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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최혜진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3년 12월
평점 :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창조적 생각들이 필요할 때가 많다. 더러는 일상의 경험에서, 또 다른 부분은 책에서 영감을 받아 그때그때의 느낌에 따라 글을 쓰거나 편집을 하는 형태를 취하고는 하는데, 생각처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지금 당장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잠시 내려놓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의 환기를 시키면 잠시 후 앞서 막혔던 작업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큰 틀에서 보는 일련의 과정일 뿐, 실질적으로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고민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블로그를 예로 들어보자면, pc/태블릿/모바일 중 어떤 보기 형태에 집중할 것인지, 문단은 몇 줄로 쓸 것인지, 어떤 단어를 골라 쓰고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은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제목은 간단하게 포인트만 짚을 것인지 아니면 수식하는 여러 단어를 조합할 것인지, 내용상에 사용할 이미지는 어떤 것이고 또 강조하고 싶은 문단이나 내용들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지금이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글감마다 나만의 룰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여전히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머지 부족한 부분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한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창작에 있어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사고 법에는 '편집'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며, 이에 대해 12가지 키워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일도 더러 있었는데, 최근에는 무엇이든 풍족한 사회가 되면서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또 이를 어떻게 창조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널려있는 수많은 재료를 어떤 컨셉을 가지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탁월한 심미성을 지닌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보잘것없는 무가치성을 지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는 물론 탁월한 편집자들이 12가지 키워드를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하는지 창조의 비밀을 이 책에 담아내며 우리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며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재료는 많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창조적 사고법을 제대로 배워나갈 수 있는 토대이자 첫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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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에디토리얼 씽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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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삶의 자산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의미의 최종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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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측면에서 에디토리얼 씽킹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업의 영역을 확장 할 수 있는 코어 근육이 되어주었고, 사적 측면에서는 가장 어두운 밑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에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고쳐 써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동아줄이 되어 주었다. 내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있다면 이 책이 아닐까.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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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20년 경력을 모두 농축한 에디토리얼 씽킹의 방식을 이 책에 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때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편집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었던 비법도 함께 전한다.
더불어 에디토리얼 씽킹 덕분에 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사적인 측면에서도 자신을 끌어올려 주는 동아줄이 된 이것의 이점을 강력히 어필한다.
이 때문인지 저자가 건네는 에디토리얼 씽킹이 무엇인지 더없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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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디토리얼 씽킹을 이렇게 정의한다. '정보와 대상에서 의미와 메시지를 도출하고, 그것을 의도한 매체에 담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하고 구조화하는 일련의 사고방식'.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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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가 말하는 에디토리얼 씽킹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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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팅은 종합적이고 메타적인 사고 행위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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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워낙 네이버를 비롯해 어디든 에디팅이 발달되어 있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에디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들이 이것을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에디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에디팅을 하는 행위자는 대상에 대한 사전조사는 물론 게시물이 보다 새롭게 다가올 수 있도록 여러 사항을 고려하여 창조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에디팅은 종합적이고 메타적인 사고 행위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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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가 절대 대체하지 못할 영역은 뭘까? 답은 금세 나왔다. 챗 GPT는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입장을 갖지 못한다. 입장이 없기 때문에 주장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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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지, 무엇이 신선하고 매력적인지 의미 부여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일은 언제나 인간이 할 것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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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챗 GPT가 급부상하면서 사람들은 이들이 인간을 대신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절대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개인의 의견이나 입장을 표현하는 행위다.
나의 상황에 맞는 상황이나 생각, 의미들을 주장하고 설득하는 행위는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에디토리얼 씽킹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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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료 수집 : 가능성을 품은 재료 찾고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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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의 세계와 달리 의미의 세계에서는 재료의 품질을 평가하는 선형적 기준이 없다. 누군가 '이것은 000에 대한 의미를 전하기에 좋은 재료다!'라고 알아보면 그때부터 가치가 생긴다. 가치가 대상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좋은 눈을 가지면 어떤 재료든 좋은 창작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자크 빌레글레는 다양한 정치적 주장을 담은 포스터와 상업광고 포스터가 자연스럽게 찢기고 덧붙여진 파리 길거리 포스터 지층을 있는 그대로 떼어내는 데콜라주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수많은 대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의 신념을 주장했던, 기이하고 마법 같았던 역사적 사건이 남긴 흔적을 포착한 것이다 .분명 수만 명의 사람이 담벼락 앞을 지났을 텐데, 저 흔적이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자크 빌레글레가 유일했다.
