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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ㅣ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아카넷 / 2020년 2월
평점 :
"무죄의 '변론'보다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대해 ‘항변’"
김헌의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에 추천도서로 올라와 있던 책 중 하나였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사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책 중 하나였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동일 책이 아닌 다른 출판사의 책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외에도 전후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함께 실려있어 그다지 황당하다 느껴지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해당 부분만 실려있는 책이다 보니 다시 읽으면서 약간의 황당함과 어이없는 웃음이 살살 베어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읽는 관점에 따라, 전후 맥락이나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구나 싶어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다행히 오해 없이(?) 읽게 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는 소크라테스 같은 인물이 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생사를 결정짓는 재판장에서 이만한 배짱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더군다나 죽음을 무마하기 위한 무죄를 주장하기 보다 끝까지 남들이 회피하고 싶어 하는 정직하고 옳은 말만을 꺼내 꼿꼿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끝끝내 대중으로부터 미움과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을 짐작해 보건대, 다소 엉뚱하면서도 괴짜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본문 외에도 주석과 작품 안내 등을 통해 꽤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다. 내용을 파악하는 데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해당 내용들을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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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면 좋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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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을 옹호하기 위해 쓴 대표적인 증언이요, 기록물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이 재판에서 피고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된 플라톤의 작품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제목은 이중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첫 번째는 '소크라테스가 하는 변명'을, 두 번째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변명'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전해지는 플라톤 작품 가운데 제목에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들어 있는 유일한 작품이며,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생생하게 직접화법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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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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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99년 민주정의 아테네에서 열린 재판에서 불경죄와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로 고발당하게 되면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곧 민주정의 타락에 의한 희생양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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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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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관점으로 보기보다, 제3의 눈으로 작품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양이 되기도 하고 늑대가 되기도 한다.
먼저, 첫 번째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민들의 관점으로 소크라테스를 살펴보면, 그는 '늑대'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양아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름의 죄를 짓고 법정에 섰음에도 그는 한결같이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피고이면서 오히려 원고에게 심문을 하는 형태를 취한다.
또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루고 늘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왔다며 자신은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내린 사람이라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는 몰염치함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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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항변을 하고 있는 게 전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이 나에게 유죄표를 던짐으로 해서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대해 뭔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려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날 죽인다면, 이런 유의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
내가 바로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주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부터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이 숱한 세월 동안 나 자신의 일들은 일절 돌보지 않았고 집안일들을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하고도 견딘 반면, 여러분의 일은 줄곧 해 왔다는 것, 이것은 인간에게 속한 일 같지 않다는 겁니다.
77~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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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악담을, 자신을 살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찾아오라며 친구로 여겨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의미하는 바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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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나를 죽일 때의 앙갚음보다 제우스에 맹세코, 훨씬 더 혹독한 앙갚음이, 내 죽음 이후에 곧바로 여러분에게 닥칠 거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삶에 대한 논박을 견뎌 내는 일에서 벗어나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방금 해냈죠. 그런데 실은 여러분에게 그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리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
반면에 방면 쪽에 투표한 분들과는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기꺼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
여러분을 친구로 여기고 방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 줄 의향이 있거든요.
105~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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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자신은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오히려 치를 떨지 않았을까?
그저 아테네의 한 시민으로서 죄인의 심문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의 이런 태도가 어쩐지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두 번째는 그를 따르고 스승으로 모셨던 플라톤과 같은 이들의 관점이다. 당연히 그들은 평소에 그를 존경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의 사상과 가치관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의 이상과 불합리함을 꼬집는 스승의 발언이 또 하나의 배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세 번째는 현시대의 '내'가 바라보는 제3의 관점이다. 앞뒤 문맥과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나, 민주정의 붕괴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재판대에 세운 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둔 '내'가 보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토론과 토의라는 확실한 민주정 방식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하고 이를 전파하는 소크라테스의 행태는 어쩌면 당시 모든 이들에게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재물을 받지도 않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에게마저 확실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는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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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음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지만, 부정의한 어떤 일도 불경건한 어떤 일도 저지르지 않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83~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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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불편함을 넘어 오히려 두려운 상대가 되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이에 대한 적대와 시기는 물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소크라테스였기에 부정부패에 절여져 있던 사람들은 어떤 명목으로든 하루빨리 그를 처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불편함이 점차 퍼져나가게 되고 마침내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를 없애버리면 평온해질 거라는 생각이 쌓이면서 이유 없는 명분을 들어 그를 고발하고 마침내는 처형하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덕분에 마녀사냥에 당한 무고한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지혜를 품고 삶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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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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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내가 말들이 궁해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송사에서 죄를 벗기 위해 무슨 일이든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을 설득해 내가 위해 동원할 수 있었을 그런 말들이 궁해서라고 말이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게 아니고 내가 유죄 판결을 받은 건, 물론 궁해서긴 하지만 말들이 궁해서가 아니라 대담함과 몰염치가 궁해서, 즉 여러분이 들으면 가장 달콤해할 그런 말들을 여러분에게 할 의향이 궁해서죠.
(...)
그런데 바로 그런 것들이야말로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는 데 익숙해져 있기도 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앞에서도 위험 때문에 자유인 답지 않은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듯, 지금도 이런 식으로 사느니보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항변하고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1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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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그를 이 자리에 세운 이들을 더 자극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리 청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 놓이게 되면 없던 말도 만들어내면서 살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을지언정, 사람들이 달콤해 할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런 말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을 꼬집는 말을 함으로써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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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것이, 즉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닐 겁니다. 오히려 훨씬 더 어려운 일은 사악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건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니까요. 지금 나는 느리고 나이 든 사람이라서 더 느린 것에서 잡혔지만, 내 고발자들은 능란하고 기민해서 더 빠른 것, 즉 악에게 잡혔지요.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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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은 '사악'에 사로잡혀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이어가게 되면서, 마침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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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들이 꽃다운 나이로 자라면,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과 똑같이 그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갚아주세요. 그들이 덕보다도 돈이나 다른 뭔가를 우선하여 돌보고 있다고 여러분에게 여겨진다면 말입니다. 또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한 인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하듯이 그들을 꾸짖어 주세요.
(...)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해 주면, 나 자신도 내 아들들도 여러분에게서 정의로운 일들을 겪는 셈이 될 겁니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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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들들마저 자신이 했던 것과 같은 잣대에 두고 지켜봐 달라며 오히려 부탁하는 말에서 얼마나 그가 대범하고 비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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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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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추앙하는 현자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아무런 잣대 없이 무조건 추켜세우기 보다, 플라톤이 남긴 생생한 연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그를 만나보자.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사상과 삶의 가치를 곰곰이 떠올려보며, 우리가 그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점을 현실에 반영할 수 있을지를 점검해 보자.
앞선 이야기처럼, 여러 관점에 따라 그는 늑대가 되기도 하고 양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판단에는 당시 소크라테스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사상 외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 나'의 또 다른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이 과연 '삶'보다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세상에는 이처럼 강직한 자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괴팍하지만 우직한 소크라테스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아는 척'을 꼬집는 소크라테스의 행태가 곱지만은 않게 보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법과 윤리, 사회질서를 이끄는 이들만큼은 꼭 소크라테스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이기적이고 어지러워지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균형을 잡아주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No'를 외쳐주는 확고한 의지를 지닌 신념 말이다.
무능과 아집 속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들이나 자신의 잣대로만 사물을 재단하고 평가하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독선과 아집에 빠진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지혜는 바로 그런 우직함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묻고, 검증하면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진정한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건강한 삶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하며, 지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이를 통해 불합리함이 판치는, 허례허식이 만연한 삶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