 쓰레기 더미에서 구출해서 재정의한 것이고 또 어떤 단어는 완전히 꾸며낸 것이지만, 대부분은 사어이거나 활어인 수많은 다른 언어의 파편을 한데 꿰맨 것이다. 이 단어들은 반드시 대화에서 사용되길 바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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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켄츠방스포스텔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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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어둠 속에서 모닥불을 쳐다보며 원초적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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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카이룬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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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푹 빠져서 했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치 당신의 머리가 자동으로 그것 모두를 꿈으로 단정 짓고는 벌써 기억에서 지우기 시작하기라도 한 듯, 그것이 머릿속에서 재빨리 사라져가는 걸 느낄 때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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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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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정신 속 텅 빈 공간;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칭찬,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애정, 더 많은 기쁨, 더 많은 섹스, 더 많은 돈, 더 많은 햇살의 시간, 더 많은 인생을 바라는 무한한 굶주림;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너무 빨리 빼앗기고 말 거라는 생각에, 결국 세상에서 먹혀버리기 전에 세상을 먼저 허겁지겁 삼켜버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공황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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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로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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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세상일에 신경을 덜 쓰고픈 욕망; 삶을 움켜쥔 손에서 힘을 뺀 채 그것을 느슨하고 유쾌하게 들고 있을 방법, 즉 재빨리 몸을 움직여 삶을 배구공처럼 공중에 계속 띄운 채 신뢰하는 친구들이 자유로이 튀기게 해서 공이 늘 살아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고픈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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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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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한밤중에만 문득 떠오르는 듯한, 때로는 몇 주 동안 잊고 살지만 결국 또다시 어깨에 내려앉아 조용히 둥지를 트는 듯한-이미 마감을 넘긴 업무,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 닥쳐오는 미래에 대한-되풀이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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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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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여러 해 동안 느껴보지 못했다가 되살아난, 감정을 자극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우연히 아이팟 셔플에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고 말았을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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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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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얻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을 때의 공허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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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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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자신이 어떤 경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 마치 밀려오는 기대감 때문에 무심코 마음의 자력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으르렁대는 잡음 이상으로 강렬한 무언가를 촉발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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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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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비밀을 혼자서만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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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어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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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할 때 가끔 느끼는 두려움. 이번을 마지막으로 상대를 못 보게 되진 않을지, 상대에게 아무렇게나 건네는 작별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진 않을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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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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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먼 곳의 대재앙보다 자신의 사소한 문제에-내전보다 가족간의 말다툼에, 기후변화보다 사흘 동안 앓아야 하는 열병에-훨씬 더 신경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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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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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강렬한 사교 행사가 있은 다음 날, 목소리와 웃음소리의 빛이 조용한 어둠으로 가라앉을 때 문득 느끼는 격렬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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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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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한밤중에 혼자만 깨어 있다는-차 한 잔과 노트북을 벗 삼아 혼자 앉아 있거나 아무도 없는 거리의 한가운데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는-사실에 은근히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세상을 다 뜯어내서 단순히 검은 상자만 남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직 공연 전인 텅 빈 극장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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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오브 에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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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어떤 경험이 자신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게 다가오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낱낱이 기억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공포증, 집착, 평생의 관계,  평생의 커리어를 낳을 수도 있다는-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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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해, 행복해, 공허해라는 단어로는 뭔가 부족하다 느꼈던 의미와 감정들을 신조어에 묶어 표현해 보니, 이전보다는 훨씬 더 꽉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임의로 만든 단어이기에 이 표현과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내 감정에 대해 보다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

평소 단조로운 말들에서 결핍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시처럼 음악처럼 담아낸 이 책의 신조어를 활용해 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표현들로 나의 감정을 드러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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