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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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측면에서 불안에 대해 살펴보고,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덕분에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안이 어떤 형태로 진화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불안 증세들이 지금의 병명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게 되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소가 어떤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저자가 꼼꼼히 분석하고 살펴 본 예시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다시금 '복잡한 세상 속에서 과연 아무런 걱정 없이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라는 원론적인 질문도 해보게 되었다.


더불어 저자가 제시한 해법들을 통해 회피보다는 직시와 수용을 통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과 내면에 갇혀 생각에 몰두하기보다 행동함으로써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불안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임을 배울 수 있었다.


살다 보면 때때로 불안과 걱정이 나의 삶을 뒤덮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 그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형태로 대응하기보다 의연하고 여유롭게 지켜보는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면 적어도 불안에 짓눌려 자신의 일상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살펴보면서 불안의 현주소는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까지 함께 담고 있다.


덕분에 문화와 역사는 물론 여러 통계와 연구 자료,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모습까지 살펴보면서 불안이 시대를 거쳐 어떤 형태로 흘러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현재를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며, 단지 이를 해소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오히려 혼란과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걱정 중독>에 대해 살펴보면서 움켜쥐고 있던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고 편안한 일상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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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걱정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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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표는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떻게 미래, 원인과 결과, 위험과 재앙,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이는 세상에 대한 환멸이 증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정신 건강의 악화는 그에 따른 수많은 증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불안의 패턴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그 원인은 모두 같다. 이 모든 것은 현재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징후다. 그러나 그 방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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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야기한 원인과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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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에 걸쳐 질병의 종류는 점점 더 다양해졌지만, 사실은 같은 주제의 변형이다.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의 기저에 깔린 소위 불안장애까지 합하면, 전체 유럽인의 약 3분의 1이 살면서 한 번은 이런 질병을 앓는다. 전 세계적으로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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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상 수많은 질병은 따지고 보면 같은 주제의 변형이다. 수년에 걸쳐 이름이나 증상은 다양해질지언정,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보면 이것은 곧 불안이라는 장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질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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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방법을 찾는 대신 우리는 위험 회피에 점점 더 능숙해져야만 하고, 위험 회피를 통해 발생하는 또 다른 위험에 직면해야 한다. 계산이나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그래야만 한다'.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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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위험 회피는 이제 당연하게 겪는 것이자 능숙해져야만 하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인 요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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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위험 회피 정책에 기반을 둔다면, 적어도 세 가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 위험: 파멸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인형극, 발레, 오페라 모두 세상의 종말을 얘기한다. 범죄와 테러는 공포를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세상의 종말에는 매력이 있다.


두 번째 위험: 윤리가 계산에 밀려난다.

위험이 확인되는 즉시 적절한 대응책을 찾기 위한 출발 신호가 떨어진다. 대응책이 반드시 정치적일 필요는 없고, 대대적인 사회 개혁이 아니어도 된다.


세 번째 위험: 위험과 위험이 대결한다.

임박한 재앙의 위험에 대치하는 방법을 계산할 때, 각각의 제안은 또 다른 위험 계산을 생성한다. 

234~2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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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회피하게 되면 여기에는 또 다른 위험이 뒤따라오기 마련인데 저자는 이에 대해 3가지 위험요소를 꼽았다.


첫째로는 우리가 즐겨 하는 문화 속에서 파멸을 매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둘째는 계산에 밀려 정작 진짜 중요한 윤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대응책을 찾다가 결국엔 또 다른 위험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험을 피하려다가 결국에는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음에 대한 경고로 느껴져 당장 간편하거나 쉬운 방법만을 좇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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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부작용에 대한 사례>


두 여성의 경우 정신분석학자의 제멋대로 해석으로 인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겪게 된다.


●헬레나: 어디를 보든 남자의 성기를 연상시키게 됨

●애니: 마지막에는 가족을 대면하는 것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됨

238~2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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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에는 작은 불안 증세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고자 찾은 정신건강의학과(혹은 심리상담소)에서는 이들에게 자기들 멋대로 이상한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오히려 더 큰 불안을 야기하게 만든다.


