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10년
코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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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 밖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랜만에 일본만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가슴 뭉클한 소설 한 편을 만났다. 스무 살, 10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결을 받은 주인공은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리라 결심한다.


젊은 패기였을까 처음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씩씩하게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잘 보낼 자신이.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점차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2024년 4월 초 한국에서 영화로도 재개봉을 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영화도 보고 싶어진다.


한참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있을 20대. 갑작스럽게 맞이한 사형선고와도 같았을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낸 주인공을 보며,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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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사카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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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불치병이 발병했으니 집필 활동을 계속해 <남은 인생 10년>을 완성했다. 그러나 문고본 출간을 앞두고 증세가 악화되어 2017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불치병에 걸려 앞으로 살날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살아 있다는 기쁨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섬세하고도 꾸밈없이 표현하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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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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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 난치병을 앓고 있어 앞으로 10년밖에 살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기쿄: 마쓰리의 친언니로, 무엇이든 잘해서 마쓰리에겐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

●사나에: 중학교 동창이며, 불치병 판정 이후 취미생활을 함께해 준 소중한 친구.

●가즈토: 마쓰리의 마지막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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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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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스무 살 여름, 남은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통보를 받게 된 마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로, 이후 10년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그녀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발버둥을 쳐도 죽음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현실에서 멀어져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만 했던 마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힘을 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이뤄내며 하루하루를 채우려 노력한다.


또 같은 병으로 앞서 세상을 떠난 레이코를 통해 죽음을 이미 간접 경험했기에,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보다 의연해지려 노력하지만, 삶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가 삶을 살아내기 위해 했던 힘찬 발길질, 그리고 발작이 찾아올 때면 느꼈던 좌절과 고통,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랑의 감정들을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더는 후회할 일도, 간절히 바랄 일도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삶아낸 마쓰리의 눈물겨운 삶을 이제부터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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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상 못 합니다."


갑작스레 입원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병동의 좁은 병실에서 담당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부모님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여린 언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사자인 마쓰리만 웃었다.


그렇게 마쓰리는 자신이 앞으로 10년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가 의료기관이 지정한 난치병인 이 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희귀병으로 가족 중 마쓰리의 아버지만 유일하게 그 병을 알고 있었는데, 마쓰리의 할머니가 같은 병으로 젊을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쓰리는 이 병을 진단받고 얼마 안 돼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병원 자료실에서 자료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은 유전성 질환이며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다 머지않아 첫 발작이 마쓰리를 덮쳤고 의식 불명. 큰 수술. 퇴원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 가슴에 남은 커다란 흉터. 점점 나빠져만 가는 안색. 거칠어진 피부. 마쓰리는 느릿느릿하면서도 차근차근 '환자'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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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에 몸을 갉아먹히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몸에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음을 자각했다. 그 문제로 인한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그 또한 하나씩 천천히 깨달았다.


당연하던 일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된 순간, 마쓰리는 공포와 전율에 휩싸였다. 젊음이 만들어낸 무서울 게 없던 순진한 오만은 진작 파괴되고 없었다.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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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하고 2년이 지나 스물두 살이 된 어느 봄날, 마쓰리는 퇴원했다. 2년 이라는 시간은 마쓰리를 제법 그럴싸한 '환자'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자유를 얻어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마쓰리는 막 알아차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마쓰리는 더 이상 가족을 울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자신을 향한 질타를 이어간다.


입원할 때 마쓰리는 같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레이코 씨의 권유로 노트에 마음의 소리를 기록하게 된다. 여기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쓰리의 '진짜' 속마음이 담겨있다.


퇴원하고 석 달이 지나 중학교 동창인 사나에와 자주 통화하는 사이가 되면서 마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그녀의 안내로 함께 코스프레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꽤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


덕분에 좋아하는 일들에 열정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만화도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의 옷을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되면서 소히 '덕후생활'을 즐기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마쓰리가 입원해 있는 동안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덕분에 지루한 병원생활을 잘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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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다는 감정은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는 거.

너무 간단해서 웃음이 났다.

웃음은 중요하다. 웃음은 꼭 필요하다.

즐겁다는 느낌이야말로 인생의 토대가 아닐까.

인생은 즐기는 사람이 이긴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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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로 인해 세상에서 밀려났던 마쓰리는 그림 덕분에 다시 세상 속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찾은듯하다. '받아들여졌다'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활력도 되찾고, 오랜만에 열정을 가지고 그림에 심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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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펜을 잡았을 때는 신기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더니 활력이 넘치고 머리도 맑아지고 음식도 맛있었다.

(...)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마치 발병 전 자신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래서 정신없이 그림을 그렸다. 소재는 무궁무진했으며 시간은 남아돌았다.


