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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닌 여자들 -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 북다 / 2024년 6월
평점 :
"'엄마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미국 여성은 어째서 자녀를 갖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이 책은,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핫한 저출산을 비롯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그냥 무심코 넘겼던 이야기에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던 여성들의 출산에 대한 선택 문제, 그리고 사회적인 가족 모델의 변화, 기후변화 등 환경적인 요인의 변화, 피임이나 냉동난자, 시험관 시술 등에 기술의 변화, 그리고 자발적 무자녀를 선택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출산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여성의 문제라는 식으로 특정 지어 책임을 지운다는 점, 또 아이가 없는 여성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거나, 마치 실패한 인생처럼 이야기한다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가 아닌 여성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호칭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라는 지위에 대해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저출산을 과연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다루며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제와 변화가 있었는지, 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저출산의 문제와 해결 방안들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살펴본다. 여기에 더해 여성들이 '엄마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대한 심오한 질문의 답도 함께 찾아나간다.
단지 출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정상 취급을 받고, 마치 아이 낳는 기계처럼 대우받는 사회 속에서 이제는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과연 출산이 당연시 되는게 맞는지, 또 이것이 왜 강요받아야 하는 일인지, 이것으로 왜 여성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지 제대로 마주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 전반의 모습과 환경, 가족구조, 생식에 관련된 의료기술 등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이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에 대해 사회는 여성 개인의 문제(안위, 성취, 모성 회피 등)로 치부하며 이기적인 존재로 취급해왔다. 그러면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사람들은 서슴없이 해왔다.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어찌 보면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왜 이것이 이토록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가정 내에서는 물론, 사회 전반의 교육시스템, 경제력, 커리어, 환경, 복지 등으로 인해 점점 더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관한 문제는 오로지 '여성'에게 특정 지어 책임을 지운다.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정부와 사회 시스템은 나 몰라라 하며 인구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아이 문제를 들먹이며 여성을 괴롭힌다.
그래서 엄마 아닌 여성들은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유한한 삶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남은 것은 엄마인가 엄마가 아닌가에 대한 결론뿐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의 존재가 단순히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왜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취급받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성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수없이 변화되어 온 사회현상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과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되돌려 볼 방안을 찾아보면 좋겠다. 더불어 '아이 없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또한 바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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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오랜 시간 여성은 임신을 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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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피임약과 기술이 등장하기 전부터 여성들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임신을 피해왔다. 이에 대한 여러 사례를 보여주며, 여성이 자녀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선택하고 고민해 온 내용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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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언제나 존재했고, 그 방법 역시 언제나 존재했다. 여성이 자녀를 가진 세월만큼 오랫동안 여성이 자녀를 갖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역사적 증거가 있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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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전문교육과 직업을 가지면서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하거나 적게 낳는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상 여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 선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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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피임 기술의 적법성과 편의성 그리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 권리는 분명 산아제한을 쉽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여성이 산아제한을 원하게 된 것은 아니다.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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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살펴보면, 약간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내용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런 것들이 인식으로 굳어지면 다시 되돌리는 데 꽤 애를 먹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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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공동체의 소멸과 핵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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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양육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와 함께 해왔다. 엄마 아닌 사람들도 대거 투입되어 아이를 함께 기르고 양육하며 서로 의지하고, 도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되면서부터 출산과 양육은 점차 개인(여성)에게 의존하게 된다. 사회는 점점 더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지웠고, 여성들은 점점 고립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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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핵가족이라고 부르는 가족 체계의 움직임은 19세기 초부터 일어났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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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화되면서 여성은 점점 고립되어 갔고,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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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이런(출산율)의 차이가 여성의 거주지가 어머니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즉 친정 가족과 공동체와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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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까이 사는 여성은 일찍 자녀를 갖기 시작했으며 더 많이 낳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가족, 공동체의 지원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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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자매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생기는 가족은 본래의 집에서 멀고 재정적으로 불안해 부모나 더 큰 공동체를 돌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모든 관심을 가족 내부에만 집중해 애초에 그런 돌봄을 제공할 책임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86~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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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이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친정식구와 가까이에 사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출산율이 확연히 차이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정신적, 경제적, 양육에 있어 안정적으로 돌봄을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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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출산하고 어머니가 된 다음 다른 여성과의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자녀를 양육했다. 그 자녀가 모두 생물학적 자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했다.
(...)
가족의 정의는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서 혈연과 전혀 관련 없는 다양한 사람이 삶의 친밀한 영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초기 미국인은 공동체를 이루며 프라이버시의 벽을 허물고 자녀 양육의 부담을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충분한 공간을 소유한 가정 전체와 나누며 공동체적 양육을 위해 자녀에 대한 단독 소유권을 버릴 용의가 있었다.