덕분에 헬레나는 무엇을 보고, 경험하든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게 되었고, 애니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전문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잘못된 사상과 학설로 이들을 찾은 환자들을 대한다면 이들은 결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특정 개인을 향한 굳은 신뢰와 접근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처럼 때론 부작용도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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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방식과 행복이 상호 영향을 얼마나 많이 미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외로움과 정신질환의 연관성이다. 장기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정신 건강 문제는 대부분 외로움에서 싹튼다. 외로움 때문에 낙담하고, 불안과 우울이 그 뒤를 따른다. 결과는 심각하다. 친구가 없거나 배우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인터넷 의존성 측면에서 이를 살펴보면, 소셜 미디어에 빠지면 실제로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노력을 안 하고, 그로 인해 외로움은 더 커진다.

(...)

외로움이 증가하면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우리는 더 취약해진다. 내면을 치유해 정신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한 탓에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지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실제로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잘못되었나 살핀다.

2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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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된 지금, 이런 우리의 생활방식이 행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생활 방식이 가져온 외로움과 우울증은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얼마나 우리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


취약함은 지속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을 야기하기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이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확실한 인식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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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면, 어떡하지?" 질문이 승기를 잡는 순간, 불안이 저절로 재확인된다.

2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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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중에 하는 걱정들이 쌓이고 쌓여, 이 질문이 우리를 잠식하는 순간, 불안은 뒤이어 따라오기 마련이다.


만약 일상 속에서 하는 사소한 염려들의 빈도가 잦거나 염려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한 번쯤 내가 불안에 잠식당하는 중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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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걱정하는 방식뿐 아니라 걱정하는 대상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17세기 사람들에게는 마법에 걸리거나 마녀라고 고발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자연스러웠다. 또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갈 때는 수많은 사람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캐스팅된 배우일까 봐 불안해하며 마음수련에 휩쓸렸다. 망상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했던 이런 불안은 주인공이 그런 조건에 놓였던 영화 <트루먼 쇼>가 1998년에 개봉된 이후 널리 퍼졌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병적인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문화에 유입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걱정과 불안이 너무 이색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병든 정신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2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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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걱정하는 방식뿐 아니라 걱정하는 대상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17세기 마녀라는 낙인이 찍히면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보며 느끼는 불안, 20세기에서 21세에 몰래카메라나 트루먼쇼와 같은 속고 속이는 프로그램으로 불안을 야기했던 것을 통해 세월에 따라 양산되는 문화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불안과 걱정이 퍼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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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불안이 다르게 나타나는 위험 영역!

(종교, 성, 공격권,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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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문화권마다 걱정과 불안이 유독 많이 나타나는 영역을 위험 영역이라고 부르고, 우리의 '내면'이 문화적으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네 영역, 종교, 성, 공격성,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종교: 멈출 수 없는 자책

종교적 강박관념은 기독교뿐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에서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신앙심이 아주 깊은 사람들이 이런 강박관념에 빠진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이 같은 생각을 허용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언제나 자기 자신과 관련지어 보기 때문에 이에 맞서 뭔가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 끈질기게 만들 뿐이다.


종교가 없어서 생각의 순수성에 가치를 크게 두지 않는 사람은 "신을 미워한다" 같은 문장을 더 쉽게 용납할 수 있다. 그 말이 그에게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국가일수록 종교적 강박관념이 있을 확률이 당연히 더 높다. 미국의 연구들을 보면, 강박장애의 5~10퍼센트가 종교와 관련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처럼 더 종교적인 국가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그 수치가 50~60퍼센트에 이른다. 아마도 실제 수치는 심지어 더 높을 텐데, 종교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도움을 얻기 위해 병원에 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걱정은 모두 문화적 두려움에 기초한다. 그러나 종교가 반드시 개인의 위험 영역인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도 사이에서 종교적 강박관념은 비교적 드문 일이다. 그러니까 죄, 부도덕, 불결함, 신성모독에 눈길을 주더라도 강박적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아주 작은 일탈이, 설령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탈이라도, 지금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 개인이 확실할 때만 문제가 된다.


특정 가르침을 잘못 해석해 이런 강박적 사고가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종교가 다양한 강도의 처벌을 이용해 강박적 사고를 조장하기도 한다.



■성: 수치스럽거나 혐오스럽거나

성적인 내용이나 폭력적인 내용이 포함된 원치 않는 생각이 요즘 가장 흔한 강박적 사고에 속한다. 손 씻기 강박보다도 더 흔하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거의 모든 응답자가 때때로 원치 않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답했다. 반드시 동성애와 관련되진 않았지만, 응답자가 역겹거나 끔찍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주제였다. 그러므로 강박은 생각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없애려는 욕구에서 생긴다.



