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이
임성민 지음 / 아름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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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똑딱이와 산책하며 떠오른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평소 나는 얼마나 사색의 시간을 가졌나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하루 중 약간의 시간을 떼어 나만의 사색할 시간, 산책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비록 반려견은 없지만, 혼자라도 터벅터벅 걸으며 하루 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봄으로써 생각의 비움과 깨달음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싶다.


평소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이라던가, 아니면 수시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되짚어보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더 나은 내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반려견과 생활하며 느끼는 생각의 꼬리를 잡아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읽다 보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이 엿보이는데, 저자의 생각에 더해 내 생각은 어떤지를 덧붙여보게 된다. 나는 이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특정 단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나 즐거움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나를 더 발견하게 된다.


만약 여태껏 떠밀려오듯이 삶을 살았다면, 더 늦기 전에 멈춰서 나 자신을 비롯해 내 주변을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들리지 않았던 진짜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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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가 오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모든 게 달라졌다. 눌러붙은 익숙함이 긁어졌고, 갈라지던 감성에 물기가 올라오면서 오래된 먼지 같던 것들이 나름 본래의 색을 띠었다.


불을 끄면 무덤 속 같은 귀가 멍한 갑갑함에 우울함이 꾸역거리던 밤의 공포는, 귀여운 새근새근 소리를 머금은 만화 속 어둠으로 바뀌었다. 한낮의 지루함 따위는 까먹었다.


우리는 별것도 아닌데 행복해했다.

(...)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의 작은 것들이 크게 다가왔다.

(...)

또한 그동안 들리지 않던 것들이 다시 들렸다. 고루함이라며 묻어버린 것들이 드러났다.

(...)

자신이나 타인에게 당연해서 대충 넘어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인간관계의 많은 것들이 안 보이고 안 들렸다.

하지만 초보 개 엄마인 나는 전과 달리 사람들이 해주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명심하고 실행하려 노력했다.

(...)

그러다 보니 깨달았다. 잊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게 되레 소홀해졌다.

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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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반려견 똑딱이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고 달라졌다고 말한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똑딱이는 저자의 삶에 있어 어떤 계기를 만들어 준 매개체였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고루하고 지루하던 일상에 색이 덧입혀졌고, 또 주변에 존재했지만 잊거나 넘겼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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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처럼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본인도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 괜찮나 보다 하지만 인간은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말을 못 한 것이다.


그러다 괜찮다고 꾹꾹 눌러 담았던 멀쩡해 보이던 것들이 터져 드러났을 때는 손 쓸 방도가 없다.


우리도 너무 늦기 전에 스스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보살핌의 방법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견에게 하는 것처럼, 관심과 애정을 우리에게도 하면 된다.

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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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키우면서 저자가 느낀 것 중 하나는 '나' 자신도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꾹꾹 눌러 담으며 참고 또 참기보다, 평소 나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면서 꾸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잊고 산다. 부디 앞으로는 나를 방치하기보다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데 우선순위를 두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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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지만 삶을 감싸지는 않는다. 가족은 삶이라는 전체 안에 포함된 삶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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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에게 언젠가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면 된 거다. 좋은 기억은 뇌에 투약한 영양제로 투약 시점부터 뇌가 멈출 때까지 효능이 줄어들지 않는다.


가족은 기대를 위한 대상이 아닌, 힘들 때 기대라고 어깨를 피하지 않는 존재이다.

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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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정의를 '희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나 역시 한때는 나보다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고 희생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족도, 부모도, 자식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가족에 대한 정의를 조금 다르게 정의해 보면 어떨까 한다.


내 삶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라는 것, 서로 독립된 개체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 존재라는 인식, 여기에 더해 기대하는 대상이 아닌,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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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낸다는 것은 호감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부분보다 클 경우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자신의 기준에서 심한 비호감일 때, '저런 사람과 어떻게 지내지?' 이렇게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다른 부분에 호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유야무야 단점들이 무뎌지거나 참아진다.


그리고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한다. 모든 특성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개개인에게 스며들어 취향인 듯 들어온다.

63~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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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과 비호감을 구분 짓는 것에는 취향도 반영된다.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무엇을 평가하는지, 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어떤 것은 호감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비호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세상에 완전한 호감과 비호감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취향 또한 변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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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임을 스스로 인식하며 행동한 상태에서, 타인 또한 중요한 사람인 것을 표현한다면 상대방은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남도 나를 대한다.

(...)

남을 너무 의식하며 나를 방치하면 남들도 그는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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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잘 몰랐는데, 어느 정도 사회생활과 사람들을 겪고 보니 확실한 것은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면 남도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의도해서 한 행동이 아닐지라도, 너무 나를 낮추거나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면 남도 어느 순간 당연한 듯 나를 우선순위에서 빼버린다.


배려, 양보, 이해 모두 좋은 의미고, 좋은 덕목이지만 때로는 나를 위해서 이런 것들을 잠시 미뤄두는 것도 필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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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로 내가 선택되었는데 책임감 없이 저만치 두면 나는 희미해져 없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 지거나 안쓰러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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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스스로 배려해야 한다.


자신이 특별한 이유를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 할 때 평범해진다.

(...)

누구나 자신에게 평범하지 않다. 나는 자신이기 때문에 가장 특별하다.

(...)

타인에게 특별함을 부여받을 필요는 없다. 이미 나는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다.


