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라는 위로 - 불안과 두려움을 지난 화가들이 건네는 100개의 명화
이다(윤성희) 지음 / 빅피시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림을 통해 원하는 만큼 쉬고, 고요히 힘을 얻어 다시 자신의 삶을 채우는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5페이지 中
-----


한때는 사람이 좋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껴 무리에서 어울려 지내던 때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이 많은 곳은 피곤한 곳이 되면서 홀로 있는 시간을 더 즐기게 되었다.

덕분에 꽤 많은 것을 즐길 시간과 여유를 얻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를 탐구해 보는 것, 평소 가보지 못했거나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마음 편히 도전해 보는 것, 눈치 보지 않고 내 스케줄을 내 맘대로 정해보는 것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도 이런 변화 덕분에 얻게 된 즐거움 중 하나인데, 관심 있는 전시회를 가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보기도 하고, 책을 통해 명화나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지식의 목마름도 채우고, 힐링과 위로도 얻게 된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 재미를 알고 나니 더더욱 찾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개인적 호기심과 관심이 이어져 읽게 된 책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읽으며 깊은 위로를 얻는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기쁨도 누려본다.


위로, 희망, 치유, 휴식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된 이 책은, 100개의 명화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화가에 대한 간단한 배경 이력과 함께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독자들이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돕는다.

작가 내면에 깊이 각인된 삶들이 그림을 통해 전해지면서 일상, 꿈, 고통, 죽음, 행복, 불안, 추억, 희망 등이 떠올랐다 이내 마음으로 들이친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고, 힐링이 된다.

그림들은 화가가 가진 스타일에 따라 저마다의 색감과 빛, 모양새로 인물이 되었다가, 불현듯 풍경이 되기도 하고, 그 외에 어떤 것이 되어 그들 안에 깃든 무엇을 마치 선물 꾸러미처럼 풀어놓는다.

마음이 불안한 순간, 위로가 필요한 순간 가만히 명화를 들여다보며 숨죽여보자. 어쩌면 나를 다독이는, 즐거움을 야기하는, 희망을 노래하는, 고통을 이겨낸 순간들을 포착하게 되면서 새로운 긴긴밤을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텍스트로 무언가를 대단히 설명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간단한 설명과 대표작으로만 페이지를 채움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건네준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그림을 더 자세히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나아가 더 알고 싶은 것들은 탐구하고 찾아보게 만든다.



19인의 화가와 100여 점의 작품 중 이번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화가와 작품들을 위주로 선별해 보았다. 그저 한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작품들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그랜마 모지스
=====

▶본명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1860년 미국 뉴욕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남

▶강과 언덕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10남매와 함께 자람

▶12세에 가사도우미로 사회생활을 시작, 이후 토마스 모지스라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림

▶그녀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시기는 76세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거치지 않았기에 데생이나 채색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농장 마을 풍경과 이웃과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그림들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할머니가 되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는 본명보다 '그랜마 모지스'라고 불렸다.

▶그녀의 그림들은 엽서와 기념품으로 제작되어 고향과 추억을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을 위로했으며 그녀의 열정적인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랜마 모지스, <창밖 후식 밸리의 풍경>, 1946년

(좌) 그랜마 모지스, <5월의 케임브리지>, 1943년
(우) 그랜마 모지스, <시럽 만들기>, 1955년

그랜마 모지스, <7월 4일>, 1951년


*************
낡은 물건 하나라도
또 다른 쓸모가 있는 것처럼,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힘은
분명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을 것입니다.

-그랜마 모지스-
*************

그녀의 작품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과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더해 '편안함'과 '정겨움'도 느껴진다. 작은 액자에 담아 두고, 내내 지켜보고 싶은 시골 전경이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
=====

▶1870년대 부유한 파리 상류층 가문에서 자라난 카유보트는 법대를 졸업했지만 화가가 되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고전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철교와 도로가 깔린 파리의 모습과 도시인의 고독한 감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살롱전 낙선 후 드가를 통해 인상파 화가들을 소개받고 이후 인상파 전에 참여하며 재정적인 후원자가 된다. 가난한 모네에게 자신의 화실을 빌려주고 르누아르와 피사로의 그림을 사주는 등의 배려로 그들의 열정을 지지하면서 차츰 화가보다 예술가의 후원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카유보트는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은 1970년대에 이르러 재조명 받게 된다. 근대화 속 지친 도시인을 위로하는 평온한 전원생활의 감성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에는 차분한 여유가 흐른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예르, 비의 효과>, 1905년

귀스타브 카유보트, <산책하는 두 사람>, 1881년

전반적으로 여유와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더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풍경들이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첫 번째 그림을 들여다보며 비가 주는 차분함과 리듬감을 느껴보면 어떨까?


