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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품절
"상실의 고통으로 삶이 무너진 순간 치유의 공간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책이 노출된 분류 카테고리가 예술 쪽이어서인지 처음에는 미술관에 얽힌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본 내용은 상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시간에 포커스가 맞춰진 회고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예상외의 전개였지만, 생각보다 시선을 끄는 내용에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저자의 행보가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어쩌면 이것은 형이 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단조로운 근무환경, 위대한 걸작들 속에서 수만 번 들여다보고 사유하며 가지는 고요의 시간,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결혼까지 한 남자가 선망받는 직업을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아내와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 덕분에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오롯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그리고 마침내 1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혼이 담긴 수많은 걸작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내며,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희망을 가지게 된다. 멈췄던 인생의 걸음을 다시 내디디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마음에 집중한 에세이 책으로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상실의 고통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치유해 나가며 보낸 1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미술관을 유영하듯 함께 걷다 서며 걸작들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7만 평의 공간, 300만 점의 작품, 연 700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일상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진짜 삶과 가치에 대해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때때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는데 치여 제대로 상실의 아픔을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미뤄둔 채 매일을 살아간다.하지만, 이 책은 그런 시간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어떤 제약이나 조건 없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내용상에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미술관에서의 일과 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가족이나 퇴근 후 생활에 대한 내용조차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이미 오래전에 이 땅을 떠난 거장들이 남긴 유물과 건축물들을 돌아보면 저자는 무슨 생각들을 했을지, 또 만약 나라면 그런 상황 속에서 작품들을 보며 무엇을 발견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늘 알고 있는 시끌벅적한 미술관과는 다른 고요하고 색다른 미술관의 이면을 만나 볼 수 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재밌고 흥미롭다.미술관 휴관일에 내부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경비원들의 배치 순서,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이는 관람객의 이미지 등을 살펴보며 새삼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떠올려보게 된다.또 한편으로는 아무도 없는 침묵 속에 잠긴 미술관을 온전히 독점해 보고 싶다는 꿈도 꿔보게 된다. 거대한 건축물과 벽화, 그림, 조각 등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머무르며 질릴 만큼 바라볼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싶은 생각도 해본다.이제부터 그의 마음 시선에 따라 브링리가 10년을 보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둘러보려 한다. 아무쪼록 이 여정을 통해 독자들도 예술과 치유의 시간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이 책의 간단 스토리=====이 책은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 속에 웅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저자의 가족관계=====●저자 '브링리'●아내 '타라'●아버지 '짐'●어머니 '모린'●형 '톰'●누이 '미아'이들 가족에게 있어 미술관은 너무 익숙한 장소였는데, 여기에는 어머니 '모린'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는 대학생 때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이후 자식들에게 미술에 관해 전도하면서 형과 누이를 비롯해 저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된다.저자에게 있어 형 '톰'이란?평생 나는 똑똑한 형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신세였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톰은 말하자면 수학 천재였고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의 부푼 꿈을 가진 패기 넘치는 남동생쯤으로 여겼다.=====저자의 삶이 바뀌게 된 계기=====-----형인 톰이 갑자기 병상에 눕게 되면서 모든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8개월 동안 나에게 현실 세계란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병실과 퀸스에 있는 방 하나 짜리 형의 아파트가 전부였다.(...)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 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들이었다.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32페이지 中-----암이 폐에 전이되면서 갑작스럽게 죽은 형으로 인해 저자는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게 된다. (심지어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제 막 결혼을 했고 신혼인 상태였다)그리고 이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도망치듯 들어선다. 어쩌면 그곳의 우아함이, 아름다움이, 고요함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시간에 따른 마음의 치유 과정=====1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69페이지 中-----처음 그는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그저 미술관을 침묵 속에서 빙빙 돌며 작품들과 교감하고 눈을 마주치며 슬픔과 달콤함을 나눌 뿐이었다.