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개정증보판)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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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해 다방면으로 사유할 수 있었던 시간!"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1인으로써, 타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내심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그 답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여행에 대해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로 떠나는 여행담을 풀어놓기 보다, 여행을 중심으로 인간과 글쓰기, 타자와 환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등으로 확장시켜 '여행'에 대해 다방면으로 사유함으로써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총 10개의 산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여행-일상-여행을 반복하며 살아온 경험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확장시켜 찾은 '여행의 이유'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또다시 사유하게 된다. 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깨닫는지, 인생의 여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등.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남을 의미한다. 이것이 주는 모호함과 설렘, 기대감, 불안감 등은 떠나는 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후에 어떤 것을 더 얹어 돌아오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곧 여행의 묘미이자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으며 여행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금은 긍정적인 부분을 더 염두에 두고 현재를 즐겨보면 어떨까 한다.

저자가 찾은 여행의 이유를 살펴보며, 내 여행의 이유와 맞물리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그 밖에 나만이 가지고 있는 여행의 이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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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1. 서로에 대한 환대가 가능한 공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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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질병과 혐오가 없는 안전한 세계를 필요로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아직도 서로에 대한 환대가 가능한 공간임을 증거하는 행위였다. 외부 자극에 극도로 민감한 자폐인에게 좋은 집이 비자폐인에게도 좋은 집이라는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여행자에게 좋은 세계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좋은 세계였다. 여행은 적대와 혐오, 전염병과 전쟁이 있는 세계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2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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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적대와 혐오, 전염병과 전쟁 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방증과도 같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 멀리,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세계적으로 적색경보가 울리면, 한 공간에 머물 수 없는 것은 물론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지 못함을 몸소 깨달았다.

그렇기에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환대하고 환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서 여행의 이유를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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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2.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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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정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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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보면, 생각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때문에 실망했다가 기대하기도 하고, 또 행로가 달라지기도 하며, 후에 그 기억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 일련의 상황들을 겪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두는지, 또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넘기는지 등 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여행은 이렇듯 나를 더 성장시키는 것은 물론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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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3. 리셋에 대한 희망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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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 이전 투숙객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전날 남겼던 생활의 흔적도 지워지거나 살짝 달라져 있다.
(...)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만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90~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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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호텔에 머무는 순간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순백색의 하얀 시트가 주는 안락함과 단조로운 가구들로 인해 편안히 쉴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저 쉬기만 하면 되는 단출한 삶, 어쩌면 호텔이 주는 최대 장점은 이렇듯 물건과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어떤 이는 이렇듯 여행에서 머문 호텔 생활 덕분에 미니멀 라이프에 한 발 더 다가갔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그 사람은 리셋의 욕구를 여행뿐만 아니라, 현실의 여정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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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4.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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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 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 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마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107~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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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여행은 환상을 쫓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행은 우리를 현실에 발 디디게 만들어줌을 알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실상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늘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래선지 매번 후회와 불안은 반복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보면, 모든 복잡함은 내려놓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낯선 장소, 낯선 시간 속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현재에 대한 몰입감은 여전히 이어지는데, 여행에서 느낀 의미와 깨달음이 그대로 남아 현재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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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5.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이자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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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니,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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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는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 곳곳에서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나고 있다.
121~1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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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들은 여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인지, 아니면 어디로든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던 생존의 본능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현 인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활발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진화를 거듭해오며, 어쩌면 인류는 뼛속 깊이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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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6. 나만의 '성'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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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는 성을 찾아가는 건축기사 K가 등장한다. 그는 거듭하여 묻는다. 성은 어디에 있냐고. 사람들은 여기 또는 저기를 가리키는데, 때로 어떤 사람은 그가 이미 성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함께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 프로그램 안에 들어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프로그램 안 어디쯤 있는지를 모른다. 자신이 지금 한 말과 행동이 최종 편집을 거쳐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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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그 누구도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미래에 결정된다. 그러므로 편집이 완료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해서야 출연자는 비로소 자신이 일종의 카프카적 상황에 던져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
현장에서는 모두가 암흑과 무지 속에서 성을 찾아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알쓸신잡>이라는 이 이상한 여행은 화면에서는 밝고 유쾌하고 떠들썩한 나들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성'을 향해 나아가는 건축기사 K나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의 여정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래, 나는 여행을 하고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자는 그중 아주 일부를 보게 되겠지. '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순간은 유일하며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아니 꽤 많이 편해졌다.
(...)
나 역시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다른 출연자들을 통해 한 도시를 간접적으로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135~1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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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서야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절대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카프카적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것에 대한 조금의 힌트라도 얻고 싶어 점집을 찾거나, 사주, 타로카드 등 별별 수단을 동원하지만 결국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한다.