■공격성: 내가 사이코패스인 걸까?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폭력에 관한 강박적 사고는 잠재적 재앙으로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문이 들불처럼 퍼져 당사자가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작가 올리비아 러빙은 이것은 "강박의 어두운 면"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에서 살아가고, 이런 문화에서는 뭔가 의심스러운 순간 즉시 경보를 울린다. 그러다 보니 강박증 환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는 심리치료사들의 일반적인 권유를 따르지 않는다.


둘째, 심리치료사가 환자가 상상하는 장면, 그러니까 살인, 폭행, 시체 훼손 등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위험 인물로 여기고 피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셋째, 나쁜 일을 저지를까 봐 불안하다고 치료사에게 설명하면 이후 신고 당할 수도 있다. 요즘은 출산 후 겪는 산후 우울증이 흔한 질병이지만 과거에는 청소년 복지부에 신고되기도 했었다. 이런 오해는 그저 유례없이 폭력에 집착하는 문화에 살면서도 폭력의 실제 모습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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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산업이 사람들을 더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미디어 연구에서는 연애 산업이 소위 '비열한 세계 증후군'을 조장한다는 데 상당히 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세상이 실제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여기고, 모든 사람에게 폭력성이 잠재해 있다고 여기는 거의 편집증적 견해를 갖게 된다.

(...)

사실 누구나 폭력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심지어 감정도 싣는다. 출퇴근 시간에 도로로 나가기만 해도, 금세 '살인 충동' 이 생길 수 있다.

(...)

그러나 연애 산업은 폭력에 신비한 오라를 씌워 미화한다.

(...)

공격성이 선천적이라는 견해는 성 정체성을 선천적으로 보는 견해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

비록 두개골 모양보다는 뇌와 유전자와 더 관련이 깊지만, 아무튼 이런 연구의 수많은 결과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303~3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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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등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폭력성은 은연중에 우리에게 자연스레 편집증적 견해를 갖게 만든다. 일상 속에서 때로 '살인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 혹은 감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디어를 통해 주입되면서 공격성이 선천적이라거나 폭력이 마치 정당한 정의 구현처럼 미화되어 인식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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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천적 사이코패스 가정 자체가 사이코패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정의 전제조건이 바로 사이코패스의 기계론적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고쳐 쓸 수 없는 망가진 기계로 여기고, 사이코패스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냉담하게 대한다.


또한 '과잉된 자존감' '죄책감 부족' '무책임' '짧게 끝난 수많은 연애' 등 사이코패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자신이 실제로 내면 깊은 곳에서 사이코패스일까봐 제일 심하게 걱정할 것이다.

3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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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인식과 특정 조건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 결국 이것은 부메랑처럼 또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를 염려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특정 조건에 끼워 맞춰 폄훼하거나 낙인찍는 것은 곧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이라 말한다.



■관계: 정말로 사랑에 빠진 걸까?

자신의 행복을 평가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멀어지고 불행해지기 딱 좋은 방법이다. 이 주제에서 특히 까다로운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정말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나?


이 질문은 이제 강박장애 연구에서 별도의 분야가 생길 정도로 아주 일반화되었다. 영어로는 줄여서 R-OCD라고 한다. 대략 관계 강박장애라는 뜻이다. '만약에 이것이 옳은 관계가 아니면 어떡하지?'이런 질문이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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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에 걸쳐 이어진 종교와 문화의 영향으로 더는 금지된 쾌락이 핵심이 아니며, 성 해방 및 소비문화 시대로 오면서는 불충분한 쾌락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311~3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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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 사고는 쾌락에 있어 걸림돌처럼 작용한다. '만약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은 지속적으로 불안을 키우며 자기 자신을 불안과 걱정 속에 휩싸이게 만든다.


때문에 관계에서도 만약 이런 강박장애가 발생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쾌락과 행복 속에서 불안만 떠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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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불안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치료 안내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온화한 사람이 폭력적인 내용을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 성적인 내용을, 매우 꼼꼼한 사람이 실수를 계속 생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수록 그것을 부정하는 생각이 더욱 심하다."


그러나 강박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왜 우리의 생각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할까?