=====
클로드 모네
=====

▶1840년, 파리 9구역에서 태어난 모네는 아버지의 일로 프랑스의 해안 도시 르아브르로 이주한 후 외젠 부댕을 만나 풍경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1890년 이후부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작품을 그렸는데 <건초더미>와 <루앙 대성당>, <수련>이 대표적인 연작 작품이다. 이 연작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바뀌는 사물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그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야외에 캔버스를 펴놓고 태양이 뜨고 지는 모든 순간, 하루 종일 빛을 바라보면서 작업했고 이 때문에 시력이 크게 손상됐다.

▶<수련> 연작은 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한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만년에는 거의 시력을 잃게 되지만 그는 끝내 붓을 놓지 않았으며, 과학자의 탐구 정신과 예술가의 감성을 모두 보여주며, 길고 긴 시간 동안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낸 화가다.

클로드 모네, <수련>, 1906년

(좌) 클로드 모네, <수련>, 1919년
(우) 클로드 모네, <해돋이, 인상>, 1872년

(좌) 클로드 모네, <라방꾸에서 본 센강>, 1879년
(우)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의 절벽>, 1885년

(좌/위) 클로드 모네, <여름의 끝, 아침의 건초더미>, 1891년
(좌/아래) 클로드 모네, <석양 속의 건초더미>, 1891년
(우/위) 클로드 모네, <한낮의 건초더미>, 1891년
(우/아래) 클로드 모네, <눈 위의 건초더미>, 1891년

같은 작품을 오랫동안 지켜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 있다. 모네의 작품이 그렇다. 어쩜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잘 담아냈는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는 순간 포착의 힘이 대단하다.

삶의 놓치고 싶지 않은 명장면들이 모네의 그림 속에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소장하고픈 작품이기도 하다.


=====
구스타프 클림트
=====

▶1908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미술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는 단연 클림트의 <키스>였다. 관능적인 곡선과 황홀한 장식, 정교한 금세공 기술이 어우러진 독보적인 이 작품을 통해 클림트는 빈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고 '황금의 화가'로 불렸다.

▶그러나 이 작품을 완성하기 4년 전만 해도 사회적인 비난에 시달리다가 주문받은 계약을 자진 반납하고 빈의 중심에서 떠나야 했다.

▶1862년 빈의 외곽에서 가난한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등교육을 마친 후 빈 장식공예학교에서 장식 미술을 배웠다. 17세부터는 남동생과 동창생 프란츠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결성해 빈 미술사 박물관의 장식을 맡는 등 빈에서 많은 일감을 소화했다.

▶1892년 아버지와 남동생이 사망한 뒤로,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3년간 창작의 위기를 맞았다.

▶그의 고난이 본격화된 것은 빈 대학의 의뢰로 그린 <철학> 등이 공개되면서부터로 빈 대학 교수들과 정면 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클림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장식적인 패턴, 금을 사용한 독창적인 양식을 강화하여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등을 내놓으며 이른 '황금시대'를 연 것이다. <키스>는 바로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년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907년

(좌) 구스타프 클림트, <캄머성의 고요한 공원>, 1899년
(우) 구스타프 클림트, <캄머성 공원>, 1909년

금으로 장식된 그림들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그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안에 무수히 자리한 색감과 디테일은 자꾸만 더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디테일을 눈으로 좇게 만든다,.


=====
칼 라르손
=====

▶1853년 스톡홀름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에서 태어난 그는 술과 도박으로 집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 생활을 해야 했다. 이때 어린 남동생을 잃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과 친구들 도움으로 스웨덴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다니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그는 장학금을 받고 파리 유학을 떠나게 된다.