9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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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화되기 이전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는 꼭 아이를 낳지 않아도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기꺼이 동참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의 벽안에서 함께 공동체적 양육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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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다른 지역이나 과거 200년을 살펴보면 핵가족은 붕괴하고 있다. 하지만 핵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퍼지면서 대가가 따라왔다. 공동체와 가족이 오랜 세월 서로를 유지하게 한 여러 가지 방법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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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화는 어찌 보면 공동체와 가족을 끈끈하게 이어주던 유대감을 끊어놓은 장본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여성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 출산과 육아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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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뉴잉글랜드의 마을처럼 자녀를 사랑하고 양육하는 일을 나눔으로써 생물학적 부모를 지원하는 공동체는 만들어질 수 있다.
1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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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무너진 공동체를 '나눔'을 통해 재건할 수 있다 말한다. 어쩌면 전 세계가 초 저출산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시기에, 사회와 시스템이 만들어야 할 것은 이런 공동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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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사회적 성취와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역할 모두를 강요해 온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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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자원과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회는 여성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해 오기 시작했다.
성공한 여성, 여기에 더해 가정에서는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역할 모두를 잘해 낼 수 있다며 은근히 부추기고, 또 그렇지 못한 여성의 경우 실패자로 낙인찍거나 죄책감을 갖도록 유도해왔다.
때문에 밤낮으로 여성들은 쉴 틈 없이 가정과 사회를 위해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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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에 '결혼 후 퇴사'법을 통과시킨 이들은 여성에게 선택을 제공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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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계산은 틀렸다. 어머니가 되도록 여성을 직장에서 내쫓음으로써 그들은 그 반대로 일을 해낸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이 일하기 위해 모성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1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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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가지면 퇴사하도록 종용하는 회사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고, 또 그랬기에 여성들은 결혼했다는 이유로, 임신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하거나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여성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이나 육아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커리어를 포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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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모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하고 근로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200년 된 믿음 탓이다. 그리고 자녀가 수입과 상충될 때, 많은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니,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자녀를 적게 갖거나 갖지 않는 것이다.
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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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발전할수록, 이상하게 먹고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제적인 부분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면 여성은 또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자녀를 적게 갖거나 갖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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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을 노동력에서 배제하는 법이 처음 제정된 후로 150년이 흘렀고, 그 역효과는 분명했다. 오늘날 서유럽에서는 노동력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출산율도 높다.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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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는 여성을 노동력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오늘날의 통계를 살펴보면, 여성 비율이 높은 노동력을 갖춘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다.
단순히 여성을 가정에 둔다고 해서 출산율이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더 나은 복지, 더 나은 경제력 등이 뒷받침되어야만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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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 위기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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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같은 환경 변화로 인해 최근 들어 위기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이는 곧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다음 세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출산에 관계된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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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랄 세상이 어떨지" 고민한 밀스는 환경으로 인해 출산을 염려하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했다. 수백 년간 사상가, 경제학자, 운동 가는 한 아이가 지구에 미칠 영향을 염려했지만, 그들이 고민한 문제는 세월에 따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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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스의 졸업 연설은 아이가 일으킬 환경 파괴보다는 아이가 앞으로 할 경험과 지구가(온난화, 화재, 홍수와 그가 이미 예상한 생물 다양성의 상실) 아이에게 미칠 영향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160~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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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이미 아주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우리 자녀의 삶은 더욱, 아마 우리의 삶보다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태어나는 모든 아이의 삶은 기후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2019년 의학 저널 <랜싯>의 한 보고서에서 결론 내렸다. 200년간 여성은 환경적인 이유에서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했다. 혹은 선택해야 한다고 느꼈다. 오늘날, 그 선택을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느끼는 이는 많다.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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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상가, 경제학자, 운동가 등은 한 아이가 지구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지만, 여성은, 어머니는 아이가 앞으로 경험할 지구와 환경이 적합한지를 더 신경 쓰기 마련이다.
때문에 여성은 환경이 좋지 않거나 악조건이라는 판단이 서면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다. 이것은 200년간 이어져온 역사이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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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에 접어들자 기후변화의 현실은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기록적인 가뭄, 혹서, 산불, 홍수에 직면하자 환경운동이 다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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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들은 새로운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선택을 늦추는 것이 아닌가, 혹시 자녀를 갖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최근 16~25세 젊은이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전 세계 설문 조사에서 열 명 중 네 명이 기후변화 때문에 자녀 갖기를 두려워한다고 나타났다.
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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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은 몸소 겪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해 아이 갖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기후변화나 환경은 더 악화될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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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생물학적 자녀 출생을 위한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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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술을 살펴보면, 출산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산업이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냉동난자, 시험관 시술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곧 생물학적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기대이자 강요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임신을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몇 배는 힘든 난임 치료와 실패의 과정을 수없이 겪으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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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여성이 의도적으로 임신을 피하는 것인지, 단순히 교육, 독서, 유행 등을 우선시하느라 임신 가능성이 낮아지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라졌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여성의 탓이라는 것이다.