정답은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종지부를 찍고 나서야 명확히 알 수 있다. 마치 <알쓸신잡>의 방송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처럼 '성'을 찾기보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면 어떨까 한다.

※카프카적: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포감과 위협을 주는 무시무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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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7.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를 배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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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armchair traveler'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방구석 여행자'쯤 될 것이다. 편안한 자기 집 소파에 앉아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타클라마칸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자를 조금은 비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147~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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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행에 대한 정의를 폭넓게 설정하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여행에 대한 경험은 '직접여행+비여행+탈여행'이 합쳐서 완성되기 때문이라 전한다.

때로 직접 경험한 것만으로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럴 때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우리는 좀 더 명확히 규정할 수 있으며,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비로소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말한다.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꼭 직접 여행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3D, 방송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행을 즐겨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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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8. 인류애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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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1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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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어찌 보면 지구라는 행성에 살아가는 승객이라 말할 수 있다. 환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만약 이런 인류애가 없었다면 지구라는 행성에 과연 인간들이 정착하며 이토록 오랜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더불어 요즘의 세계정세를 보면, 다시 한번 인류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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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9.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배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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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뒤에 그 말은 사람이나 인격, 성격을 가리키는 단어들의 어원이 되었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쓰는 가면이 조금 낯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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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를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196, 2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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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행지나 홈타운 그 어느 장소에서도 다양한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꼭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것에 대해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통해 깨달음을 전하는데, 특히 홈타운에서 하던 행동이나 행위를 그대로 여행지에서 요구하거나 누리고자 할 경우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말한다.

그러면서 여행이라는 것이 평소 우리가 잊고 살았던 존중과 겸손의 자세를 배우는 시간임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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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10.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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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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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250, 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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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마지막 열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불편하고, 위험하며,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럼에도 자꾸 여행을 떠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생동감과 낯섦의 경험은 우리의 정신을 한껏 깨어있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고루했던 세상에 반짝 빛이 들어오게 되고, 온몸으로 세상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살아볼 의지를 다지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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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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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 익숙한 시간 속에 갇히다 보면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우물 안 개구리의 신세가 되곤 한다. 내 세상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 그리고 지루함을 느끼게 되면서 때론 비상식적인 태도와 행동, 우울감, 불안 등의 감정에 매몰되기도 한다.

인류 유전자에 이동에 대한 원초적인 유전자가 새겨져 진화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더 많이, 더 자주 여행을 하게 되면서 이런 부정적인 요소의 불씨들을 꺼뜨릴 수 있게 되었는데, 덕분에 아직까지 '인류애'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꼭 물리적으로 먼 곳을 떠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나름대로 인생이라는 여행을 순항 중이다. 물론 때로 파도가 치거나 배가 뒤집어질듯한 고난을 맞닥뜨릴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이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며, 이 여정을 끝까지 잘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찾은 '여행의 이유'는 나와 너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항목들이 아닐까 한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지구에 잠깐 머물다 가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겁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환대와 신뢰, 도움, 존중과 겸손, 포용할 수 있는 인류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여행의 이유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 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지금 현재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나의 인생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도 함께 떠올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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