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의 들꽃 - 삶이 그러하여도 잠시 아늑하여라
김태석 지음 / 좋은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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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술을 하는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그럴 때는 작가가 직접 그리고, 쓰고, 다듬고, 만든 작품을 살펴보면 약간이나마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관점으로 살펴보면 조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듯하다.


시인의 눈에 아로새겨진 일상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 어떤 생각으로 사물들을 바라보는지를 관찰하면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시를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에 시인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낸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개표소, 빗물, 기침, 꽃말, 설익은 사과, 이끼, 지렁이, 민들레 홀씨, 모래알 등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시인만의 감성을 녹여낸 듯하다.


여기에 더해 페이지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던 80여 점의 사진은 시인이 쓴 약 100편의 시와 어우러져 의미를 더한다.


마치 쉼표처럼, 시를 읽다 시선을 돌려 사진을 멍하니 살펴볼 때면 그 자리에 따뜻한 감성과 고요한 침묵이 나를 감싸주고 있는듯하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시선을 끌었던 몇 개의 시를 통해 나만의 감성과 생각을 전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는 시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감상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그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자, 또 하나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해석, 엉뚱한 해석일지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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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의 냉장고



(...)

그런 아이에게 때때로 냉장고는 키다리 아저씨의 속마음이 되기도 하여서


사랑한단 말 금방 올 테니까 잘 있으란 말 넣어두면

홀로 집을 지키는 아이는

사랑한다는 말, 금방 온다는 말은 꿀꺽 삼키고

잘 있으란 말만 남겨두어


엄마 앞에선

잘 있었단 말만 한다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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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약간 서글프게 다가왔던 시인데, 키다리 아저씨의 냉장고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정작 기억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말들(사랑하다는 말, 금방 온다는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잘 있으란 말만 남겨두고 내내 엄마를 기다린 아이의 마음이 짐작되어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이에게 냉장고는 키다리 아저씨의 속마음이 되기도 하여서'라는 구문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애달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시의 제목이 반어법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읽느냐, 엄마의 입장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를 끔찍이 사랑했던 아이는 모든 말을 꿀꺽 삼키고 엄마를 앞에선 그저 잘 있었다 말하지만, 오랜 시간 엄마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 입장에서는 때로 버겁게 느껴지거나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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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멍울



누가 하늘에 대고

욕을 했나


하늘에 아주 까만 멍이 들었다


아이고, 많이 놀랐겠군

욕 한 놈은 어디 가고

그대 피멍울만 남았으냐

3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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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은 때때로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는 하는데, 모양, 색상, 두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를 쓴 시점의 구름의 모습은 아마도 먹구름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먹구름을 보고 저자는 누군가 흠씬 두드려 팼거나 욕을 한 바가지 해서 그토록 까만 멍이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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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둥근 돌도 던지면 아프다


너의 말이

그렇다

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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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임팩트가 꽤 컸던 시로, 아무리 둥근 둘도 맞으면 아프다. 말도 그렇다는 말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아무리 돌려 말해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욕보이는 말은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꼭 그런 말이 아니라도 툭툭거리는 말투나 단어 하나에도 상대방은 상처받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가끔은 뭐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을 이렇듯 시나 사진으로 남겨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그때 느낀 감정이나 생각들을 곁들여 남겨두면 더없이 멋진 나만의 000가(일기, 에세이, 시집 등등) 완성되는 것이니 이것만큼 소중하고 귀한 자료가 또 있을까 싶다.


이것을 통해 가끔 일상을 돌아보기도 하고, 힘들 때는 이것들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느끼며 '그땐 그랬지'하며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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