의미로 거듭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재료를 알아보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소한 재료에 숨어 있던 메시지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어떤 맥락으로 의미를 빚어갔을까?"라고 질문하는 편이 에디터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 보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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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상 :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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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될 만한 가능성을 품은 재료를 알아보는 안목을 알아보는 핵심엔 연상이 있다. 연상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인데, 쉽게 예를 들어 '팝콘'하면 '영화관'이 떠오르는 식의 생각 작용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은 연상 그물망을 풍성하게 펼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물이나 낱말은 모두 외연적 의미와 내연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외연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전에서 정의한 기본적 의미를 말하고, 내연적 의미는 문화, 관습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전달되는 의미를 말한다.
연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상의 내연적 의미를 풍성하게 발굴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연적 의미를 풍성하게 떠올리는 일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내연적 의미를 풍성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연상 그물망이 풍성하다는 것은 다른 정보와의 연결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상태라는 의미다.
에디토리얼 씽킹은 '정보의 대상에서 의미와 메시지를 도출하고, 그것을 의도한 매체에 담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하고 구조화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이다.
연상은 재료에 내포되어 있던 의미의 경로를 발굴해서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높인다. 하지만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낯설고 어렵다.
해결책은 질문이다. 연상 그물망을 풍성하게 펼치고 싶다면 질문하면서 대상을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동의어, 유의어, 상위어, 하위어, 반의어가 무엇이지?"라는 질문도 유용하다. 재료를 가운데 두고 상하좌우 방향에서 다각도로 살피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연상을 풍성하게 펼치려면>
1. 이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대상을 재료, 하위 속성으로 해체한다.
2. 이것은 어떤 감각적 특징이 있나?
감각적 특징에 주목한다.
3. 이것의 기능과 쓰임은 무엇인가?
기능과 쓰임의 맥락, 사회적 함의에 주목한다.
4. 관련한 인물, 장소, 사물 작품이 있나?
관련된 인물, 상품, 장소는 없는지 생각한다.
5. 동의어, 유의어, 상위어, 사위어, 반의어가 무엇이지?
동의어, 유의어, 상위어, 하위어, 반의어를 떠올린다.
연상은 기업의 브랜딩이나 광고 캠페인 아이디어를 낼 때도 유용한 사고 방식이다.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의미를 가시화하고 언어로 붙잡아두려면 일단 질문부터 해야 한다. 질문을 품고 있으면 정보는 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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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범주화 : 유사성과 연관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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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을 통해 재료의 가능성을 두루 살핀 이후에 해야 할 작업은 '정리'다. 정리는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고, 정리하기 위해선 분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범주화는 우리 뇌가 정보와 세상을 인지하는 핵심 프로세스다.
(왼쪽 위) 프리다 칼로, 1944(오른쪽 위) Jean Paul Gauitier spring 1998 Ready-to-Wear Collection
(왼쪽 아래) 찰스 로버트 레슬리, 1838
(오른쪽 아래) Rihanna in Guo pei, Met Gaia, 2015
IBM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베티 퀸이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Art History Fashion'사례를 보자.
우연히 발견한 시각적 연결 고리를 차곡차곡 아카이브 함으로써 미술사 기록이 동시대 시각문화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암묵적으로 설득한다.
유추는 '같은 종류의 것 또는 비슷한 것에 기초하여 다른 사물을 미루어 추측하는 일'이다. 이것은 문학가나 과학자들에게만 필요한 사고력이 아니다. A의 구조를 빌려서 그와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B에 적용하는 능력은 기존의 정보를 새롭게 조합하는 모든 이에게 유의미하다. 친숙함에서 새로움으로 도약하는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알아보는 능력이란 결국 자신만의 언어로 본질을 규정하는 능력, 유사성과 연관성을 알아차리는 능력, 분류 기준을 정하는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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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계와 간격 : 목적에 맞게, 적정 거리 조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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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개별 프로젝트의 목적과 수용자 성향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선택과 배치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하는지 정확한 목적지를 찍고, 상황에 맞춰 정보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이다.