이 질문은 어떤 형태의 불안을 겪든 매우 중요하다. 불안장애에 관한 한 인지과학 논문은 문제의 근원을 "재앙에 가까운 잘못된 해석"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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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장애는 지속적이다. 생각이 떠오르고 죄책감이 생기며, 맞서 싸워야 할수록 그 생각은 점점 더 위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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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질문과 솟구치는 자기 의심에는 분명 문화적 배경이 있다. 문화적 배경을 시간의 틀로 제한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항상 존재했던 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소개한 위험 영역에도 적용된다. 물론 다른 강박이나 불안장애와 연결된 또 다른 문제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위험 자체가 아니라 '내면의 비판가'다.

320~3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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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부정적 생각이 강하게 깃들면서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그 생각이 지속성을 띠면서 박차를 가하게 되고 점점 더 위험수위가 올라감을 알 수 있다.


이것과 연결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면, '내면의 비판가'를 꼽을 수 있다. 내 안의 내가 나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자기 의심은 결국 관계마저 흐트러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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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과 해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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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병든 것과 문제가 있는 것은 다르다. 정신병에 걸렸고 건강해지려면 내면의 무언가를 고쳐야 한다고 믿는 것은 백곰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만큼 전망이 어둡다. 질병과 연결된 단 하나의 생각, 단 하나의 감정이 우리의 의식을 파고드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아프다'. 질병 모델은 걱정에 대한 걱정과 절망감 때문에 생긴 절망의 하향 나선을 더욱 강화한다. 이 하향 나선을 멈추려면 정신질환이라는 개념과 작별해야 한다.

(...)

그렇게 '장애' '증후군' '질병' '신경증' 같은 모든 언어적 변형과 작별하는 데 성공하면 급진적 결과를 얻게 된다. 정신질환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환자 치료라는 말도 쓸 수가 없다. 그저 문제가 있을 뿐인 사람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

356~3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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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었다고 우리가 진단 내렸기 때문에 어쩌면 병에 대해 더 생각하고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우울과 같은 정신질환은 지속성을 띤다. 그래서 더 치료가 어렵다.


그런데 만약 그런 진단 자체와 결별하면 어떻게 될까? 환자나 치료라는 말도 결국 해당되지 않으므로 그저 사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 정도로만 인식될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급진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말한다.


때문에 낙인찍힐 일도 없을뿐더러,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도우려 할 테고 스스로도 지속적으로 그것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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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싸워 이겨야 하는 적으로 생각한 것이 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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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를 겪으며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려 애쓸수록 불안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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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직면은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370~3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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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불안을 적대시했기에 우리 삶에 불안이 더 크게 번졌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취했다면 불안은 위험요소를 인지시키는 정도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과한 처치가 더 큰 불씨로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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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그렇다'는 식의 체념으로 수용을 이해해선 안 된다. 수용은 생각, 감정, 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들을 희석시키지 않는다.

3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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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명확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용은 체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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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걱정이 멈춘다. 그것이 헤이즈의 이론이다. 우리의 감정 상태를 수용하면 우리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3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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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온다. 내 감정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수용하는 태도로 끌어안아보면 어떨까? 맞서 싸워야 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수용하고 끌어안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걱정과 불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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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걱정하고 불안해할 때, 존재의 불확실성에 가닿는다. 불확실성은 단지 무한히 많은 위험과 뭔가 잘못될 가능성에만 있지 않다. 불확실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고, 우리 자신과 환경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의 일부다. 불확실성의 수용이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불확실성 속에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 태도는 불교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불교는 불확실성뿐 아니라 고통 전반의 수용을 긍정한다.

3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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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하다는 것에 우리는 불안과 걱정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꼭 위험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변화를 꿈꿀 수 있다. 불확실성에서 피어나는 고통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거기에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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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것은 불안정에 대한 현대인의 편협함이 아니라 구체적 형태의 억압이라고 주장하면 차라리 쉬울 것이다. 그런 접근 방식에는 전략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불안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3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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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들여다볼 때 한쪽으로 치우쳐 상황을 판단하는 편협한 자세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것을 객관적 형태로 떼어놓고 바라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걱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편한 상황에 대처하는 형태를 취하면 걱정거리가 개인적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며, 특정 상황에 대해 큰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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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을 안고 산다는 것이 방어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 없는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에도 재앙이 닥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3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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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전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만큼, 불확실성을 안고 산다는 것은 곧 성장과 도전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멈춰있을 것인가에 따라 불확실성의 의미 또한 달라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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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에 담긴 모순을 파고드는 것은 불행히도 불안이 가장 좋아하는 생각놀이다.