특별한 우리 모두지만, '나'는 고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특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자신'이 없어서이다.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당신, '자신'을 가지고도!

83~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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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할수록 나는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나는 나 자체로 특별한 존재인데,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의 특별함을 버리고 타인에게 맞춰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의 특별함은 사라지고 어느새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된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된다.


삶에 있어 타인의 빛나 보이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나만의 특별함을 찾는 연습을 계속해보자. 그러다 보면,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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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의미는 '근본'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게 된다. 또한 '원래'는 미리 예방하거나 앞으로의 행동 방식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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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의도는, '너는 딱 그 정도야. 발전 가능성이 없어'라며 잘못된 인간관계의 탓을 자신은 제외한 채 상대방에게 모두 돌리고 있다. 그래서 매우 이기적인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이 굳이 대꾸한다면, '내가 뭘' 정도가 될 것이다. 잘못된 관계를 풀어내는 상황에서 잘못의 초점이 한 사람에게 갈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관계가 좋아지지 않고 악화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원래'는 강력한 말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잘 못 사용하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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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한참 보는데 여기에도 '원래'가 나왔다. 신경 써서 들으니, 드라마에서 종종 사용하고 있었나 보다. 이성적이지 않은 잘못된 인간관계의 안하무인격 상황이나 성격을 표현할 때 짧으면서 효과적이다.


이는 힘이나 위치를 이용해서 개인이나 혹은 소수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원래'이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든 '원래'는 권력 남용이다.


구체적 토론을 초반부터 방지하지 위해 공정하지 못한 작위적 방식에 '원래'의 사전적 의미를 새겨 구성원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지속되어 익숙해지면 타당하지 않더라도 쉽게 돌이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적이지 않은 이유임에도, 불편하거나 눈치 보지 않으면서 상대를 쉽게 매도할 수 있다.


'원래'를 남용하는 상황이 있다면 물들기 전에 구성원들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런 반응보다, "원래 그런 건 없어!"로 '원래'의 의미를 부여해서 맞받아쳐야 한다.

110~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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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양극단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으로 잘 쓰이면, 어떤 사물이나 성질에 대해 미리 예방하거나 행동방식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면 한없이 추락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이 '원래'라는 말인듯하다.


최근에는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원래'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부정적 단어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말을 부정적으로 활용해 부디 자신의 정당성이나 이기심, 권력남용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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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 봐서는 아픔의 경험은 절대 알 수 없다. 모든 아픔이 티가 나는 것은 아니다.

(...)

타인의 아픔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축소해서는 안 된다.

225, 2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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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특히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행위는 더 조심해야 한다. 외적으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뿐더러, 아픔의 경험은 더더욱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자신보다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자리 양보를 강제로 요구하거나 반말을 찍찍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진짜 자신보다 어리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도 말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노약자석을 두고 분쟁이 오가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부턴가 '노약자석'을 '노인석'으로 착각해 시비를 거는 노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엄연히 나이 불문, 성별 불문 약자인 사람들도 앉아서 갈 수 있는 좌석인데 멀쩡해 보인다고, 젊다는 이유로 한 소리 하며 쫓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전세 냈냐?'하고 한소리 하고 싶은 때가 여러 번이다.


심지어 요즘은 공짜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무례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저렇게 나이 먹지 말아야지' 싶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멀쩡하거나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또 건강하더라도 피곤하거나 힘든 날에는 앉아서 갈 수도 있다.


부디 타인의 상태를 겉모습으로 판단해 오인하고 마음대로 축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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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경험이 기억에 박혀 있는 경우 빠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지금, 현재 잡아둘 수는 있다. 힘든 기억은 그저 저편에 놓고 그곳으로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힘든 것은 그때로 족하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2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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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거나 상처받은 기억은 기억 속에서 잘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질지언정,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힘든 기억이나 상처는 저 멀리에 두고, 가까이하지 않으려 그토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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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많이 예민한 나는 관계를 줄이니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나에게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보다 고통을 줄이는 방식이 나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삶에 대한 방식이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도 아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고 이를 방어하는 자세는 전보다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줬다.

2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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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감 갔던 글 중 하나다. 어느 날 나에게 있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곰곰이 따져봤더니, 결국 외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외적인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도 생겼다.


예전에는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쓰느라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면, 오히려 정리하고 난 후에는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취미들을 하나씩 실행하며 사는 것은 물론, 질적으로도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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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최근 몇 년간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삶의 가치와 중요한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에게 의미 있었던 것들과 나를 불행하게 했던 것들, 그리고 어떤 계기로 나를 변화시켰던 것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말이다.


아직 현재 진행형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만족'스러운 것을 보면, 스스로 꽤 잘 해 나가고 있는듯하다. 과거에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여러 이유로(친구니까, 직장이니까, 사회규범이니까 등등) 놓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끼워 맞추려 노력했는데, 이만큼 살아보니 맞지 않는 것을 굳이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알아온 인연이지만 맞지 않으면 관계가 끊길 수도 있고, 맞지 않는 직장이라면 이직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회규범조차 시대가 변하면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 굳이 고리타분하게 맞춰가며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보니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그 원 안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일찍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걸어갔으면 훨씬 더 나은 기회들을 포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빠져나와 나만의 시선과 생각에 중점을 두고 인생을 걸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보니 진짜 행복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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