익숙함과 명확함, 낯섦과 모호함이라는 두 원소를 손에 쥐고 목적에 맞춰 적정 배합 비율을 찾아내는 일. 나는 그것이 에디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토리얼 씽킹을 위한 요점이 바로 여기 있다. 글을 다룰 때든 이미지를 다룰 때든 정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신선한 재미가 없고, 너무 멀면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사용할 재료 사이의 거리를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정보 사이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는 어떻게 연마할 수 있을까? 그간 나에게 유용한 훈련이 되어주었던 몇 가지 놀이를 공유하려 한다.
첫 번째는 타인의 창작물의 구성 요소를 분해하는 '해부하고 바꿔 끼기' 놀이다.
두 번째는 '아무거나 잡화점 주인' 놀이다. 이렇게 관습적인 분류법에서 일부러 멀어져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물(정보)의 의미와 연상 이미지 네트워크를 다각도에서 살피게 되고, 다른 사물(정보)과의 관계를 어떻게 신선하게 맺어줄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권하고픈 놀이는 '아무 단어 챌린지'다. 랜덤으로 두 단어를 골라 그 쌍이 공유하는 특성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찾아내는 연습이다.
이런 놀이를 응용해 브랜드에 적용해 본다면, 브랜드 연상 네트워크 사례를 공부하면서도 정보 사이의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를 연마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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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레퍼런스 : 새로움을 만드는 재배치, 재맥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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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결국은 '자기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이 질문이 에디토리얼 씽킹의 핵심 중 하나라고 믿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는 더 이상 원천적이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른 기획이 새로운 것 같아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이미 비슷한 결과물이 나와 있다. 레퍼런스는 무한대다. '새로고침'만 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핀터레스트 속 세계처럼.
레퍼런스를 자기화하는 단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단순 차용이 아니라 종합과 창조 수준에 도달하려면 레퍼런스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내고, 의미화하고, 재배치하고, 재맥락화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능력은 뭘까? 독해력, 유추력, 정의 능력, 연상 및 변형 능력, 정보 조직력... 하나 같이 창조적 작업에 필요한 역량이다.
우리가 훔칠 수 있는 재료는 아주 많다. 그렇다고 쉬우리라 착각하진 말자. 배치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은 재료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만큼이나 고되고 어렵다.
레퍼런스 덕분에 작업이 술술 풀린다면 당신의 훔치기가 진짜 훔치기가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바닥 쌓아놓은 레퍼런스 늪에서 끙끙거리고 있다면 오히려 좋은 신호다. 고통 끝에 창조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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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컨셉 : 인식과 포지셔닝을 위한 뾰족한 차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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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에디터로서 나는 다음의 두 문장으로 컨셉을 정의하고 이해한다. 첫 번째 문장은 '하고 싶은 말의 내용과 그것을 담는 그릇이 잘 호응하도록 정렬하는 기준점이 컨셉이다'. 두 번째 문장은 '내 콘텐츠를 남이 소비해야 하는 정확한 이유'이다.
"내가 보는 00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는 과정에서 컨셉의 단초를 발견한다는 사실을. 이 질문은 본질 차원으로 내려가 새롭게 의미 부여할 재료를 길어 오르게 돕는다.
이렇듯 '내가 보는 00의 의미는 00'라는 관점이 세워지면 형식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컨셉이 필요한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의 내용과 그것을 담는 그릇을 잘 정렬시켜서 궁극적으로 아직 누구도 선정하지 않은 빈 땅에 내 콘텐츠를 위치시키기 위함이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기억되고 선택받도록 하기 위해서. 컨셉은 톡톡 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식과 포지셔닝을 위해 필요하다.
컨셉 도출에 가장 필요한 역량은 재치가 아니라 끈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깃발을 꽂을 수 있는 빈 땅이 보일 때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끝까지 자문자답하는 끈기가 기억되는 컨셉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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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요점 : 핵심을 알아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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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알아보려면 먼저 중심 메시지 혹은 주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중심 메시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내용을 '요점'이라 부른다면 '디테일'은 요점을 뒷받침하는 세부 정보, 예시, 묘사 등을 일컫는다.
자료를 보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뭘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업무가 생겨난 배경 상황과 업무 목적을 가늠해야 한다.
