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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시그널
브리스 포르톨라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10월
평점 :
"21세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언젠가부터 북적이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의 삶을 꿈꾸게 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사람들의 삶은 그런 나의 바람을 고스란히 반영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편리함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선택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칫 도시생활보다 단조롭거나 심심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저마다의 꿈을 꾸며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상상이상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총 10개국, 10명의 '비정형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소로'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 에세이로 담아낸 책이다.
단순히 작품으로써 담아내기 위해 찍은 인위적인 사진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해당 지역을 여행하며 그 삶에 녹아들어 담아낸 사진들이라 생생한 현장감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상할 수 없는 공간과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공간 자체가 예술이 되고 꿈꾸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연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이들을 만나러 알래스카의 섬에서 파타고니아 평원까지 카메라를 들고 여행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 집과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냈는데 살펴보면, 숲속, 섬, 등대, 알래스카 양식장, 초원, 자급자족의 형태 등 다양하다.
대부분 폐가를 고쳐 사용하거나 기존에 있던 건물들을 수리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보다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매력적인 공간과 풍경들이 가득하다.
삶에 치여 피로와 스트레스, 부조리함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나만의 삶을 찾아 나선 이들이 보여주는 자연, 공간, 가치는 도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움과 삶에 대한 충만함, 여유 등을 보여준다.
만약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단순히 '시골생활'로 생각하고 했다면, 이제 그 생각은 그만 접어두기로 하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되고, 환상은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서, 오직 '살아가기'에만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신호'없는 삶 속을 이제부터 자세히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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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같은 리듬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도 다른 북소리를 듣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음악이 어디서 들려오든, 그 템포가 어떠하든,
그가 듣는 음악을 따르도록 내버려 두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혹은 숲속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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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브리스 포르톨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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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모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프랑스의 사진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생활방식을 바꾼 사람들의 삶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장기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물로 <노 시그널>을 내놓았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소로처럼 각자 양심에 따라 자기만의 길을 선택해 자신의 깊은 정체성과 조화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들이 꿈을 추구하게 해준 너무도 소중한 자유를 그들 모두가 마음껏 향유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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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냐
핀란드, 이나리 →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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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통나무집에 사는 삼십 대의 젊은 핀란드 여성 티냐는 홀로 자연 속에 살며 지루할 틈 없는 매일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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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가장 가까이서 살겠다는 결심, 자신이 자란 고향 이나리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도시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일상의 부조리함을 경험하면서 이루어졌다. 바깥 날씨가 추운데도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이 젊은 여성에게는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강에 가면 손쉽게 물을 길어올 수 있는데 굳이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사용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티냐는 핀란드 남부에 있는 이위베스퀼레 대학교에서 6년 동안 생물학을 공부한 뒤, 도시의 부조리한 삶을 미련 없이 청산했다. 직업생활과 자연 속 삶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기 위해 선택한 그 길은 결국 티냐에게 자연 중심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중심인 것으로 드러난다.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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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수도도 전기도 없다. 화목난로로 요리와 난방을 모두 해결하며, 매일 아침 강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와야 한다. 계절에 따라 삶의 리듬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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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티냐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18~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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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을 하다 부조리함을 여러 해 경험하면서 마침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살기로 결심한 티냐. 자연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기에 물질적 행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
비록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루할 틈이 없어 행복하다 말하는 티냐의 삶을 마주하며 떠오른 단어는 바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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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영국, 컴브리아 → 영국, 북부 멜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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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내가 익숙해진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요. 내 시간과 존재를 희생하기보다는 없어도 그만인 사치스러움과 안락함을 희생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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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관조, 길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것으로 이루어진 삶. 화덕에 고기를 굽고 강에 가서 물을 길어오고, 채소밭 한 뙈기로 가족을 충분히 건강하게 먹일 수 있는 삶. 배추, 감자를 사냥해온 고기와 맞바꾸는 등 이웃이나 친구들과 즉석에서 물물교환을 하는 삶. 하루 중 어느 때고 불가에서 혹은 키 큰 떡갈나무 그늘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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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계 위의 삶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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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자발적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매우 사교적인 성격이라 시골생활을 체험하러 오는 방문객을 정기적으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그의 생계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생활 양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선택에 가치와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때때로 확신을 잃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기 때문이죠.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스템이 우리의 지평을 열어주는 게 아니라 제한한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무엇이 되었든 다양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런 삶이 가져다주는 작은 광채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들도 본격적으로 꿈을 꿀 수 있도록요."
