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것을 담아낸 소설!"
앞서 읽었던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처럼 긴 여운을 남긴 이 소설은, 키건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또 하나의 역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약 100여 페이지 정도의 얇은 두께지만 압축된 언어로 표현하는 대사들, 미묘한 암시를 통해 드러나는 정황들 때문에 어쩐지 머릿속에서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겉으로 명확히 드러내진 않으면서 말할 듯 말 듯 의미심장하게 전달되는 뉘앙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바짝 다가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실제 아일랜드에서 벌어졌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 더해지며 흥미를 더한다.
단출한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관점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양산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숨겨진 분량과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빌 펄롱이라는 개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너무 가라앉지 않으면서도 다각도에서 상황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개인과 사회,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집단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한 사람의 행동 패턴이 이 집단에 어떤 상황을 야기할지 그려보는 재미가 있다.
=====
실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 요약
=====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로, 당시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죄 없는 소녀들과 여자들이 그곳에 감금된 채 폭행과 성폭력, 정서적 학대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아기들 또한 방치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
작가 및 작품 소개
=====
클레어 키건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다 평가받는다. 특히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
=====
소설의 시대적 배경
=====
1985년,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뉴로스. 기울어 가는 도시의 풍경은 처참한 그 자체였는데, 추위 속에서 먹고 자고 입는 것이 변변찮아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점점 길어졌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겹겹이 옷을 껴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또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 줄을 서기도 했다.
젖소를 돌보던 사람들을 시골을 떠나 대부분 영국으로 떠났고, 젊은 사람들은 런던, 보스턴, 뉴욕 등으로 이민을 떠나고 있었다. 빚을 진 사람들이 많았고, 오죽하면 어린 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목격하기도 할 정도였다.
뉴로스에서는 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강 건너에 있는 큰 비료 공장 앨버트로스에서는 여러 차례 해고를 단행하는 등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뒷바라지 하며 살 결심을 했다. 그러던 때에 우연찮게 수녀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이로 인해 새롭게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면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
소설 줄거리
=====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빌 펄롱은 엄마가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미시즈 윌슨의 배려로 글을 배우고 잔심부름을 하며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한다.
학교 졸업 후 한두 해 기술학교에 다니다가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일머리가 있고 성실한 것은 물론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정평이 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후 아내 아일린과 약혼하자마자 미시즈 윌슨이 빌 펄롱에게 자리 잡는 데 쓰라고 몇천 파운드를 주면서 빌은 별도 사업체를 차려 야적장을 운영하게 된다.
※펄롱이 운영하던 야적장
펄롱은 선택,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팔았다. 또 조개탄, 불쏘시개, 가스통도 취급했다. 겨울에는 매달 부두에서 석탄을 실어 와서 실어 나르고 야적장에서 분류하여 무게를 달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하는 사업을 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평판이 좋고 성실해서인지 펄롱은 시국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들(아내와 딸 다섯)과, 사업체에 있는 직원들 월급이 밀리지 않고 생활할 만큼 형편이 좋았다.
다섯 딸들은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탓인지 성실하고 똘똘했는데, 학교 성적이 좋은 것은 물론, 합창단에서 활동하거나 수녀원에서 악기를 배우고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 외에도 아빠의 사무실로 출근해 장부 정리를 돕고 용돈을 버는 등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큰 기쁨을 주었다.
한편 펄롱은 어려운 이웃이나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잔돈을 주거나 땔감을 무료로 나눠주면서 주변 이웃들을 보살폈는데, 이에 대해 때때로 아내 아일린이 놀리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던 그날도, 펄롱은 추운 날씨에 땔감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위해 주말에도 쉼 없이 배달을 나가게 된다. 그날은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으로 배달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우연찮게 걸레질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들과 마주치게 된다.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펄롱을 보자마자 처음에는 깜짝 놀라게 되는데, 이내 정신을 차린 한 여자아이가 이곳에서 자기를 꺼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아이를 함부로 도와줄 수 없었던 펄롱은 이를 거절한다.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안고 돌아선 펄롱은 이후 일요일 이른 새벽, 밀린 배달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가게 된다.
그리고 이내 컴컴한 창고를 손전등으로 비추던 펄롱은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듯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펄롱이 아무리 물어도 아이는 왜 거기서 머물게 되었는지 답을 하지 않는다.
꽁꽁 언 아이를 현관으로 데려가 초인종을 누르니 젊은 수녀가 나왔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들어간 후 한참이 지나서야 수녀원장이 문을 활짝 열고 나오게 된다. 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어떤지 물어봐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펄롱은 고민이 많아진다.