나아가 '길고 복잡한 내용을 어떻게 간결하게 압축하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상위개념으로 치환하는 뇌를 작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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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프레임 : 입장과 관점 정하고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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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③은 여성의 벗은 몸을 훔쳐보고 희롱하는 행동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평온함이 작품 안에 흐른다. ①~③의 경우 화가가 주목하는 건 '폭력'이 아니라 매력적인 수산나의 '나체'다. 당신도 끌리지 않냐고, 선을 넘는 짜릿한 상상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다.
반면 ④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입장을 취한다. 화가가 주목하는 건 수산나의 '고통'이다. 이처럼 같은 소재도 어디에 주목하는지, 다시 말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정보는 언제나 다면적이다. 네트워크처럼 여러 갈래로 교차하는 문맥 안에서 사물, 사건, 인물은 전방위적으로 의미를 뿜어댄다. 나에게는 악역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다른 맥락에선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주목이 가진 힘과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에디터적 사고력은 정보를 해석하는 자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위치와 관점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프레임이 의미 형성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뭘까?
첫 번째 원칙, 같은 정보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늘 머릿속에 새긴다. 예컨대, 단행본 책 한 권이 서점 매대에 있을 땐 '상품', 유통 창고에 있을 땐 '재고', 쓰레기장에 있을 땐 '종이류 쓰레기', 공공도서관에 있을 땐 '장서', 작가나 독자의 품에 있을 땐 '작품'으로 의미가 바뀌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렇게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의 의미를 유연하게 다룰 줄 아는 생각의 힘이 바로 에디토리얼 씽킹이다.
두 번째 원칙은 자신의 아이디어나 타인의 창작물을 검토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준거기준이 무엇인지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흐르는 믿음, 그것이 곧 관점이고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시하는 생각 중에는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도 많다.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싶다면 이런 프레임을 의심하고 바꿔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령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연시하는 전제를 찾은 뒤에 '정말 그럴까?'라고 덧붙이면서 가급적 많은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주워온 생각은 쭉정이처럼 허약해서 살이 붙기 힘든 반면 진짜 자기 것은 검증할수록 강해진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원칙은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질문하면서 인식의 심해로 내려가 보는 경험, 원형질의 알맹이를 손에 쥐려 노력하는 시간.
대단하고 논리적이고 매끈한 정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관점을 믿고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려 애써보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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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객관성과 주관성 : 주관적인 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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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 완전무결한 절대 진리가 아니라 동시대 다수가 합의한 임의적 약속이다. 어떤 생각이 객관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한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다.
생각이 논리적이고 탁월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저 노출 빈도가 높고, 오랫동안 당위로 여겨졌고, 명성과 권위의 후광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미미했던 누군가의 주관이 끈기 있는 설득으로 객관이 되기도 한다.
결국 설득의 문제다. 주관은 열등하고, 객관은 우등한 것이 아니라 모든 건 주관의 산물인데, 어떤 주관은 여러 이유에서 설득력을 가져 보편의 차원에 자리 잡는다. 냉철하게 숫자를 보는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편집도 그렇다. 주관적 관점에서 정리한 결과물을 타인에게 보이고 합의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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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략 : 군더더기를 알아보고 배제하는 판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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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은 첨가보다 용감하고 힘 있다.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극악무도할 정도로 어렵다.
생략이 임팩트를 만들어낼 때, 수용자는 초대장을 받는 기분을 느낀다. 궁금증을 느끼면서 정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작가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부지런히 오간다. 이럴 때 생략은 그 자체로 주장이 된다.
반면 생략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숨기는 창작자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언어화하지 못해서 빈약한 이미지만 나열하는 경우, 이들이 구사하는 생략은 의심스럽다.
'정답 없는 다중 시점의 망망대해' 위에선 오직 정직한 자기 목소리만이 나침반이 되어 준다. 이 목소리는 자문자답을 통해 선명해진다.
생략할 용기와 본질을 알아차리는 눈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경험치와 노력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커진다. 나는 이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느낀다. 에디토리얼 씽킹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려 애쓰고 실패와 좌절의 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길 말고 별다른 요령이 없다는 사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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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질문 : 좋은 질문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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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상대와 상황에 반응하는 현재의 나 자신을 존중한다. 자기검열을 내려놓고 궁금하다면 일단 묻는다. 인터뷰는 엄밀히 설명하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벌어진 상호작용을 인터뷰어 관점에서 기록한 글이다.
