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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ㅣ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평점 :
어릴 때 한참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읽던 시절 알게 된 히가시노 게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책을 찾지 않게 된 순간이 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출판되는 책이 많아지면서 선택의 폭이 많아진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한정적으로 읽던 분야가 대폭 넓어진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흥미진진하던 매콤한 스토리가 어느 순간부터 잔잔한 스토리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취향의 변화와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에 이어 스토리의 맛이 살짝 변하면서 한동안 뒤로 살짝 밀려있었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다시 그의 책을 보게 되면서 꺼내 읽게 된 것이다.
첫 느낌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고, 읽고 나서는 잠시 쉬는 타임을 가진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는 것도 꽤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 어떤 책은 끊어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단숨에 읽어나가며 다른 책에서 쓴 에너지를 보충 받는 느낌이 들었다.
총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공통적으로 '트랩 핸드'라는 비밀스러운 바와 그곳을 운영하는 마스터 가미오 다케시가 등장한다.
이 바는 사건의 해결점이자 스토리의 중심점이 되는 지점으로, 각 스토리에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등장하며 숨겨진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과거 흥미진진하던 매운맛 버전이 아닌, 미스터리 한 방울이 가미된 스토리 형태이며, 그래서 더 '쉼'처럼 다가왔던 책이었다.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 혹은 숨기고픈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전개되며, 이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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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스토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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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션의 여자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우에마쓰 가즈미'라는 부인이 이사할 집의 리모델링을 위해 젊은 건축사인 '가미오 마요'에게 의뢰를 맡기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이는 의뢰인 가즈미는 자신의 집은 물론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는 카페 등이 아닌 단둘이 이야기할 공간을 요청한다.
이에 마요는 자신의 삼촌이 운영하는 바인 '트랩 핸드'로 그녀를 불러들이고 여기에서 리모델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후 가즈미는 이 공간을 자신이 개인적으로 쓰기를 요청하게 되면서 차츰 그녀의 사정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가즈미이지만 가즈미가 아닌 그녀의 숨겨진 속 사정과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매우 적극적인 행동력과 추리력을 보여주는 바의 주인 가미오의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하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결혼을 위해 선을 보면서 조건 중 유난히 재력을 주의 깊게 본다. 그러던 중 소개팅남과 한 바에 들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트랩 핸드'다.
소개팅남이 읊어대는 재력에 만족하던 나미는 상대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의 마스터를 통해 상대 남자의 재력이 거짓임을 알게 되고, 여기에 더해 자신에게 수면제 등의 약을 쓰려 했던 것을 알게 된다.
나미는 그런 마스터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매번 소개팅남을 만날 때면 이 바에 들러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마스터를 통해 파악하기에 이른다.
■환상의 여자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꽤 긴 형태로 이어지는 스토리에는, 한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방황하는 과정과 이를 다시 극복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스토리의 중심에도 역시 '트랩 핸드'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공간은 두 가지 의미로 주인공에게 중요한 공간이 된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찾던 공간으로, 두 번째는 그를 잃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중요한 공간이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베이시스트 다카토 도모야는 유부남으로, 현재 아내와는 이혼 협의를 통해 별거 중이다. 낮에는 치과의사, 밤에는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나름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던 그는 우연히 만난 히노와 연인 사이가 되면서 어느새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서 연인이었던 히노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도모야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우울해하는 그녀를 위해 그녀를 아끼는 주변인들이 나서서 그녀를 돕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마스터인 가미오와 절친 야요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인물들이 그녀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서 주게 되는데, 끝까지 읽다 보면 감동은 물론 힘찬 응원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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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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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편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이야기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마스터의 적극적인 행동력과 판단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뒤에 감춰진 이야기까지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어 추천한다.
크게 머리 쓰지 않고도 술술 읽을 수 있는 단편집들이 모여있어 이 시리즈의 책들을 두 권, 세권 쌓아놓고 읽어도 크게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아주 예전부터 그의 소설을 읽어왔던 나로서는 매운맛이 아닌 보통맛의 스토리가 살짝 아쉬운 감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스토리들은 이것대로 매력이 느껴진다.
쉬어가는 타임으로,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쇼맨> 시리즈를 만나봐도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