아이를 마주한 수녀원장은 능청스럽게 아이를 대하며 돌아가려는 펄롱을 끝끝내 안으로 들이며 아무렇지 않게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처음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펄롱은 그런 수녀원장의 태도에 이내 마음이 바뀌게 되고, 상황이 종료된 후에는 오히려 더 머무르며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떠나기를 종용하는 수녀원장의 눈치에 결국 돌아 나오는 길에 펄롱은 아이의 원래 이름과 살던 곳을 묻고, 자신의 이름과 사업장을 알려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한편 수녀원을 나온 후 마음이 심란했던 펄롱은 자신이 자랐던 미시즈 윌슨의 집을 찾아가지만, 정작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낯선 이를 통해 그 집에서 농장 일꾼으로 일하던 네드와 닮았다는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된다.
같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과 네드를 연결시켜보지 않았던 펄롱은 닮았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든다. 궁금해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생판 남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한참 뒤, 정신을 차린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 생각에 다시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낀다.
수녀원장이 주는 돈을 받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아이를 거기에 두고 그냥 나온 것이, 그 애가 유일하게 부탁했던 그 애의 아이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래놓고 미사를 보러 간 자신이 마치 위선자처럼 느껴져 펄롱은 스스로가 끔찍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온 크리스마스이브, 펄롱은 무기력함이 느껴지고 며칠째 뭔가 가슴에 얹힌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됐는데, 그때 자주 가는 식당에서 주인인 미시즈 케호에게 의미심장한 충고를 듣게 된다.
수녀원하고 있었던 충돌을 들었다며, 거기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좋다는 말과 함께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말을 넌지시 건넨다. 여기에 더해 그곳하고 세인트 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며,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라며,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가 되는 거라는 강력한 한방을 날린다.
세인트 마거릿 학교에는 첫째 캐슬린과 둘째 조앤이 다니고 있었고, 가운데 아이 실라와 넷째 그레이스는 화요일마다 학교 끝나고 수녀원으로 가서 아코디언을 배웠다. 이처럼 자신의 아이들과 깊이 관여되어 있는 곳이었기에 펄롱에게는 마음이 불편해도 그곳에서 만난 아이를 섣불리 돕겠다 마음먹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수녀원에 관한 일이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었던 만큼, 또 사람들이 알면서도 쉬쉬하며 피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만큼, 위험하고 또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잘못 벌집을 건드렸다가는 작은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끈끈하고 강력한 연대를 흐트러트린 배신자로 낙인찍혀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모른 척 그렇게 눈 감고 살았던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펄롱은 계속해서 편안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정미사에도 가지 않고 방황하다 계속 자신의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펄롱의 마음속은 서서히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내 마음을 굳힌 펄롱은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수녀원으로 조용히 다가가 예전에 아이를 만났던 석탄 창고에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내 아이를 데리고 수녀원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의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라는 펄롱의 제안에 아이는 이번에는 서슴없이 그를 따랐고, 그렇게 그녀를 데리고 그의 집을 향해 걸어간다.
집으로 가는 길, 펄롱은 사람들을 피해 숨어서 몰래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맨발에 펄롱의 옷을 걸친 여자아이를 보고 수녀원에 있는 아이인 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거나, 세탁소 계집애 중 하나가 아니냐며 대놓고 따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펄롱은 최대한 상황을 넘기며 계속 갈 길을 갔다.
가슴속에 설렘과 함께,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맞닥뜨릴 것이 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안고.
=====
인상 깊었던 문장
=====
-----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페이지 中
-----
펄롱은 이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라면서 마을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소문에 흔들리고, 한 끗 차이로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튀지 않고 사람들과 잘 지내며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문득 어느 일요일 밤 펄롱은 심란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 보다는.
36페이지 中
-----
펄롱은 가진 것을 베풀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아내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품성 덕에 어쩌면 석탄 야적장 사업이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펄롱은 일도 잘했고, 성실했으며,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일찍 일어났고 술은 즐기지 않는 건강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어릴 적 미혼모인 자신의 어머니를 돌봐준 미시즈 윌슨처럼 사람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에 야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문득 심란한 기분을 느끼고 지나간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부분은 어쩌면 뒤이어 일어날 일들에 대한 약간의 밑밥이 아닐까 싶다.
일상이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안심하는 펄롱을 보고 오히려 추후에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구나 예측하게 된다.
-----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44페이지 中
-----
서서히 복선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상의 무료함을 느끼는 펄롱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런 반복적 삶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는 부분에서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직감이 오기 시작했다.
-----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당신은 속이 너무 물러."
(...)
"그냥 당신이 모르는 거 같아서. 당신은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컸잖아."
(...)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 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56~57페이지 中
-----
아내 아일린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 몰랐던 마을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은밀하고 내밀한 속내를 알게 된 펄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일린은 수녀원에 있는 여자들은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며 살아가려면 때론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야 살아갈 수 있으며, 펄롱은 어려움을 모르고 커서 그런 것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약간의 비아냥과 이기심을 섞어 이야기한다.