인터뷰이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 가운데 특별히 어떤 것이 내 마음에 들어와 궁금해졌다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다.
직관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자기검열 없이 궁금한 것을 물을 때 대화의 진동이 깊어지는 경험을 수차례 했다.
둘째, 세상과 내가 당연시하고 있던 듣기 좋은 말은 한 번씩 흘겨본다. 그 당위에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 판단하는 시간을 가질 때 질문이 꼬리를 물곤 했다. 상대방이 전제하고 있는 믿음을 가시화해서 되묻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부터 질문하면서 검사대에 올린다. 이런 검증 과정 끝에 원래의 전제가 강화될 수도 있다.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으므로 이 생각은 자기 것이 된다.
셋째, 사안을 바라보는 위치와 상황적 맥락을 바꾸는 질문을 즐겨 한다. 많은 사회적 가닥들 중 한두 가지를 바꾸어보는 사고 실험을 하면 특정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중시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의미화 경로를 보다 다각도에서 점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넷째, '무엇을 했나요?'보다는 '어떻게 했나요?'를 궁금해하고, '어떻게 했나요?'보다는 '왜 했나요?'를 궁금해 한다. '무엇을 했나요?'나 '어떻게 했나요?'라고 물으면 인터뷰이는 자신이 겪은 개별 상황을 회고하는 답을 주로 하게 된다.
반면 '왜 했나요?'라고 물으면 인터뷰이는 감정과 동기를 회고하게 된다. '왜 했나요?'라고 물으면 감정의 공유지가 열린다.
마지막 다섯째 '내가 그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하고 묻는다. 질문이라는 형식으로 타인에게 악수를 청하고, 에고라는 단단한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이 쌓일수록 긴장하고 살던 인간 최혜진이 천천히 유연해지고 편안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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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각 재료 : 메시지와 비주얼 사이의 거리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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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려는 메시지와 비주얼 요소 사이의 거리 감각이 중요하다. 에디터에게 필요한 비주얼 감각은 탐미적인 센스가 아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정보 사이의 거리와 간격이 자신의 기획 의도에 맞는지 감각할 줄 아는 가늠자가 있는가 없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보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센서는 어떻게 훈련할 수 있을까? 텍스트와 이미지가 동시에 사용된 모든 종류의 창작물이 좋은 공부 재료가 될 수 있지만, 나는 특히 커버정키 웹사이트에서 해외 시사, 경제, 피처 잡지 표지를 보면서 거리 감각 연습을 했다.
예를 들어 <보스턴> 매거진 2014년 9월 호의 표제는 'Don't stress'다. 스트레스라는 주제를 시각화하기 위해 연상 그물망을 펼쳤을 것이고 씹힌 연필만 보여줘도 독자가 '스트레스'라는 핵심 메시지를 이해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메시지와 비주얼 요소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 보편적이면서도 위트가 살짝 느껴진다.
흔히 비주얼 감각은 타고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경우의 수에 대한 앎이 쌓일수록 센서가 정확해지는 거라 믿는다. 데이터베이스는 양이 많을수록 힘을 발휘한다. 감각도 지식처럼 집적된다.
디자인 역사와 그림책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브루노 무나리의 조언처럼 양이 질을 만들고, 노력이 쌓여 감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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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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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근속 20주년을 맞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하며 집필했다는 이 책을 살펴보면서 창조에 있어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낀다.
더불어 어떤 것이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나만의 무엇'이 있다면 그것만큼 특별한 것이 또 없음도 깨닫는다. 에디팅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은 어느 플랫폼이든 고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에디팅 툴이 대부분 적용되어 있다. 때문에 에디팅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상대에게 필요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네이버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특정 단어로 검색했을 때 모든 게시글이 사람들에게 '정보'나 '쓸모'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듯, 에디팅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 '에디팅'이 아닐까 한다. 의미를 가시화하고, 가치를 전달하는 일인 에디팅을 위해 어떤 사고방식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또 크리에이터인 한 사람으로서 어떤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이 전해준 내용처럼, 매일 다양한 재료를 모으고, 새롭게 사고하며, 질문하고, 다듬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노력이 쌓여 가치를 창출하는 한 명의 전문 에디터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