펜이 종이 위를 내달릴 때 느끼는 흥분은, 스스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완성된 원고를 볼 때면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에 휩싸였다. 먹고 자는 일도 잊을 만큼 심취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작업을 일단락하고 정신이 들었을 때 느껴지는 건강한 공복감은 몸이 원하는 순간에 음식을 입에 넣고 맛있게 먹는 쾌감을 되살려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몸도 마음도 병을 잊을 수 있었다.

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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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는 자기가 있을 곳을 얻었다. 또한 그곳은 세상과 확실히 이어져있었다.

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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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많은데 환자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던 마쓰리에게 있어 이제는 루틴이 생겼다. 더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뭘 할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마쓰리는 출근하는 언니를 보며 내심 초조함을 느낀다.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지 문득 불안함을 느낀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학시절 친구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그 친구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만 어쩐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유독 대학시절 친구를 떠올릴 때면 마쓰리는 늘 마음에 그림자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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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로해 주던 따뜻한 친구들. 하지만 누구도 마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지는 못했다. 그 친구들이 마쓰리에게 준 건 병문안 꽃과 케이크도 있었지만, 패배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감은 차츰 허탈감으로 바뀌더니 마쓰리를 질투에 빠뜨렸다.

(...)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질투가 사그라들고 나면 어김없이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이대로 죽여 달라고 빌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가 아니었다. 추해지는 자신을 참을 수 없게 됐을 때였다.

55~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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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라는 타이틀에서 살짝 벗어나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지낸 지 1년이 흐르자, 조금 여유가 생긴 마쓰리는 아마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던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열패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해 용기 내서 시작한 단행본에 대한 결과는 처참했고, 친구들은 마쓰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억지스럽게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려 하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티도 내지 못하고 혼자 울음을 삼키며 친구들의 무례함을 삼켜야 하는 현실이 어쩐지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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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을 내지를 용기도 없는 겁쟁이. 어릴 때부터 어떤 상황이건 화도 눈물도 결국 웃으며 삼켰다.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언니와 자신은 달랐다. 그래서 마쓰리는 언제나 웃는 쪽을 선택했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사이에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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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가 이렇게 넘기는 데에는 미움받기 싫다는 방어적 기재가 깔려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완벽했던 언니와 비교당하면서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때문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타인에게는 일체 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스물 다섯 살, 마쓰리의 남은 삶 중 절반이 흘렀고,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언니인 기쿄가 결혼하게 되면서 애인인 사토시와 군마로 떠나게 되었다.


이후 마쓰리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언니의 빈자리를 보며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곧 또 다른 빈자리가 날것 같아서, 그것을 보고 슬퍼할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문득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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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더는 빈자리를 만들지 않고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

(...)

애걸복걸 매달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울부짖기보다는 포기하고 떨쳐내고 웃는 쪽이 자신다운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더 살고 싶다. 하지만 죽음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 죽음은 모든 매듭을 지어줄 유일한 길이니까. 어처구니없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마쓰리는 운명을 원망했다.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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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불안과 선택권이 없는 선택지에 마음이 녹아내려 사그라지지 않는 불안감을 한탄하다 불현듯 병실에서 말하지 못한 후회를 더듬는 짓만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쓰리는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후회로 남길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를 남기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억 속 '그 애, 신타니 미유키'를 찾기로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지만, 그 애가 집단 괴롭힘의 표적이 되면서 자신 또한 방관하며 보냈던 지난날을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찾아간 미유키는 생각과는 다르게 행복한 결혼생활은 물론 좋은 집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보고 자신이 제멋에 취해 있었음을 깨닫고 돌아서려 하지만, 리트리버에게 발각되며 미유키와 재회하게 된다.


미유키와 마주한 마쓰리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미유키는 마쓰리가 모르는 과거 그때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과를 받아준다. 그렇게 '미안해'가 완성된다.


다음으로는 '사랑해'라는 말의 행방을 더듬었고 마쓰리의 첫사랑인 다케루를 떠올리게 된다. 다케루는 사랑에 솔직했던 마쓰리가 유일하게 '사랑해'라고 고백하지 못한 상대로 동창 모임 빌어 고백 계획을 세우지만,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이 고백은 무참히 깨지게 된다.


하지만 동창 모임에서 가즈토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가즈토 짝사랑 고백을 듣게 되면서 둘의 사이는 많이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면서 가즈토의 개인사도 듣게 된다.



또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마쓰리는 스물여섯 살이 된다. 동창 모임 이후 가즈토와는 소식을 뚝 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불쑥 가즈토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고 어느새 연인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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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가진 사람의 눈에는 뭐가 보일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아, 시간인가.

제일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맨 먼저 떠올랐다.

동시에 가즈토의 웃는 얼굴도 함께.

목숨에 연연하지 말자.

죽음이 두려워지면 더는 웃지 못할 테니까.