3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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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앞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것을 없애겠다고 지속적으로 불안을 파고들어 원인과 모순을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불안 속에 잠식당하는 것은 본인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불안에서 멀어지고자 한다면 불안을 지속적으로 떠올리거나 파고들기보다 다른 것에 주목하여 행동하는 것을 오히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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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안하는 것은 선택이다. 깨지기 쉽고 비현실적이며 있을 법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무언가에 접근하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선택지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결정과 위험은 계속해서 존재할 테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논의할 수 있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안전한 세상이 아니다.

3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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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불완전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안전만을 추구하는 삶은 그 자리에 머물며 불안과 우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색다른 모험을 감행하며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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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해야 한다!'

이런 이념적 공세에 맞설 수 있는 효과적인 해독제는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과 여타 '부정적 감정'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수용은 거짓일 뿐이다.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보장한다는 허황된 약속을 믿고 현재 상태를 수용하는 것은 생각의 힘으로 생각을 없애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용을 통한 초월 경험은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비로소 얻게 되는 역설적 보상이 아니다. 감정 대신 진실을 선택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3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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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 한다는 이념에 젖어 때로 우리는 어쩌면 억지스럽게 행복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말을 담기 전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에 감정을 덧입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할 때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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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걱정에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진실이 담겨 있다. 이런 진실은 가장 평판이 나쁜 강박적 사고에도 깃들어 있다. 불확실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강박적 사고의 특징이다. 얼마나 많은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느냐는 각자의 상상력에 달렸다. 그러므로 걱정은 통찰력이 모자라서 생기기도 한다.

(...)

우리는 자신의 불안에 다가감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본질에 깊이 가닿는다. 그런 점에서 용기는 감정도 아니고 미덕도 아니다. 용기는 행동이다. 그것은 세상을 특정 방식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3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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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그렇기에 오히려 용기 있게 행동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 안갯속에 가려진 사물을 만지고 경험하고 느끼면서 우리는 점차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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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계산에 대한 요구는 위험 정치의 비합리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

가능성과 실제 상실이 아닌 이미지와 이야기가 위험 정치의 기본 화폐고,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무효화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위험 정치와 결별한다는 것은 하향식 대응책을 상향식 대응책으로 바꾸고, 더 좋은 일에 대한 갈망으로 걱정에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외부적 필요성을 정치적 주장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 즉 거짓말을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

위험에 초점을 맞추면 양자택일이 안된다. 우열이 가려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걱정은 그대로 남는다. 우리는 걱정이냐 마음의 평화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책이 기반으로 삼을 원칙을 선택해야 한다.

395~3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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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일에 대한 갈망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판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무언가에 대한 뒤늦은 대책이 아니라 앞선 대응책을 마련하게 됨으로써 사회 발전은 물론 의미 개혁까지 이뤄낼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치판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 또한 양자택일이 아닌 정책 기반의 원칙을 기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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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생각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생각의 비현실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생각에 적용된다.

3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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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나를 삼인칭 관찰자로서 바라보면 어떨까?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이것이 정말 현실에 당장 다가올 불안인지 등등. 그럼 생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우리가 떠올리는 감정이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내가 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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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독재 정권의 사상에 반대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사회학적으로 스스로를 도울 수 있으려면 내면에 대한 관심을 외부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400~4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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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행동하지 않고 내 생각에만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다.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수천 번의 회로만 돌리기에 우울해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돕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 그만 홀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외부에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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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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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불확실함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과거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함으로써 생기는 혼란을 매번 적응해 가는 것도 버거운데, 여기에 더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온갖 정보는 온통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 와중에 행복해야 한다는 관념적 사고는 우리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며 마치 경쟁하듯 불안을 죽이고, 행복할 방법을 찾게 만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불확실함은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시대적 기준을 벗어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왜 우리는 그토록 엉뚱한 사고에 사로잡혀 늘 불안에 떨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그만 내면의 소리에서 벗어나 외부에 눈을 돌려보자. 생각에만 머무르면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더 많은 불안만 초래할 뿐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불안은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자.


미지의 세계를 한발 내디뎌 직접 경험하고 느껴야 우리의 불안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허황된 생각인지 판단할 수 있다. 불확실성은 우리 생각만큼 부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긍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불확실성을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때로 안갯속을 헤매는 것이자 폭탄을 안고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자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기에 의미 있는 일이다.


수만 가지 방법 중에 내가 선택한 길을 통해 불안은 잠식시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해 보자. 그리고 행동을 통해 나만의 불확실성을 채워가 보자.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명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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