내 아이와 내 가족이 잘 살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척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자신들이 그런 일을 겪을 일은 절대 없다 말하는 아내의 말에서 펄롱은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미시즈 윌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어머니 또한 같은 일을 겪었을 것이었기에, 펄롱에게 있어 수녀원에 있는 아이들의 일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2~103페이지 中
-----
가진 것을 누리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펄롱은 오히려 당연하게 주고받는 것조차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펄롱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한다.
펄롱이 가진 생각과 관념,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겨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머라고 부르든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119~120페이지 中
-----
읽으면서 행복해지는 장면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행하지 않는 사람을 종교인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며, 펄롱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따라 타인을 돕고 사는 것으로 인생의 방향을 굳힌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몸이 가벼워지고 당당해진 것은 물론 기쁨이 솟아난 펄롱은 한껏 오른 엔도르핀 덕에 후에 치를 대가가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고,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못한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120페이지 中
-----
펄롱은 수녀원에 있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미시즈 윌슨의 친절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에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해 준 미시즈 윌슨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녀의 배려와 가르침 덕에 펄롱은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었으며, 학대와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사람다운 삶을 살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 수녀원에 있는 것이 어쩌면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자신은 죽었거나 멀리 입양 보내져 어떤 삶을 살았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은 지나갔다.
(...)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20~121페이지 中
-----
독단적으로 결정한 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분명 현실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예측케 한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질 소란과 가정에서 벌어질 혼란은 상상이상으로 무시무시할지도 모른다.(더군다나 이미 딸아이가 다섯이나 있다)
하지만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아내를 위한 새 구두 상자를 들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들어가는 펄롱의 모습을 보며 지금 당장은 그저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용감하게 하고,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을 행함으로써 이타적인 삶에 과감하게 뛰어든 펄롱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내 아일린이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과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행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행여 알게 되더라도 섣불리 나서지 않으면서 비슷한 이들끼리 갖는 연대는 그래서 더 차갑고 매몰차게 다가온다.
=====
스페셜 페이지
=====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11페이지 中
마지막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보니, 새삼 첫 문단이 다시 보인다. 처음에 첫 문단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접했을 때부터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는데, 그때는 정확히 그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읽다가 그저 부정적인 느낌만 안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데 완독 후 옮긴이의 해석까지 읽고 보니 저자인 키건과 옮긴이의 노력이 엿보인다.
더불어 이것이 암시하는 바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상징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자살, 임신, 수녀원, 시신, 물에 빠져 죽음, 성폭력 등의 키워드를 통해 소설의 내용이 상징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펄롱이 수녀원에서 처음에 우연찮게 만난 여자아이는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문득 그 아이는 이 강을 넘어 도망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짧지만 이 소설이 상징하는 바는 단어와 문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은밀하고 미묘하게 암시하고 있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두 번 세 번, 여러 번 읽을수록 어쩐지 더 선명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느낀 점
=====
누구나 행복을 꿈꾸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혹독한 겨울에 벌어진 이 이야기는 시대적, 계절적, 현실적으로 힘든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위태로운 이곳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짓밟고 그 위에 나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내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수녀원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이내 나와 가족의 안위만을 챙긴다. 그것이 살 방법이라고 되뇌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덕분에 수녀원에 머무르는 죄 없는 여성과 아이들은 수없는 학대와 착취에 시달리며 노동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덮어둘수록 언덕 위에 자리한 수녀원의 위력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 마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때문에 인생에 다시없을 아버지를 찾았음에도, 그리고 그 아버지가 아주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펄롱은 이내 곧 이 일을 덮어둘 만큼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내 온통 수녀원에 있는 아이에게 시선이 쏠려 결론에 이르러서도 아버지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만다.
펄롱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두려움과 불안함이 존재하는 것은 이처럼 강력한 수녀원의 존재감 때문이다.
암묵적인 동의하에 모른척했던 마을 사람들이 펄롱의 기행(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을 목격했다.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수녀원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이를 데려간 펄롱을 수녀원에서는 가만히 둘까?
한편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고 있다 생각한 아내와 다섯 딸은 이 상황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후일담이 더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펄롱도 물론 적지 않은 댓가를 치르겠지만, 목숨을 담보로 수녀원에서 모든것을 빼앗기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것이 그저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는 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행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일이 될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가볍고 얇은 소설 한편 속에 자리한 극명한 대조(빛과 어둠, 크고 작음, 행복과 불행, 크리스마스와 수녀원 등) 와 압축된 대화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확장되고 상상의 세계가 커진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존재들이 숨죽여 터트리는 슬픔과 아픔이 서려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 아스라이 비치는 불빛 속에서 삶의 희망을 바라는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