214~2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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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불문, 출산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늘 여성의 문제로 돌아왔다. 그런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서인지 여성은 어쩐지 출산에 대해 강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힘든 치료도 꿋꿋이 견딘다. 냉동난자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기도 하고, 시험관 시술과 난임치료도 불사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실패까지도 끌어안으며 아이를 낳는 방법에 온 마음과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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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보조 생식 기술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이용하기 어렵다. 남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여성은 북반구 전체는 물론, 북아프리카 여성보다도 훨씬 높은 비율로 난임을 겪고 있다.
2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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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건 국가나 사회보장 시스템에서는 정작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인색하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으로 자연임신이 불가한 경우 이에 대한 모든 비용은 개인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에게는 그 기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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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필사적으로 원하는 여성의 품에 아이를 안겨준다고 약속하는 것은 시험관 시술만이 아니다. 공식적, 비공식적 입양, 임시 보호 양육, 공동체 양육은 수백 년 동안 자녀 없는 가정에 자녀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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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에게 시험관 시술은 신이나 과학, 혹은 둘 다의 선물이다. 하지만 다른 여성에게 그것은 불어나는 카드 빚과 자가 주사를 하고 남은 주사기가 가득 든 봉투만 남긴 허상의 근원이다. 또 다른 이에게 그것은 필연적인 이유로 손에 닿을 수 없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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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성에게 왜 자녀가 없는지 묻는다면 한 가지 답은 가장 분명하면서도 가장 쉽게 무시되는 것이다. 자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비싼 생식 보조 기술을 쓸 수 없기 때문이거나 브릿짓 애덤스가 인생 최악의 날에 알게 됐듯이, 그 방법을 쓰더라도 여전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250~2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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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종용하지만, 실상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여성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왜 아이가 없냐는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자 존중받지 못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엄마 아닌 여성이지만, 실상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여성이자, 이제는 수많은 카드빚과 허상, 그리고 좌절감만 안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한 데 뭉뚱그려 '그런 여성', '저런 여성'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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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현대사회는 자발적 무자녀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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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는 자발적 무자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자녀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출산과 양육에 대해 과거의 규범이나 사회적 가치보다 자발적인 양심과 선택에 따라 선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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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지를 하거나 출산을 하는 결정은 이제 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
2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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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경제, 독박 육아, 삶, 커리어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요즘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관이나 관습보다는 자신들의 생활패턴이나 상황에 따라 출산과 임신 중지를 선택하려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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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통제 예방센터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이 중 6퍼센트만이 NON의 상상처럼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았다." 자녀를 갖지 않기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중심으로 산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다. 그 밖의 우리가 자녀를 갖지 않은 이유는 난임 또는 대학원 졸업, 커리어, 적당한 상대 찾기, 주택 마련이나 은퇴를 위한 저축, 나이 든 부모 보살피기, 대학 학자금 갚기 등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우선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얻은 결과다.
2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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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사람의 수는 극소수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생존이 위협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초 저출산 국가라고 흔히 말하는데, 단순히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통계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그 면면에 숨겨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낳을 수 없는 상황임을 국가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방법을 찾아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불명예스러운 저출산 국가의 오명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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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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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라면 '어째서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복잡 미묘하게 얽혀있는 일들로 인해 하나로 규정지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잘못 인식되어 온 여성 이기주의나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로 명명되는 것 역시 바로잡아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사라져 버린 세상 속에서 이제는 그 누구도 출산과 양육에 대해 강요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 그저 그것은 당사자들의 선택이며, 사회나 국가 시스템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복지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때문에 이제는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라는 물음보다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아이는 당연한 것도, 의무도 아니다. 때문에 엄마 아닌 여자들에 대해 비정상이거나, 짐을 지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제는 자녀가 아니다. 문제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위한 복지정책이나 유급휴가 등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삶의 형태는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끊어진 공동체 또한 되살려 가족의 구성 수나 형태와 상관없이 서로를 돕고 돌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통해 서로를 별개의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까지 상쾌시킬 수 있는데, 이는 곧 현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를 포함해 우리 모두를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자, 서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저출산 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많은 역사가 개입되어 있고, 또 시스템과 인식이 관여되어 있다. 그래서 단번에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민하고 또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육아는 과거보다 더 힘들어졌고,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도 무너졌고, 결속력도 약하기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다. 에너지는 더 많이 쓰는데 결과적으로 더 힘든 상황이 연출된다.
여기에 더해 임신은 더 어려워졌다. 단순히 결혼연령이 높아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 요인으로 인해 남녀 모두 난임 확률이 높아졌다.
이제는 엄마와 엄마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구분이 의미 없어졌다.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 규범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현 상황에서 서로를 위할 수 있는 방법,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국한하기보다, 이제는 내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나 친구, 지인들 또한 가족이라는 범주에 기꺼이 끌어들여 과거처럼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지금의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