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 상태를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멍한 상태를 짐작게 한다. 이후 그는 2008년 가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2 /-----생각해 보니 지난 몇 주 동안 형이 죽은 뒤 처음으로 내 삶이 방향을 잡았다고 느끼게 해준 일들을 지나오고 있었다.(...)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더 지난 후,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의 역할이 될 수 있겠다고 믿기 시작한다.33~34페이지 中-----근무 후 몇 주가 흐른 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안정감을 찾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진정 자신에게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3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된 어느 저녁, 운 좋게도 중국의 전통 악기 공연이 열리는 애스터 코트에 배치됐다.(...)나는 이미 우아한 휴식을 취하는 법을 모두 깨친 듯 편안한 마음으로 약간의 자기 만족마저 느낀다.곧 공연이 시작된다.109페이지 中-----근무한지 6개월이 지나자 이제는 업무 자체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 강직되어 있던 마음과 몸이 서서히 풀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된다.4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193~194페이지 中-----일을 한 지 4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는 그가 작품을 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한껏 여유가 생긴 모양새다. 스스로 작품과 밀당을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찾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5 /-----이 일을 거의 5년 동안 하다 보니 몇 가지 습관이 생겼다.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내가 일하기 좋아하는 전시실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전시실을 구별하게 됐다.250페이지 中-----약 5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에게도 눈에 보이는 변화가 뚜렷이 감지됨을 알 수 있다. 처음 입사 당시 그저 '무'의 상태에 있던 그가 어느새 친구도 사귀고, 호불호도 생겼다.감정이 생기고 삶의 활력이 돌아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256페이지 中-----애도에 깊이 빠져있던 감정이 이제는 그 끄트머리에서 빠져나오려 함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 인해 상실감보다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보인다.이때쯤 아들 올리버 토머스가 태어나고, 또 2년 후 딸 루이스가 태어난다.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금 삶으로 돌아오고 있는 그에게 있어 아들딸의 탄생은 시기적절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6 /-----7년이 넘도록 대처하지 못할 일은 없는 직장에서 일해왔다. 내가 지키는 구역에서는 예술품이 단 한 점도 손상되는 일이 없었다. 명화 한 점도 분실되지 않았다.(...)하지만 나의 새로운 삶에서는 성장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긁어모아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감정이란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를 배우고 있다.268페이지 中----------메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첫 몇 달을 돌이켜보면 내가 한 때 날이면 날마다 말없이 뭔가를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를 그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아마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날마다 수많은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요즘 같아서는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269페이지 中-----이제는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변화된 그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자신이 놀랍다고 말할 만큼 현재는 오히려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7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305페이지 中-----이제 거의 80~90% 회복력을 갖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직장에서의 경력과 관록은 말할 것도 없고,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스스로 방향을 잡는 것이 낫다고 말할 만큼 그는 이제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복잡다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8 /-----내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동안에는 계속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직장이 아닐지도 몰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두려우면서도 흥분되는 미래다.306~307페이지 中-----이제 더 넓은 세계를 꿈꾸는 저자를 발견할 수 있다. 기존에 자신을 안온하게 감싸주던 안정 가옥이 이제는 불필요하다 느낀다. 더불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더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기대감과 희망에 부풀어 올라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오랜 고민 끝에 미술관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으로 돌아가기엔 답답하다 느껴 생각 끝에 여행 가이드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전화 인터뷰를 통해 마침내 가이드로 일하게 된 그는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앞서 조사하고, 투어 내용을 적고, 사람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며 스스로 얼마나 신나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그는 그렇게 세상밖에 나올 준비를 마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나만의 것을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다.=====저자의 시선으로 보는 작품 감상 포인트=====-----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114~115페이지 中-----오랫동안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을 하면서 그는 그 나름대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감상한 작품의 포인트를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는데, 읽다 보면 그 느낌이 맛깔난다.-----연주자가 마침내 손을 멈췄을 때는 아마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수많은 디테일로 채워진 그 연주를 듣는 동안 마치 수천 번의 붓놀림으로 채운 그림이 순간순간 공중에 걸려 있는 듯했다. 