▶파리 유학은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의 빛이었지만, 1883년 살롱전에 입선하기까지 9년 동안 가난한 이방인의 삶을 견뎌야 했다.

▶이 시기 그에게는 평생 짝이 되는 여인 카림 베르그가 찾아오는데, 1883년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을 때 그는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던 불행의 그늘이 마침내 걷히는 감정에 북받쳐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에게 결혼은 마침내 찾은 삶의 진정한 보금자리였다.

▶8명의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은,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와 훗날 '릴라 히트나스'라 불리게 되는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돌보았다. 후에 그는 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다양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집안의 러그와 꽃무늬로 장식한 벽난로, 차분한 컬러로 톤을 맞춘 의자와 소파 커버 등의 장식은 부부가 함께 꾸민 것이다.

칼 라르손, <영명 축일의 날>, 1895년

칼 라르손, <자작나무 아래 아침식사>, 1895년

(좌) 칼 라르손, <꽃이 있는 창문>, 1894년
(우) 칼 라르손, <벌 받는 자리>, 1900년

(좌) 칼 라르손, <화실에서 아내와 딸>, 1885년
(우) 칼 라르손, <브리타와 나>, 1885년


*************
아내와 함께 꾸민 집,
내 가족에 대한 추억,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림들이
내 인생 최대의 작품입니다.

-칼 라르손-
*************

뭔가 동화책에서 볼법한 그림체가 인상적이다. 여기에 더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 속에서 기념하고 추억할 만한 내용들을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평생 간직할 앨범이 완성된 셈이다.

그의 집 '릴라 히트나스' 속 유쾌하고 즐거운 가족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가족을 애정하고 아꼈는지가 엿보인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

▶르누아르는 마흔 즈음하여 기존의 성공적인 화풍을 버리고 약 10년간의 고투 끝에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확립해 낸 위대한 화가다.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청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미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예술 인생은 1881년의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다소 고전적인 성향을 띤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49세에 르누아르 특별전에 전시한 <피아노 치는 자매>는 호평 속에서 프랑스 정부에 판매되기도 했다.

▶1900년에는 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기를 계속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라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니스의 도제 궁전>, 1881년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자매>, 1892년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오찬>, 1880~1881년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아름다움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들이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이 그림들을 배치하고 하루에 한 번씩 마주하며 행복한 기운을 받아보면 어떨까?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는 화려하거나 멋진 그림을 그리기 보다, 그저 집안에서 우유 따르는 주방 일에 분주한 여인, 영수증 고지서를 정리하는 여인의 일상을 담았다.

▶처가댁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들며 살았던 그의 눈은 평범한 여인들의 내면세계를 향해 있었다.

▶내면도 들여다보면 보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가 창조한 걸작이 <진주 귀걸이 소녀>다.

▶렘브란트만큼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기에 동시대 사람들은 집안 여인들의 인상을 담는 그림들이 얼마나 특별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담아낸 평범함의 가치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와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진줏빛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 소녀>, 1665~1666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델프트 풍경>, 1661년

(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물병을 든 젊은 여인>, 1662~1665년
(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목걸이를 하는 여인>, 1664년


담담하고 담백한 느낌이 전해지는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은 당시 여성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평범함이 가지는 가치, 내면의 모습들을 심도 있게 작품에 담아내면서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을 가진다.

그림 속 여인의 의복, 머리모양, 분위기, 액세서리, 배경 등을 통해 무엇을 하던 중인지 유추해 보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 상상 덕분에 화가나 작품이 더 친밀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다양한 작품을 만나다 보면, 나만이 느끼는 특별한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컬러가 되기도 하고, 디테일이 될 때도 있으며, 어떨 때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특정 형태에 꽂혀 한참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론과 배경지식에만 혈안이 되어 정작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가나 작품을 제대로 모르면 어떤가? 그냥 내가 보는 느낌을 소중히 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감상하면 된다.

음악이 그러하듯, 그림 또한 내면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슬프고 우울한 날,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 날,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 당한 날 명화와 시간을 보내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로, 희망, 치유, 휴식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너무 애쓴 나에게 그림이라는 작은 위로를 건네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