남들과 다른 길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면서 그런 삶의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바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들만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때때로 트레일러에서 사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더라도 말이다. "나는 결심한 대로 매우 단순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 선택이죠. 그 선택대로 사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66~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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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움'과 '안락함'을 포기하고 얻은 '시간'과 '존재'의 중요성을 깨달은 바니는 경계의 삶을 오가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전통적인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나를 구속하거나 제한하는 것 없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매우 단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택 덕분에 바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와 같은 고민이 들거나 의문이 들 때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는 오로지 나의 의지로 선택한 내 삶의 방식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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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그리스, 레프카다 → 그리스, 섬(루파키아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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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두 살인 실비아는 마흔 세 살의 남편 마리우시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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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트레스 많고 과로에 시달리던 예전의 삶에서 벗어나 끝이 없을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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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키아스는 그녀에게 안도감을 선사해 주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새 집을 꾸미고, 이어서 다른 집들도 꾸미면서 도전과 함께하는 새롭고 열광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힘들었던 과거의 폐허 위에 삶을 다시 지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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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잡다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자연에 둘러싸인 채 계획한 것을 실천해갔어요 확신을 갖고 실천했어요. 나는 이 장소에 깊이 뿌리박혀 있답니다. 그 사실이 나를 진정시켜주고 내가 나 자신과 조화를 이루게 해줘요. 처음으로 마침내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10년 전의 나라면 모든 것을 버리지 못했을 거예요. 시간이 곧 돈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여기서 사는 걸 시간 낭비로 여겼을 거예요."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사는 삶이 나에게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진 않아요. 오히려 전진,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자연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진보를 뜻하지요."
136,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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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과로에서 벗어나 새로 선택한 루파키아스에서의 삶은 이들에게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도전과 열광적인 삶을 선물했다.
실비아는 폐허를 머무는 공간, 작업 공간,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하면서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되었다.
자연 속에 깊이 머물며 조화를 이루는 삶은 잡다한 것에서 벗어나 계획한 것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마음을 진정시켜줌으로써 뿌리 깊이 이 장소에 박혀 있다는 안정감 또한 주었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삶에 대해 사람들은 후퇴나 회귀를 말하지만, 실비아에게는 오히려 전진과 진보를 의미한다는 말에서 자연이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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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노 시그널'의 삶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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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이탈리아, 토스카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몇 시간 떨어진 폐농가
■스카이
아르헨티나, 네우켄주 → 파타고니아 북부
남편 차노, 아들 레오와 함께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음
■벤
미국, 유타주 → 자급자족의 삶
미국 농산물 가공업의 현실을 깨닫고 자신이 소비하는 음식의 대부분을 직접 생산해서 생활하고 있는 벤!
■제리
미국, 알래스카주 → 알래스카주 굴 양식업자
번아웃을 겪고 알래스카에 정착해 굴 양식업자가 되었다. 지금 그는 잘 보존된 대자연에 둘러싸인 외딴 작은 만에 살고 있다.
■엘레나
노르웨이, 베스테롤렌제도 → 노르웨이 북부, '리틀뢰야'라는 작은 섬의 등대
그녀는 그 섬의 유일한 주인이다. 리틀뢰야는 독수리와 가마우지가 사는 67헥타르의 바위섬으로, 글자 그대로 노르웨이의 '작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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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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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이 없는 노 시그널의 풍경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힐링하는 기분이 든다. 다른 나라, 다른 장소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가까이 사는 10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다.
막연히 자연과 가까이 산다고 생각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들이 하나 둘 부서지기 시작하면서 참신하고 유니크한 공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삶의 목적, 방향에 따라 혼자, 또는 부부, 가족이 함께 살아간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것이 후퇴나 과거로의 회기가 아닌, 전진과 진보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 책 곳곳에는 소로의 문장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선택한 이들의 삶을 더없이 긍정해 주며 조화를 이룬다.
10명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선택과 주관에 의해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을 선택했는데, 그래서인지 그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표정과 행동 곳곳에서 묻어난다.
덕분에 보는 내내 부러운 마음 반, 언젠가 나 또한 그런 공간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반으로 내내 지켜보게 되었다.
'소로'의 삶보다 21세기 '소로'의 삶은 한층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나를 위한 시간을 온전히 즐김으로써 '행복'이 무엇인지를 삶 그 자체로 가르쳐 준다.
덕분에 나에게 맞는 삶,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직 '살아가기'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충만함을 가져다주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듯 매일이 특별한 하루로 채워지는 이들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나만이 풀 수 있는 숙제를 제시한다. 이제부터 천천히 이 숙제를 풀어가며, 나에게 가장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