나는 겸손해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을 탐험해 볼 자격만을 간신히 갖춘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다.110페이지 中-----수천 번의 붓놀림으로 채운 그림이 순간순간 공중에 걸려 있는 듯한 연주는 어떤 연주일까? 상상에 상상을 더해본다. 얼마나 경이로운 연주였으면, 스스로가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정말 궁금해진다.-----단 하나의 획도 언어적인 의미에 빠져 놓치지 않고 이 화려하고 다양한 문자들이 펼치는 시각적 향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획이 나른한 뱀처럼 나아가면 다음 획은 신속하고 격렬하게 연이어 찌르는 듯한 모양새다. 이 두 극단 사이의 모든 가능성이 지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말로 형용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또 너무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들이다. 이런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각적인 경험이 언어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지 깨닫는다.111페이지 中-----저자가 말하는 작품의 묘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또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제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 확신한다.상상한 작품을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상상한 것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내 시선은 작고 고요한 배 위의 어부들과 벌거벗은 가을 나무들, 행상인들과 짐을 가득 진 노새, 암벽, 언덕을 오르는 허리 굽은 노인들을 지나 안개에 둘러싸인 산속으로 그 오래된 길을 따라 여행한다. 가슴이 저미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113페이지 中-----설명을 따라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디테일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고난으로부터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겠지만 그 시도만큼은 심금을 울린다. 엄청난 압박의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렇듯 웅장한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126페이지 中-----이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디테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술상이 존재했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그냥 보는 주술상과 배경지식을 알고 보는 주술상은 천 배, 만 배 차이가 난다.-----16세기 수피파의 더비시를 그린 그림 앞에 앉는다. 더비시는 고행을 통해 수행하는 인물로 수도사와 다소 비슷하다.(...)예술 작품 앞에 '앉아'있다니, 너무 좋다! 그림에 적힌 아랍어 문구를 번역한 캡션을 찬찬히 읽는다.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신을 향한 이 비난에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믿기지 않아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반대로 그림은 너무 절제되고 웅장해서 더비시의 애처로운 말투가 나의 허를 찌른다. 초상화의 얼굴에서 이제야 발견한 침울함이 내가 고민하던 몇 가지 질문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나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 남자의 번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수피즘을 파고들기 시작한다.217~218페이지 中-----앞서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깊이 사유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여기에 더해 자신의 감정을 덧되고, 궁금해하며, 추가적으로 공부하는 열정까지 보인다.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갈 그림 한 점을 두고도 그는 이토록 깊이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내가 가진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된 작품이 좋다. 단단한 나무판 위에 입혀진 템페라의 느낌도, 자디잘게 금이 간 금박 아래로 붉은 진흙 베이스가 살짝 얼굴을 내미는 것도 좋다.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317~319페이지 中-----이 작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상실의 고통과 비로소 마주하는 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취향은 둘째치고, 상실감을 안겨줬던 형 '톰'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생각나게 해서 좋다 말하는 그에게서 '치유'를 떠올리게 된다.-----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320페이지 中-----살아생전 밝고 솔직했던 형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이 그림을 목전에 두고 바깥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된다. 위안을 얻는다.=====예술을 통해 돌아본 삶=====-----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324페이지 中-----저자는 10년을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메트(=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지칭)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해줄 조언을 곱씹어 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이제 삶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미술관에서 예술을 통해 삶을 관통한 상실과 고통의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었음을, 덕분에 오랜 시간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그가 미술관에서 보낸 10년의 시간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은 덕분에, 그는 좌절과 우울이라는 작은 불씨마저 꺼뜨리고 마이너스가 아닌 '0'이라는 출발선상에서 다시 존재의 가치를 찾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때문에 새 직장을 구했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흥분이 우선할 수 있었다.그의 이 기록들은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상실의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 준다. 아름답고 고요한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하며 비로소 멈췄던 시계 추를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만약, 지금 소중한 이를 잃고 어딘가 웅크리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깊고 넓은 미술관을 탐험하는 동시에,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