1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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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고, 그 행복이 지속될수록 마쓰리는 점점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시한부 인생인 자신의 처지, 병마로 인해 얻은 몸의 큰 상처로 인해 이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되찾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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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즐기는 사람이 이긴다던데,

가즈토와 있으면 즐거움 뒤에 꼭 괴로움이 찾아온다.

즐거웠던 만큼 괴로움도 크다.

괴롭지만 그래도 또 보고 싶다.

분명 맨 먼저 없애버린 게 연애 감정이었는데.

제발 죽기 싫다는 마음이 들게 하지 말아줘.

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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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는 가즈토 덕분에 사랑도 하고, 여름도 좋아졌는데, 그럴수록 어쩐지 더 괴롭고 슬퍼졌다. 여기에 더해 과거에 가즈토가 결혼할 뻔한 여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자신은 가즈토에게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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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가즈토에게 말을 걸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휴일 오후에 거실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건 참 행복한 일이구나. 꿈같은 현실이 가슴속에 감춰둔 진실을 한층 더 무겁게 만들었다. 행복이라는 빛이 강해질수록 그 아래에 불행이라는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2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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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토를 보며 마쓰리가 느끼는 기분들을 표현한 섬세한 문장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되돌아보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의 행복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제 마쓰리는 일분일초가 아깝고 애달파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생명이 소중해졌다. 조금만 더 세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빌었다.


후에 마쓰리의 병과 사정을 듣게 된 가즈토는 3년이면 충분하다며 청혼을 하지만 마쓰리는 이를 거절하며, 가즈토가 제대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즈토를 만나게 된 이유가 망가진 가즈토를 다시 살리는 것에 있었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기점으로 둘은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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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에게 이제 미련은 남아 있지 않았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 말을 전부 전할 수 있었다.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3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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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준비는 모두 끝났고, 이제 남은 건 그동안 써온 노트를 버리는 일뿐이었다. 마쓰리는 남은 3년 또한 치열하게 살아보기로 다짐하고, 만화 그리는 일에 열정을 다한다.


종종 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속도보다 병이 악화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짐을 느끼기도 했지만 죽어라 만화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오직 만화를 그리는 것, 단행본을 내는 일을 목표 삼으면서 출판사 편집자에게 단칼에 거절당해도 주눅 들거나 포기하지 않고 죽을 둥 살 둥 만화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먹고 자는 일도 잊고 미친 듯이 만화를 그리면서 하나 둘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작품을 완성하면서 마침내 단행본도 출간하게 된다.


여전히 코스프레는 즐거웠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 끝나자 그 길로 이벤트에서는 손을 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사나에의 결혼이 정해지면서, 그녀의 드레스를 만드는 것으로 마쓰리를 자극하던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루어낸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겼기에 나중에 입원하는 횟수가 잦아져도 마쓰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마침내 10년째 되는 해가 지나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열정은 막을 내렸고, 꿈꿨던 일도 그럭저럭 결과를 남겼다.


헤어지기 싫다며 마쓰리를 붙잡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레이코 씨의 권유로 썼던 마음 노트는 여름에 퇴원했을 때 학교 소각로에 버리고 왔다.


카운트다운은 시작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못하는 몸의 욕구로 인해 가족들을 상대로 분노를 터뜨리는 일도 늘어났다.


마음속에는 서서히 좋아했던 것들,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묘비가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조용히 가슴속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언니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면서 마쓰리는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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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는 새 생명이 채워준다.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와 이어질 테고, 일찍이 누군가의 생명이 있었기에 나와 이 세상도 연결되었겠지.

3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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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쓰리는 마음의 평정과 외로움 사이를 오가며 서서히 죽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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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 역시...

역시, 외롭다.

너무너무 외롭다.

(...)

솔직히 죽고 싶지 않다. 달아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다. 다시 한번 바깥에 나가 걸어보고 싶다.

3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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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쓰리는 세상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그리고 남아있는 자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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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마쓰리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공포, 괴로움, 두려움, 외로움을 포함해 남은 10년을 알차게 살아보고자 하는 다짐, 열정, 의지 등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심정에 대한 독백은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 더 아프게 다가온다.


마쓰리의 삶을 지켜보며, 문득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살아있지만 죽은 듯 사는 사람, 죽었지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듯이 어쩌면 물리적으로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10년을 후회하나 남기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낸 마쓰리의 삶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고, 만끽하고, 아파하며 살아낸 마쓰리였기에 눈을 감는 순간에는 오히려 고요와 평온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모르기에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를 대충 흘려보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유한한 삶을 살고 있고, 때론 미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생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은 우리야말로 시한부 인생처럼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 위해 매일 후회하지 않도록, 더 많이 표현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기를.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열정을 쏟을 일에 적극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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